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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23일 01시 29분 등록

최후의 언어

이상엽


2014. 2. 22


1. 저자에 대하여


다큐멘터리 사진가, 르포르타주 작가. <레닌이 있는 풍경> 등의 책을 쓰고 <변경> 등의 사진전을 열었다. 요즘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해 신자유주의가 낳은 우리 사회의 풍경을 찍고 있으며 그 이야기를 여러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프레시안 기획위원, 전 진보신당 정책위 부의장과 문화예술위원장을 지냈고, 현재 한국비정규노통센터 이사로 있다. 라고 책의 날개에 적혀있다. 내가 아는 그는 돈(?) 되는 일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산다. 타고난 반골기질 탓일 것이다. 나보다 서너살 위인 것으로 안다. 살면서 몇 번 사적인 자리에서 만날을 법 한데 아직 만나지 못했다. 이 양반이 날 알리 없지만 난 비교적 이 양반이 뭘 하고 사는지 근황을 잘 아는 편이다. 블로그로 SNS로 그를 만난다. 그의 지인의 지인쯤 되는 사람에게서 그의 소식을 간혹 듣고, 활동하는 사진커뮤니티에서도 근황을 알 수 있다. 오래전엔 장터에서 잠시 인연을 맺을 뻔 한 적도 있었다. 간발의 차이로 순서를 놓쳤지만 저자가 내어 놓은 중고렌즈(뭔지는 기억이 안난다.)를 구입할 뻔 했었다. 덕질하는 맛은 사진쟁이에게도 예외가 없다. 그가 출판한 여러권의 책을 대부분 읽었다. 동지의식의 발로가 없지 않았으나 재미있고, 깊이도 있기 때문에 난 그의 책을 좋아한다. 대중성도 겸비한 책들이다. 특히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라(공저)는 제법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젊은 다큐사진가들이 모두 참여해서 만든 재미있고 인상깊은 책이었다. 2권까지 나왔으니 1권은 제법 팔렸을 것이다.

저자는 책을 잘 만든다. 이번 책에서는 그의 내공이 많이 깊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지난한 기록이었을 것이다. 밥이 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 지난한 기록에 천착하는 이유를 나는 조금은 알 수 있다. 그간의 기록과 카메라란 오브제를 잘 엮어서 대중적인 가볍고 무거운 책을 만들어 냈다. 책의 제목에서 울림이 크다. 책이 밥이 되었으면 좋겠다. 저자와 같이 음지에서 묵묵히 굳건히 열심히 아등바등 행동하는 이들 덕분에 우리는 다른 한쪽의 시선으로 담겨진 사실들을 만날 수 있게 된다. 귀하고 소중한 일이다. 저자가 참여하고 있는 국민TV(지금도 참여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에 작은 성의를 표시하게 된 것도 저자와의 인연 덕분이다. 그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2.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8. 뭔가 물질로 남아 있다는 것이 미래를 위한 보험처럼 느껸진다고 할까.

>>필름에 대한 옹호, 아날로그에 대한 오마주


9. 미술하는 사람들이 종이 마그 쓰고 물감 마구 쓰는 일 없듯 말이다.

>>필름 값이 자꾸 오른다. 사용하는 사람들이 없으니 더 오른다. 이제 나 같은 가난한 사진가들은 비용적으로 부담이 오기 시작했다.


18. 피사체를 대하는 사진가의 태도 _ 필름에 대한 옹호


36. 가난은 상대적이다. 요즘 절대적인 가난은 보기 힘들다. 나 역시 사진을 시작할 때인 20대 중반보다는 훨씬 가진 것이 많으니, 그저 동년배들보다 상대적으로 가난할 뿐이다. 어쩌면 그 가난을 안고 사는 적극적 선택이 이곳으로 이끈 건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이 직업으로 부자가 되긴 힘들 테니 마음이라도 편히 사는 것이 건강에 좋다 위안 삼아 보는 것이다. ... 앞으로 5년이 결정된 밤에 꾸역꾸역 글을 썼다. 그리고 또 깨닫는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는. 맞다. 앞으로 5년은 집 앞 풍경도 좋지만 여전히 가난한 이들과 함께 거리에 있어야 한다. 고기리 풍경은 그저 나만의 풍경으로 당분간 두어야 할 것 같다.


51. 뱃길을 복원하고 분쟁을 잠재우는 일. 그것이 바로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시아 변영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58. 사실 이 공사에 반대하는 자연인이 아니라 직업 사진가로 현장을 본다는 것은 몹시 괴로운 일이다. 동북아 평화와 거리가 먼 자연파괴도 괴로운데 이미 많은 사진가들이 보여 줄 사진은 거의 다 보여 줬다는 것 때문이다. 내가 지난 수년간 작업한 것은 이 땅의 파괴와 소외였다. 그 소재 중 하나가 가림막이다. 무언가를 은폐하고 음모하기 위해 쳐 놓은 것이 가림막이다.


