- 구름에달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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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기획안_구달칼럼#46
제목_자전거 여행의 황홀
부제_자전거 여행이 내게 준 선물
주제: 자전거 여행의 재미와 즐거움과 유익함
저자소개
저자는 어려서 "김찬삼의 세계여행기"를 읽고 홀딱 반해서 여행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1981년에 한국해양대학을 졸업하고 마도로스가 되어 7년을 세계의 바다 위를 떠돌았다. 직장생활 중에 만난 자전거가 그의 끼를 불러 일으켜 2013년 가을에 자전거 국토종주와 이어서 4대강을 완주했다. 2014년에는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의 연구원으로 다양한 독서와 글쓰기를 훈련했다.
그는 천생이 방랑자다. 강물같이 바람같이 흐름을 즐기는 자다. 그는 어느 날부터 청춘기를 풍미한 커다란 배를 버리고 두 바퀴 달린 작은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람과 땀과 막걸리를 좋아하는 그의 취향과 길 따라 흐를 때 가장 자기다운 그의 기질에도 딱 맞았다. 자기만의 자전거 길을 그리기 시작했고, 가족과 친구를 그 길로 초대하여 환상의 비경을 선사하기를 즐긴다.
도끼로 장작 패기, 장작불 피우기, 냉온탕을 오갈 때의 알싸한 느낌과 같은 살아있는 경험을 찾아서 그는 자전거를 탄다. 또한 그는 "오늘도 소풍!"이란 이상을 구현시키기 위하여 생활여행자란 새로운 직업을 구상 중이다. 그는 여행이란 인생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단순명료하게 살기를 바란다. 이에 걸맞게 사람들은 그는 구달(구름에 달 가듯이)이라 부른다.
타깃독자
-자전거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
-떠나고 싶어 가슴에 바람이 든 30~50대
-자기를 찾아 삶의 전환점을 모색하는 사람(직장인)
차별화 포인트:
하나, 개성 있다. 자전거 여행이 주는 선물(유익성)을 자유, 몸, 재미와 신명, 자연, 인생전환, 흐름, 시 등 차별화 된 8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독특하게 풀어 간다. (시중의 자전거 여행 관련 책들은 길안내 가이드 북이거나 저자의 여행 에피소드를 서술한 책이 대부분이다.)
둘, 재미있다. 마치 열하일기를 방불케 하는 저자의 유머러스한 필치로 여행 체험을 생동감 있게 표현한다.
이 책의 소개서:
이 책은 저자가 직접 여행하며 느끼는 자전거 여행의 재미와 즐거움과 유익함을 8가지 키워드로 설득력 있게 풀어 간다. 전환기의 직장인이 1년간 주말을 이용하여 2750km 전국 해안 포구들을 자전거로 순례하며 진정한 자전거 여행의 재미와 의미를 발견한다는 이야기다.
“자전거로 우리나라 해안을 여행한다? 생각만 해도 신명 나는 일 아닌가? 나는 순전히 내 몸의 힘으로 페달을 밟아 나아갈 때 진정으로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와 함께 심신의 건강은 덤으로 왔다.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호흡하면서 야성의 건강을 회복하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법도 배웠다. 자전거 여행이란 신선한 자극이 나의 시각을 변화시켜 새로운 삶을 열어 주었다. 비록 주말 여행이지만 짧지 않은 1년간의 여행은 진정한 나를 찾는 구도 여행이 되었다.”
저자의 말이다. 이 책은 저자가 전환기의 직장인으로서 전국 해안일주 자전거 여행을 한 1년간과 여행 준비 과정의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는 전환기의 직장인으로서의 비애, 밥벌이에 대한 고뇌로 번민하지만 결국 어릴 때의 꿈을 찾아 자전거 여행을 실행한다. 불안을 이겨내고 삶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땀 흘리며 몸으로 부딪치는 자전거 여행만한 것이 없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자전거 여행에 관한 책들이 수십 권은 되지만 대부분 자전거 여행 길을 안내하는 가이드북이거나 자전거 여행길에서 만난 저자의 경험과 에피소드로 엮어져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전환기에 서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사람들에게 자전거 여행이 더할 나위 없는 좋은 놀이이자 자기 성찰의 도구가 되어 인생의 의미와 즐거움을 되찾게 한다는 생생한 메시지를 전해준다. 저자가 전환기의 직장인으로서 자전거 여행을 한 동기부터 자전거 여행을 마친 후 달라진 모습까지의 경험과 생각을 생생하고 솔직하게 담았다. 또한 책 중간 중간에 우리 주위에서 자전거 여행을 통하여 성공적으로 인생전환을 한 사람들의 경험담도 함께 실었다.
