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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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구할 세 가지
3월 6일 경칩이었고 해외 사업 제안 준비로 분주한 사이 변경연 동기 은심이 카톡에 철학자 이반 일리치의 말씀이라며 “세상을 구할 세 가지는 숲, 자전거, 도서관이라고 했대요”를 올렸다. 자전거 광이신 구달 형님 생각하고 올렸다는데 정말 세상을 구할 세 가지가 맞는 것 같다.
경칩을 맞아 친구가 올려준 재미난 개구리 그림을 카톡에 살며시 올려놓았다. 스마트폰에 개미가 움직이고 그 앞에 살아있는 개구리가 계속 헛것에 혀만 낼름거리다가 결국 스마트폰을 쥐고 있던 엄지손가락을 물어버렸다. 웃기다가 슬프다가 재밌다가 억울했다.
회사는 매주 새로운 기술 제안서 준비로 연초부터 정규 업무 수행도 못하고 있다. 계속되는 사업 제안으로 깊이를 더하지 못하고 녹초만 되어간다. 스마트 폰과 개구리처럼 사업제안서는 스마트폰의 개미 같았고 나는 그걸 핥으며 먹어보려 애를 쓰는 개구리꼴이다.
어쩌나 그 개구리가 주인을 물었다. 화들짝 놀란 주인은 스마트폰을 던지며 난리가 난다. 아마 팀원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라고 별수 없다. 들어오는 사업 제안 요청을 자를 수도 없다. 성공 여부에 대한 면밀한 검토보다는 확률 게임같이 추진 결정이 내려지고 성공과 실패는 신의 뜻에 맡긴다. 물론 애는 쓰지만 제안이란 것이 한방에 성공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러니 제안 하는 사람도 힘 빠지기는 마찬가지라 계속 최선을 다하기도 힘들다.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그래야 이 세상을 구하던 말던 할 것일텐데 말이다. 나의 세상 하나쯤 만들어 보고자 변경연에서 1년 동안 그 고생을 하며 책을 읽고 글을 써보았지만, 아직 내가 어디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감도 오질 않는다. 다만 현실만을 붙들고 오늘을 살고 있다.
내 세상 하나쯤 가져 보고 죽자고? 정말 그러고 싶다. 하지만 무엇으로 자기 세상을 갖는단 말인가? 내 세상, 나의 세상, 나만의 세상, 나로서 충분한 세상, 나에 의한 세상, 나로 인한 세상, 나에게서 비롯한 세상. 결국 나로부터 출발할 밖에 도리가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늘 헤매다 마주치는 나라는 존재가 편하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봐줄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문득 스마트폰 앞의 개구리 같다.
세상이 나에게 보여주는 것들에 휘둘리며 그 유혹에 빠져 산 날이 얼마인가? 아직도 그 유혹에 빠져 스마트 폰만 쳐다보며 혀만 낼름거리고 있나? 혹시나 먹을 만한 것이 있는지? 허기진 가슴과 텅빈 머리를 채우려 혀만 낼름거리고 있다. 나만의 세상을 갖는 것 그리고 그 세상을 구하는 것은 개구리의 혀와 가슴과 머리인가?
큰 세상은 잘 모르지만 나만의 세상을 구할 세 가지는 무엇일까? 생각을 나눌 가슴이 따뜻한 이와 함께하는 식사자리가 아닐까? 생각이 달라도 사람으로서 푸근하게 안아주고 서로 생각하며 떠먹여주는 이가 내 세상을 구할 것들이 아닌가? 잠시 일에 빠져 보낸 지낸 몇 달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토요일 회사 책상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낼름거리던 혓바닥도 바쁘게 움직이던 욕망을 멈추고 잠시 입 속에서 휴식을 취한다. 나만의 세상을 찾아 떠나자고, 그 세상 만들기를 도와줄 사람들을 찾아 떠나자. 내 세상은 나 혼자의 세상은 아닐 것이다. 나에게서 비롯된 세상이다. 그 세상을 구할 것은 결국 사람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경칩이 지났다. 개구리도 알을 낳으러 얼음이 녹은 개울가로 몰려가고 버들가지 꽃을 피운다. 볕은 따뜻하고 나무들이 푸른 기운으로 새싹돋을 날을 서두르고 있다. 오늘을 일을 마치면 일요일 소풍을 준비해야겠다. 맛있는 밥과 몇 가지 반찬과 커피 한잔을 곁들여 나도 봄나들이를 다녀와야겠다. 봄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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