60. 하지만 강정에 온 지금 또다시 빗줄기 속을 걸으며 생각에 빠진다. 무기력하면 지는 건데 가슴이 또 미어지고 무기력해진다. 그래도 어렵게 내려왔는데, 아들까지 함께 왔는데 뭔가 하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66. 즉 생태계는 인간이 만든 수치에 따라 죽었다 살았다 하는 것이다. 비 내리고 파도가 친다. 무척이나 우울해진다.


70. 그래서 작고 조용하고 재빠른 이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어슬렁거리면 내가 마치 피사체로부터 지워진 유령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지금의 비싼 디지털카메라에 질린 외로운 영혼들이 그나마 저렴한 필름 라이카 카메라로 위로받는구나 생각도 해 본다.


80. 카메라는 사고하지 못한다. 사고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 한다. 하지만 어떤 카메라가 어떤 히스토리를 갖고 내 품에 들어와 사진을 찍어주고 있는가 하는 것도 여전히 중요하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손에 들린 라이카와 레니 리펜슈탈 손에 들린 라이카는 참으로 다르게 느껴지니 말이다.


83. 노동자가 노동자를 차별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차별에 차별, 울산 현대자동차 노동자의 추억, 노동자의 정신이 사라진 노동자 집단, 배부른 노조, 귀족노조.


88. 저 철탑도 그렇다. 원래는 전기를 보내는 전선을 이어 가는 높은 구조물에 불과하지만 그곳을 점령한 이들 덕분에 이 철탑은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은 것이다.

>>프라스 미술가 뒤샹, 레디 메이드


90. 지금 인류는 과거에 만들어진 필름카메라로 필름과 인화지를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94. 노동자가 만들어 내는 정교한 카메라. 그리고 세상에 꼭 필요한 것을 만들어 내는 자본. 노동으로부터 소외되지 않는 노동. 그것을 기꺼이 비싼 가격을 치르고 손에 들어 세상을 기록하는 사진가. 뭔가 참으로 가치 있고 의미 깊은 관계인 듯한데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잘 안된다.


101. 사건이나 텍스트를 이해하는 데 진영논리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역학관계에 따른 해석일 순 있어도 진실을 전제로 한 것은 아니다. 다시 비문으로 돌아가서, 팩트들 걸러 내고 바화자의 본심을 파아가는 것이 진실에 접근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영토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104. 변경은 중심으로부터 원심력에 의해 멀어지려 하다가도 구심력에 이끌려 중심으로 진출했다.


111. 그런데 고대를 사진으로 소환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오래된 문화유적을 찍을 때면 느기는 갈등이 번번이 발목을 잡는다. 과거인 양 찍을 것인가? 오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직을 것인가? 


125. 중국이 변했다 하지만 여전히 전체주의적인 사고가 남아 있다. 도심 주방장들을 모두 동원해서 청결을 외치는 캠페인성 행진을 하고 있다. 물론 이런 풍경이 내게 낯선 것은 아니다. 우리도 88올림픽 전에 이런 풍경이 흔했다.


143. 나는 카메라가 단지 사진을 찍는 도구가 아니라 사진가의 정신을 육화시키는 도구라 생각한다. 마음과 몸이 따로 놀 수는 없는 일 아닌가?


145. 꼭 중세 역병을 앓는 사람들을 한 번에 가두었던 수도원 같은 풍경의 8인실은 국민건강보험 덕분에 자부담이 거의 없다는 장점 외에 도무지 아픈 사람에겐 도움이 될 것 같지가 않다.


162. 그저 나처럼 적당히 고치며 살아야 하는 것이 오래된 필름카메라의 숙명이 아닐까 한다.


166. 그들의 불심이 강한지 돈이 강한지를 내기하려는 듯하다.


173. 랑무스 천장태 맷돌에 올려진 오브제들. 천장의 살벌함은 살과 피가 사라지자 함께 증발한다. 잔혹감도 신비감도 없었다. 그냥 백골이 말하는 듯했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174. 바람에 흩날리는 타르쵸와 인적 없는 공간이 잠시 나의 머리를 텅 비게 만든다. 살점이 사라진 백골을 부수는 맷돌 위에 두개골이 보란 듯 놓여 있다. 누가 이리 해 놓은 것일까? 경고인가, 관광상품인가?


184. 이발소에서 발견한 홍태양 마오쩌둥이다. 이 인민의 아버지는 죽어서 더 유명해졌다. 신으로 등극해 수많은 인민들의 고해성사를 들어 준다.


187. 롤라이플렉스가 다른 카메라와 차이가 잇다면 무척 겸손한 카메라라는 점이다. ... 그래서 롤라이플렉스는 당대에 ‘신사의 카메라’라 불렸다. 피사체를 잡아채는 듯한 공격적이 라이카 대신 신사의 정중함이 드러나는 카메라라는 것이다. ... 이 카메라는 대부분이 로우 앵글로 찍혀 사람의 감정과 주관성이 도드라진다.


191. 하지만 컬러사진은 위의 시각과 너무 비슷하여 흑백사진이 주는 묘한 비현실적인 느낌의 매력과 맛을 따라오지 못했다.