저자는 밥벌이에 매여 한정된 공간에서 쳇바퀴 생활을 하며 시들어가던 직장인이 어떻게 자연과 교감하여 야성의 건강을 회복했는지도 보여준다. 이렇게 야성의 건강을 회복한 저자는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새로운 시선을 가진 여행자의 눈에 포착된 세계는 독자에게 낯선 충격을 선사할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이 독자들의 가슴에 다음과 같은 열정의 불길을 지피길 원한다. 일단 자전거를 타고 여행길에 오르라, 그대의 삶은 신명으로 춤추게 될 것이다. 낯선 시각의 시인이 되어 시들한 일상을 전복하라. 위기는 기회가 되고 인생 최고의 반전을 맞이할 것이다.
목차
서문 (자전거 여행이 준 선물)
1장. 자전거 여행길에 오르기 까지
리차드 파크와의 동행은 이제 끝나고…
위기의 돌파구가 왜 여행인가?
전국 해안일주 자전거 여행을 시작하며…
2장. 자유
자전거 여행은 자유다
자유의 길, 조나단 리빙스턴 트레일
그렇게 훨훨
라이더와 쇼생크탈출
3장. 몸
라이더의 몸은 진화한다
내 몸의 한계를 시험하다
몸이 반항할 때
명상을 위하여 페달을 밟다
다비드상
몸은 신에 이르는 통로
4장. 신명과 재미
자전거는 길 위의 춤
몸, 길, 바다가 어울린 한 판 축제
왜 힘들게 자전거를 타느냐고
조르바 춤과 자전거
5장. 자연
자연은 아름다움과 생명의 근원
포구의 생명력
놓칠 수 없는 아름다움, 여명의 순간
푸른 새벽, 푸른 바다, 푸른 생명
포구의 불빛
6장. 인생전환
터닝포인트
인생 2모작을 위하여
새로운 삶의 방식
7장. 흐름
Flow
바람
강물
노마드
8장. 시
시인의 시각
시가 찾아올 때
삶을 잘 사는 방법
9장. 길 위에서 너는 이미 풍요로워졌나니
평강의 바다
살아있음의 황홀
맺는 말 (자전거 여행을 권유함)
기타
집필원칙
1. 매 주말을 활용하여 자전거 전국 일주 여행을 하고, 주중에는 매일 글을 쓴다.
2. 연서를 쓰듯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쓴다.
3. 세 가지 질문을 품고 글을 쓴다. 재미있는가? 살아있는 느낌을 주는가? 정서적 충족감을 주는가?
원고 분량: 약 100쪽, A4, 기본여백, 글자크기 10포인트 기준 + 여행 사진 약 200장
일정
- 원고는 2015년 4월 여행을 시작하면서 쓸 예정이다.
- 출간희망일 2016년 12월
서문 (자전거 여행이 준 선물)
뚜뚜…, 뱃고동 소리를 들으면 소년의 가슴은 뛰었다. 여행가의 꿈을 간직한 소년은 뒷동산에 올라 부산항에 드나드는 배들과 먼 바다 끝 수평선을 바라보며 해가 기웃해서야 집에 돌아오곤 했다. 소년은 자라서 마도로스가 되었다. 청춘의 세월은 하염없이 바다 위에 띄워졌고 청년이 된 소년은 외로웠다. 마도로스란 낭만일 뿐 하나의 직업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여행가의 꿈을 접고 다시 육지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뭇 사람들이 살아가듯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들 사이에서 행복하기를 선택했다.
