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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16일 16시 32분 등록

곽재구의포구기행_구달리뷰#43

곽재구 지음

열림원 출판

 

1. 저자에 대하여

 

『곽재구의 포구기행』을 통해 대중에게 한발짝 더 다가선 시인. 이방인의 머리 속에, 고만고만한 배들이 들고나는 포구의 어스름은 스산함이나 적막함으로 각인돼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시인 곽재구는 먹빛 바다를 바라보며 술잔을 돌리는 거친 사내들의 왁자함이나 마치 등대처럼 노란 불빛을 밝히고 있는 여염집을 바라보며 어둠을 감싸고 있는 '인간의 따뜻함'을 발견해낸다. 

 

『사평역에서』는 곽재구 시인의 눈에 비친 세상 이야기들로 가난한 냄새가 흠뻑 배어 있다. 암울한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동명동 청소부, 중동에 간 요리사, 창녀, 선생님, 용접공, 자전차포 점원 등-이 그의 시들의 주인공이다. “송화처럼 탄재가 날리는 용산역에서 새벽 김밥을 팔고” “가까운 고향도 갈 수 없는” 처지에 “일 년 반 동안 세 번을 이사”하기도 하는 그들에게 세상은 고되고 힘겹다. 그러나 그들은 `절망'에 대하여 노래하다가도 “사랑은 가고 누구도 거슬러올라 오지 않는/절망의 강기슭에 배를 띄우며/우리들은 이 땅의 어둠 위에 닻을 내린/많고 많은 풀포기와 별빛이고자 했다. (「절망에 대하여」)며 희망을 싹 틔운다. 

곽재구 시인의 시들은 서정적이고 아름답다. 도시 노동자들의 삶을 노래하면서도 그는 비루한 그들의 삶에 피어 있는 조그만 들꽃을 발견해내는 섬세한 눈을 가지고 있다. 『사평역에서』에서 시작하여 『서울 세노야』에 이르기까지 그는 현실에서 억압 받는 삶에 대하여 서정적으로 노래해왔다. 80년대를 노래한 시들은 많다. 80년대를 겪은 이들에게 분노는 `근본 감정'이다. 그 분노를 비판 의식으로 끌어내 새로운 힘을 만들어내야 사회는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80년대를 노래했던 많은 시들은 그저 분노에 찬 절규와 외침으로 끝나버리기도 했다. 이러한 때 곽재구 시인의 시들은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의 분노는 아름다운 시어들을 통해 가슴에 와닿았기 때문이다. 

 

남루한 현실, 힘겨운 현실을 노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들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사랑' 때문일 것이다. 그는 근본적으로 현실과 세상을 사랑하고 있다. 그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그는 어쩌면 더 심한 가슴앓이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사람을/사랑할 날은 올 수 있을까/미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은 채/그리워진 서로의 마음 위에/물 먹은 풀꽃 한 송이/방싯 꽂아줄 수 있을까......(「바닥에서도 아름답게)). 『사평역에서』에서는 이제 막 시인의 길에 들어선 젊은 글쟁이의 현실에 대한 고뇌가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사랑의 편지를 쓰는 와중에도 용접공인 동생이 건네는 때묻은 만 원권 지폐 한 장에, 팔 년 만에 졸업하는 대학과 어머니가 사 들고 오는 봉지쌀에 묻은 가난을 외면할 수 없는 젊은 글쟁이였다.

 

시집『사평역에서』(1983)『전장포 아리랑』(1985)『한국의 연인들』(1986)『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1999) 등과 기행산문집『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1993), 창작장편동화『아기참새 찌꾸』 (1992) 등을 펴냈다.

 

땅끝, 세상의 끝에서 다시 시작되는 노래곽재구 인터뷰 2003

 

곽재구 시인에게 인터뷰를 부탁하러 전화를 했을 때, 그는 한사코 인터뷰를 사양했다. 이번에 나온 『곽재구의 예술기행』 1999년에 나온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을 다시 엮어낸 것이라 별로 할 말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몇 년 전 서울지역 대학생 문학 연합에서 주최한 강연회에서 그를 만났다는 인연까지 꺼내면서 꼭 뵙고 싶다고 하자, 결국 그는 마지못해 허락했다. 어찌되었든 전남 순천으로 가는 기차를 탄 기분은 좋기만 했다. 그가 뭐라 하던 그가 쓴 시는 많은 이들의 가슴을 적시지 않았던가. 어느 낯선 시모임 자리에서 그의 시 「사평역에서」를 깊은 목소리로 암송하는 한 남자를 본 이후, 나는 그의 시들 중 몇 편을 사랑하게 되었다. 자신의 시가 아늑한 새벽 공기 속으로 퍼져나가는 소리를 시인은 들은 적이 있었을까?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기분으로 나는 그를 만나러 가고 있었다. 기차는 퍼붓는 빗속을 뚫고 오래된 기억 속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시를 좀더 힘들고 고통스럽게 쓰고 싶다
순천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있는 그의 연구실에서 내심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그를 기다렸다. 그는 끝까지 어지간하면 인터뷰를 안 했으면 한다는 의중을 내비췄었다. 또한 사진 촬영은 이미 단호하게 거절한 상태였다. 이번에 다시 묶여 나온 『곽재구의 예술기행』의 저자 사진이 『곽재구의 포구기행』에 나온 사진과 같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매우 조심스러운 걱정이 앞섰던 마음은 시인이 내미는 굵고 따스한 손을 잡는 순간 사라졌다. 

 

제 생각에는 원래 시인이 열심히 시를 쓰고 열심히 산다면 2년에 하나씩은 시집을 내야거든요. 긴장이 떨어지지 않는 시집을 2년에 한 번 씩은 내야 하는데, 첨에 다섯 번째 시집까지는 그렇게 냈어요. 근데 그 뒤로는 그냥 먹고 사는데 치여 가지고, 시 써가지고는 살 수가 없으니까, 산문도 쓰고, 동화도 쓰고, 하다보니 좋은 시를 못 쓰게 됐어요. 또 내 마음에 남는 시들도 못 쓰게 되고, 많이 부끄럽죠. 그래서 인터뷰 같은 걸 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거예요. 작가는 좋은 글을 썼을 때 에너지가 나오거든요. 아 내가 썼구나, 하고……. 세상에 대해서 자기 발언도 생기고 그러는데……. 좋은 시를 쓰지 못하고 그냥 시인이라 불리면서 이렇게 머물고 있으니까 마음이 아프죠. 그래서 인터뷰나 이런 거를 잘 생각할 수가 없어요.” 

그는 내년쯤에 낼 새로운 시집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가 첫 시집을 낼 때가 1983 5월이었다. 
『사평역에서』가 나온 지가 올해가 이십 년째인 셈이다. 그래서 그는 시집을 하나 준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가 젊은 시절 제일 영향을 많이 받았고 제일 좋아했던 시인이 타고르였다. 타고르의 시들을 읽으면서 그는 많은 위안을 받았다. 첫 시집 이후 이십년이 지나면서 그는 자신을 시의 길로 인도한 타고르 시인에게 시집을 하나 써서 주고 싶은 생각을 품게 되었다. 

그래서 지난 겨울에 인도 여행을 했어요. 타고르의 흔적들을 찾아다녔어요. 근데 여행하면서 몇 가지 미진한 부분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번 여름에 또 인도를 갔어요. 인도도 우리처럼 식민지를 경험했지만 삶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우리보다 훨씬 근원적이에요. , 자연, 운명 이런 것만 따지면 우리나라보다 삶의 근원성을 더 지니고 있는 거죠. 

인도를 여행하면서 그는 스물 살 때, 인생이 고통스럽고 힘들 때, 자신에게 많은 위안을 준 타고르의 시를 다시금 읽어 보았다. 그러면서 인도의 역사와 민중의 삶 속에서 타고르가 왜 그런 시를 썼을까 하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냥 내가 타고르 한 사람에게 바치는 시집을 내는 것 보다는 더 보편적인 고통이라든지. 억압, 위로, 제 자신의 모순에 대한 위로까지 포함한 것을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인도 여행을 하면서 타고르에게 주고 싶은 시들을 시집 한 권 분량이 될 정도로 썼지만, 타고르에게 바치는 시집은 유보 시켰어요.” 

그는 인도를 여행하는 동안 거의 매일, 때로는 하루에 두세 편 씩 시를 썼다면서 습작노트를 보여주었다. 습작노트에 쓴 시만 해도 60편이란다. 그런데 그는 그 시들을 읽다가 문득 조금 더 힘들게 작업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8월 말까지 원고를 넘겨준다 했는데, 내년 봄에나 보완을 해서 내야할 거 같아. 좀더 힘들고 고통스럽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아주 따뜻하게 누워있는 바다를 닮은 산문을 쓰고 싶다
인터뷰를 시작한 지 삼십 분쯤 지났을까. 그는 갑자기 바다를 보면서 이야기를 더 나누자는 말을 했다. 그를 따라 나서면서 이번에는 질문을 미리 준비하지 않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물어보기로 한 것이, 어떤 형식에 맞춰 넥타이로 꽉 졸라맨 듯한 인터뷰를 하지 않기로 한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나를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여전히 비는 마구 퍼붓고 있었지만, 그가 운전하는 차는 바다를 향해 가고 있었다. 아마 그의 『포구기행』에 나오는 멋진 바닷가의 노을은 볼 수 없으리라. 하지만 대신 따스하게 누워있는 와온(臥溫) 포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제가 대학교 선생 자리에 들어온 게 2001년이에요. 그전에는 그냥 원고 써서 인세와 원고료로 생활해야 하니까. 사실 시 써서는 먹고 못살잖아요. 그래서 먹고 사는 방편으로 기행문도 쓰고, 산문도 쓰고, 동화도 쓰고 하다가 
『포구기행』으로 묶어내게 된 거죠. 

먹고 사는 방편이라 하지만, 그가 말하는 밥벌이가 단순한 돈벌이는 아님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글은 돈보다도 밥보다도 술보다도, 더 돈이고 더 밥이고 더 술이라는 말과 함께, 생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쓰는 글은 글이 아니라는 지론을 밝힌다. 

나는 글을 쓰면서 생활이 힘들거나 그러지는 않았어. 이게 세상이 나에게 준 선물이거든요. 시를 쓰는 동안에는 시 쓰면 모든 게 다 해결 됐어요. 첫 시집을 1983년도에 냈지만은 첫 시집을 내면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주었어요. 그래서 저는 제 시를 한 번 씩이라도 읽고, 책을 산 독자들에게나, 우리나라에 대해서나 아주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자신이 정말 운 좋게 오월시 동인에 들어갔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 한국 역사가 주는 선물이라면서, 역사 속에 들어가 함께 생각을 하다 보니까를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나갈 수 있는 문학적 지향점이 마련된 것인데, 그런 점에서 그는 한국 역사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가 운전하는 차는 태풍이 비껴간 논을 지나 어느 한적한 바닷가에 우리를 인도해 주었다. 

여기가 마을 이름이 와온(臥溫)이라는 데에요. 와자는 누울 와자고, 온자는 따뜻할 온 자예요. 그래서 아주 따뜻하게 누워있는 바다인데, 갯벌이 너무너무 좋고, 진짜 아름다운 노을이 나라 안에서 노을을 보는 3대 명소 중에 하나로 꼽힐 정도예요. 비가 온 뒤에
개이면서 하늘에 구름이 남아있을 때가 노을 보기에 제일 좋은 때에요.” 

그가 『포구기행』에 담은 사진들은 모두 아주 오래된 니콘 FM2 수동식 카메라와 표준렌즈 하나로 다 찍은 것이라 한다. 무려 15년 이상 쓴 카메라는 어느새 그의 몸의 일부처럼 되어서 딱 대상을 향하는 순간, 바로 전자동으로 초점이 맞춰진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포구기행』을 쓰게 된 배경을 말해준다. “해남에 가면 땅끝이란 데가 있어. 땅 끝 마을에 오는 사람들은 국토순례를 하는 사람들이 오기도 하지만, 땅 끝,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곳까지 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어. 그리고 내 인생이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바닥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땅끝에 많이 와. 더 이상 내가 갈 곳이 없다는 절망감에서 땅끝을 찾는 거지.” 

