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커뮤니티

나의

일상에서

  • gina
  • 조회 수 3047
  • 댓글 수 1
  • 추천 수 0
2007년 10월 22일 10시 59분 등록
지리산에서의 첫날

10대 풍광 중 일 번을 시작했다. 지리산에 단식하러 왔다. 남부터미널에서 버스로 네 시간이나 걸려 원지라는 곳에 도착했다. 차가 세 대 정도는 들락대는 작지만 그래도 터미널일줄 알았다. 엄밀히 말해서 정류장이었다. 나를 포함한 몇 명을 떨구고는 바로 직진해서 가버리시는 게 아닌가? 드디어 시골 정류장에 온 것이다. 다행히 한 시간여를 기다려 주신 목사님 내외와 만나 자가용으로 이 삼십 분을 또 들어 온 지리산 끝자락에 짐을 풀었다. 산으로 따지면 끝자락 정도지만, 인가 쪽에서 보면 정말 맨 끝 집이다. 드디어 핸드폰이 안 터진다는 오지마을에 들어왔다. 내가 본 가장 허름하고, 어수선한 이 펜션에서 한 달여 동안 어떤 변화가 날 기다리고 있을까? 호기심과 기대감, 설렘과 두려움이 묘한 느낌이지만, 한 일도 없이 무척이나 피곤하다. 그냥 잠을 청할까 하다가 눈꺼풀을 억지로 잡아 떼놓는 중이다.
오자마자 시커먼 숯가루 몽글한 덩이들을 두 숟가락이나 먹었다. 매 삼 십분 마다 두 숟갈씩 먹으라신다. 오늘은 다행히 먹을 만 하다. 총 세 번을 불규칙적으로 먹었다. 이것도 딱딱 안 된다. 아직은 낯설고 난감하다. 8시가 좀 넘어 예배를 봤다. 이곳의 규칙, 하루 두 번 예배에 참석해야 한단다. 목사님, 서병호님, 장로님, 나 이렇게 넷이었다. 서병호님의 소개가 인상적이었다. 직장암 판정 후 죽마고우인 목사님을 찾아 이곳에 오셨단다. 54킬로그램 정도였던 몸무게가 포도단식 25일만에 43킬로그램이 되셨단다. 정말 말씀대로 피골이 상접해지셨다. 그런데도 정신은 또렷하고 맑다고 하신다. 기운이 떨어진 것 외에는 좋다고 하신다. 소개타임인데도 목사님과 장로님은 따로 소개가 없으셨다.
예배 후 진찰을 받았다. 무슨 대체의학 같기도 하고, 한의학 같기도 한 진찰이었다. 주소, 혈액형을 물으시더니 문진이 제법 기셨다. 대답을 하고 보니 정말 개념 없는 의식주란 생각이 든다. 흥청망청 막 가는 인생이 이런 걸까. 누우라 시더니 진맥을 하고, 손을 꼼꼼히 살피시더니 배 여기 저기를 꾹꾹 누르셨다. 참을 만한 아픔과 매우 아픔으로 나뉘는 대답을 적어나가셨다. 돋보기와 플래시로 두 눈을 차례로 살펴보시더니, 결론은 전국구라 하신다. 간에서 단백질 흡수가 안되어 효소를 제대로 생성 못하고, 그 결과 호르몬 생성이 안 된단다. 심장도 안 좋고, 특히 어깨와 유방 혈액순환 등 종합병원 수준이다. 그래도 참 잘 왔다고 칭찬해 주시니 기분은 좋다. 끝나고 나서 그 즉시 삼겹살에 소주를 먹으면 어떡하느냐는 내 질문에 한 달의 강의가 있어 그런 생각이 안 들 테니 걱정 말라신다. 난 또 걱정이다. 이놈의 고질병…….

2007-10-10 11:30 PM
IP *.152.178.19

프로필 이미지
김지혜
2007.10.23 22:59:13 *.187.230.228
gina님,

저도 올해 6월에 짧지만 포도단식을 했었습니다.
지리산에서의 단식은 어떨지 많이 궁금했는데..
이렇게 자세히 올려 주셨네요.
이제 첫날 일기를 읽었는데..앞으로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지 아주 기대됩니다 *^^*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76 Book 1, 간결함을 위해 [1] 자로 2006.10.19 2954
475 [Human transition] 3. 너는 누구냐-3 홍승완 2003.06.05 2957
474 小食 일기 (2) file [3] 이기찬 2007.08.11 2959
473 오늘 처음으로 모닝페이지를 쓰다 [3] 송대광 2008.11.14 2965
472 <라라61호> 문체의 발견<1> 김진규, 달을 먹다 한명석 2011.01.25 2968
471 몰입의 필요성 [5] 날개달기 2010.07.26 2977
470 <라라16> 글쓰기에 대한 책 10선 file [3] 한명석 2010.02.28 2984
469 1 : 1 강좌를 등록하다. [6] 맑은 2010.03.26 2984
468 참나찾기 단식일기 ④ - 위기극복 (24일) [5] 김지혜 2007.05.26 2985
467 [Love Virus] 9번째 : 사랑합니다 file [1] 한정화 2011.08.04 2987
466 지리산에서의 한 달 - 여덟날 gina 2007.10.22 2991
465 그림을 마치며. file [3] 맑은 2009.07.18 2994
464 경영을 그리다. 4_어떻게 그릴 것인가? = 어떻게 살 것인... file [2] 맑은 2010.09.30 2995
463 [行]단식일기 셋째날 [3] 귀한자식 2006.09.02 2996
462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들 - 컴퓨터 [3] 신재동 2006.12.10 2997
461 참나찾기 단식일기 ⑦ - 편안한 마음 (27일) [4] 김지혜 2007.05.28 2999
460 아이패드를 사지 않는 이유. [3] 맑은 김인건 2010.12.11 2999
459 어떻게 하면, 초고를 빨리 쓸 수 있을까? [3] 맑은 2010.04.07 3002
458 송년회 동영상 [4] 달팽이크림 2011.03.21 3007
457 [훌륭한 기업의 조건] 네번째 조건- 탁월한 실행 [1] 홍승완 2004.11.26 3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