이제 중년이 된 마도로스(나)에게 소년의 꿈이 다시 찾아왔다. 가족을 먹여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의무와 꿈을 실천하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서로 싸웠지만 나는 쉬이 떠나지 못했다. 그 만큼 먹고 사는 문제는 숭고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도 올 것이 왔다. 시한부 직장인이 된 나는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그런데 그 돌파구란 것이 어이없게도 ‘자전거 포구기행’이었다. 아직은 직장인이니 주말을 이용해 자전거로 전국 해안일주를 하면서 우리 포구들을 여행한다는 생각이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처지에 뭐가 그리 팔자가 좋아 여행을 다 하나?’ 라는 주위의 비아냥거림 속에서도 나는 자신의 선택이 옳다고 믿었다. 소년의 꿈을 실행하지 않고서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마도로스 시절 내 집 같이 나를 포근하게 감싸주던 포구의 불빛에 대한 그리움이 아직 가슴에 살아 있었다. 내게 포구란 항상 어머니의 자궁 같았다. 나의 시원이요 돌아갈 본향처럼 나를 맞아주곤 하던 포구다. 선창가의 비릿한 내음이 내게는 마치 고향집 내음 같다. 그래서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바닷바람을 쇠어야 살 것 같았다. 그런 내가 포구기행을 생각해 낸 것은 아마도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왜 하필 힘들게 자전거를 타고 떠나려 하는 걸까? 자전거를 타면 내 심장과 허벅지의 힘이 자전거의 페달을 돌리고, 그 힘은 체인을 거쳐 자전거 뒷바퀴를 돌려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이때 나는 자전거 바퀴가 땅을 만지는 촉감을 발과 다리를 거쳐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이처럼 달릴 때 내 몸과 자전거는 일심동체가 된다.
또한 자전거는 사람이 두 발로 갈 수 있는 곳은 다 갈 수 있다. 지극히 인간친화적이어서 논둑길, 밭둑길, 비포장 산길이건 자갈이 깔린 냇물이건 마다하지 않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자신의 속도와 힘으로 갈 수 있는 이 생물을 어떻게 오토바이나 자동차 따위의 매연덩어리 기계와 견줄 수 있겠는가? 그들은 문명의 이름으로 왔으나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소외시켰다. 그들은 피도 눈물도 없이 오직 굉음과 속도로 우리의 심장을 얼어붙게 하는 도로의 무법자일 뿐이다. 이에 반해 자전거는 양같이 순하며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어떤 소음이나 매연도 없다. 오로지 우리 몸을 태운 힘만으로 나아가며 자연을 우리 가슴으로 데려온다. 바퀴를 통해 대지의 고동을 직접 느끼게 한다. 나와 세계 사이의 간격이 일시에 사라진다. 그 사이의 어떤 모호함, 관념, 추상 같은 알 수 없는 기호의 흔적이 삽시간에 사라지고 오직 명징한 실체만이 가슴으로 와 닿는다. 몸이 먼저 알아챈다. 삶의 진실을, 온 땅에 넘친 이 생명의 약동과 환희를!
자전거를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한지 몇 년 지난 어느 봄날인가 보다. 남한강 강변을 달리는데 갑자기 자전거가 몸에 착 달라붙어 감겨 들더니 내 몸 속으로 스며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봄바람은 부드럽게 내 몸을 애무하고 주홍빛 낙조가 제 그림자를 강물에 길게 늘이며 하늘과 강이 온통 노을 빛 속으로 잠겨 드는 때었다. 이 때 누군가 나를 보았다면 구름에 달 가듯이 자전거로 노을 속을 달리는 저 이가 사람인가 신선인가 했을 것이다. 그만큼 내가 자유롭고 자연스러웠다는 말이다. 그때 나는 벼락같이 깨우쳤다. 아, 나란 인간은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면서 살아야 할 팔자인가 보다고.
