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에달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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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의재미_구달칼럼#50
윤수정의 카피노트란 부제가 붙은 “한 줄로 사랑했다”란 책은 정문일침의 카피 한 줄로 한 편 영화를 압축하고 있었다. 내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참으로 많다. 필사하는 데 타이핑 속도가 느려서 스마트폰에 대고 구절을 읽으면 목소리를 인식하여 자동으로 타이핑하는 기능을 사용하여 필사를 해 나갔다. 이 기능이 처음에는 목소리 인식률이 반 밖에 되지 않아 무용지물이었는데 업그레이드 된 상위 버전을 계속해서 내어 놓더니 이제는 제법 말을 알아듣는 앵무새 수준은 되는 것 같다. 물론 아직도 말의 속도를 높이면 글이 따라 오지를 못해 단어 하나 씩 또박또박 읽어 주어야 하는 수준이지만 글줄이 제법 부르는 대로 따라오는 것이 신기하다. 그래서 나는 마치 음유시인이라도 된 듯이 유장한 음성으로 감동의 구절을 읊어 나갔다. 이 스마트폰의 음성 식별 기능은 문어체보다는 구어체를 훨씬 잘 알아 듣는다. 이 작업을 계속하다 보니 처음에 호기심에서 시작한 것이 갈수록 재미있어졌다. 때론 마치 스마트폰과 대화를 하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얼마 동안이나 이 놀이를 했을까… 책 한 권을 끝내고 고개를 들어보니 자정이 지나있다. 내가 보통은 저녁 10시면 눈꺼풀이 자동으로 내려와 잠자리로 기어들기가 일쑤인데 오늘은 무슨 귀신에 쓰인 듯 나도 모르게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몰입 삼매경에 들었나 보다. 시간을 잊은 경험이 그 얼마만인가.
비슷하게 몰입한 경험을 톱아보니 이런저런 몇 개가 눈에 밟힌다. 자전거 잡지를 보다가 마음에 드는 코스를 스크랩할 때, 주행하기 전에 지도를 펴 놓고 그 길을 따라 예비 라이딩을 할 때면 실제 라이딩 못지않게 정신 없이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또 네이버 지도를 펼쳐놓고 어떤 여행지를 찾아서 필요한 주변 정보를 찾아 볼 때도 시간가는 줄 모른다. 수집한 자료의 정보를 가지고 글을 써 갈 때도 몰입도가 상당히 높다. 이런 것들이 내가 여행을 하거나 도서관에서 자료수집을 하거나 한 경험이나 자료를 취합하여 어떤 창조적 작업을 하기에 대단히 적절한 기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사진과 글, 소리 등 모든 매체를 다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도구는 세상에 늘려있다. 단지 필요한 것은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하는 나만의 컨텐츠다.
영화를 볼 때도 두 시간이 그냥 날아간다. 영상을 따라 흐르다 보면 시간을 의식할 겨를이 없다. 내가 자전거를 즐겨 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페달을 밟으며 흘러가는 풍경과 바람 속에 온 몸을 맡기며 자연 속을 질주하노라면 시간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은 것 같다. 그래서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고 다녀도 지겨운 줄 모른다. 지겹기는 고사하고 라이딩의 짜릿한 맛에 도취되어 몸은 파김치가 되어도 기분은 천상에서 노닌다. 자전거 타기와 같은 행동으로 유발되는 집중력은 가장 쉽게 정신의 통합을 이루어 낸다. 반면 글쓰기 같은 창조적 행위에서 몰입경험을 하기는 그렇게 쉽지 않다. 오랫동안의 훈련과 자기수양이 필요한 영역이다. 글이 안 써질 때는 몰입 대신 고통이 밀려온다. 글은 자전거처럼 투입한 시간만큼 결과가 규칙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한 시간에 자전거가 20키로를 가듯 한 시간을 투입하면 A4 한 장의 결과물이 나오는 규칙 같은 것은 글쓰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종일 붙들고 있어도 한 줄도 쓰지 못할 때가 있다. 글 감옥에 갇힌 것이다. 물론 때론 글이 저절로 써 지는 듯한 경험을 할 때도 있다. 그때는 물이 흘러가듯 자유로움과 자연스러운 재미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쩌다 우연히 경험하는 신의 선물 이란 게 아쉽다. 요즈음 목표로 삼은 것이 이러한 신의 선물이 꾸준히 이어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어쩌다 한 번씩 드문드문 오는 신의 선물로는 내가 감내해야 할 글 감옥의 옥고를 치러낼 맷집이 없다. 그럼 어떻게 그런 경지를 꾸준하게 유지시킬 것인가? 여기에 해답은 없는 것 같다. 닥치고 써라!는 말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안이 되는 것은 몰입이란 게 있기 때문이다. 지겹고 힘든 일상 업무조차도 몰입경험으로 치환할 수 있는 방법이 있고 드물긴 하지만 실제로 그러한 사례도 있다. 나의 일을, 나의 글쓰기를 어떻게 몰입경험으로 바꿀 것인가?
완전히 주의 집중하여 시간의 흐름을 잊은 상태를 몰입이라 하는데 이러한 몰입의 상태를 일상 생활에서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삶은 혁명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사람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행복에 가장 가까운 상태가 무언가에 몰입한 상태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실천적 방법으로 칙센트미하이는 “플로우”란 책에서 도전과 기술이란 두 가지 차원을 들어 명쾌하게 답을 제시하고 있다. 가령 테니스 국가대표와 초보자가 시합을 한다면 초보자는 재미를 느끼기 보다는 불안할 것이고, 국가대표 또한 재미는커녕 따분함을 느낄 것이다. 이와 같이 몰입의 재미를 느끼려면 문제에 대처하는‘기술’과 당면한 문제의‘도전’의 수준이 균형을 이룰 때, 즉 어느 정도 시력을 갖춘 맞수끼리의 경기에서 몰입가경을 경험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말이다. 그래서 초보자가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기술을 연마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나의 자전거 여행이 글쓰기 보다는 몰입이 잘 되는 것이 내 자전거 타기의 기술이 장거리 여행의 도전을 감내할 만큼 체력과 정신적인 면에서 균형을 맞추어 가고 있는 반면에 글쓰기는 나의 만족이란 일차적 도전 수준에 조차도 턱없이 모자라는 내 글쓰기 기술로 인하여 몰입의 재미를 제대로 못 느끼게 되는 듯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기술의 수준, 즉 글쓰기 실력을 높이는 연습 밖에. 글은 엉덩이로 쓴다는 말이 정설로 회자되고 있으니 오늘도 외쳐본다. “글쓰기의 몰입은 엉덩이를 통해 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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