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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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를 걷다.
2015. 2. 24
봄에 이르는 길목에서 바람이 녹아 향기로 산사에 내려앉았다. 몸에 내장된 생체시계는 때가 되면 자연으로 데려다 달라고 신호를 보내온다. 새벽부터 안개비가 소복소복 포근하기도 하다.
용렬한 인사가 참 풍류의 맛이야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만은 그 사이 장년에 이르고 보니 자연은 자연 그대로 자연인 까닭에 그 담백함이 한량없음을 어렴풋이나마 느끼며 그 맛을 알아가는 중이다.
오늘처럼 이렇게 소복소복 안개비까지 숨어있던 감성들을 간질이는 날이면 사진쟁이의 발길은 저절로 산사로 향한다.
참한 절집을 보면 분명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자연이었던 것처럼 자연을 닮아있어 좋다.
지금의 것도 시간의 앞에서는 반드시 옛 것이 되고 말 것인데, 우리의 옛것들은 원래부터 옛것이던 것 마냥 그대로 자연스럽다. 도드라져 뽐내려하지 않으며 사람들의 눈을 현혹시키는 기교스러움도 없다. 나무와 흙과 돌을 섞어 다시 자연에다 그대로 놓아 둔, 그래서 그 안에 존재하는 사람 역시 자연의 일부로 돌려 세워놓는 옛 사람들의 겸손과 지혜로움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남장사!
상주땅 노음산 자락에 또아리를 튼 천년고찰이다. 도시에서 10여분 남짓 거리에 있다고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 담박하고 고즈넉한 이 절집은 제법 옛스러움을 간직하고 있어 고맙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규모에 여느 절집에서 흔하디 흔하게 볼 수 있는 콘크리트와 뺀질뺀질한 대리석, 위성안테나와 팔뚝 굵기나 되는 전선들이 그나마 많이 절제되어 있어 제법 겸손을 간직하고 있다. 규모로 위압감을 주지도 않으며 현대적인 경박함도 절제되어 있어 좋다.
주차장에서부터 일주문을 거쳐 남장사에 이르는 길지 않은 흙길에 살방살방 걸음을 놓으면 바스락 바스락 마사토가 밝히는 소리가 울창한 송림의 싱그러움과 더불어 고요와 평화로움을 한 껏 가져다 준다. 촉촉한 새벽에 들러 세상의 번뇌를 덜어놓고 자신과의 대화를 나누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터실터실 갈라진 일주문 기둥에 손을 얹고 눈을 감아보라. 천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밀고 들어와 장구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흐르는 물소리가 심장소리에 묻혀 이윽고 고요만이 남을 때 나는 나를 다시 만난다. 내가 아는 자유다.
이제 숨겨놓은 남장사의 맛을 찾아 조금 더 가보자. 남장사 뒤를 돌아 약 2Km 가파르게 난 산길을 오르면 부속암자인 중궁암에 이른다. 이미 해가 중천을 지났을 터인데 자욱한 안개비 덕분에 지척을 분간하기 힘들다. 촉촉이 젖은 어깨에선 아지랑이 같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제법 팍팍해진 다리를 두드리며 몇 번 흐르는 땀을 움칠 무렵 가파른 한 귀퉁이 구름 속에서 어슴푸레 모습을 드러내는 암자. 구름 속에서 찾은 작은 암자에서 세상의 객은 신령스런 기운에 압도되어 넋을 놓았다.
숨소리만 들리는 절대고요!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비까지 안개로 내린다. 셔터소리마저 불경스럽다. 암자엔 공부하는 스님이 계실 터이지만 소심한 객은 혹여 방해될까 염려스러워 발소리조차 죽이며 처마 밑에서 비를 피했다. 한참을 말뚝처럼 그렇게 서 있었다.
혼자 사는 스님은 찻물을 올리고 객을 청해온다. 온돌바닥이 참 따뜻하다.
[남장사]
소재지 : 경북 상주시 남장동 502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로, 경상북도 팔경(八景) 가운데 하나이다.
신라시대 832년(흥덕왕 7) 진감국사(眞鑑國師) 혜소(慧昭)가 창건하여 장백사(長柏寺)라 하였으며, 고려시대인 1186년(명종 16) 각원화상(覺圓和尙)이 지금의 터에 옮겨 짓고 남장사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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