오래 전부터 인생의 터닝포인트, 즉 인생전환이란 나의 화두였다. 태풍이 한 번씩 바다 밑을 뒤집어 엎어 주어야 벌교 꼬막이 씨알이 굵어지듯이 내 인생도 한 번은 갈아엎어야 할 필요성을 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미 오랜 직장생활로 내 정신은 야성을 잃어버렸다. 우리를 나와 홀로 살아갈 것이 두려운 동물 같았다. 머지않아 우리를 나와야 하는 나로서 홀로서기를 위한 나만의 의식이 절박했다. 40년을 산 솔개가 제 손으로 무디어진 부리와 발톱과 깃털을 뽑고 새로운 몸으로 소생하듯이 나도 50년 묵은 고루한 생각과 길들여진 생활방식을 버리고 완전 새로워진 나로 거듭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이 일은 실제로 자신을 한 번 죽이고 다시 태어나는 것과 같은 신고의 과정이 될 것이다. 이 같은 통과의례로 택한 것이‘자전거 포구기행’이라면 너무 사치스러운가? 나는 자전거 여행을 통해 나를 엄습하는 일련의 두려움과 맞짱뜨려 했다. 마약과도 같은 월급에 대한 미련, 월급 없이 먹고 살 일에 대한 걱정, 홀로 가는 길의 외로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두려움 등. 두 번째 인생은 다시는 매여 살지 않을 것이다. 더 자유롭고 자연스러우며 신명 나고 더욱 창조적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여행은 생략할 수 없는 새로운 시작의 상징이다.
일생에 한 번은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이 땅을 둘러봐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2750km, 우리나라 해안 포구들을 자전거로 일주하며 인생전환의 출사표로 삼고자 한다. 몸이 말해 주었다. 장거리 자전거 여행으로 단련된 허벅지는 거선의 엔진을 방불케 했고, 무얼 먹어도 그대로 녹여버리는 위는 용광로와 같아졌다. 달라진 몸은 달라진 정신을 불러왔다. 이처럼 몸을 강화시키는 자전거 여행은 몸을 통한 구도의 길이기도 했다. 여행이 깊어지자 낯선 시각의 시인이 내 속으로 들어왔고 삶은 신명으로 춤추었다.
광활한 갯가에 갈대밭이 파도처럼 눈앞에 밀려왔다. 수로 둔덕 갈밭길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아득한 길."아! 세상에 이런 곳이 다 있다니..." 저 길을 따라가다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감격에 싸여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펼쳐진 풍경에 압도당했다. 인천 소래포구에서 물왕저수지를 잇는 자전거 길을 가다가 마주친, 내 피를 멈추게 했던 유레카의 순간이었다. 나는 이 때 정말 내가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래 맞아, 앞으로의 삶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야.
꼭지 글1
“배반 같기도 하고, 비애 같기도 하며, 무력감 같기도 하고, 허무 같기도 한 통증으로 숨조차 쉴 수도 없었다.” 정말 그랬다. 실제로 나의 하루를 흔들어 놓는 심한 통증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와 이젠 머리가 터질 것 같은 두통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고통이 벌써 며칠째 계속되고 있었다.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 또한 미리 예측한 일이고 그래서 나름 준비도 해 왔지 않은가. 그런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토록 고통스러운가? 해고란 게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고 올 것이 온 것뿐인데. 오히려 기뻐해야 할 순간 아닌가. 그토록 갈망했던 자유의 순간이 온 것인데. 언젠가 아내가 말했다. 당신이 해고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당신 손으로 그만 두지는 말라고. 그래서 난 내심 잘라주기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행을 하면서 책을 쓰고 싶은데 직장이 족쇄가 되어 있었다. 시간은 가고 시간 따라 다리의 힘도 빠질 텐데. 언제까지 여기서 뭉그적거리고 있어야 하나. 한시라도 빨리 직장을 그만두고 나의 천복이라 여기는 여행가로서의 길을 떠나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이제 그 날이 왔다. 그러면 당연히 대한독립만세! 삼창이라도 해야 할 텐데, 내가 왜 이럴까?
분명 내가 바라던 일이었는데 내 속 마음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직장이 주는 안정감이 상상 외로 컸던 것 같다. 20년간 나는 철저하게 직장인으로 살아왔고 한 번도 울타리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는 우리 속의 동물이나 다름없었다. 울타리가 무너지고 먹이가 사라지니 이미 야성을 잃어버린 나로서는 어찌할 바를 몰라 불안한 것이다. 불안이란 삶의 본질이 아니던가? 생명을 가진 유한한 존재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삶일진대 언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는 삶이 불안하지 않겠는가? 인생이 어차피 불안한 것이라면 불확실한 삶의 사건들을 내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 들이는 자세가 중요할 것이다. 위기란 뒤집으면 기회가 된다. 그러므로 위기에 처해 느끼는 불안은 새로운 기회의 모색으로 치환 될 수 있지 않겠는가.
