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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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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6일 00시 14분 등록


딸 녀석이 다니는 학교에서 봄 방학을 이용해 뉴질랜드의 고등학교로 교류 학습을 다녀왔는데 모험심 많은 딸도 그곳에 동참했습니다. 딸 녀석이 현지에서 엽서 한 장을 사왔는데 그 엽서에 놀라운 광경이 담겨 있었습니다. 귀국을 반기는 가족 밥상에서 나는 녀석에게 엽서 속의 장면에 대해 물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광경이구나. 깜깜한 동굴 천정에서 반짝이는 빛을 포착한 이 장면! 이게 ‘glowworm’이라고? 저 빛이 벌레가 만들고 있는 거라고?” 엽서는 어두운 동굴 천정에 드리운 연푸른 빛을 별처럼 발하고 있는 장면을 담아낸 사진을 소재로 하고 있었습니다.

 

딸은 그것이 ‘glowworm’이라는 불리는 애벌레라고 일러주었습니다. 동굴 천정에 빛을 발하는 벌레를 보며 감탄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나는 애벌레라는 말에 귀를 의심했습니다. “애벌레라고? 성충이 아니라 애벌레?” 딸 녀석은 분명히 그렇다고 다시 말했습니다. 나는 흥분해서 되물었습니다. “애벌레가 빛을 낸다고? 왜 애벌레가 빛을 발한대?” 녀석은 자신도 궁금해서 물어보았는데 현지 안내자는 그 벌레에 빛을 발하는 물질이 배치돼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고 했습니다.

 

순간 나는 따지듯 딸 녀석에게 되물었습니다. “뭐라고? 빛을 발하는 물질이 그 벌레에 배치돼 있어서라고? 그 벌레가 왜 형광물질을 배치했다는데? 아비는 어떻게 말고, 왜가 궁금한데?” 딸 녀석은 나의 질문에 조금 어리둥절해 하는 듯 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바꿔 물었습니다. “현지 안내자의 설명은 마치 우리 콧구멍 속에 왜 코털이 나느냐는 질문에 코털을 만드는 물질이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한 것과 같지 않니? 코털은 호흡과정에서 우리 호흡기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해로운 것들을 걸러내기 위해 자라고 있는 것일 텐데아빠는 바로 그 지점이 궁금한 거야. 이를테면 glowworm도 우리나라의 반딧불이가 빛을 발하는 목적 같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냐는 거지. 알다시피 반딧불이가 만들어내는 빛은 구애를 위한 것이잖아. 그런데, glowworm은 성충이 아니라 애벌레야. 애벌레가 짝짓기를 할 리는 없잖아. 그런데 왜 빛을 만들어내느냐는 거지. 아비가 숲에 살며 살펴보니 자연이 빚어내는 꼴에는 그냥인 것이 없어. 우리가 다만 그 진정한 이유를 모르는 것이 있을 뿐이지.”

 

녀석은 이제 내 질문의 맥락을 충분히 이해한 모양이었습니다. 엄마의 스마트폰을 켜더니 구글에 이런저런 검색을 시도했습니다. 5~6분 쯤 지났을까, 녀석이 납득할만한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그게 성충도 있고 애벌레도 있는데, 애벌레의 경우 동굴 천정에 실을 고정하고 매달린 채로 빛을 만들어낸다네. 동굴에 사는 벌레들이 애벌레의 빛을 보고 모여들다가 애벌레가 만들어낸 점착력이 있는 실에 걸려든대. 결국 애벌레는 그 벌레들을 먹잇감으로 삼아 애벌레의 시간을 보낸다네!” 우리의 궁금함에 대한 답은 비로소 명쾌해졌습니다.

 

짧게 줄여 옮긴 우리의 대화를 충분히 이해하셨는지 염려가 됩니다. 하지만 요지는 아셨으리라 짐작합니다. 나는 우리가 생명을 공부하는 방식이 얼마나 한심한지 딸 녀석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풀이나 나무, 곤충 따위의 이름을 아는 것에 열중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빚어내는 삶의 모습들 즉 꼴에 대해서는 대부분 생리적 혹은 병리적 차원의 설명에서 멈춥니다. 어떤 호르몬 때문이라거나 색소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경우가 많지요. glowworm의 빛을 형광물질이 있어서라고 설명하는 것처럼! 그러나 그런 설명은 그 생명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하지 못합니다. 더 깊은 질문이 필요합니다. 생명이 보여주는 꼴에는 더 깊은 이유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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