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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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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16일 11시 56분 등록

그런 저녁.



 당신의 하루가 저문다. 늘 그렇듯 피곤한 저녁이다. 업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쳐진 어깨와 무거운 발걸음이 함께 한다. 특히 몇 주간, 며칠째 야근을 반복한 주말 저녁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감기몸살까지 얹어지면 몸과 마음의 스트레스는 절정에 이른다. 그래도 실업과 구직난의 폭풍 속에서 눈뜨면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며 성실의 표본으로 직장인의 하루를 마감하고 오는 길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오늘의 휴식이, 편안한 잠이 절실하다. 집이라는 공간은 비를 막아주고 추위를 막아주는 기본 이외 경제적 위치를 지적하는 것 이상으로 아주 중요한, 정말로 중요한, 심신의 안정을 주는 곳이니까. 아니, 주어야 하는 곳이니까. 즐거운 나의 집을 흥얼거릴 수 있을 만큼의 기력은 없지만, 어쨌든 당신의 집, 잠자리에서 이 모든 고단함을……. 이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비가 퍼붓기 전 편안하게 몸을 뉘일 수 있는 집에 도착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비가 거세게 내린대도 강철로 만든 집이라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안전하고, 안전하니까. 다만 잠을 잘 수 없게 할 뿐이다. 감기몸살에 피곤한 몸을 쉬려 했지만 당신은 한밤의 폭우에 잠에서 깨어난다. 수면을 방해받는 일이 얼마만큼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가져오는 지는 여러 연구들을 거론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푸석한 몸으로 수면을 방해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비가 지붕을 때리는 소리는 리듬감이 전혀 없는 소음을 만들고 있다. 강철 지붕으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만들어내는 무자비한 소리가 당신의 수면을 방해한 것이다. 어랏, 저 강철지붕은 얼마 전 정부가 대대적인 세금을 투입해 교체한 것이다. 이 일대의 모든 지붕을 교체했으니 오늘 밤 잠못 이루는 이는 당신만아 아니라 마을 전체의 사람들로 확대된다.

 당신은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강철 지붕으로 교체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 당신이 아니듯 마을 사람들이 아니었고 왜 지붕이 강철, 아니 금속판으로 교체되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비가 내리는 밤마다 소란을 피운 것이 저 금속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이었다는 것만, 그것이 오늘도 당신의 잠을 방해했다는 것만 알 뿐이다. 극도로 피곤하다. 감기몸살이 다시 도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지난번 말라리아가 재발했거나.

 당신과 당신의 마을 사람들이 말라리아로 힘든 나날을 보낸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마을의 감염률이 증가하면서 즉각적인 해결책이 마련되었다. DDT를 살포하는 것이다. 말라리아의 원인 모기를 박멸하기 위함이다. 과연 DDT 살포의 효험으로 모기가 박멸된 것인지 말라리아가 점차 쇠퇴했다. 다시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마을의 지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집은 한밤중에 무너지기도 한낮에 무너지기도 했다. 안전하고 튼튼한 집은 사라지고 집은 말 그대로 위협이 되었다. 조사 결과, 풀과 나무줄기를 엮어 만든 초가집 지중을 먹어치우던 벌레들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벌레들의 증가는 천적인 기생 말벌(parasitic wasps)이 DDT로 인해 죽으면서 생긴 결과다. 정부는 더 이상 벌레가 갉아 먹지 않기 위해 초가집 지붕을 금속판으로 교체한 것이다. 그것이 오늘같이 비오는 날 잠 못 이루는 드럼 연주를 만든 것이다.

 상황은 다시 악화되었다. 잠 못 들어 초췌해진 마을 사람들은 다시 또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들의 건강 악화 요인을 살펴본 바, 근원은 DDT로 돌아간다.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모기 박멸을 위해 살포한 DDT에도 살아남는 벌레들이 있다. 이 벌레들을 도마뱀들이 잡아먹은 것이다. DDT가 몸에 쌓여 행동이 굼떠진 도마뱀들을 이번에는 고양이들이 잡아먹기 시작했다. 결국 고양이 역시 점차로 죽어나갔다. 톰의 약세는 제리의 강세를 가져오는 것이 톰과 제리의 법칙이다. 고양이 톰이 죽어가면서 제리 쥐의 비약적인 증가가 일어났다. 쥐의 증가는, 다시 말해 발진티푸스며 각종 전염병의 탄생을 말하는 것이었다1).

 이 모든 상황을 겪으며, 당신과 당신이 마을 사람들은 어떤 기분이 드는가. 우리는 오늘을 마감하는 잠자리가 편안하기를 바란다. 내일은 좀 더 나아지기를 희망하며 말이다. 그러나 내일도, 그 다음날에도 더 나아지리라는 기대가 무너져 버린 것을 알게 되면, 희망한다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 어떤 감정에 휩싸이게 되는가.

 하나의 사회가 잘 굴러가기를 바라는, 그리고 그 속의 건강한 구성원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당신의 하루가 이렇게 저물고 있다. 편안한 하루, 그리고 좀 더 나은 내일이라는 희망을 꿈꾸는 오늘의 당신이 오늘밤의 편안한 잠자리를 걷어 채인 당신이 깊이 생각해봐야 할 밤이다. 그저 내일이면 ‘누군가’가 그날 하루의 즉각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겠거니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어서는 곤란하다. 이 금속 지붕을 때리는 비는 곧 그칠 수 있지만 다시 내릴 것이므로. 그러므로 ‘누군가’가 해줄 것이다가 아니라, 무엇이 필요한지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 이상 정부의 단편적인 해결책만을 지켜보고 있다가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 채 새로운 문제들만을 떠안을 것이다. 그렇게 계속 DDT만 축적될 것이다. 그래서, 해결된 것은 없지 않은가.





1) 1950년대 보르네오 다약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라 한다. 그리고 이 사건의 종결을 위해 14,000마리의 고양이 투하 작전이 벌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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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6 14:52:05 *.196.54.42

무슨 동화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더니 보르네오 다약마을의 실화군요.

먹이 사슬, 이 오묘자연의 법칙에 인위적인 개입으로 인하여 자연계의 질서가 무너지고 이는 인류의 삶을 위협한다.

14,000마리의 고양이가 쥐를 다 잡아먹은 다음에는...  재미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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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6 18:21:45 *.223.2.168
그렇지 항상 어디선가 누군가가 짠하고 나타나서 문제가 랴결되기를 기다리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것 같아 나를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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