20년, 긴 세월이었다. 이 직장에서 밥이 나오고, 아이들 공납금이 나오고, 아파트와 자동차가 나왔다. 대신 30대의 팔팔한 젊은이는 이제 늙수그레한 중년이 되고, 아직 이루지 못한 꿈만이 현실이란 장대 끝의 잠자리가 되어 맴돌고 있었다. 아이들은 자라서 직장과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여전히 꿈이 없고, 꽃다웠던 아내는 병을 앓고 난 후로 기운이 달리는지 자리에 눕는 횟수가 늘어났다.
그간 준비를 했다고는 하나 아직 돈 들어 갈 곳이 많다. 아들은 아직 고1에 타고난 지병으로 몸도 성치 않다. 거기에 여든 넘은 양가 모친들을 부양해야 하지. 한 1년 만이라도 일을 더 하게 해준다면...
아아, 내가 이런 생각을 다 하다니, 월급이 마약이다. 그간 때가 되면 꼬박꼬박 들어오던 봉급이 당연한 듯 이리저리 쪼개 마른 논에 물 대듯이 쏟아 부었지. 그리곤 한동안 해갈 된 무논을 바라보는 농부처럼 흐뭇해 했는데, 이제부터 그 물길이 반으로 줄게 된다. 이 금단현상을 어찌 견딜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이런 생각들이 내 통증의 원인이었나 보다. 무슨 일이든 내게 직접 닥치지 않으면 그건 내 일이 아닌 것처럼 생각되더니. 하긴 내 일이라고 실감하더라도 별 통수는 없었을 게다. 먹고 사는 문제가 이토록 중요한 문제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이 달 월급명세서를 받았다. 평소에는 쳐다보지도 않고 서랍 속에 던져 넣었는데 오늘은 애틋하게 보여 자세히 본다. 이제 이것도 받을 날이 세 번 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외로워졌다. 누구든 불러내어 한 잔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친구 BKS를 불러내려니 얼마 전까지 사업이 망한 친구 위로하느라고 고생한 친구에게 나까지 넋두리를 늘어 놓을 수가 없었다. KSU는 이미 퇴근해서 어머니 뵈러 간다고 했다. 망연자실, 갑자기 갈 곳이 없어졌다.
하는 수 없이 아내를 불러냈다. 역전 불닭집에서 호프 1000CC를 들이붓자 오장육부가 확 뚫리는 듯하다. 넋두리하기에 아내가 좋은 상대가 아니지만 이미 상황을 알고 있는 아내는 담담히 나의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평소에도 듣기 좋은 소리는 잘 하지 못하는 아내는, 리차드 파커(영화 ‘파이’에 등장하는 호랑이로 회사 보스의 별명)도 나도 서로 안 맞는 사람들이 20년을 한 배를 타고 여기까지 왔으니 모두 고생했으며 가상하다고 말했다. 보스도 나 때문에 그간 마음고생 많이 했을 테니 사정을 봐주자는 논리다. 나도 오륙도를 넘겼으니 잘리는 것도 당연한 것 아니냐. 그간 오래 근무하게 해줘서 감사하게 여기자고도 했다. 아니, 이 여자 언제부터 마음이 이렇게 태평양이 되었나? 역시 아내는 넋두리할 상대가 아니었다.
“당신 말 다 맞아. 하지만 난 지금 위로가 필요해. 이럴 때 리차드 파커 욕도 좀 해 줄 수 없어.”
“아, 미안! 당신은 이미 위로 따위는 초월한 줄 알았지.”
“나 그렇게 강한 사람 아냐.”
“알았어요. 이제부터 나 당신 위로해 줄게. 토닥토닥~~”
아내가 나보다 강해서 다행이다. 평소 걱정을 앞서 하는 스타일인데 그녀답지 않다. 위기에 강한 자, 그의 이름은 아내였다.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
– 스피노자
그랬다. 글쓰기는 치유의 효과가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 고통이 차츰 해소되어갔다. 그 간의 삶이 무풍지대에서 너무 편안하게만 산 것 같다. 가슴 뛰는 풍랑의 경험도, 부서지며 포말지는 물결의 환희도 맛보지 못한 채, 그저 그렇게 흘러온 세월이 안타까웠다. 이제 지금 이 고통을 뛰어넘지 못하면 나는 날 수가 없다. 언제까지 땅바닥에 붙어 기기만 하는 개미로 살아갈 것인가. 솔개의 비상을 꿈꾸며 나를 곧추세우는 행동이 필요했다. 새벽 기상을 목숨처럼 지키며 러닝머신을 자전거 타기로 대체했다. 마음의 고통은 몸을 움직여 땀을 흘림으로써 이겨낼 수 있음을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이제 곧 겨울이 닥친다. 그 동안 열심히 몸을 만들어 내년 봄에는 여로를 떠나야 한다. 그것이 내가 다시 살아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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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지글 2
위기의 돌파구가 왜 여행인가?