그는 모든 포구들을 다 땅끝으로 여긴다. 땅끝에 오면 포구가 있고, 거기서부터 또 새로운 길들이, 시간들이 시작된다. 그는 포구에 오면 길이 끝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또 배들은 떠나고, 포구에 앉아서 파도 소리를 듣다보면 자신이 지나온 길들이 길이 끝나는 곳, 너머로 보이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깜깜한 포구 주위로 불들이 하나 둘 들어오는 걸 보고 있으면 지나간 시간들도 다 생각나고……. 그래서 내가 봤을 때 사람들이 여행에서 힘을 얻기에 제일 좋은 장소가 포구인 거 같아요. 파도 소리를 듣고, 소금 냄새도 맡고, 갯벌도 보고, 지나온 시간들도 생각하고, 마을의 불빛들도 보면서 저기 사는 사람들, 꿈들, 좌절들, 또 떠나가는 배, 항구로 들어오는 배. 이런 것들이 조용하면서도 에너지들로 가득 가득 차있는 거야.” 

그렇게 포구를 돌아다니는 중에 와온이라는 마을은 그에게 특히 많은 힘을 주었다. 그러면서 하나씩 포구에 대한 글을 썼는데 그게 책이 된 것이다. 힘들고 마음이 쓸쓸한 사람들이 포구에 와서 파도 소리 듣고, 자기 시간도 돌이켜 보면서, 뭔가 자유를 얻길 바라는 마음이 그의 
『포구기행』 속에 담겨 있다. 

 

그의 유별난 포구 사랑이 시 속에 나타나지 않을까 싶어 던진 질문에 그는 포구기행 쓰면서 여행한 포구와 여정들이 아직 시에는 영향을 주지 않고 있다고 답한다. 하지만 시의 어떤 질료가 될 편안함, 파도소리나 그에게 위안이 되는 것들이 궁극적으로 그가 쓸 시에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 한다. 또한 그는 시 쓰기와 더불어 진행될 산문쓰기를 통해서 평범하고 보편적인 삶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아름다운 질서를 자신의 산문 속에 불러 일으켰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예전에 그가 섬진강에 작업실을 마련했을 때는 봄에 섬진강 강가에 피는 꽃을 모두 자신의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 강에 피는 꽃을 제일 좋아하니까 그 강에 피는 꽃이나 물살이나 물소리를 자신만큼 유심히 보고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섬진강을 자신이 제일 좋아한다고 생각했었는데, 학교 들어온 다음부터는 그도 섬진강을 좋아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그는 섬진강을 떠나온 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것이 많이 힘들고 괴롭다고 한다. 여인도 아니고, 가족도 아닌, 강과 꽃과 헤어진 게 몇 년이 지나도록 힘들고 괴롭다니, 그는 역시 시인이었다. 

하지만 순천대학교에 와서 와온을 알게 되고, 포구에 대한 생각을 키우게 된 데에는 학교에서 시를 가르치는 선생님을 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에게 힘을 주고 싶을 때 포구를 간다. 가서 책도 읽고, 갯벌을 걷고, 갈매기 울음소리도 듣고, 그러면 힘들이 다시 난단다. 아 살아가야겠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단다. 그래서 그는 포구를 길이 끝나는 곳이 아니라 새롭게 시작되는 곳으로 여긴다. 포구 주위를 둘러싼 갯벌도 폐기물들이 와서 썩는 게 아니라, 다시 재생되는 곳이라 한다. “갯벌이 이미 죽은 것들조차 다 살려주는 거예요.” 

 

이미 죽은 것조차 살려주는 갯벌. 어쩌면 그가 쓰는 모든 글 역시 그 갯벌과 따스한 포구을 닮아있는 것이 아닐까. 늦은 심야버스를 타고 새벽에 도착한 서울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산에 빗방울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왠지 파도소리처럼 들려왔다

 

2. 내가 저자라면

 

곽재구의 포구기행은 2002년에 읽었다고 누렇게 변색된 책 말미에 서명이 되어 있었다. 벌써 13년 전이니 괘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때는 포구를 여행하며 시인과 같이 바다와 개펄과 포구의 기운을 접하고 사색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는데 아직도 꿈으로만 남아 있다. 그래서 자전거 포구기행을 생각해 냈는지 모르겠다.

 

시인에게 포구는 지치고 힘들어 살아갈 힘이 바닥났을 때 찾아가 위로받고 삶의 에너지를 충전받아 돌아와서는 다시 살아갈 힘을 낼 수 있는 곳이었다. 인생의 막장에 다다랐다고 느낄 때 길의 끝이라 느끼는 포구에 가면 배들의 출입과 개펄과 생명의 약동을 보면서 길의 끝 너머를 볼 수 있었다는 말이다. 내게도 시인의 포구가 필요하다. 변화 없는 체바퀴 삶에 대한 권태, 몸담고 있는 업계의 오랜 침체로 인한 불안감, 인생 후반의 새로운 길 모색 등, 조용히 사색할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던 참에 시인의 포구기행은 시의 적절한 지침이 되어 주었다.

 

바다, 개펄, 포구라는 자연과 그 속에 터전을 일구고 살아가는 강인한 갯가 사람들의 이야기가 위로와 새 힘을 준다. 시인의 감성이 따스하게 녹아든 문장들로 시인과 함께 여행하는듯한 느낌이 든다. 어청도,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의 섬들과 포구들, 특히 이름없는 포구들을 찾아다니며 기행의 정감을 쏟아낸다. 시인의 글만 보아도 그림이 그려지는 수채화와 같은 필치와 일가견이 있는 사진들도 여행의 맛을 북돋아주기에 손색이 없다. 무엇보다도 시간에 구애됨 없이 마음을 풀어 놓는 여행이 어떤 것인지 시인은 잘 가르쳐주고 있다.

 

기행기의 풍경이나 여행길의 묘사에 이어 여행 느낌을 어떻게 풀어 갈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서정적 이미지의 글로 교본을 삼음직하다.

 

3. 나를 무찔러온 장절

6
해가 진 뒤, 완벽한 어둠이 찾아오기 직전의 시각, 바다가 아주 신비한 푸른 빛으로 빛날 때가 있습니다.

 

7
어느 순간 내 영혼이 아주 맑고 따뜻해져서 노래를 부르게 될 때가 있지요.

 

진정한 축제의 시간이란 온몸으로 자신을 느끼는 시간

 

주름살 많은 얼굴이 참 편해 보이던 당신

 

8

나뭇잎 같은 내 인생이 가끔은 파도처럼 술렁이는 꿈을 지니기도 했죠.

 

9

한때 한 데 잠을 자본 연인만이 인생의 쓸쓸함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세월이 가고 다시 세월이 오고, 그 속에서 밥을 먹고 시를 쓰고 파도소리를 듣고, 그러다가 그 길목 어디에서 우연히 시의 신을 만나 함께 배 위에 오를 수 있음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 일일까요.

 

화진 가는 길

겨울꽃 지고 봄꽃 찬란히 피어라

18

살다 보면 외로움이 깊어지는 시간이 있다. 외로움이 깊어질 때 사람들은 그 외로움을 표현하는 자신만의 방식이 있다. 어떤 사람은 밤새워 술을 마시고 어떤 사람은 빈 술병을 보며 운다. 지나간 시절의 유행가를 몽땅 끄집어내 부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래 전에 연락이 끊긴 이의 집에 전화를 걸어 혼곤히 잠든 그의 꿈을 흔들어 놓기도 한다.

 

ð  J 라는 친구가 그랬다. 녀석은 평소에는 연락을 끊고 살다가 술만 마시면 자정무렵에 내게 전화를 걸어 나의 중학교 동기를 찾았다느니, 그의 거래처 사람이 알고 보니 나의 외오촌 아재가 되더라는 둥 족보를 주어 삼키며 나의 단 꿈을 흔들어 놓는다. 이제보니 이게 그 녀석의 외로움을 표현하는 방식이구나.

 

19

나는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우리들 삶의 골목골목에 예정도 없이 찾아오는 외로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외로움이 찾아올 때, 사실은 그 순간이 인생에 있어 사랑이 찾아올 때 보다 더 귀한 시간이다. 쓴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한 인간의 삶의 깊이, 삶의 우아한 형상들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22

외로움이 깊어져서 숨도 쉬기 힘들어질 때 나는 구룡포를 찾는다. 북적대는 선창 모습, 갈매기 떼들, 드럼통에 피운 불빛을 쬐가며 그물을 손질하는 바닷사내들.. 구룡포의 골목들, 한번 들어가면 출구가 어딘지 쉬 짐작이 안 되는 길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 서울의 달동네라고 말한 어느 서양 건축학자의 매력적인 지적이 이곳에서도 여전히 유효함을 알게 된다.

나란히 누워 서로의 살갗을 부비는 집들, 담장들, 빤히 들여다 보이는 이웃들의 꿈, 가난, 숨결들, 삶의 시간들이 피워내는 가잔 따뜻한 형상의 꽃들이 동해의 푸른 물살과 수평선 위에 펼쳐진다.

 

23

구룡포의 방파제는 길다. 외지에서 온 여행자는 특히 그들이 연인 사이일 때, 이 방파제는 바다로 뻗어있는 길 중 가장 아름다운 길이 된다. 파도와 그들이 내는 소리들이 꽃처럼 발밑에 쌓이고 갈매기들의 비상은 색종이처럼 머리 위에 쏟아진다.

 

갈매기들은 이쁜 소의 눈빛을 하고 있다. 그들이 꾸는 꿈의 정결함 탓이다.

 

선창의 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혼자 먹는 밥맛의 깊이를 아는 이는 예술가가 아니면 육체 노동자다.

 

ð  자전거를 타면서 곧잘 혼자 먹는 밥맛을 깊이 느낄 때가 있는데, 그럼 난 자전거 탄 노동자인가?

 

25

그렇게 세 시간쯤 별을 바라보다가 나는 내 무릎이 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너무 추웠던 탓이다. 민박집의 구석방에 겨우 돌아와서도 나는 한 시간도 더 넘게 손발을 주물러야 했다. 하긴 구만리에 이르렀으니 그 먼 길을 걸어 이곳 바다에 이르렀으니.

 

선유도 기행 소라고둥 곁에서 시를 쓰다

30

눈 앞에 걸어야 할 길과 만나야 할 시간들이 펼쳐져 있는 사실만으로 여행자는 충분히 행복하다.

 

31

길을 걷다 지치면 강물 소리를 베개 삼아 강 언덕 어디에건 몸을 누이면 그만이다.

 

<탱고레슨> 영화가 끝나자 나는 내 인생과 그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게 되었다. 여자가 추는 아름다운 춤, 부에노스 아이래스와 파리와 런던의 아름다운 거리 풍경들. 쓸쓸한 사랑과 순간순간의 허망한 잡념들, 허공에 뿌려지는 비와 바람과 눈들. 기실, 길 위의 모든 이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춤사위 속에 춤추며 살아가고 있는 것을. 그 춤을 생각할 때 덧없이 가벼운 삶이 한없이 따뜻해 지고 충만해 지는 것을. 이 세상에서 가장 경건한 기도가 춤인 것을

 

34

이리저리 걷다 배들의 이름을 읽는다. 배들의 이름에는 선주들의 꿈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 이름들의 의미를 다 모아 놓으면 그것이 그대로 한 포구가 지닌 그리움의 실체가 되리라.

 

배는 군산항을 떠난지 1시간30분 만에 고군산 열도의 첫 섬인 야미도에 닿았다. 고군산 열도의 풍경은 한눈에 들어오는 선경이다.

 

나는 조선 중기의 풍운아 허균에 대해 생각했다. 오십에 역모죄로 세상을 떠난 그는 천재적인 시인이자 기행을 일삼는 방랑자였다. 관동지방 기행기에 자신과 함께 잠자리에 든 기생의 수가 열 몇 명이나 되었다고 여행기에 스스럼 없이 밝힌 그는 부안의 기생 계랑과는 플라토닉 러브를 펼치기도 했다.