203. 카메라가 아무리 좋은들 능력이 그에 미치지 못하면 사ㅣㄴ도 여물지 못하다. 자신의 눈을 연장하는 도구로서의 카메라가 완전히 녹아들기까지 또 얼마나 걸려야 하는 것일까? ... 혹시나 말라카의 프란체스카는 없나 하고 말이다. 하지만 역시나, 떠돌이 사진가의 로맨스는 영화 속에서나 존재할 픽션일 뿐이다. 


219. 몸으로 폐달을 밟아 가며 내성천을 돌아보는 사이 우리가 자연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영혼을 구원하는 길이라 생각해 본다.


223. 새만금은 만경평야와 김제평야를 합친 조어다. ... 현재 새만금의 대부분 용지는 산업 상용용지로 용도전환 됐다. 애초 농업 용지와 식량자원 확보 계획은 매립을 위한 거짓말에 불과했다. ... 이 거대한 공사 놀음은 세금과 개발이익이 누구에게 전유되는지를 보여 준다. 이 합법적으로 보이는 사기에 직접 호주머니를 털린 것은 부안, 김제, 군산의 어민이었고 죽어 버린 것은 갯벌과 자연이고 당한지도 모르는 것은 국민이다. 



3.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포함하면 좋겠다는 교장샘의 코멘트에 따라 가닥을 잡아보고자 선택한 책이다. 


[키워드]


변경, 경계, 기록사진, 사라질 것에 대한 오마주, 필름, 카메라, 부당한 권력에 대한 저항


[차별성]


-책을 잘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필력도 좋고 사진도 잘 찍었다.

-제법 심각한 주제를 무겁지 않게 그리고 편하게 책을 만들어 낸다.

-어둡고 후미진 곳에 사는 이웃들과 부조리한 사회에 대해 할말이 많은 저자는 곳곳에 자신의 이념적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진들도 좋고 각 사진에 달린 코멘트도 훌륭하다. 

-본문을 없애고 사진으로만 구성한다고 해도 나쁘지 않겠다 싶지만 대중성이나 마케팅에 애로가 있을 것이다. 내가 쓸 써야 할 책에서 참고해야 할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일반인(사진을 읽을 줄 모르는)들은 이 책의 사진들이 어떻게 읽혀지는지 궁금하다.


[구성]

카메라 사이즈에 따라 큰 장을 나누고 작은 꼭지별로 이야기를 구성하되 카메라를 연계하였다. 이런 구성형식은 이전에도 많이 구사된 이상엽 저작들의 특징이다. 예를 들면 “광교산 자락이 단풍으로 붉게 물들 때 나는 집 주변을 찍어 볼 요량으로 미놀타를 꺼내 들었다. 이 카메라와 렌즈 중에는 ‘가난한 라이카’라는 별칭이 붙은 것들이 있다.”


본문에는 이 꼭지에 사용된 카메라에 대한 간략한 역사와 얽힌 에피소드를 자연스럽게 풀어놓는다. 사용된 필름도 같이 언급하였다. 사진과 카메라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가울 것이고, 입문자이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부가 될 것이고, 문외한이라면 글쎄 좀 어렵게 읽히겠지?


주 타켓이 일단은 사진에 제법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카메라를 주제로 하니 서로 다른 성격의 글들이 카메라를 중심으로 한궤미로 꿰어진다. 저자는 카메라에 숨어 세상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한다. 그래야 들어주니까.


르뽀르따주 형식을 빌어 내용을 구성하면서도 대중성을 놓치지 않으려 신경을 썼다. 


각 꼭지별로 작은 키워드를 꺼내 소제목으로 삼았는데 이런 구성이 참 좋다. 


살고 있는 고기리에서 현실의 팍팍함을 받아들이고

강정마을, 팽목항, DMZ, 새만금, NLL을 쏘 다니며 아프고 힘들 사람들과 그곳의 단상들을 기록했다.

고구려도 가고, 티벳도 가고, 시베리아를 다니며 우리가 기억해야 할 풍경들을 담았다.


부록에 카메라의 간략한 역사와 본문에서 사용된 카메라들의 사진과 스펙을 실었다.


이 책의 리뷰들을 검색해서 봤다. 대부분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저자가 원한 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재일기에 카메라 이야기를 가져다 붙인 것은 대중주의에 영합한 것이리라. 그런데 잘 같다 붙였다. 책이 팔리는 포인트와 가치를 내려놓지 않으려는 경계사이에서 고민이 컸을 것이다.


구성의 행간에 관해서는 좀 더 연구를 해 봐야 할 것 같다. 


IP *.104.9.148

프로필 이미지
2015.02.23 19:30:45 *.186.179.93

최후의 언어라는 말에 끌리네요.

사진과 시.

아마도 최후의 언어 형태일까요?

점점 짧아지는 글쓰기와 강렬한 사진 한장...

 

저도 일독하고 싶은 책입니다...

소개 고맙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5.03.01 14:09:59 *.45.172.146

리플이 참 반갑습니다.

책이야 뭐 질리도록 기왕에 본 것이고


그때처럼 뵙고 딩가딩가 놀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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