나그네, 내가 가장 사모하는 단어다. '나그네'란 말만 들어도 왜 이리 그립고 애달픈지 모르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가 목월의 ‘나그네'이고, 내 필명이 '구름에달가듯이' 가 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람은 모름지기 다 제 타고난 대로 살아갈 때 가장 아름답다고 나는 믿고 있다.
나그네의 정체성을 가진 내가 너무 오래 한 곳에 머물러 살았나 보다. ‘요즘은 내가 살아있는 것 같지가 않아, 어휴, 생각해 봐, 20년을 집과 직장을 쳇바퀴 돌았으니 미치지 않고 있는 것만해도 내 자신이 가상하지 않아? 어항에 물갈이 하듯, 아니 물고기를 대해에 놓아주듯 낯설고 신선한 삶을 내 삶에 데려와야 돼.’ 난 항상 이런 독백 속에서 살았다. 어려서부터 나는 돌아다니길 좋아했다. 집에 있는 것보다 어디든 나다니면 그 자체로 즐겁고 행복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여행하면서 살기를 바랬다. 하나 여행이 어찌 생활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구체적 실행 방법을 찾지 못한 내게 여행은 아직도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었다.
언젠가 아내와 제주 올레길을 걸었는데 아내가 그 길이 마음에 들었는지 "아, 이 곳에서 한 일년만 살아봤으면..."했다. 그렇게 못할 일도 없다 싶었다. 생활여행자 또는 여행생활자로 살면 된다. 여행 자체가 삶이 되고 생활이 되는 삶의 방식 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생활여행자의 전형인데 그는 세계 어디든 살고 싶은 곳에서 일년이든 이년이든 현지인처럼 살아간다. 싫증나면 다른 곳으로 옮겨가 살지만 머물던 곳을 떠날 때쯤에는 반드시 책이 한 권 나온다. 그의 대표작 ‘상실의 시대’도 그리이스의 한 섬에서 시작하여 로마에서 탈고했다고 하지 않던가.
아내는 앞으로 생활여행자로 살아가면 뭘 해서 먹고 살며, 아이 교육은 또 어떻게 시키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면 나는 다른 욕망은 줄이고 인생 1막에서 번 돈을 2막에서 쓰면서 살아 가면 되지 않겠냐고 대답한다. 아내는 말도 안 된다며 코웃음을 치곤 했다. 하지만 내게는 말이 되는 이야기다. 여행하며 신선한 충격을 받으면 ‘지금 여기의 황홀’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 그 황홀을 포착하여 책으로 남긴다면 이건 분명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사람이 밥에 목을 걸면 밥조차 얻기 어려워 진다. 의미에 나를 걸어야 한다. 살아갈 목적과 의미가 분명한 사람은 죽을 상황과 환경에서도 좀처럼 죽지 않는다, 아니 죽을 수 없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에는 나치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으로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럼, 아이 교육은? 그것도 걱정할 것 없다. 여행만한 교육이 없기 때문이다. 내 교육철학은“만 리를 여행하고 만 권의 책을 읽는다”이다. 이 말은 동양철학자 조용헌이 처음 한 말이지만 마음에 들어 즉시 차용해 쓰기 시작했다. 교육의 알파와 오메가가 건강한 사고와 생활력을 가진 한 독립된 인간으로서 홀로서기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사랑하는 자식을 배낭 하나 지워서 멀리 떠나 보내는 게 상책이다. 집 떠나는 순간부터 먹고 자고 입는 것을 모두 스스로 해결해야 하니 홀로서기를 가르치기에는 이만한 게 없을 것이다. 반달곰이란 닉네임의 한 직장인 아버지는 초등학생 아들을 데리고 매 주말마다 이어 달리기로 자전거로 전국 일주를 했다. 처음 시작할 때 초등학생이던 아들이 이제 중학생이 되었다. 척 보기에도 아주 헌헌장부가 되었다. 나는 이것만큼 좋은 자식교육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반달곰 아버지도 실제로 그 사실을 증언해 주었다.