홍길동전의 저자로 알려져 있는 그는 서해안의 섬 율도에 이상국가를 세우기도 했는데 그 섬이 고군산 열도의 밤섬(야미도)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35

계랑과 함께 변산의 바닷가를 여행다니던 그가 격포의 채석강 같은 곳에서 뱃길로 오십리쯤밖에 떨어지지 않은 신비하고 아름다운 섬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법하고 혈기 넘치는 그가 그 여행을 기꺼워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야미도라는 멋적은 이름이 율도 혹은 밤섬으로 바뀌어야할 필요는 없는 것일까.

 

선유도, 신선이 노닌다는 그 섬의 백사장을 처음 본 순간, 나는 세상에서 가장 맑고 넓은 원고지를 생각했다. 모래들은 빛났고 파도 소리는 푸르렀다. 모래 사장 위에 손가락으로 한 편의 시를 썼다.

 

섬과

섬 사이로

새가 날아갔다

보라색의 햇살로 묶은

편지 한 통을 물고

섬이 섬에게

편지를 썼나 보다

 

그러니까 내 몸은 그대 안에 들지 못했더랬구나

내 마음 그러니까 그대 몸 껴안지 못했더랬구나

그대에게 가는 길에 철철 석유 뿌려놓고

내가 붙여냈던 불길들 그 불의 길들    - 이문재

 

시집을 읽다가 나는 바위 틈에서 한 시간쯤 아주 포근하게 잠이 들었다.

 

ð  어찌 이럴 수가역시 시인은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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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적인 것은 이 섬 안에 자동차의 모습을 전혀 볼 수 없다는 점이다. 보행자의 천국, 선유도, 무녀도, 장자도 모두 두 개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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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도의 고기잡이 불빛과 낙조의 풍경은 선유팔경.

하룻밤을 무녀도에서 묵으리라. 이름 때문에.. 장자도에서 무녀도까지 십 리 길을 터벅터벅 걸었다. 완전히 어두워진 바닷길을 걷는 데 마음은 수수롭기 그지 없었다. 조금 외로운 것은 충분히 자유롭기 때문이다.

 

동화와 지세포를 찾아서.. – 별똥 떨어진 곳 마음에 두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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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다섯 척만 들어가면 좋을만한 작은 만 하나가.. 언덕 위에서 보면 잘 익은 능금처럼 보입니다.

 

43

내가 시를 쓰게 되면 세상의 별똥 떨어진 곳을 미루지 않고 찾아 보리라

 

45

바랑은 낡고 신발은 다 해어졌는데도 여전히 길을 물을 수 있는 사람, 나이 들어 몸의 털이 희어지고 뼈 사이로 바람 숭숭 드나드는 귀신의 시간에도 길을 물을 수 있는 사람, 어디선가 떨어진 별똥이 꽃을 피워 올리리라는 생각에 어제도 내일도 잠 못 들고 그곳을 찾아가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좋습니다.

 

ð  나이 들어 귀신의 시간이 되었을지라도 길 위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어야지.

 

48

나그네 길이란 어쩌면 그 계획에서부터 신선한 바람이 부는 것이다.

 

49

지세포, 세상의 모든 비밀들을, 삶의 원칙과 근원의 뼈 아픔들을 다 알고 있는 , 그 포구의 이름이 오랫동안

 

어청도에서 하늘 먼 곳, 푸른 빛의 별들이 꿈처럼 빛나고

 

52

어청도, 그 섬에서는 푸른빛의 어족들이 모여 살았다. 등이 푸를뿐 아니라 눈빛과 비늘, 내장과 피와 뼈, 살이 모두 푸른빛인 어족. 푸른 고기떼들이 푸른 꿈을 꾸며 사는 곳.

 

53

그가 펼친 그물 아래 푸른빛의 고기떼들이 소롯이 밀려들어올 때, 그는 그물을 슬쩍슬쩍 바다 위로 들어 올렸다가 놓았다. 놀이터의 아이들이 공중제비를 하는 것처럼 고기들은 그물 위에서 튀어 오르기도 하고 회전목마를 타기도 했다. 노인은 이를 그물 위의 춤이라 불렀다.

 

노인은 고기를 잡지 않았다. 달빛들이 스러질 무렵이면 노인은 그물을 접고 자신의 오두막으로 돌아갔다. 이익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파는 노동은 평안할 수가 없다. 하루의 노동이 자신의 하루의 생계의 몫을 넘어서고 더더욱 그것이 다른 사람의 몫을 침범하는 경우라면 그 노동은 신성함을 잃는다.

 

58

분명한 것은 자연은 자연 상태로 둔다는 것이 가장 인간의 꿈에 부합된다는 사실이다. 지중해를 낀 나라들은 그 따스하고 자양분 넘치는 바다 풍경을 관 광 자원화 시켜 돈을 번다. 원칙은 손을 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식사업도 광광산업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을 경우에만 허용된다. 남해와 서해의 우리 바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수역들조차 양식산업으로 와글거린다. 돈을 벌기 위해서, 먹고 살기 위해서라고 항변한다면 할 말은 없다. 문제는 돈을 버는 방법이다. 지중해 바다는 아무 것도 설치하지 않은 대가로 돈을 벌고, 그 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는 우리 바다는 무언가를 와글와글 설치해야만 돈을 벌 수 있다면 어느 쪽이 더 경제적일 것인가. 우리도 이제는 의식주를 해결할 수준에 이르지 않았는가. 상급의 자원을 막대한 경비를 들여 하급의 자연으로 치환하는 과정이 이 물막이 사업에 끼어들 가능성은 없었는지, 국토의 효용성 있는 이용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 지금이라도 생각해 볼 시간의 여유는 있을 것이다.

 

59

낯선 포구에 이르러 선창에 들어선 가게의 이름을 살펴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선창의 간판들을 쭉 읽고 나서 나는 이 포구가 지닌 내면적인 존재 의미를 이해했다. 이 포구는 전적으로 뱃사람들을 위한 포구일 것이다. 육지의 낚시꾼들이 이곳까지 오기에는 시간과 지출이 크다.

 

60

약간의 망설임 끝에 나는 연민다방의 문을 열었다. 문학적이지 아니한가. 11월 늦은 가을의 오후, 오래 전에 꿈꾸어 온 섬, 한 해의 끝, 바람 속에 스민 쓸쓸함, 옹기종기 붙은 시멘트 건물들, 연민어울리지 아니한가. 무얼 드릴까요?

물이 너무 귀해요. 하루에 한 번 샤워하는 건 여자의 자존심인데그래도 난 어찌어찌 해결하지만여자의 자존심과 샤워, 처음 듣는 이 등치의 공식이 마음에 들었다. 삼십 분쯤 여자와 이야기했다. 여자가 살았던 도시와 거리와 영화관과 시, 말 중에 여자는 이 곳에는 시집 한 권 빌릴 데가 없어요, 라고 얘기를 했다.

여자가 일러준 길을 따라 등대로 갔다. 등대는 선창의 정반대 방향에 있었다. 전종준 씨, 어청도 등대의 소장인 그와 그의 등대지기 생활 이야기를 했다. 삼십 년. 짧지 않은 세월. 그와 이야기하며 나는 혹 그의 주름살 언저리에 푸른빛이 묻어있지 않을까 찾아보았으나

 

61

선창의 양지식당에서 백반을 먹었다. 주인 아줌마의 말솜씨와 용모가 똑같이 화사했다. 18년 전 정읍에서 시집왔다고 한다. 곁에서 식사하던 한 손님이 어청도 최고의 미인이오, 하고 말을 거든다. 그녀는 해 바뀌면 어청도 초등학교의 74회 졸업생이 될 아들 이야기를 했다. 졸업생 한 명. 혼자 일등상도 타고 공로상도 타고 모범상도 타고 교육감상도 타고참 상복도 많지 한다. 식수도 부족한데 어떻게 세수하길래 곱소? 했더니 물 세 드럼만 가져오면 새 시집이라도 가겠소, 한다.

식당 밖은 캄캄한 어둠이다. , 그곳의 하늘 먼 곳에 푸른빛의 별들이 꿈처럼 빛난다.

 

ð  서해의 고도 어청도, 푸른빛의 어족이 살 것만 같은 섬. 이 곳에서 사는 사람들과 여행객은 스스럼 없이 말을 튼다. 여행자의 시선에서 감성이 뚝뚝 묻어난다. ‘그물 위의 춤을 추는 노인은 없을까.

 

삼천포 가는 길 , 모두 따사로이 가난하니

 

65

짧은 시간이지만 마음에 드는 도반을 만났을 때, 혼자인 여행자의 권태는 설레임과 영감으로 뒤바뀐다. 그들은 사천공항에서 삼천포행 버스가 많았을 텐데 버스보다는 히치하이킹을 선택했다. 재밌잖아요. 느낌이 좋은 차를 골라 손을 들고, 거기 맞춰 차가 서고. 그들의 웃음결이 가을바람만큼이나 선선했다. 아름답지 않은가. 한 번도 인연을 나눈 적이 없는 차를 향해 손을 들고 또 차가 서고….

 

66

시인 백석은 70년 전 삼천포의 풍경을 다음과 같이 남겼다.

 

졸레졸레 도야지 새끼들이 간다

귀밑이 재릿재릿하니 볕이 담복 따사로운 거리다

 

잿더미에 까치 오르고 아이 오르고 아지랑이 오르고

 

해바라기하기 좋을 볏곡간 마당에

볏짚같이 누우런 사람들이 둘러서서

어느 눈 오신 날 눈을 치고 생긴 듯한 말다툼 소리도 누우러니

 

소는 기르매 지고 조은다

 

, 모도들 따사로이 가난하니

 

67

주문이라는 바닷가 마을에 이르렀을 때 그들이 꾸려온 배낭을 풀었다. 놀랍게도 베난 안에는 김밥과 삶은 계란이 나왔다. 학교 다닐 적 친한 친구가 이 마을에 살았어요. 자주 놀러 왔지요. 이 바닷가를 꼭 오려고 서울서부터 생각했지요. 나는 이들이 왜 버스를 타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69

실안 마을의 바닷가에서 나는 다섯 명의 건장한 청년들을 만났다. 그들은 바다에서 막 건진 싱싱한 병어를 회쳐 수주를 마시는 중이었다. 차를 멈추고 늑도로 들어가는 도선장을 물었더니 우선 회부터 한 점 하라 얘기 한다. 그들이 내 도반에 눈독을 들였다. 나는 순순히 차에서 내려 그들이 상추잎에 싸주는 회를 먹었다. 거제 상성조선소에 다닌다는 그들은 내게 이 아가씨들을 소개해 준다면 직접 늑도까지 사선을 몰아 데려다줄 수도 있다고 제의했다. 솔깃했지만 그 결정은 전적으로 내 도반들의 몫이었다.

 

71

나는 기분이 참 좋았다. 나의 도반들이 기꺼이 나의 늑도행에 동행했기 때문이다. 배는 두 시간에 한 대 꼴로 운행 중이었다. 삼천포항에서 바라보는 늑도의 불빛은 아름답다.

 

72

삼천포초등학교 늑도분교, 운동장에는 500년 묵은 팽나무가 있었다. 반짝반짝 가을물살들만 나무 이파리 사이로 밀려오는 고즈녁한 시간, 내 도반들은 금세 한 무리의 아이들과 어울렸다. 청동기 시대의 패총 유적지 발굴 현장, 현장 책임자는 늑도의 유적지가 지닌 의미에 대해서 꼼꼼하게 설명해 주었다. 무엇인가를 열심히 한다는 것만큼 아름다운 일은 없다.

 

저물 무렵 늑도에서 나오는 배를 탔다. 선착장에서 도반들에게 어디로 갈 거냐고 물었더니 항구 맨 꺼트머리에 있는 등대를 가리킨다. 그들은 고등학교 시절 틈만 나면 이곳 등대를 찾아와 책을 보고, 장래의 꿈을 이야기하고, 명 번인가 술을 마신적도 있다고 했다. 나는 등대의 몸에 새겨진 낙서들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동해바다 정자항에서 그 곳에 이상한 힘이 있었다

 

78

멸치잡이배였다. 그 곳에 이상한 힘이 있었다. 선창에는 열 척이 넘는 20톤 내외의 멸치잡이배들이 늘어서서 멸치를 털어냈다. 배 한 척마다 선원들이 늘어서고, 그 주위로 무슨 꽃이파리처럼 사람들이 우 모여서고, 멸치가 길 밖으로 튀어나오면 환호성을 올리고, 갈매기떼들이 카퍼레이드의 색종이처럼 펄럭이며 날고…. 나는 이런 풍경이 한꺼번에 마음에 들었다.

