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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7일 08시 48분 등록

4차 이식날 봄 기차에서

 

개똥아, 산아

12 40 KTX가 대전을 지났다. 출발하자 마자, 치즈핫도그, 어니언핫도그를 감귤쥬스, 포도쥬스에 곁들여 하나씩 점심으로 먹었다. 이어폰을 꽂고 형사물 미드를 보던 아빠는 잠이 들었다. “내가 저 사람만큼 코를 골아요? 나는 절대로 코 안 골아요. 녹음하세요.” 어쩌나? 코고는 소리가 저 쪽 남자분을 가뿐히 능가한다. 기차 시간 대려고 집에서부터 역까지 둘이서 전력질주를 했어. 그 때문인지 여러가지 넣고 먹는 약들 때문인지 내 얼굴에는 홍조가 어린다. 그는 야간 근무를 하고 퇴근해서 겨우 2시간을 잤어. 간밤에 잠을 설친 나도 그의 옆에서 눈을 붙였다. 지난 밤에는 2시간 자다 일어나 한참 깨어있다가 다시 잠들기를 반복했구나. 옆에 사람이 있으니 편안했다. 아이를 기다리는 일에서는 남편이라는 존재감이 제일 큰 것 같다. 그도 지난 밤 작업 후에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단다. 다음 주부터 시범실시 되는 근무조 조정 때문이었을까? 그도 나처럼 이식에 대한 부담이 있었을까? 다른 때보다 더 피곤해 보였다. 가열된 기계처럼 몸이 뜨끈뜨끈하다. “당신 쉬어야지요. 괜찮아요? 혼자 다녀올까요?.” 나의 빈 말에 그가 말했다. “잠 좀 적게 자면 돼요. 내가 같이 가야지요.” 잠을 줄여가면서, 자기 피곤을 감수해가면서, 개똥이, 산이 너희를 만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한다. 그는 지금 시간으로 마음을 내고 있다. 고맙다. 

 

기차는 반짝거리는 호수에 앉아있는 새떼를 스쳐,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닿은 곳으로 가리마 같은 논길 따라 꿈길을 가듯 걸어가네노래 속을 지나간다. 잠시 흥얼거린다. 한낮의 햇빛이 직사하는 빈 들판에서 봄기운이 막 느껴진다. 입춘이 이틀 남았다. 꽃샘추위가 몇 번 있겠지만 봄이 저기서 달려오고 있다. 설레는구나. 지금쯤 내 고향에는 냉이가 양지녘에 났을 거다. 저런 햇살을 등에 받고 한 나절 나물을 캐서 향기로운 된장국을 끓여 먹던 추억이 솔솔 올라온다. 내 몸에는 자연에서 촌년으로 자란 기억이 풍부하게 저장되어 있다. 나의 인간성의 샘, 뿌리이며, 보물창고다. 개똥아 산아, 너무도 소중한 자원인 자연 속에서 자연을 접하며 자란 유년시절을 나는 너희에게 선물할 수 있을까? 도시에 집과 직장을 두고 살 형편인 우리는 어떻게 너희에게 자연을 만나도록 할 수 있을까? 집에 가고 싶다. 엄마, 아부지 보고 싶다. 병원 다니느라, 엄마 생신 때도 못 갔다. “아이고, 니 할 일 해라. 난 괜찮다.” 외할머니가 이야기하셔서 생신날 용돈 보내고 전화만 드리고 말았다. 오늘 이식하면 피검 전에 있는 아부지 생신에도 움직이기가 조심스러울텐데 어쩌지? 어제 외할머니가 사과를 보내주시겠다고 하셨다. 외할머니가 주신 목걸이를 만지작거려본다. 오늘 이식한다고 전화했으니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리라. 간밤에는 친정 아버지 꿈을 2번 꾸었다. 누워 잠든 나에게 일어나! 일어나! 힘내. 얼마 안 남았어. 20m, 15분만 가면 돼외치셨다. 나는 눈을 억지로 떠서 알았어요. . 알았어요.” 대답했다. 또 다른 장면은 기억 안 나지만 아버지가 내 오른쪽에 같이 계셔서 마음이 푸근하고 편안했던 꿈조각이다. 부모님의 마음은 꿈에서조차 늘 나와 함께 하신다. “화무십일홍이나 너희는 나한테 평생 봐도 질리지 않는 꽃봉오리다고 하신 마음을 나도 따라 배워서, 너희를 향해 평생을, 내가 죽어서도 지니고 싶다.  

