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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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라하면 시끌벅적하던 것도 예전보다는 많이 덜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왕래를 하지 않던 친척들이 방문하는 날이기는 하다. 오래 간만에 얼굴을 보다 보니 옛날 이야기는 물론이고 최근의 근황까지 초미의 관심사가 된다. 그러나 예전과는 다르게 개인의 사생활이 중요해진 요즘 아무리 궁금하다고 해도 함부로 물어볼 수 없는 질문들이 있다.
학생에게는, 성적이 어떻게 되니?
직장인에게는, 연봉이 얼마야?
노총각, 노처녀에게는 언제 결혼할래?
이것이 ‘명절 3대 금기어’라고 한다. 명절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아주 친하지 않고는 물어보기 곤란한 것들이다. 나는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다. 바로 돌싱들한테 퍼부어지는 측은한 눈빛과 질문들이다.
결혼을 했다가 다시 돌아왔다고 해서 ‘돌아온 싱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나는 그 시절을 엄마와 같이 살았기 때문에 가끔 엄마의 형제분들이 집에 놀러오시곤 했다. 항상 가장이셨던 엄마는 이제 그 자리를 딸에게 물려주시고 마음은 아니지만 육체적으로 편한 시간을 보내고 계실 때였다. 공부며 결혼이며 번듯하게 잘한 것이 없던 터라 그렇게라도 엄마가 편안하게 보내실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엄마와 나는 다른 듯 하지만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책과 영화와 음악과 여행을 좋아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래서 혼자 여행을 떠날 때도 엄마는 흔쾌히 갔다 오라 하셨고, 엄마를 모시고 떠나는 여행은 더없이 기뻐하셨다. 하지만 아무리 엄마와 사이가 좋아도 같이 할 수 없는 몇 가지가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엄마 형제 분들의 방문이었다. 오셔서 노시다 가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나를 보시면 꼭 몇 마디씩을 날리셨다. ‘어쩌다가, 애는 착한데…’ 하시면서 보내는 동정의 눈빛이 그 하나이고, ‘사귀는 사람 있니?’하시면서 중매자리를 갔다 붙일 때가 그 하나였다. 그래도 두 번째는 나은 편이지만, 들어오는 선 자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상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른 들이 보는 남편감의 첫 번째 조건은 ‘생활력’이었다. 물론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밥만 잘 먹는 산다고 살아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먹고 살만한 세상이 되니 그 전보다 이혼율이 더 높아지는 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그런데도 번듯한 직장이나 조금의 돈만 있으면 이미 일이 성사가 된 것처럼 호들갑을 떠시는 것은 참으로 불편한 일이었다. 그 사람의 취미, 생각, 생활 패턴, 가치관 등을 따지는 것은 사치 중에 사치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손님이 온다고 하면 자리를 피했었다. 혼자 여행을 가거나 커피숍에 나와서 책을 보거나 극장에 가서 영화를 두 편 연달아 보는 식으로 시간을 때우곤 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명절에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나처럼 혼자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엄청 많다는 것을. 다 같이 가족들이 모여 재미있게 보내야 할 시간, 또는 충분히 휴식을 취해야 할 시간이 돌싱들은 사람들을 피해있어야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나와 친하게 지내는 지인 중에는 40대 후반을 달리고 있으면서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 하루는 그 언니의 어머니가 40이 넘은 딸이 싱글로 있는 것이 창피해서, 주변 사람들이 하도 묻는 바람에 결혼했다는 거짓말까지 하셨다고 했다. 그 말에 한바탕 크게 웃었지만, 당사자는 웃음 뒤에 얼마나 씁쓸했을까? 그 뒤 나와 그 언니는 명절마다 카메라를 메고 같이 돌아다니곤 했다.
걱정이 되어 물어보는 안부가 때로는 사람의 마음을 들쑤시는 무기로 변할 때가 있다. 1년에 두 번 있는 명절이 장손집 며느리만큼 싫은 사람은 아마도 노처녀, 노총각 그리고 돌아온 싱글들일 것이다. 다 삶의 패턴이고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또는 자진해서 지나가게 되는 과정이건만, 본인보다 주변사람들이 더 불편하게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사람의 상황 그대로, 그 사람의 선택 그대로 오롯이 보아줄 수 있는 시선이 필요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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