 

ð  포구의 생동감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멸치털이 풍경이다. 부산에서 가까운 기장항에서도 본 적이 있는데 정말 가관이었다.

 

82

연륜은 사물의 핵심에 가장 빠르게 도달하는 길의 이름이다.

 

83

노동하고 임금을 받고 그 돈으로 삶을 꿈꾸고, 단순하지만 이 규칙은 인간살이의 가장 소중한 풍경이다. 멸치구이, 이 따뜻하고 습기 많고 영양분 풍부한 음식을 먹어본 적이 있는지? 파도소리를 들으며 바라 속에서.

번개탄 불 위에 석쇠를 얹고, 그 위에 살이 피두피둥해 얼른 보기에 꽁치새끼쯤으로 보이는 멸치를 얹은 뒤, 굵은 천일염을 고루 뿌린다. 그리고 화덕 주위에 쭈그리고 앉아 언 손에 군불을 쬐며 소주 한 잔씩을 나누는 것이다. 그리고 한 입, 두 입, 오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멸치구이 임을 새롭게 안다.

 

84

소주 한 병을 곁들인 멸치구이의 가격은 7천원, 넷이 앉아 실컷 먹을 수 있는 양이므로 이 가격은 가히 환상적이다. 방파제 주위에 모여앉아 멸치구이를 먹는 사람들이 떠들썩한 이야기의 꽃을 피우고, 그들은 처음 본 사람들의 어깻깃을 붙잡아 앉히고 소주 한 잔과 구운 멸치 한 마리를 직접 입에 넣어주기도 한다. 소주 좋아하고 세상살이 펼쳐내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정자항(강동) 방파제 부근이 천국인 셈이다.

 

84

숙소를 정하고 나와 K는 바다로 나왔다. 동해 다방의 불빛이 보인다. 우리는 동해 다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선창에서 붉은 스웨터의 아가씨를 보는 순간 이 방문은 예정된 것이었다. 다방 안은 조금 떠들썩했다. 유자차를 따뜻하게 끓여 내온 아가씨는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뱃사람들 일은 독하게 해도 목이 말라도 마실 물이 없어요. 물 한 잔 내어놓을 뿐인데 너무 고마워 해요. 물론 장삿속이 전혀 없지는 않아요. 일이 끝나면 우리 집에 와서 차를 마실 때도 있으니까요. 술요? 그 사람들 일이 너무 힘들어서 술 못해요. 다음 날 새벽이면 다시 멸치잡이에 나서야 하니까요.

 

85

삶이란 때로 상상력의 허름한 그물보다 훨씬 파릇한 그물을 펼 때가 있다.

 

85

K는 딸 아이와 엄마가 지난 주 다시 만났다고 했다. 3년 만의 만남인데 모녀는 한 사흘쯤 떨어졌다가 만나는 것처럼 금세 어울리더라고 했다. 그래서 조금 서운하기도 했노라고. 엄마와 딸은 밤을 새워 이야기를 하고, 다음 날 쇼핑을 하며 딸아이가 코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너무 행복해 했노라고. 그래서 자기도 덩달아 행복했노라고

 

아름다운 항구 구만리 대보등대 불빛 속에 쓴 편지

 

89

시가 뭐냐고? 맑은 거지. 수평선 끝에서 빛나는 햇살 같은 거. 영원히 바닷물을 푸르게 하는 신비한 염료 같은 거.

 

92

짧은 길을 긴 시간을 들여 여행한 사람은 경험상 행복한 사람입니다.

 

93

호랑이 꼬리로 불리는 장기현(호미)으로 1801년 유배온 다산은 <기성잡시>라는 시편에서 호랑이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

 

집집마다 나무 울타리 두 길이 넘고

마루 끝엔 그물 펴고 긴 창을 꽂아놨네

왜 이다지 방비가 심한가 물었더니

예부터 기성(장기현)에는 호랑이가 사납다네

 

이번 여행의 목적이 바로 그것이었답니다. 밤을 세워 파도소리를 듣고, 등대의 불빛을 보고, 제일 먼저 육지에 닿아오는 아침 햇살을 맞고

처음 갈매기의 눈과 눈빛을 바라보던 순간의 경이를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깊은 지혜와 사랑에 충만한 현자의 눈빛

 

94

지금 편지를 쓰고 있는 곳은 대보 등대가그대로 바라다보이는 한 여숙의 방입니다. 방의 거울에 이 집 여숙 주인이 나라 안에서 해가 가장 먼저 떠는 집이란 광고 전단을 붙여 놓았습니다. 나는 바다를 향한 창들을 열어젖혔습니다. 차가운 바닷바람과 함께 파도소리가 쏴 밀려옵니다.

95

서울살이에 지치고 지쳤을 때 바다가 보이는 여관방을 찾아가 창문을 다 열어젖히고 하룻밤 내내 파도소리를 듣고 나면 다시 서울로 회귀할 힘이 생긴다고 내게 일러준 이는 소설 쓰는 한승원 선생이었습니다. 등대의 불빛이 밤바다에 빛의 꽃가루를 뿌려대기 시작합니다.

 

96

등대의 불빛이 어둠을 뚫고 지나갑니다. 불꽃이 튀지 않는 춤은 춤이 아니다.

 

진도 인지리에서 남동리 포구로 가는 길 산도, 이 산도 쉬어 가고

 

102

만주나 봉천은 얼마나 좋으면

꽃 같은 각시 두고 만주봉천 가는고

 

사람들은 모두 한 몸이 되었다. 집 밖에 쌓이는 눈과 집 안에 들어선 외양간의 쇠방울소리, 백두산의 어둠과 산자락이 모두 한 몸이 되어 엉기고 뛰었다.

 

나는 그곳에서 육자배기 가락이 얼마나 고담한 것이며 진도아이랑타령이 삶의 신명과 어떻게 어울리는지를 보았다.

 

103

만주에서 돌아온 나는 진도를 여행했다. 만주 노인은 자기집 추녀 아래 나무 절구통을 보여 주었는데 그것은 할머니가 고향에서부터 가져온 것이라고 얘기했다.

나는 그 여행에서 노인의 고향 대신 노인의 격 깊은 소리의 한 근원을 만났다. 조공례 할머니는 양홍도라는 이름의 한 할머니 얘기를 해 주었다. 병들고 늙어서는 노인네가 이불에 불을 붙이고 그 이불을 둘러쓰고 훨훨 춤을 추며 세상을 떠났지. 소리가 참 슬프고 맑았어.

 

104

할머니는 소리를 하는 도중 두 번쯤 내 눈에 눈을 맞추었는데 나는 형형한 그 빛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깊이를 짐작하기 힘든 심연, 입이 아닌 눈에서 할머니의 소리가 나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105-106

한없이 쓸쓸하고 한없이 포근한

 

진도 지산면 인지리 사는 조공례 할머니는

소리에 미쳐 젊은 날 남편 수발 서운케 했더니만

어느 날은 영영 소리를 못하게 하겠노라

큰 돌멩이 두 개로 윗입술을 남편 손수 짓찧어놓았는디

그날 흘린 피가 꼭 매화송이처럼 송이송이 서럽고 고왔는디

정이월 어느 날 눈 속에 핀 조선매화 한 그루

할머니 곁으로 살살 걸어와 입술의 굳은 딱지를 떼어주며

조선매화 향기처럼 아름다운 조선소리 한번 해보시오, 했다더라

 

세상을 떠나기 직전 할머니는 한 장의 음반을 남겼다 <조공례의 대지의 창>

 

107

베토벤이랑 모차르트를 아세요? 그런데 산기슭에 노는 바람소리는 할머니 소리에서만 들려요. 햇살이 쏟아지는 모습이랑 풀들이 춤추는 모습이랑 흙냄새도요

 

109
고나헤~ 하는 후렴구를 돌려 받으며 자신만의 감정과 세상살이의 이력을 표현해내는 것이다 삶의 눈물과 한, 이별의 슬픔과 사랑의 기쁨들을 두루 경험하지 않고서는 육자배기가 마련한 소리마루에 접근 할 수 없다 우리같은 뜨내기 외지인은 흉내내기 언감생심의 경지인 것이다.

 

순천만에서 - 묵언의 바다

 

115
오랜 세월동안 새들은 자신들의 생명과 맞 바꿀 만한 가혹한 비행을 통해 스스로의 유전자 내부에 꿈에 대한 기록들을 저장하고, 그 추억들은 쌓이고 쌓여 설령 지금보다 가혹한 삶의 현실이 지상에 도달 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해 낼 힘을 갖추는 것이 다. 가혹한 자연의 재앙에 부딪쳤을때 인간이 저 새들보다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118
노을은 땅 위에도 진다. , 정확히 표현하자면 개펄이다. 개펄 위에는 썰물들이 남기고 간 작은 웅덩이들이 남아 있다. 그 웅덩이 위에 노을이 살아 뜨는 것이다
처음 그 노을을 보았을 때 나는 개펄 위에 무릅을 꿇었다. 그리고는 두 손 가득 웅덩이의 물을 담았다. 함께 모은 내 두 손바닥 안에서도 노을이 떴다. 세상의 모든 보석 들의 광휘를 용해 한 것 같은 그 빛.... 나는 그 빛의 섭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노을빛이 다 스러지고 난 뒤 갈대밭은 어둠에 잠긴 다. 아름다운 노을이 펼쳐진 뒤의 저녁 어둠은 부드럽다. 자세히 보면 푸르스름한 쪽빛의 기운이 어둠 속을 흐른다. 작은 파도도 새들의 날개짓도, 갈대들의 꺽인 목도 다 보이지. 이 신비하고 고요한 어둠의 시간이 나는 좋다. 단순한 어둠이 아닌 낮동안 이 개펄과 바다 위에 꿈을 부린 많은 생명체 들의 영상이 그 어둠 속의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못생기고 허름한 그 시들을 쓰는 시간들이 내겐 행복의 시간이었다.

 

119
요즘 나는 시를 쓰지 못한다 어디선가 날개가 꺾였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어디선가... 나는 그 장소를 알고 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그 날개는 내 숨은 의지에 의해서 꺾여진 것이다. 삶을 위해 삶의 가장 소중한 빛을 지워 버린 것이다. 바라볼수록 쓸쓸한 그 빛....

 

120
그 무렵에 내게 침묵은 날개의 다른 이름이었다.

 

나의 선택은 마을의 불빛들이다. 불빛들은 갓 핀 다알리아 꽃송이처럼 싱싱하다. 세칸 집 안에 사는 사람들의 꿈과 노동과 상처와 고통의 시간들의 은유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보다는 쓸쓸함이,기쁨 보다는 아쉬움의 시간들이 훨씬 많았을 텐데도 그들은 말없이 불을 켜고 지상의 시간들을 지킨다. 어떤 불빛들은 밤을 새우기도 한다.

 

121
아무것도 볼 수 없음으로써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가능성의 세계. 침묵함으로써 모든 욕망과 영혼의 본질 속으로 여행 할 수 있는 시간들.

 

화포에서 만난 눈빛 맑은 사람들

 

125
그 흔한 세자리수의 지방도로 번호마저도 지니지 못한 길. 그 길은 분명 인적의 소통이 뜸한 길이며, 그래서 여행가는 호젓하게 자신만의 풍광을 즐길 수 있고, 더러는 마음 편하게 길에서 만난 아낙네나 촌로들에게 자동차의 빈자리를 내줄 수도 있다.

 

126
보리 피리를 불며 아이들은 돌아갈 그리움의 시간이 있다. 옛날 이 마을의 이름이 쇠리였다는 얘기를 했다. 소 마을, 듣고보니 노인의 말이 맞았다. 마을은 편하게 앉아 되새김질을 하는 소의 형상을 닮았다. 그런데 왜 화포로 바뀌었을까? 넓은 개펄이 펼쳐져 있고 개펄의 여기저기에서 무엇인가를 채취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무엇을 캐는 거지요? 노인은 맞조개를 캔다고 했다.