 

부산행 기차에 타고 보니 우리 가족, 부산으로 기차여행을 떠나자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소망이 생각난다. 내가 초등학생 때 들었던 그 소망명세서는 아직 실현이 안되었다. 이제 두 분은 칠순을 바라보고, 엄마의 가족은 막내삼촌 빼고는 다 결혼 했다. 언제 갈 수 있을까? 나는 바로, 핸드폰으로 점촌에서 당일치기로 부산에 다녀오는 기차여행 일정을 검색해 보았구나. 토요일, 일요일에는 무궁화호가 있네. 당일치기도 가능하네. 부산까지 4시간 정도 걸린다. 오전 6 50분에 출발을 해서 부산에 11시 도착, 그리고 2 45분 차로 돌아오면 저녁 7, 자식처럼 애지중지하는 축사의 소들 밥을 굶기지 않을 수 있다. 부산에 가서는 뭘 하지? 글쎄 자갈치 시장에 가서 회를 먹거나, 태종대에 택시를 불러 타고 가거나 할 수도 있겠지. 거기도 지하철, 버스가 있으니까. 안동의 조카들은 10, 4살이고 여행을 많이 다녀서 괜찮을텐데 두 살짜리 의왕 조카는 아직 어려울텐데. 제안이나 해 볼까? , 버킷 리스트는 완수하라고 있는 것이니까 자꾸 미루지 말고 이루어갔으면 싶다. 문경 부모님, 약수동 어머니, 60대 후반인 분들의 꿈은 무엇일까? 다음에 여쭤봐야겠다. 소망을 들어두었다가 꿈을 이루도록 거들거나 지켜보았으면 싶다. 결혼하면서 아빠와 나는 약속했다. “내가 나로 살게 도와주세요. 저도 당신이 당신으로 살도록 도울께요. 서로가 자신의 꿈을 이루도록 돕는 후원자가 되어요.” 그러면서 두 사람의 10대 풍광을 적어서 같이 봤다. 개똥아, 산아, 너희와 함께 보내는 것도 그 풍광 속의 그림이란다. 너희가 다른 누구, 우리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 원래의 자신으로 살도록, 그리고 너희가 자신의 꿈을 찾아서 이루는 걸 지켜보고 응원하는 부모이고 싶구나.

기차는 남쪽으로 가고, 나의 상념은 여전히 시댁, 친정 부모님의 두 집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할머니의 허리가 잘 낫고 있다. 그리고 합가는 미루기로 했다. 같은 아파트 단지, 다른 집에 사는 걸로 방향을 잡았다. 마음이 가볍다. 약수동의 제사와 생신은 모두 음력 1월이다. 삼촌 생일, 할아버지의 기일, 조부모님의 기일, 할머니의 생신이 모두 달포 반 사이에 있다. 할머니는 내년 3월 초에 칠순을 맞이하신다. 할머니의 소원은 우리 부부가 아이를 낳고, 삼촌이 결혼하는 거다. 그렇게 자식들이 자기 자리를 잘 잡아서 살고 있으면 흐뭇한 마음으로, 70 평생을 살면서 고마웠던 분들, 소중한 분들을 모시고 식사 한끼 대접하고 싶으시단다. 정말 소박한 소망이지? 할머니는 우리가 계속 마음고생을 하고 있으면 잔치를 안 하겠다고 하신다. 어떻게 저 소망을 이루어드릴 수 있을까? 나는 할머니의 소망을 바탕으로 만든 칠순 잔치의 장면사진을 한 장 가슴 메모리에 내장했다. 할머니가 고운 한복을 입으시고, 그리고 삼촌부부 또는 약혼자, 우리 부부가 양쪽에 서서 사진을 찍는 거다. 너희를 안고 찍을 것이다. 개똥이나 산이가 쌍둥이라면 하나는 할머니가, 하나는 아빠나 내가 안고 있을 거다. 그때 너희는 5개월된 아기니 잔치에 하루쯤 가도 면역력이 걱정되진 않는다. 단태아, 오케이다. 개똥이만 와도, 성별이 어떻든 우린 대환영, 대만족이다. 그럼 할머니가 애기를 안은 채 사진을 찍으시겠지. 그리고 그 사진은 약수동의 벽에 크게 걸릴 거란다. 너희의 백일사진, 돌사진은 우리집은 물론, 약수동 할머니, 문경 할머니, 할아버지 방에도 걸리겠지. 이런 사진을 가슴에서 꺼내보며 설레어하는 나의 꿈을 비웃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꿈은 별과 같다. 우리에게 지향점, 동력이 되어준다. 별에 닿지 못하는 게 아니라 닿을 별이 없는 게 슬프고 맥빠지는 일이다. 삼촌의 일은 삼촌이 알아서 하실 거다. 오늘 우리는 이식 마치고, 삼촌의 생일을 축하는 저녁식사를 같이 할 거란다. 아이스크림케잌, 삼촌이 좋아하는 차돌배기와 등심을 사서 피망, 양파, 감자, 새송이버섯과 같이 구워 저녁을 먹을 거야. 할머니는 고봉으로 푼 둘째 아들의 생일밥, 바지락미역국을 드시며, 배보다 허리가 아팠던 두 번째 출산, 스물여덟 새벽을 추억하시겠지.