내 인생의 유레카 순간, 소래포구 갈밭 자전거 길에서 마주친 전율은 자연이 나를 부르는 것일 게다. 이 순간의 떨림에 나를 맡겨야 한다는 것을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앞으로 내가 이 길을 갈 것이라는 예감이 계시처럼 다가왔다. 이처럼 여행은 종종 우리를 자연으로 불러들여 우리의 야성을 일깨운다. 우리나라에서 캠핑 붐이 이는 것도 자세히 보면 잃어버린 본향, 자연으로 회귀하고픈 인간 잠재의식에 각인된 귀소본능에 다름 아니다. 인간도 자연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자연인이요 여행가를 말하자면 세시봉의 일원이었던 이장희를 들 수 있겠다. 그는 미국에 살 때 커다란 캠핑카를 마련해 두고 수시로 미국 서부 죽음의 사막으로 가는 여행길에 세시봉 친구들을 초대하곤 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음악도 사업도 여자도 아닌 자연으로의 여행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지극한 감성이 여행과 자연으로부터 왔음을 나는 알 수 있었다.
한 때 일산에서 춘천까지 150km를 한나절 동안 자전거로 여행한 적이 있다. 그렇게 먼 거리를 하루에 달려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적이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 무리해서 달리다가 완전 개구리 되는 건 아닐는지…… 불안한 가운데에서도 내 체력의 한계가 어딜까? 하는 궁금증도 일어 시도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해질 무렵 춘천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체력적 한계를 극복한 성취감에 비록 몸은 파김치가 되었지만 고양된 정신은 하늘을 날았다. 이렇듯 여행은 몸으로 시작하여 정신에 이르는 최고의 절정을 경험할 수 있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이렇듯 여행은 나의 오랜 꿈이기도 하고, 20년 직장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새 삶을 구축해야 하는 이 변환의 시기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삶의 한 방식으로 다가왔다. 물론 이 길을 가는 데는 여러 장애물이 산적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가려는 것은 단 한가지, 여행은 아직도 내 가슴을 뛰게 하기 때문이다.
꼭지 글3
전국 해안일주 자전거 여행의 출사표를 던지며…
“길 위에서 너는 이미 풍요로워졌으니
길 위에서 너는 현자가 되었으니
마침내 이타카의 가르침을 이해하리라.
삶은 이타카를 향하는 도중에 있음을”
전국 해안을 돌며 자전거 포구기행을 하리라 작정하자 떠오른 시 구절이다. 이 여행의 의미를 짚어주는 시구로 나의 심금을 울린다. 여행 내내 되새기며 달려야 하리.