 

127
아낙들은 개펄 위에서 자신들이 잡은 맛조개를 저울 위에서 계량 했다. 난장처럼 떠들썩한 그 풍경이 마음에 들었다. 한겨울 아주 출 때 빼고는 일년 내내 일을 하지요. 아주 독한 사람들이요. 마을 이름을 얘기 해 준 촌로가 거들었다. 그 순간 어쩌면 화포에서의 꽃은 이 아낙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순천만 맞은편 갯마을들의 불빛이 내 눈에 들어왔다. 촉촉하게 젖은 불빛 지상의 어떤 꽃보다도 더 아름다워 보였다.

 

130
돼지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것을 뭣 하러 사진을 찍소? 아낙들은 모두 널이라 불리는 나무 썰매 하나씩을 지니고 있다. 널 위에는 자신들이 채취한 맛을 보관할 플라스틱 상자와 함지박이 놓여 있고 막걸리 병과 우유 팩이 담긴 그릇도 있다. 왼 무릎을 널 위에 올리고 엎드린 채 오른발로 개펄을 차 나가며 채취 장소로 이동한다. 맛은 개펄 위에 두 개의 팥알만한 숨구멍 두개로 자신의 건재를 확인 시킨다.

 

131
손을 집어 넣는 속도가 맛이 도망가는 속도 보다 빨라야 가능한 것이다. 발을 사용한다 개펄 속의 발을 움직여 맛이 내려갈 통로를 차단함으로써 더 이상 어쩌지 못하는 맛을 생포하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을 순간적으로 이루어진다. 초보자가 더듬더듬 했다가는 맛은커녕 개펄 위에 연신 자신을 귀와 코를 박아야 할 것이다. 어쨌던 아낙들의 몸은 완전히 개펄 속에 파묻혀 일하는 모습이다. 그런 모습이니 그들이 사진 찍히는 것을 당연히 거부할 수 밖에...

 

나는 그들과 금새 친해졌다 쫄딱 비를 맞고 쭈그리고 앉아 자신들과 얘기하는 객지 사람을 자신들의 삶을 풍경을 일부로 받아들인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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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모두 형제보다 가깝고 남편 보다도 서로 가깝소. 이 작업이 얼마나 힘든지는 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가 없어. 개펄이 무르고 부드러운 데는 잡기도 쉽고 이동하기도 쉽지만 모래가 많이 섞이고 단단한 곳은 잡기도 어렵고 이동도 힘드오. 이 고생을 우리 외 누가 알겠소. 그럴 땐 울면서 앞으로 끌고 뒤에서 밀며 개펄 밖으로 나가오. ? 돌 볼 틈이 어디 있겠어. 그래도 우리 고생으로 살림도 펴고 애들 교육비도 다 대오. 우리 중에 자식들 하나 둘 이상 대학 보내지 않은 사람 아무도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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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개펄은 우리에게 보물 단지나 다름 없소. 날이 어두워지면서 이들은 하나 둘 널을 밀며 개펄 밖으로 나왔다. 그제서야 나는 나와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욕심 없이, 거짓부렁 없이, 단순하게, 참으로 감사 하는 마음으로 개펄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개펄과 함께 자신의 생을 마감할 사람들...., 검게 그을리고 깊은 주름살투성이였지만 그들 모두는 샛별처럼 빛나는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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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오전, 실제는 새벽에 3시간 오후에 4시간 작업에서 평균적으로 1인당 100kg의 맛을 잡았다. 채취 단가는 kg당 구 백원 하루 일당으로 쳐 9만원, 적지 않은 소득이다그러나 그 누구도 개펄 위에서 감히 꿈꿀 수 없는 힘든 노역과 고통을 이겨낸 사물이기도 하다. 이날 나는 운좋게도 이들 모두와 함께 순천의 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상추에 삼겹살을 쌈 싸먹으며 그들은 내일 낮 작업이 없을 때 꼭 자신들의 동네에 놀러 오라고 얘기했다.

 

거차에서 꾸는 꿈 - 순천만에 자리잡은 작은 갯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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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모두 긴 나무 썰매 하나씩을 지녔었다. 길이 3m 폭이 30cm. 나무썰매의 맨 끝은 눈썰매의 그것처럼 앞부분이 들려져 있었다. 개펄을 나아갈 때 부딪는 마찰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그 나무 썰매를 널이라 불렀다. 널을 타고 그들은 개펄을 씽씽 달렸다. 왼 무릎을 널 위에 올리고 오른발을 이용해 엎드린 채 개펄 위을 달려 나가는 그들의 모습이 설원 위의 스키어 못지 않았다

 

할머니에게 물었다 마을 이름이 왜 거차인가요? 할머니가 대답했다 살기가 하도 팍팍 하고 거칠 거칠해서 그렇다오. 순간 나는 말문이 막혔다 팍팍 하고 거친 삶.거차. 그 둘이 의미상, 혹은 발성학 적으로라도 어떤 연관이 있다는 말일까
어디서 왔소? 나는 또 여기 있어 잠시 머뭇거렸다. 내가 무엇을 하러 이곳에 왔는지 생각이 퍼뜩 나지 않았던 것이다할머니는 널을 능숙하게 타고 개펄이 바닷물과 만나는 곳까지 씽씽 나아갔다. 그런 할머니의 모습이 퍽 자유롭고 보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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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해 전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얻었던 직장을 나는 그만두었다. 8년을 근무 했으니 만만치 않은 시간을 첫 직장에 헌신한 셈이다시를 쓰기 위해서 직장을 그만두며 나는 마음이 편했다. 그보다 더 좋은 사직의 변이 어디 있을 것인가. 얼마쯤의 저금과 퇴직금을 까먹으며 나는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녔다. 그리고 두 해. 통장에 잔금이 다 바닥날 무렵 나는 거차에 닿았던 것이다. 팍팍하고 거친 삶, 거차라는 이름은 그 무렵의 내게 할머니들의 그것에 못지않게 현실적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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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어두워졌다 나는 도선장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만 건너편 갯마을 불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흠, 그때 인기척이 들렸다 광주에는 안 가오? 할머니였다 시장할 텐디 저녁이나 드오그렇게 거차에서 하룻밤 비럭잠을 잤다. 슬픈 일도 없는데 나는 할머니가 깔아주는 까실까실한 포플린 이불 위에 누워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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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전 할머니 집에서 나는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제대로 쓰여지지 않는 시, 제 스스로 밥을 벌 수 없는 무기력함, 무엇보다도 개펄 위에서 건져낸 통발 속의 쥐 생각에 그러했다출구를 찾지 못한 채 이리저리 그물속을 뛰던 쥐. 끊기지 않는 삶의 그물, 두려움, 밀물, 쓸쓸함... 당연하게도 나는 그 쥐가 나의 모습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새벽이 되어 바다에 빛이 희미하게 드러나기 시작 했을 때 나는 개펄로 나갔다. 그리고는 내가 걷어 놓은 통발 곁으로 다가갔다통발은 비어 있었다. , 나는 한숨을 쉬었다. 거꾸로 빠져나가기가 쉽지는 않았겠지만 나는 쥐가 제 힘으로 통발 속의 미로를 헤쳐나가기를 바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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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침거차를 떠나며 나는 이상한 삶의 원기를 느꼈다. 밀려오는 파도의 물살마다 뜨겁게 새겨지는 햇살들. 불기둥처럼 내 가슴속으로 밀려 오는 그 햇살들의 광휘 속에서 나는 다시 내가 써야할 시의 체온을 느꼈고 기꺼이 세상의 톱니바퀴 속으로 다시 맞물려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11년 전의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고 없다 그것 때문에 나는 쓸쓸함을 느끼지 않는다 생명 있는 것들이 언젠가 지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은 삶의 철칙이다. 신은이 부분에 한해서 철저히 공평하다. 그럼에도 그리움은 남아 있다. 할머니는 내게 된 장국과 흰 쌀밥을 주셨다 그리고는 말없이 밥을 먹는 내게 "사람은 꿈이 있어야 하는 법이여"라고 얘기했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했을 할머니로부터 꿈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나는 또 말문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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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내 꿈이 18가지 색이 갖춰진, 그러니까 간색이 어느 정도 갖추어 진 크레파스였던 것이다. 그 꿈은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 할 때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시절 나의 꿈은 조숙하게도 한 여자만 사랑하다 세상을 뜨는 것이 었고, 대학 시절에는 여기저기 길 위를 떠돌아 다니며 시를 쓰다 어느 눈 많이 내린 겨울날 눈 위에 쓰러져 얼어죽는 낭만적인 것이었다. 그 후로도 내꿈은 많았다 섬진강변에 작은 움집을 짓고 나룻배 뱃사공이 되고 싶은 꿈을 꾸었는가 하면, 압록강과 두만강을 따라 펼쳐진 산골마을들을 도보여행 하는 꿈을 지닌 적도 있고..

 

그 꿈들의 공통점은 다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루어지는 순간 이미 그것은 꿈이 아닐지도 모른다 한 꿈이 이루어지면 인간은 또 새로운 꿈을 꾸기 마련인 것이다. 나는 이제 내가 여태껏 이루지 못한 꿈들 때문에 아파하지 않는다꿈은 지니고 있는 데서 그 자체의 광휘가 빛난다. 개펄들이 그 무수한 오폐물들과 악취를 모아 그곳에 모든 바다 생물들의 낙원을 만들듯이, 세상살이에서 구토하고, 쓰러지고, 아파하고, 쓸쓸한 모든 기록들이 기실은 우리가 꿈꾸고자 한 시간들의 한 집적이 되어 가는 것은 지켜 볼 수 있다면, 그 생명은 충분히 아름다운 것이다.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오늘 나는 거차에서 또 하나의 꿈을 꾼다. 그것은 이곳 바닷가 어딘가에 개펄이 잘 보이는 장소를 잡아 쓸쓸한 여행자의 영혼이 하룻밤 쯤 쉬어 갈 수 있는 집을 하나 마련하는 것이다그런데, 그런데, 이상하다. 어쩌면 이 꿈은 이루어질 것만 같다.

 

향일암에서 나무새의 꿈을 만나다 - 모든 절망한 것들이 천천히 날아 오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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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적암으로 가는 길은 늘 화사하다. 돌산대교 위에서 바라본은 여수항의 모습내항의 반짝이는 물빛, 한 무리의 겨울 철새들..., 그런 풍경들 어딘가에 따뜻하고 아늑한 시간들의 숨소리가 스며 있을 것만 같다. 여수라는 이름만 해도 그렇지 아니한가
여수가 아닌 여수. 물빛이 맑고 빛나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지만 여행자에게는 아무래도 여행의 고적감 쪽이 더 쓸쓸하고 아름다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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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내음 속으로 물살 선선하게 번져가는 그 마을의 이름이 여수라면, 당신 한눈에 그 마을을 사랑하지 않겠는가. 그 바닷가에 신발 두 쪽을 벗어 두고 눈빛 맑은 그곳의 한 처자와 남은 세월을 아득바득 살아봄직하지 않겠는가. , 꽃 바다 꿈 생선 솥 밥 나무 풀 물 그물 달빛 1, 2 음절이면 족할 단어들의 서러운 눈빛과 함께. 숨어서 오래오래 적막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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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에 들러 가장 행복한 일은 머리깍고 속세와 절연한 그들이 정한 손으로 다려내는 차 한잔을 마시는 것. 새소리를 들으며 고적한 산사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

 

향일암으로 향하는 길에 돌산초등학교 대신분교에 들릴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운동장에서 뛰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것은 그곳에서 훤히 보이는 바다의 싱싱한 물살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배들과 섬들, 철새들의 비행이 한눈에 들어오는 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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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완전히 그 자신의 뜰로 사바 세계를 두르고 있는 절은 향일암이다. 주위에서 헉헉거리는 숨소리가 들린다. 전국 각지에서 향일암의 일출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다. 1km 쯤의 거리에 펼쳐진 돌계단을 다 오르면 향일암의 산문 격의 해탈문에 이른다. 이 해탈문은 폭 50cm 높이 5m 쯤의 바위틈이다 길이는 10 미터 쯤, 무명의 속세를 벗어나듯 해탈문을 빠져 나오면 바로 향일암이다.