친정 부모님의 생신은 두 분 모두 12월이다. 두 분은 한 살 차이다. 나도 아빠와 한 살 차이다. 한 분은 12 2, 또 한 분은 12 23. 전쟁 직후, 가장 배고픈 산모에게서, 가장 추운 때 태어났다. 할머니보다 3살이 어린 네 외할아버지 역시 칠순을 꼭 했으면 좋겠다고 외할머니가 넌지시 이야기를 하셨다. 요즘은 육순은 가볍게 지나고 칠순 생신을 예전 환갑잔치하듯 기념한다. “부부끼리 가는 해외여행 이런 거 싫다. 친구들, 형제들, 동네 사람들 모시고 밥 먹고 싶다. 조실부모하고, 성실하게 살고, 자식들 이만큼 키워 내놓았다. 너희 아버지 진짜로 수고 많으셨다. 잔치하고 축하할 자격 충분하시다. 내 칠순이랑 아부지 칠순이랑 합쳐서 아버지 생신날 잔치하고 싶다.” 친정의 형제들은 형제통장을 만들어 여러 해 전부터 돈을 붓고 있다. 우리는 어른들이 보시기에 흐뭇한 모습으로 살고 있고 싶다. 아이가 꼭 필요하다기 보담, 행복한 모습으로, 어른들이 편안해 하시도록 살아내고 싶다. 

개똥아, 산아, 우리는 지금 4차 이식을 위해 대구로 가고 있다. 이제 곧 도착 할 것 같다. 오늘 내 얼굴이 이상하게 많이 화끈거리네. 감기기운이 있는 건 아닌데 그러네. 착상에 도움되라고 챙겨먹는 약들이 많아서 그런가? 3시까지 도착해서 이것 저것 준비를 해서 3 30분이면 이식에 들어갈거라고 했어. 커튼도 없이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이식받는 건 어떤 걸까? 같이 이식 받은 사람들이 한 방에 앉아 신뢰하는 선생님의 오리엔테이션을 듣고, 포대화상의 배를 문지르듯 삼신할배의 손을 잡아보는 기분은 어떨까? 몇 개나 수정되었을까? 미세수정, 자연수정 어떨까? 개똥이, 산이가 오늘 자궁에 품어오는 수정란들일까? 설레고 긴장된다. 일단 이식할 수 있는 걸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희망을 안고 우리는 지금 남쪽으로, 너희에게 달려간다.