강화도 역사 박물관, 여기서 포구기행의 닻을 올렸다. 이미 강화도는 친숙한 곳이었다. 일산 집에서 멀지 않아 고구마 주말농장을 일구기도 하고, 망둥어 낚시도 하곤 하던 우리의 놀이터요 쉼터이기도 하다. 이제 여기서부터 해안을 타고 북상하여 강화도를 일주하는 것을 시작으로 서해안을 타고 남하할 것이다. 전국 포구기행, 머나 먼 길이 되겠지만 가슴이 뛴다. 길이 아스라히 사라지는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해안 따라 구불거리며 이어지는 길만 보면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낯선 길은 언제나 나를 유혹했다.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 나의 중요한 인연이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꿈같이 나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자전거로 길을 달리는 것만큼 내 몸을 알아가는 경험이 또 있을까? 나는 몸의 반응이 궁금하다. 직장에서 일할 때는 몸이 나와 분리된 존재란 생각이 들었다. 몸보다는 주로 머리와 눈과 손가락을 쓰는 컴퓨터 모니터 앞의 작업으로 인하여 이들 외에 다른 몸의 지체들은 나와는 상관 없는 존재로 느껴지곤 했다. 그런데 자전거 위에 오르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온몸의 지체들이 살아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몸은 참 묘하다. 일을 안 시키면 머지않아 몸을 망치게 되고 또 혹사시켜도 탈이 난다. 그런데 혹사가 어떤 것인지 그 수준까지 일을 안 시켜보면 모를 일이다. 이번 여행을 혹사의 한계를 시험하는 계기가 되기도 할 것이다. 일의 강도를 서서히 높이면 몸은 점점 적응하고 단련되어 혹사하기가 불가능한 경지가 찾아오지나 않을까 하는 몸이 알면 안될 불경스런 생각까지도 하게 된다. 이런 나의 불경스런 생각이 무리가 아닌 것은 그간의 경험으로 볼 때 자전거 위의 내 몸은 대체로 춤을 추었기 때문이다. 그건 아마 바람 때문일 것이다. 자전거는 항상 바람을 데려왔다. 바람은 최고의 매력적인 자전거 동반자이다. 가끔 마파람이 몸을 힘들게 하기도 하지만 바람은 몸에 날개를 단 듯 자유의 길로 나를 인도한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바람이 실어온 갯내음은 나를 단박에 바닷길의 황홀 속으로 내몰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해변 길을 달리노라면 내가 진정 인생길을 가고 있구나 하는 실감에 전율하곤 했다.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 로버트 프로스트
길은 길에 연하여 끝이 없으나 결국 길은 길로 통한다. 살다 보면 마주치는 두 갈래 길에서 어느 한 길을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내게 처음 온 그것은 진로를 선택하는 순간이었다. 해양대냐 공대냐? 바닷길이냐 육로냐? 부모님과 선생님은 내가 육로를 택하기를 원했지만 난 사람들이 적게 간 길, 아니 나의 꿈을 택했다. 이후, 그로 인하여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러나 삶은 만만치 않았다. 오래 돌아서 나는 다시 원점에 섰다. 그것이 두려워 못하면 비겁한 삶이 될 것이고, 평생 가슴 뛰는 삶은 맛도 못 본 채 일생을 마치게 될 것이다. 두렵지만 내 길을 열심히 가노라면 새로운 인연과 꿈,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을 믿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완전 연소시키며 사는 것이다. 나는 그 방편으로 여행이란 자유의 길을 선택했다. 삶은 여행이고 세상은 배움의 장이 아니겠는가.
얼마나 달렸을까? 흐르는 강물처럼 자전거도 유유히 흘러간다. 자전거로 여행하는 것은 노는 것이다. 가다가 쉬는 것 또한 노는 것이다. 시간을 타고 가므로 나는 시간으로부터 자유롭다. 저 구름처럼 자유롭다. 내가 여행하는 진정한 목적이 있다면 놀기 위한 것이 아닐까? 일생에 진정으로 놀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 기회에 한 번 놀아보라고 신이 내게 기회를 주신 거야.
작년 이 맘 때였나 보다. 억수로 퍼붓는 비속을 헤치며 서울-부산간 자전거 국토종주에 나선 것이. 그 때는 홀로 외로운 늑대가 되어 수일간 하염없이 달리고 또 달렸지. 비와 바람, 구름을 친구 삼아 그렇게 마냥 나는 깃털처럼 자유로웠지.
인생에 무슨 답이 있겠는가. 살아가는 데는 바닷가 모래알만큼이나 다양한 길이 있을 테니. 지금 손아귀에 움켜 쥔 것을 버려야 다른 좋은 것을 얻을 수 있는 법. 많이 버릴수록 삶은 가벼워지고 자유는 커진다는 진리를 알면서도 나는 왜 버리지 못하고 떠나지 못했던가?
다 버리고 오직 하나, 뜨거운 심장 하나 안고서 달리자. 포구에 가면 내가 찾는 그것이 있을 것이다. 비릿한 갯내음 속에 퍼덕이는 물고기의 생동감이 지친 몸에 생기를 불어넣어 줄 것이다. 깨끗하고 거룩한 신전에는 생명이 없다. 똥밭에서 생명은 나고 자란다. 개똥밭에서 구르는 열정과 용기만이 살아있는 생명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땀내나는 몸뚱어리와 더럽혀진 자전거로 포구를 찾아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살아있다는 느낌, 그 생생한 감동을 찾아서 나는 거침없이 해안길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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