 

모르는 사이에 날이 밝았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펼쳐진 임포의 풍경. 흡사 바다로 헤엄쳐 나가는 거 북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 있다. 향일암을 영구암이라 부르기도 하는 이유이다. 대웅전 바로 옆 용왕전의 약수 한 사발을 마신다
석간수. 깊은 바위 틈새를 뚫고 나오는 저 청정한 물들의 인내.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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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는 깊은탄성들을 올렸다 오직 해맞이를 위해 여수행 밤열차를 타고 나라 안 이곳 저곳에서 모여든 사람들이다. 세상을 살아내기가 다들 녹녹치 않을 것이다. 얼만가 잡념 정화 굴욕 쓸쓸함의 시간들 또한 깊을 것이다. 그런 모든 어두운 시간들을 다 털어내며 어떤이는 만세를 부르기도 했다. 그때 나는 보았다. 한 무리의 새떼들이 천천히 태양을 가로 질러 가는 것을. 햇살 속에서 새떼들의 모습은 더욱 눈부셨다. 모든 죽어가는 것, 모든 쓸쓸한 것, 모든 지킬 만한 것, 그것들이 천천히 날아 오를 때 나무새의 꿈 또한 날아 오르는 것을....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팥죽 집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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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어떤 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새벽 4 7분 강 이름이 바뀐다. 보성강. 섬진강의 지류인 이 강은 봄과 가을의 물안개가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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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국도. 지리산에서 시작되어 섬진강과 보성강 탐진강을 거쳐 진도의 맨 끝까지 이르는 사랑스런 남도 길. 수문포는 그 길의 한 중앙쯤에 자리한다. 작은 해수욕장이 자리한 이 바다에 이미 피서객의 흔적은 사라지고 없다 가까운 선착장에 음악을 들었다 대학을 졸업한지 15년이 지난 후에야 나는 비로소 재즈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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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23살까지의 2 년 동안을 나는 이곳 바다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 해안초소 경비병으로. 나는 가능한 터벅터벅 그러면 선창에 늘어선 간판 하나하나를 읽어나간다. 추억 만들기 약속 황제 금수 무등 샛별... 내가 읽어 나가는 간판들은 찻집 이름이다.

 

그 무렵 회진에는 내 기억으로 꼭 한군데 의 찻집이 있었다. 건화 다방. 눈보라가 펄펄 날리는 겨울 날 건화 다방에는 톱밥 난로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갯일을 끝낸 바닷사내들이 톱밥 난로 주위에 몰려들어 불을 쬐었다. 화력이 좋은 톱밥 난로는 그대의 얼어붙은 손을 녹여주었고, 따뜻한 피가 도는 그 손으로 커피가 아닌 소주를 마셨다. 사이다 잔에 2홉들이 소주병을 붓고 거기에 고춧가루를 얼마 쯤은 타서는 두 세 잔을 연거푸 마셨다. 어느날은 내게 그 큰 소수잔이 건네지기도 했다. 어이, 전경. 생각 있으면 자네도 한잔 마셔. 그렇게 소주를 마시고 그들은 다시 갯일을 보러 나갔다. 뒷날 내가 쓴 시, 사평역에서에 나타나는 톱밥 난로는 사실  회진의 이 건화 다방에 놓여 있던 톱밥난로를 슬쩍 빌려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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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0분 김준임 씨59의 팥죽집은 회진 장터의 한 귀에 자리 하고 있다. 다 떨어진 양철 지붕에 비닐로 군데군데 비가림을 한 허름한 이 팥죽집에 우연히라도 들른 여행자라면 그는 지극히 큰 행운을 잡은 사람이다. 식탁에 앉은지 10분만에 지상에서 가장 맛있는 팥죽 맛을 보게 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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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바닷일을 하고 들어오면 배가 출출할 것 아니요. 그러면 우리는 다짜고짜 큰 솥을 들고 배로 가요. 그리고 다들 모여서 팥죽을 먹지요. , 그 맛 정말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함께 팥죽을 먹던 한 회진 사람이 그렇게 얘기했다. 그러나 준임씨의 팥죽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팥죽으로 불릴 수 있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인생유전. 세상살이의 험하고 깊은 애환을 팥죽을 먹는 동안 얻어듣는 것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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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착하고, 순하고, 남에게 나쁜 짓이라고는 어린 고춧잎 하나만큼도 하지 않은 그가 겪은 세상살이의 난삽함이 술술술 흘러 나온다. 그에게 나쁜 짓을 한 사람은 많았지만 그는 지금 장터 한 귀에 팥죽 집을 차릴 수 있는 현실만으로도 지극히 만족한다. 준임씨의 팥죽집은 주인의 천진한 얘기와 그 순박한 맛으로 회진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점점 알려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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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포 쪽에는 소설가 한승원 선생이 해산토굴을 짓고 칩거 한다.

 

바람과 용, 그리고 해산토굴 주인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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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면 바람보다 더 쓸쓸한 존재도 없겠지요. 흔적도꿈도, 미래도, 빛깔도, 목소리도,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내가 바람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유롭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 중에 아무도 이것을 모르는 이가 없겠지요, 그런데 사람 중에 그만큼 자유로운 존재는 없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많이 쓸쓸해 할 때,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고 가슴속이 텅 비어 지상 위의 모든 집착들로부터 벗어날 때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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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비상. 그것은 쓸쓸함만이 줄 수 있는 큰 선물이 아니겠는지요. 당신의 선택에는 바람의 냄새가 묻어 있습니다. 그것도 짙은 풀 냄새가 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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꼿꼿이 쳐들고 온 머리부터를  모래톱에 쳐박고
온몸을 양파껍질처럼 말면서곤두박질치고
울부짖는 그대
멀고 먼 세상에서 희 거품 빼어문 채 내내
사랑하고 악다구니 쓰며
줄기차게 살아 온 
그 삶을 후회하는가

 

변산반도 국립공원 왕포 - 개펄이 만든 지평선이 보이네

 

187
기실 서해안에서 가장 보기좋은 것은 개펄이다. 짙은 회색빛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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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묵은 어촌의 풍경과 모텔의 모습이 이질적이었지만 나는 탓하지 않기로 했다. 나그네는 하룻밤 잠자리를 얻으면 족한 것. 그물 깁던 아나기 내게 욕을 해댓던 것도 어쩌면 그 낮선 풍경에 대한 저항일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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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변산 예부터 산림이 우거진 곳으로 알려져 있지 골짜기가 아주 깊어 전쟁 같은데 숨어 지내기 좋은 십승지 땅 중에 하나로 옛 지리책에 적혀 있어 그곳에서 직소폭포를 보았지 산속 길을 십리 쯤 걸어 폭포를 만났는데 첫 대면의 순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신비함과 큰 부끄러워움의 물 기둥이 쏟아져 내렸어. 언젠가 내게 물었지좋은 시? 그때 내가 이 폭포를 알았더라면 근사한 답을 해줄 수 있었을텐데. 폭포에서 한나절을 보냈지 언젠가 내게 꼭 이 폭포를 보여주고 싶어
매창과 이중선 이라는 소리꾼의 무덤이 있어

 

전북 고창군 상하면 구시포 - 천천히, 파도를 밟으며, 아주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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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포의 원 이름은 새나리불뜽 이었다 처음 이 이름을 들었을 때 내마음속에서 파란 날개의 새가 힘차게 날아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순우리말 의 이 아름다운 마을 이름이 본능적으로 좋았다. 새나리의 나리는 갯벌을 의미하는 우리말이요. 불 뜽은 아마 불뜸에서 전이된 말일 것이다. 뜸은 우리 말로 자연부락을 의미한다. 그렇게 보았을 때 구시포의 옛 이름은 바닷가의 불같이 일어날 마을 쯤이 된다. 대단히 미래지향적이고 예언적인 이름인 것이다. 그 이름이 일제의 강압 시절 구시포로 바뀌었다. 9개의 도시, 혹은 저자를 먹여 살릴 마을이란 뜻이니 바뀐 이름의 의미 또한 그닥 낮은 것은 아니다.

 

바로 눈앞에 일 바다가 칠산바다. 물 반 고기 반이라는 말 그대로 칠산 바다는 온통 조기떼로 뒤덮인 바다였다. 거기에 이곳의 개펄은 서해안의 개펄 중에서도 가장 광대한 규모를 자랑했다. 이웃한 동호 해수욕장까지 치면 30리의 바닷길이 폭 1 km 쯤의 개펄로 쭉 이어졌으니 9개의 저자가 충분히 들어설만 했다. 새나리불뜽하면 해당화 꽃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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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동백꽃이요? 이곳 해당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소. 구시포의 개펄색 모래밭도 명사십리로 불리운다. 그 해변길에 해당화가 지천으로 피었으니 장관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것이 단 한 뿌리도 남지 않고 멸종되었다. 당뇨병 때문이었다고 한다. 해당화 뿌리가 당뇨병에 특효라고 해서 어느날 외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자 급기야는 포크레인까지 동원해 체굴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논밭까지 올라와 괴롭히던 가시덤불에 대한 귀찮음 때문인지 사람들은 아무 반대도 하지 않았다. 그 해당화 꽃과 향기, 가시덤불을 사람들은 지금에서야 그리워 한다.

 

모래가 너무 가늘고 고와 마치 흙덩이처럼 엉겨붙었기 때문이다. 밟으면 발자국이 남지 않을만큼 단단하다. 이곳 해안이 해당화 천국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으리라.

 

202
그러나 구시포의 길고 넓은 개펄빛 모래사장은 이곳을 처음 찾는 여행 자에게는 충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끝이 잘 보이지 않는 산모퉁이까지 모래사장이 이어지고, 파도들은 그 모래 위를 천천히 올라온다. 범상한 여행자라도 그 개펄의 끝까지 가보고 싶은 욕구가 순간 일어난다. 천천히 파도를 밟으면, 아주 천천히 모래벌이 끝나는 그 지점까지 걷는 동안 어둠이 찾아든다.

 

남제주군 대정읍 사계포- 집어등을 켠 만휴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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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아흘레 공항. 하와이 군도에서 제일 큰 섬의 여행기를 쓰기 위해 그 공항에 내렸을 때 나는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탄성을 멈출 수 없었다. 세상에. 공항 청사 건물이 남태평양 원주민들의 초가집을 그대로 옮겨놓은 모습이었다. 규모를 조금 키웠을뿐 지붕을 갈대로 엮은 단층짜리 건물들이 몇 채 이어진 사이로 아열대의 초목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자연에 흠집을 내지 않고 완전히 동화된 모습. 나는 이곳이 세계적인 관광지와 휴양지로 주목 받는 이유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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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최고 덕목 중의 하나가 이국정서라 할 때,
임제가 제주를 찾았을 때만 해도 그 정서는 온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오늘 날 제주 섬 안에서 외국인 관광객 들, 특히 서양인들의 모습을 찾기 힘든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화가 파괴되고 전통의 흔적이 사라진 제주의 모습에서 그들이 독특한 이국 정서를 느낄 여지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제주바다에서 산방산이 자리한 사계포 앞바다를 많이 사랑한다. 우리 나라를 처음 외국에 소개한 네덜란드 사람과 하멜이 표류한 이쪽 땅은 사실 외국인에게 한국의 자연 환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처음 보여줄 만한 곳으로 손색이 없다. 이곳 선창에 늘어서서 즐비한 고기잡이 배들을 바라보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그들이 밤바다에 집어등을 밝히고 어로작업을 하는 모습은 단순한 삶을 위한 풍경 이상의 따뜻한 빛으로 가슴에 닿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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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화가 이중섭과 추사 김정희의 예술혼이 쓸쓸하게 고여 있는 땅이다. 이중섭의 은박지 그림들을 살펴보면 어김없이 바닷게들이 등장 한다. 해방이 되고 6.25가 터지는 동안 그는 이곳 바다에서 일본인 아내 남덕을 그리워 하며 가난과 싸웠다. 그의 많은 끼니를 바닷게들이 해결했고 자신이 먹은 게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자신의 그림 속에 게를 그려 넣었던 것이다.