오늘 다녀오면 2주간을 기다리겠구나. 피 말리며, 임테기에 농락당하며 안달복달 지내고 싶지 않다. 그건 너무 힘들다. 지난번 3차 때는 가구 리폼을 하면서 기다렸지. 이번에는 내가 평생 살고 싶은 하루하루를 살아보련다. 내가 엄마가 되든 안되든 나에게 몰입, 기쁨, 행복을 주는 시간, 천복의 수레바퀴 중앙에서 보내련다. 새벽에 모닝페이지를 하고, 절은 108배로 줄이고, 대신 명상을 좀 더 오래 할 거야. 아침식사를 한 후에는 안중근기념관 앞 우리나무 할머니를 뵙고 오는 20분짜리 짧은 산책을 할거야. 그리고 오전에는 정오까지 우리집 작업실에서 글을 쓸거야. 12시에 점심을 먹고, 낮잠을 좀 자고, 그 다음에는 천천히 남산을 햇빛 산책할거다. 그림자마저 즐거워서 깔깔거리며 웃고 까불고 춤추겠지. 하루를 생기있게 살게 할거다. 오후에는 남산도서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 산과 나무가 보이고 해를 등에 받을 수 있는 명당에 앉아서 등으로 광합성을 하면서 이런저런 책을 읽을 거란다. 너희와 상관없이 나는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나날을 살아내고 싶다. 이건 바느질을 하시는 이웃이 알려주었어. 개똥아, 산아, 곧 만나자. 사랑한다. 2015.2.2 2 22분 구미김천역을 지나며 엄마가.

 

Ps 부처님, 관세음보살님 그리고 기도를 들으시는 모든 고운 님들께 기도드립니다. 배아 아기들을 품으러 대구 갑니다. 이제 거의 도착했어요. 그가 옆에 있는데도 떨리고 긴장이 됩니다. 제 마음은 과거와 미래로 달려갑니다. 이번에 안되면 그냥 계속 할거예요. 아마 두 달 쉬는 일정이겠지요. 이 길이 개똥이와 산이를 만나는 길의 어디쯤인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한 걸음씩 걸어갈 겁니다. 제가 배웠던 모든 편안함을 주는 것들을 지금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엄마의 마음으로 이 모든 과정을 치뤄내기를 바랍니다. 야간근무한 후 쉬지도 않고 기차 의자에 구겨진 채 저를 동행해 주는 이 사람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행복하게 해 주고 이득을 주는 게 아니라, 옆에 함께 있어주는 게 사랑이다고 엘리자베쓰 퀴블러로스 씨는 말했습니다. 평일이라 남편은 출근하고, 멀리서 혼자 와서 이식받는 분들도 많겠지요. 저의 호사가 감사합니다. 

저의 자궁이 오늘 귀한 배아들을 품게 됩니다. 저는 그동안 3번의 시험관을 했고, 3,2,2 일곱 배아들과 부모자식의 인연으로 이어지지 못했어요. 피검날 눈물 흘리는 열흘엄마에 머물고 말았어요. 어쩐 일인지 제 자궁에 착상하지 않았어요. 제가 아직 준비가 안되었거나, 제가 모르는 여러  필연적인 이유, 뜻이 있어 그런 결과가 있었을 겁니다. 대구 마리아는 단일배아 이식이 원칙인데요, 저처럼 나이 있고, 반복착상실패가 있었던 이들에게는 2개의 수정란을 이식한다고 합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자궁이라고 한의사 이유명호씨는 말했어요. 저는 궁주입니다. 저의 자궁이, 저의 마음의 집이, 아름답고 깨끗하고 안온하고, 든든하고, 편안해 깃들고 싶은 집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창으로 내다 보는 들판에는 봄의 기운이 가득합니다. 봄날의 추억들이 몽글몽글 피어올라 마음이 환해집니다. 꽃샘추위가 몇 번 더 있겠지만 봄은 지척입니다. 저에게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부처님 관세음보살님. 오늘 품어오는 귀한 배아아기들을 살피고 보호하여 주세요. 생명을 초대하는 거사에 함께 해주시는 의사선생님, 배양연구원 여러분들, 간호사, 병원의 모든 분과 필요한 기구들에 감사드립니다. 개똥이와 산이를 몸과 마음 건강하게 선연으로 만날 수 있기를 발원합니다. 저희 가족을 옹호하고 지켜주십시오. “우리는 너를 사랑한다. 언제나 언제나 언제까지나 우리가 네 옆에 함께 있다고 저에게 반복재생해 주세요. 저와 함께 하여 주시길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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