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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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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30일 09시 49분 등록
* 삶을 관조와 관찰로 대체하지 마라

올여름이 덥다. 유난히 찜통같이 끈적이는 더위다. 더위를 피하는 방법도 사람마다 다르듯이 살아가면서 그 삶을 즐기는 양태도 사람마다 다양하다. 내가 알고 있는 평범한 주위 사람들이 삶으로부터 기운을 받아 생동하는 법을 한번 나열해 보자.

한 젊은이는 대학원생이다.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말하자면 수다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가 말하기 시작하면 모두 다 웃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빛나는 수다’라는 별명을 가졌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달변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소박한 마음을 가졌고 청년답고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한다. 그의 이야기를 사람들이 즐기는 이유는 삶에 대한 빛나는 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빛남은 소박한 수다 속의 그 꿈 때문이며 그 꿈은 그 이야기에 생기를 불어 넣어준다.

또 한 여인은 불면 날아갈 것 같이 작고 말랐다. 9살 먹은 영리한 사내아이의 엄마다. 아침에 출근하고 파김치가 되어 집에 들어간다. 그녀는 음주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녀가 정말 즐기는 것은 술을 마시는 분위기다. 그녀는 오른손으로 자신의 왼쪽 가슴 위를 치며 말하는 버릇이 있다. 이상하게 그것이 마치 자신의 끊임없는 삶의 욕망을 잊지 않으려는 신앙 간증처럼 여겨졌다. 분명한 것은 그녀가 포도주 몇 잔에 다시 삶의 생기로 가득 채워지는 것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몇 잔의 술이 그녀를 다시 삶의 욕망으로 되돌려 보내준다.

그는 이미 마흔이 넘었으니 젊은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그는 끊임없이 일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가만히 있으면 절대로 하루가 지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라도 하는 듯 그렇게 쉴 새 없이 움직인다. 그의 에너지원은 다른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들의 힘을 빌어 자신의 원기를 채우는 극히 외향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같은 사람들과 매일 같은 이야기를 나누며 사는 것에 지루해졌는지 요즈음은 궁둥이살 무겁게 열심히 책을 읽는다. 내가 보기에 그는 이제 책 속에서 매일 옛날 사람들과 만나 그들로 부터 원기를 얻어내는 것 같다. 그의 에너지원은 ‘만남’이다.

어떤 부부가 있다. 남편은 아침마다 일어나 잠시 명상에 잠긴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새벽 오르가즘을 느낀다 (그는 명상의 묘함을 그렇게 표현했다) 그리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이것이 그가 하루를 시작하는 방식이다. 교사인 그의 아내는 뜰 앞의 꽃을 가꾸고 시를 쓴다. 그리고 비오는 날에는 솥뚜껑에 기름을 바르고 전을 부쳐 함께 막걸리를 마신다. 그것이 이들 부부가 힘을 내는 방식이고 살아가는 멋이다.

그는 잘 생겼다. 키가 커서 훤칠하고 긴 얼굴에 약간 각진 턱을 가지고 있어 여자들이 보면 반할 만하다. 종종 시를 읆기도 하고 ‘그때 그 장소에’ 꼭 맞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 멋이 있다. 그는 말하자면 약간 한량이다. 노는 것을 좋아하지만 격 없이 노는 것을 미워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가 일상으로부터 지칠 때 힘을 얻어내는 방법은 하루 종일 둥실대면 보고 싶은 책을 마음대로 골라 읽어 대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세상이 다시 살만한 곳으로 바뀐다. 그가 힘을 얻어내는 원천은 시와 낭만이다.