 

포근한 햇살, 한가롭게 흘러가는 구름, 풀 틈새로 쓰며오는 희미한 꽃향기, 이런 것들이 시간이 흘러가는 흔적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한다. 만휴, 이곳 바닷가에서 9년간의 유배생활을 한 김정희는 세상 모든 것이 다 아름답다는 뜻의 짧은 경구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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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간의 유배 생활이 그의 인생에 남긴 인간적인 성숙이 더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 젖게도 된다안성리에 자리한 추사 적거지에 들러 나는 몇 번이나 만휴라고 새겨진 액자 앞을 서성였다만휴, 세상 모든 작고 쓸쓸한 것, 분노와 열정과 그리움들, 욕망과 좌절들. 따지고 보면 그 모든 것들이 지극히 인간적인 것들이라는 점에서 한줄기 아름다움의 빛을 지닌다.

 

집어등을 켠 고깃배들을 바라보며 맥주 한잔. 육지에 두고온 지지리도 못생긴 세상의 이야기들도 이곳에선 그리운 불빛이 된다.

 

우도로 가는 길 - 바다로 가는 따뜻한 바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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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문의 모래밭을 좋아한다. 석영질이 전혀 없는 이곳의 모래들은 햇빛을 받아도 반짝이지 않는다. 화장을 전혀 하지 않은 제 스스로의 살 빛으로 파도를 만나고, 사람을 만나고, 바닷새의 꿈을 만나는 그 수더분함이 좋은 것이다
그리고 가벼움. 중문의 모래들은 한 없이 가벼운 체중을 지닌다. 화산활동의 영향을 깊게 받은 돌들이 이곳에서 부서져 이루어진 탓이다. 한 줌의 모래를 들어 공중에서 가볍게 풀어놓으면 모래는 금새 바람의 결대로 날린다근엄함이나 엄숙함과는 전혀 거리가 먼 자유로운 비상..., 두세 줌, 거푸 바람에 모래를 날리며 나는 삶을 어깨 위에 지워진 무거운 짐들이 모래들처럼 바람에 날리는 환영에 잠시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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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문에서 서귀포로 가는 길을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이정표에 월평동과 강정동 입구 표시가 보인다 제주 해안 일주도로에 인접한 여러 아름다운 마을들 중에서 나는 이 두 마을을 좋아한다. 마을의 집들은 온통 돌각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골목길 또한 돌각담으로 이루어져 처음 이 마을을 찾은 여행자라면 필시 미로인 골목길 어디에서 길을 잃기 마련이다. 그 순간이야말로 여행자에게 행운의 시간이다 길을 찾는 동안 여행자는 이집저집을 본의 아니게 기웃거리게 되고 그곳에 스민 삶의 냄새들, 저녁 공기의 냄새들에 고스란히 젖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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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조 10 1577 29세의 청년 시인 백호 임제는 바다를 건너 제주에 들어 왔다 그는 이제 막 과거에 급제 했으면 그 기쁨을 제주목사인 그의 부친에게 알리기 위해 어사화 한 송이, 현금 1, 보검 한 자루와 함께 난바다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그의 배는 파도 때문에 백도에서 하루를 정박했던 바, 그곳에서 처음 집어등을 보았다.

 

밤이 이슥하여 봉창을 열고 내다보니 구름 속의 달빛은 어슴푸레 하고 파도는 일렁거 리는 것이었다. 사란도 쪽을 바라보니 고기잡는 불이 하늘을 붉게 비추어 실로 장관이었다.

 

임제의 제주도 기행기 남명소승에 적힌 기록이다.
날이 새자 임제는 뱃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출항을 명한다. 강한 파도 속에 고기잡이를 하는 배들의 불빛에 그가 영향을 받았음은 분명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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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의 하룻밤은 따뜻했다. 바다가 보이는 여숙에 들어 집어등 불빛을 실컷 보다. 영종 때 시인, 석북 신광수는 탐라록에 가슴 아픈 시 한편을 남겼다

 

둥둥 북 울리며 굴리며 배는 떠나네 
달은 지고 샛바람에 돛폭은 부풀었네

섬여인아 나라일 급한 줄 알거든 
이별의 한 맺히게 사내를 보내지 말게나

 

평생을 방랑으로 보낸 그가 첫 벼슬을 얻은 것은 나이 50. 최 말단 직인 영릉의 참봉이었다.
금부도사가 되어 서울에서 제주에 왔는데 바람을 만나 네 번씩이나 서울로 돌아오는 길을 실패 했다 그때 월섬이란 기생과 연분이 트인 모양이다. 월섬은 떠나는 그에게 성사별곡을 불러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그는 이 시 이별하며 뱃머리에서를 그에게 남겼다. 그의 나이 53 살 때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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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이 도저히 건너갈 수 없다고 말하자 나는 웃으며 사생은 하늘에 달렸으니 오늘의 굉장한 구경거리를 놓칠수 없다고 하였다. 바람을 타고 배는 순식간에 우도에 닿았다. 이곳의 물빛은 판연히 달라 흡사 시퍼런 유리와 같다. 이른바 독룡 이 잠긴 곳이라 유달리 맑다는 것인가.

 

조천 - 신비한 하늘을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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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바다의 빛은 검은 빛입니다 용암들이 춤추는 파도처럼 아주 자유롭게 해안선의 굴곡을 이루고 있습니다 햇볕은 구름 사이 간간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해안선과 만나는 파도의 물빛도 검은 빛입니다. 파도가, 그 몸빛이 검은빛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군요. 그 파도의 물빛이 한없이 사랑스럽게 느껴지니까요. 검은 빛의 파도들이 빚어내는 소리들이 그 어떤 화사한 빛들보다 따뜻한 목소리로 귓전에 다가옴을 느끼니까요.

 

오랫동안 이곳 바닷가를 그리워했습니다. 이름 때문이었지요. 아침과 하늘, 처음 이 이름을 들었을 때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알 수 없는 어떤 그리움이 가슴 한쪽에 밀려 왔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아침

 

229
진시황의 충복이었던 서불의 선단이 불로장생의 선약을 찾아 중국을 떠나 맨 처음 이르는 바닷가가 바로 이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서불은 이곳의 천기를 살피고는 조천이라는 두 글자를 바위에 새겼다는군요. 맑고 신비한 아침의 기운이여.

 

233
우리 역사에 제주도를 들른 임금은 없었으니까요 허름하고 흉측한 오지의 땅, 버림 받아 마땅한 인간들의 숨소리를 누이기에 적합한 땅. 지배자는 그런 시선으로 제주와 제주 사람들을 바라보았는지 모를 일입니다.

 

저 검은 빛의 용암들과 파도들. 어쩌면 지난 천년의 세월 동안 이루지 못한 인간의 꿈과 그리움들의 가슴 먹먹한 빛깔은 아닐런지요. 사랑하는 사람과 진실한 마음으로 오래오래 포퐁 할 수 있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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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여 꿈이나 그리움이 어디 있는지 아무런 상관도 없이 그저 벌레처럼 돈 모으는 일에만 집착하지는 않았는지요....

 

서해대교와 바람아래 해수욕장을 찾아서 - 저 너머 강둑으로 가고 싶어요
 
237 
안면도 영목항에 들렀다 영목이라는 범상치 않은 이곳을 영감에 찬 지명 탓. 그런데 바람 아래 해수욕장이라니..., 천리포 만리포 몽산포 연포 꽃지 샛별 태안반도에서 안면도로 이어지는 해수욕장의 이름들 가운데 존재를 알 수 없는 이름 하나가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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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에게 안락함은 독이다. 안락 함을 즐겨 선택하는 나그네는 오래 길 위에 서지 못한다. 발안 이라는 지명은 형이하학적이다. 게다가 짙은 삶의 냄새가 느껴진다. 일주일 쯤 길을 걷다 껴신은  면양말을 꺼내는 듯한  냄새. 오랜 여행이 끝나고 신발 끈을 풀 때 그 냄새는 예외없이 자랑스럽다. 발안의 어느 모텔에서 잠이 들며 나그네는 꿈을 꾸었다. 뒤축이 낡을대로 낡은 운동화를 세탁하는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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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아래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 눈썰미가 필요하다 장곡이라는 이정표가 붙은 마을에 가로 세로 1 미터가 채 안되어 보이는 작은 입간판이 하나, 그곳에 바람아래해수욕장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눈여겨 보지않으면 십중팔구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송림을지나 바다와 눈이 처음 마주쳤을때 나그네는 그만 눈을 감았다 10 초 쯤 그대로 있다가 눈을뜨고 몇 번인가 눈을 깜빡였다. 그것은 나그네의 오랜 버릇 중의 하나였다. 나그네는 눈을 감았다. 길에서 한없이 아늑하고 포근한 풍경을 만났을 때 나그네는 눈을 감았다가 깡박이며 그 풍경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강은교가 그러므로 실눈을 뜨고 볼 것 이라 노래 한 적이 있었다. 사랑 법이라는 제목을 가진 시였다. 무심한 소가 산벚나무 꽃 핀 먼 산을 바라보듯. 그럴 때 고요한 시간들의 춤이 보였다. 바람이 불어 가고 바람아래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희미한 꿈이 보였다.

 

바람아래 해수욕장. 이곳에서는 바람의 눈썹이 보였다. 시간의 눈썹과 모레의 눈썹도 보였다. 한없이 아늑하고 고요했으므로 그들의 지닌 눈썹 몇 개가 하늘로 올라가 낮달의 영혼과 만나는 모습도 보였다. 갈대들이 바닷물 속에 하반신을 담그고 있었다. 물과 갈대가 만나는 지점에 물비늘 하나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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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많은날의 노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바람아래 뭇 세상들의 꿈은 기실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바람아래, 바람 아래 강둑 그곳에는 아주 평온한 거울 속의 봄바다가 산다.

 

지심도로 가는 길 - 동백숲 속에 숨은 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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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시로 이름이 바뀐 옛 삼천포의 오래 된 동네 실안이라는 이름을 지닌 이 동네의 언덕배기에 선 이 여관은 바다 전망이 화사했다. 특히 밤 바다의 전망이 그러했다. 안개처럼  가는 비가 창밖의 바다에 펼쳐지고 있었다. 불빛들이 사라진 자리 그 자리에 봄비들이 아늑하고 포근한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나는 눈앞에 한 섬을 바라 보았다. 늑도라는 이름을 지닌 그 섬의 불빛들은 많은 불빛 들 중에서도 아름다웠다. 아름다움은 아득히 먼 곳에서 빛나는 별빛 같은 것, 가까이 다가가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것. 나는 늑도의 불빛들을 가능한 내 마음 안에 새 기기로 했다. 언젠가 너에게 꼭 갈거야. 그 때까지 기다려 줘. 불빛들은 내 말을 알아 듣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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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는 아름다운 포구다. 나라안의 도시 중 유일하게 스카이 라인에 살아 있는 도시. 이중섭과 유치환과 윤이상 등의 예술혼이 살아 숨쉬고 있는 도시. 나는 우산을 들고 선창가를 어슬렁거리며 걸었다
내가 충무에 왔을 때 나를 가장 기쁘게 했던 것은 선창에서 만난 두둥실이라는 이름의 배였다. 배의 이름이 두둥실이라니. 마음에도 두둥실 흰구름이 일었다. 낯선 두리둥실호 이름이 보였다. 두둥실 호는 어디 갔느냐 는 내 질문에 여직원은 두둥실 호는 지금 여수에 있고, 두리둥실호는 전혀 다른 별 하고 일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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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세포 -세상을 일순 알아 버린다는 포구의 이름이 얼마나 오만하고 또한 아름다운가 - 의 해안은 완전히 콘크리트 더미에 묻혀있었다. 아낙들이 둘러앉아 한가 하게 성게알을 까고 작은 생선들을 바람에 말리는 풍경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선창을 따라 갓 포장된 아스팔트 길이 얼마나 낯선지. 마음 한쪽 어딘가에 햇볕이 내리쬐고 꽃이 피고 고깃배가 선선히 흔들리는 그런 풍경이 남아 있음 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일 것인가. 그 해안을 콘크리트로 덮고 길을 만들고 큰 배가 드나들게 함은 또 무슨 일인가. 장승포에서 지심도로 들어가는 막배를 탔다.

