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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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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16일 11시 11분 등록

메기는 미꾸라지의 천적이다. 논에 미꾸라지를 키울 때 한쪽 논에는 미꾸라지만 넣고, 다른 쪽엔 메기를 같이 넣어 키우면 어떻게 될까? 메기를 넣어 키운 논의 미꾸라지들이 훨씬 더 통통하게 살이 쪄 있었다고 한다. 메기에게 잡혀 먹히지 않으려고 항상 긴장한 상태에서 활발히 움직였기 때문에 더 많이 먹어야 했고, 그 결과 튼튼해질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게 메기와 미꾸라지의 법칙이다. 항상 적절한 긴장과 자극, 건전한 위기의식이 있어야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이 생기고, 계속 성장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누구에게나 메기처럼 자기를 긴장하게 하고 스트레스를 주기에 가만히 있지 못하게 하는 존재가 한두 명은 존재할 것이다. 직장 상사일 수도 있고, 동료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가족일 수도 있지만 나의 경우는 아이러니 하게도 시어머니이다. 간 크게 시댁 식구를 들먹인다고? 어찌하랴. 답답하면 내 뱉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 것을.

어머니께서는 3개월 동안 두 번의 수술을 하셨다. 급한 성격과 몸을 사리지 않으시는 바지런함 때문에 그리고 모든 일을 손수 하셔야 직성이 풀리시는 분이기에 일을 가리지 않고 하신 분이다. 그 덕에 집안 식구들은 편했겠지만, 어머니의 몸은 늘어가는 나이와 함께 노화의 속도를 막을 수가 없었다. 옛날 분들이 다 그렇듯이 어머니께서도 몸이 몹쓸 지경이 되고 통증을 참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병원을 방문하셨다. 그 때는 이미 한쪽 무릎의 연골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고, 밤마다 찾아오는 어깨의 진통도 인대가 끊어졌기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급한 것이 무릎이어서 그곳을 먼저 하시고 그리고 2개월 뒤에 어깨 수술을 하셨다.

수술을 하시고 아파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같은 인간으로서, 그리고 여자로서 잠깐 눈물이 나기도 했지만, 집에서의 시어머니의 부재는 편안함을 주기도 했다. 때로는 나와 너무 비슷해서 때로는 너무 달라서 부딪치곤 하는 생활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은 그 사람의 습관과 함께 함을 의미한다. 사고하는 습관, 행동하는 습관, 성격 때문에 형성된 습관이 너무도 다른 나와 어머니는 사사건건 부딪쳤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할 수 없는 시어머니의 세상이란, 호기심이 아니라 도대체가 알 수 없는 답답함이 존재하는 그 옛날의 세상이었다. 성품이 좋으시고 인정이 많은 성격도 맞지 않는 습관이 충돌할 때는 일순간에 사라지는 마술을 보이기도 한다. 그럴 때는 며느리의 꼭지도 돌 지경이지만 머리에서 김만 모락모락 날뿐이지, 어쩔 수 없이 수긍할 때가 많다. 요즘은 싫다, 좋다는 의견을 말씀 드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표현할 수 없는 사각지대에 놓인 문제들은 여전히 숙제처럼 머리를 아프게 한다.

그런 시어머니가 집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은 병원에 자주 들락날락해야 하는 새로운 일거리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반면에 집에서의 자유도 확보가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마음 한 켠에 어머님께서 안 계시는 동안 글도 많이 쓰고 책도 많이 읽어야지하며 야심 찬 계획을 세워놓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자유의 자식 중에 게으름이라는 이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머님께서 집에 계실 때는 최대한 부딪치는 시간을 적게 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얼른 집안일을 마치고 나만의 공간으로 들어가 버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나만의 시간에 충실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머님의 부재는 책상 앞에 붙들어 놓는 시간보다 따뜻한 방바닥에 그리고 텔레비전과 공상에 나를 매어두게 만들었다. 더 가까이 하고 싶었던 글과 책으로부터 떨어진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스스로의 시간도 알차게 지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실망감이란. 연구원이 되어 고된 1년을 보내는 끝에서도 이렇게 자기 통제가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내일이면 우리 집 메기가 돌아온다. 나는 또 미꾸라지가 될 것이다. 메기를 피해 나만의 공간과 시간으로 침잠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충실하다 보면 스트레스지수만큼 나의 성장지수도 높아질 것이다. 공존도 힘들지만 자유를 자율하는 것 또한 힘들다는 것을, 나의 내공이 아직은 스스로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메기의 부재가 알려주었다. 나는 왜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자율하는 인간이 되지 못할까? , 어렵고 험난한 길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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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6 14:11:00 *.196.54.42

후후... 감히 시어머니를 메기로...

자유를 자율할 수 있다면.. 참 적절한 말이네. 이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독립한 어른이 된 것인데...

사람 좋아하는 참치는 쓸거리 많아 좋겠다, 사람에 대한 이야긴 끝이 없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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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6 18:14:09 *.223.2.168
덕분에 저는 미꾸라지가 되었네요 ㅋㅋ 맞아요. 독립된 인간이 되기가 이리 어려울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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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6 23:35:57 *.143.156.74

그래도 매주 빼먹지 않고 칼럼 올리는 당신에게 자율성 점수 100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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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7 11:36:56 *.255.24.171

그런건가요? 감사요.

그렇지만 더 열심이 달려야겠어요. 갈 길이 아직도 엄청 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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