이 젊은이를 보고 있으면 꼭 새를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녀의 동작 하나 하나, 걷는 모습, 말하는 습관, 손짓 모두가 사람보다는 새를 닮아 있다. 말하자면 매우 특별한 신세대다. 작고 마르고 약해 보인다. 실제로 이런저런 잔병치레가 많기도 한 젊은이다. 그런데도 그녀가 그렇게 가볍고 경쾌하고 밝은 이유는 아마 생각의 자유스러움 때문인 것 같다. 그녀는 끊임없이 새로운 생각들에 의해 충전되고 밝아지고 늘 날아오르려고 하는 것 같다. 그녀는 새처럼 가벼운 ‘자유 생각’으로부터 힘을 얻어낸다.

그녀는 놀랄만하다. 한마디로 일을 할 줄 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무엇이 그 일을 진행하는 좋은 방법인지 안다. 시간을 맞춰 일을 끝낼 줄 알고, 어떻게 그것을 정리해 낼 줄도 안다. 그녀에게 일을 맡기면 그것으로 이미 끝난 것이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열심이게 하는 것일까 ? 그녀에게는 자기 실현욕이 있다. 세상에 자신을 알리고 스스로 이루려는 자아실현 욕구가 누구보다 강하다. 그녀의 에너지 원천은 일이다. 일을 통해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그는 글을 잘 쓴다. 대중 앞에 서서 공식적인 스피치는 잘 못하지만 글을 쓰면 모두 뛰어난 내용에 놀란다. 실제로 그의 글쓰기가 아주 많이 늘었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다. 책을 많이 읽고 자주 쓴 것이 주효한 것 같다. 예전에는 베껴온 것이 태반이었는데, 이제는 자신의 생각이 녹아들어 진득한 맛이 있다. 그가 그다운 매력으로 반짝일 때는 좋은 글을 써 낸 다음이다. 그에게 글쓰기는 피서고 휴가고 환타지다.

나는 그럼 무엇으로부터 힘을 얻어낼까 ? 독서와 글쓰기 ? 여행 ?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말 나를 살려주는 것은 아주 작은 일들을 통한 살아있음의 확인이다. 나에게는 일상의 황홀이 있다. 전화 한 통, 몇 줄의 좋은 글, 신문 속의 어떤 이야기, 산행 중에 만만 소나기, 매미가 쏘고 간 오줌, 우리 집 개 돌구 놀려 먹기, 그들과의 만남, 처와 같이 간 강연여행, 어느 술자리, 약간의 오해 그리고 다시 풀림, 누군가의 하소연을 들어 주는 것... 나는 일상의 자자란 것들로부터 에너지를 얻고 즐긴다. 아마 시시한 소인이라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꽤 괜찮은 놈이라는 것을 종종 확인할 수 있고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판화가인 오윤이 죽었을 때, 친구인 김지하 시인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중요한 것은 오윤이 죽기 전에 강한 생의 의욕, 기쁨을 본 것 같다는 것이예요. 기쁨, 산다는 것의 기쁨, 육체의 기쁨, 그것은 우리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찬란한 것이 아니었던가 싶어요”

산다는 것의 기쁨, 육체의 기쁨, 나는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는 유일한 원천이라 생각한다. 다만 각 개인마다 그 육체의 기쁨 삶의 기쁨을 느끼는 방식이 다를 뿐이니, 스스로 자신만의 충전의 방식을 찾아 즐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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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기원
2005.08.30 16:28:04 *.7.28.25
오늘을 사랑합니다. 소장님 글 잘읽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천국같은 곳이 어디 있을까요?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홈피만 오면 살아감에 생동감을 주게됩니다.
지승감천에 현장스님께서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제자한분과함께 점심시간을 전후로해서 5시간을 함께하시다 가셨습니다. 길상사에서 음식공양을 함께하지못해서 못내 미안해하시며 호탕하게 웃고 함께 뽕잎차을 마시고 칼국수를 먹고 잘 보냈습니다. 다음 충주모임에 함께 자리를 할 수있기를 희망해오셨습니다.
일도 중요하지만 일이외의 삶을 즐기는 일도 중요합니다. 참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오직 조화롭고 유기적인 관계가 신이된 하루였습니다. 모두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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