 

서운해하지마 한없이 아름다울 수 있다고 믿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지 가슴 안에 지난날의 풍경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는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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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 쯤에 짧은 항해 끝에 지심도에 닿았다. 땅의 마음이라는 넉넉한 이름을 지니고 있는 이 섬을 이쪽 바다에 사는 사람들은 동백섬이라 부르기 좋아한다 온섬이 동백나무로 뒤덮인 탓이다

 

여행자에게 아름다움이란 먼 곳에 불빛이 아니라 살아 가까이 있는 누군가의 따뜻한 빛과 체온이라는 느낌을 지니게도 한다. 동백꽃은 하늘의 가지에 매달려 있을 때보다 땅에 떨어져 있을 때 더 아름답다는 생각이 찾아든다. 길은 여러가지 형태로 섬 안 곳곳으로 스며든다. 오솔길들이 동백 숲이나 섬백리향숲, 솔숲 새로 뻗어나가는 모습은 한없이 자유롭다.

 

춘장대서 교코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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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반도. 그곳에는 춘장대라는 이름의 아담한 해수욕장이 있고 길이가 십리쯤 되는 방조제가 있다. 반도의 맨 끄트머리에는 동백이 자라는 숲이 있고 무엇보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남촌이라는 이름의 포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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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의 시인 서거정은 비인팔경을 얘기 하는데 은녕소도와 미박대해가 바로 그것이다. 가물거리는 섬들의 그림자와 새벽 빛 속으로 펼쳐지는 큰 바다. 작고 큰 것을 한데 아울러 보는 옛 문사의 눈이 정교하거니와 풍경들이 공통적으로 지닌 아름다움은 아주 평온하고 아늑하다는 점일 것이다.

 

나는 반도의 초입에서 곧장 부사방조제로 차의 방향을 잡았다. 방조제는 서천 과 보령시를 한길로 이어 놓았다. 4km 가까운 길이 바다 한가운데로 이어지는 것이다. 가을 날  이 방조제 길을 걷는 것은 참으로 시원한 운치가 있다. 탁 트인 바다의 모습에 가슴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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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끝에 차를 버리고 십리길의 방조제 끝까지 들어가서 다시 돌아오는 모습도 보기 좋다. 손을 잡고 피안의 세계까지 걸어 갔다가 그곳에서 해삼이나  멍게 한 접시를 맛보고 돌아오는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다리가 조금 아픈 연인을 위해 또 한 연인이 그를 들쳐 업고 걷는 모습은 동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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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람이 잘 드 나드는 송림 숲에 앉았다 그리고는 무라카미류의소설 교코를 읽었다 스물 한 살의 트럭 운전수이자 댄서인 일본 아가씨가 어린시절 그에게 춤을 가르쳐 준 쿠바 출신의 미국 청년을 찾아 나선다는 이야기다. 소설이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읽히는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망가진 인간의 꿈과 사랑을 그 회복을 끈질기게 이야기하는 점일 것이다. 기왕의 무라카미  씨의 소설들은 사실 인간성 회복 과는 일정하게 거리가 있는 작품들로 해석될 여지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교코에는 그가 꿈꾼 순수한 사랑에 대한 열망들이 치열하게 교직돼 있다. 손발 끝과 몸의 구석구석까지 신경을 골고루 쓸 것. 꾀를 부려서는 안될 것. 성실하게 진지한 마음으로 스텝을 밟을 것진지하게 춤출때 즐거워 질 수 있고 즐거워지면 진지하게 춤추는 것이 자연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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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코가 여행중에 만난 미국인들에게 레슨을 하는 내용이다 세상에 춤추는 순간만큼 따뜻한 시간이 또 있을까 자신을 둘러싼 시간과 공기와 바람, 연인의 숨결과 어떤 허무의 기운.... 그들이 함께 스텝을 받고 불빛을 만나고 서로의 감정의 속살을 부비는 춤만이 우리들의 인생을, 영혼을 한없이 자유롭게 한다고 얘기 한 친구는 희랍인 조르바 였을 것이다.

 

=> 나는 조르바의 춤을 기억하고 있다. 조르바라면 충분히 춤과 인생에 대해 그렇게 말 했을 것이다 인생은 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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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 무렵 나는 남촌 으로 갔다 춘장대 와 반대쪽에 자리잡은 이곳 바닷가는 사실 춘장대 보다 더 섬세한 풍경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햇살이 포근하고 물살도 잔잔하다 둥그렇게 휜 반도의 영향으로 내해를 이루고 있는 탓일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을 제일 끄는 것은 해변을 따라 죽 펼쳐진 작은 자갈밭이다.
사실 서해안의 모래 사장들은 그 빛깔로만 보자면  아름다움이 떨어진다. 개펄의 기운이 스며 있기 때문이다. 자갈밭에는 개펄의 흙빛이 남아 있지 않다. 게다가 이곳의 자갈들은 보길도의 예송리나 완도 정도리 자갈 들 보다 훨씬 작고 섬세하다. 빈 배 위에 줄지어 앉아있는 갈매기들이 모습도 정겹다. 나는 자갈밭 위에 누워 교코를 마저 읽었다.

 

충남 서천군 장항- 헤어지기 싫은 연인들의 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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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읍의 거리는 내게 충분히 사랑스럽다. 특히 선 창을 끼고 있는 작은 골목길의 풍경들이 그렇다. 여기 저기 여인숙의 간판을 내건 작은 단층집들이 들어서 있고 사이사이 선술집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군산항은 일본으로 수탈 되는 쌀의  최종 집결지였다. 벚꽃으로 이름난 전군가도는 나라 안에서 최초의 포장도로 였으며 이는 쌀의 수송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정책의 소산이었다. 그 시절 군산과 장항에는 쌀을  매개로 한 도박판이 벌어지고 술집과 여관들이 즐비하게 들어섰던 것이다. 그 흔적들이 장항읍의 거리에는 군데군데 남아 있다. 역사는 때로 못난 것이 더 사랑스러울 때가 있다. 힘들고 고통 받는 시절의 삶을 떠올리며 현재의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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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장 도선장으로 걸어갔다 장항의 바다에는 늘 두가지의 큰 기쁨이 기다리고 있다. 하나는 금강이 서해바다와 합류하는 장엄한 모습을 바라보는 일이다. 오늘처럼 흙탕물의 강물이 아니더라도 강물이 자신의 긴 여행을 끝내고 햇살 반짝이는 바다와 합쳐지는 모습은 어떤 카타르시스의 느낌을 준다. 외로움 쓸쓸함 굴욕 상처..., 온갖 그늘진 추억들의 모습이 바다와 함께 어우러져서는 한 화엄의 장을 연출해내는 것이다. 특히 해 질 무렵 충분히 피곤해진 강물들이 서해의 품에 말없이 안기는 모습은 아름답다.

 

또 하나의 기쁨은 배를 타는 일이 다 군산안과 장항 항은 금강이 바다와 만나는 최 하류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거니와 그 폭도 한강폭의 두개가 되지 않는다. 두 도시 사이를 여객선이 다닌다. 왕복 소요시간 30, 장항에서 군산으로 가는데 15분 반대의 경우도 15분이 걸린다 
보라색의 장미로 치장된 꽃바구니를 지니고 있는 군산대학교 1학년 박형주군을 만났다. 그 꽃을 바라보는 순간 나는 잠시 보라색 장미가 세상에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을 갖기도 했다. 젊은 청년이 여자친구로부터 장미꽃바구니를 받는다는 것. 아름다운 일이다. 나는 필경 꽃을 받게된 이유까지 물었고 그는 정말 수줍게 만난지 50일이라는 말을 덧 붙였다. 나는 장항에서 군산으로 가는 여객선을 타면서 이 두 도시에 사는 연인들의 서로 이별하기 힘들 거라는 생각을 했다. 15분 이내 편도 뱃길를 바래다 주면 헤어지기 싫어서 다시 돌아오는 배를 함께 타고 막상 한쪽의 도착지에 이르면 또 다시 헤어지기 싫어 맞은편의 항구로 함께 가고 그러다가 불빛들이 충분히 아름다운 마지막 배의 시간에 이르러서야 연인을 내려놓고 혼자 들어오는 시간, 연인이 사는 도시 쪽의 불빛을 보면 또 얼마나 아쉽고 가슴 설렐 것인지. 그 두 도시의 연인들은 필경 헤어지기가 어려운 환경에  처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경남 고성군 상속 포구 - 봄비 속에서 춤추는 공룡들의 발자국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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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날 공룡들의 발자국을 따라 걸으면 마음이 편안 해져요

 

해남 송지 어란포구 - 갯바람 속에 스민 삶에 대한 그리움

 

287 어란팔경
어릴적 서당 선생님으로부터 들었지 노송무악, 잠두어적, 양포기범 평사낙안, 매봉초월, 화계청람, 고암양파, 달마모종이 팔경인데 노송무악의 노송은 사라호태풍때 죽고 말았어.

 

바다 와의 만남 - 곽재구 시인의 포구기행, 문학 평론가 최영호

 

292
인간은 바다, 어머니의 양수, 그 바다를 몸 속에 품고 살아 가기에 걸어다니는 바다라 하겠다.

 

293
엄마가 섬그늘에 굴따러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 주는 자장 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 잠이 듭니다 
근원적인 어머니다 그 바다는 우리 삶이 지칠때 우리 곁에 함께 누워 주고 우리가 갈등할 때 우리 삶을 이끌어 주는 지혜로운 어머니다

 

294
시인은 생존의 바다로 나갔던 배들이 돌아와 깃드는  포구 마을을 찾으며 진짜는 우리 사회가 외형적인 거대함과 속도 경쟁에 휘말려 그동안 잊고 있던 질문을 탐색한다.
세밀히 보지않아 삶이 값싸진 곳 엄연한 있음이 없음으로 둔갑 된 갖가지 편견들이 바로 그 것이다 크고 작은 바다 와 포구 마을에서 시인이 만난 숨어 있는 사람들의 꿈과 삶은 우리가 손에 들고 있으면서 모르고 살았던 부분은 돌아보게 하는 죽비소리다

 

295
곽재구 시인의 포구 기행의 소중한 미덕은 습관적 삶에서 잊고 살았던 우리의 다양한 내면적 자아를 발견하도록 한다는 점이다.
그리움이 너무 깊어 길을 재촉해 달려왔던 갯마을 지세포도 그것들 가운데 하나다. 세상의 모든 비밀들을, 삶의 원칙과 슬픔과 근원의 뼈아픔들을 다 알고 있는 지세포는 시인의 가슴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별똥별의 숨결로 살아 있다

 

296
김준임씨의 이야기는 순박하고 낙천적인 바닷사람들의 마음만 알게 하지 않는다. 진짜 팥죽 맛은 우리 인간이 겪는 노동의 고됨, 삶의 궁핍함, 물질의 부족함이 고루 섞일 때라야 비로소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297
갯벌의 신비로운 가치를 용에 비유한 바닷가 사람들이 지혜는 마음의 눈인 상상력의 눈으로 봐야 볼 수 있는 우주적 진리일 것이다.

 

보릿고개 때 보리 밥 한 술 얻어 먹기가 꿈 일적에도 갯가에는 괴기들이 헤아릴 수 없을만큼 사방 천지에 널렸지. 9마리 용을 너끈이 먹여 살릴 수 있을만큼

 

299
자기의식 있고 생각할 줄 알며 그것과 상호작용하는 사람들의 삶에 시인의 포구기행은 하루하루 스치는 것을 발견의 눈으로 제 음미하게 한다. 사실 이런 설레임이 없다면 우리 삶에 무엇이 남겠는가. 무려 20년을 기다렸다 짐을 꾸린 곽재구 시인의 포구기행엔 세속의 풍파에도 빛을 잃지 않는 근원적인 가치과 아름다움이 들어 있다. 그 가치와 아름다움은 생명과 신비와 환상까지 안고 있는 우리의 근원적인 어머니, 바로 바다의 가치와 아름다움이다. 눈 맛이 깊은 사람은 바다를 가슴에 안고 사는 시인의 발걸음에서 바다의 진짜 주인이 사람이 아닌 달이란 사실과 근원적인 어머니가 허락하지 않으면 현실의 어머니는 언제나 빈 바구니로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도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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