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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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아아아악!!! 드뎌 끝났다!!!”
며칠 전, 몇 주를 끌며 하던 번역이 끝났을 때 질렀던 함성? 괴성? 이었다.
그 때가 아마 새벽 2시였던 걸로 기억한다.
조용한 아파트 작은 내 방에서, 난 그렇게 인간의 소리라고는 믿기 힘든 괴성을 내지르고야 말았다 (몰골 또한 그다지 인간답지 못했다 ^^:: )
아… 140쪽의 빡빡한 영어를, 그것도 내가 가장 싫어해 마지 않는 금융 분야를 쫓기듯 매일 한 챕터씩을 출판사에 넘기며 일해야 했던 지난 얼마간은 고통의 연속곡선이었다.
그렇다. 번역가들은 챕터별로 꼬박꼬박 원고 넘기는 걸 가장 힘들어한다. 이유는 뒷 장을 하다 보면 더 멋진 표현이 떠오르는 적이 많은데 이미 원고가 넘어가 교정에 들어가면 고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왜 이런 방법을 쓰는지 묻고 싶은 분이 계실 듯 하다. 그야말로 비상시국이기 때문이다. 흔하진 않지만 책이 언제까지 나와야 한다는 일정이 잡혀있는 비상시에는 어쩔 도리가 없다.
너무 한꺼번에 무지막지하게 몰아쳐 일을 하니까 중간에 몸이 반항을 한다. 슬슬 감기 기운을 보이며 ‘나 그만 할래~’라고 신호를 보내온다. “짜샤! 안돼!! 콱~ 그냥! 아프면 주거~!” 내 몸에 대고 협박을 한다. 그리고는 츄리닝 바지에 머리에는 실핀을 꽂고 병원으로 달려간다.
“선생님 처방전 좀 빨리요~!”
약이 무슨 자장면도 아니겠고, 어이없어 하는 의사 선생님의 표정을 뒤로 하고 처방전을 뺏어서 이번에는 약국으로 달린다.
“약사님, 약들 중에서 졸음 오는 약은 뭐에요?”
그렇다. 경험상 감기 약에는 반드시 졸음이 오는 약이 섞여 있음을 안다. 감기약 한 두 번 먹어 본 내가 아니지 않은가.
“아, 그건 이 분홍약인데요, 그 약이..”
뒷 말 들을 틈이 없다. 실핀으로 단단히 꽂았지만, 그 사이를 삐지고 나온 앞머리 한 두 가닥 바람에 휘날리며 집으로 달려온다. ‘나 아픈 거 맞아?’하면서.
그렇게 졸음이 온다는 분홍색 예쁜 녀석은 빼고 나머지 약들만 먹고 며칠을 버텼다. 그리고 드디어 금요일 새벽. 난 처음으로 분홍색 약을 먹고 뻗.었.다…
금요일 오후. 정신이 헤롱헤롱한다. 그 동안 할 일이 캄캄할 정도로 밀려 있는데, 역시 대한민국 감기약은 쎄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커피를 두 잔이나 연속적으로 들이켜도 한 번 나간 정신이 돌아올 생각을 안 한다. 안되겠다. 그냥 자자. 이럴 땐 자는 게 며칠 버는 거다.
드디어. 토요일. 정신이 맑아지니 살 것 같다. 금요일 새벽 괴성에 이어, 이번엔 광년이처럼 밀린 일들을 해나가기 시작한다. ‘어라? 내 글쓰기 속도가 이렇게 빨랐나? 가끔 번역감옥에 갇힐만 하네. ㅋㅋㅋ’ 라고 혼자 키득거리며 수많은 일들을 해치우기 시작했다.
그 동안, 사방팔방 자유롭게 생각하며, 하고 싶은 일 하고 싶다 아우성치는 “정신”이란 녀석을 꼼짝 못하게 원저자의 글에만 가두어 놓다 풀어주니 우리에서 풀려 나온 망둥이마냥 이리저리 껑충껑충 난리도 아니다. 아…자유란 이리도 짜릿한 걸까..
우린 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지 못하는 걸까..? 왜? 어째서?
나의 경우 번역은, 회사에서 하던 리서치 일보다는 좋아하지만, 번역이란 작업은 원문에 따라 즐거움도 되었다, 정신 고문도 되었다,한다 (플러스, 시간 촉박의 강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회사 다닐 때, 월급하고 내 시간과 정신 그래서 내 삶을 팔아버린 그 생활이 너무도 끔찍해서 뛰쳐나왔지만 회사를 그만둔다고 바로 꿈이 이루어지는 건 결코 아니라는 걸 지난 몇 년간 뼈저리게 경험했다.
친구들과 회사를 차리고, 패밀리 비즈니스에 기웃거려보기도 하고 다시 취직도 하고. 그렇게 이리저리 흘러 다니다 2008년 12월 성탄절에 꿈벗과 인연을 맺게 되면서 내 인생에 새로운 길이 열리기 시작하였다.
꿈..
얼마나 오래 마음 속에 간직하고 살아온 단어인가.
다 큰 애가 철없다 소리 들을까 행여 남한테는 쉽게 말도 못하고 혼자만 끙끙거리며 애태우던 단어, 꿈.
그걸 마음 놓고 이야기해도 된다고 하신다.
내 꿈이 뭐냐고, 왜 그 꿈을 향해 살지 않느냐고 물으신다.
눈물이 났다.
‘네. 그러고 싶었어요. 저도 간절히, 간절히 그렇게 살고 싶었어요’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그래서였던 것 같다.
일생 마음 속에 간직하고 애만 태워서, 연구원 장례식 날 지금은 전부 다정한 선배요 동료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낯선 타인들 앞에서 큰 소리로 울어버렸던 것이..
연구원을 시작하고 죽전에서 합정동까지 하루 4시간 반 출퇴근을 하던 나는 도저히 병행할 수 없는 일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 두었다.
내 평생 처음 다가온 기회였다.
일생 이룬 것은 없지만 다른 사람들 못지 않게 열심히 때론 처절하게 살아온 나였다.
한 해 정도는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나의 꿈을 찾고, 그것을 나의 필살기로 삼을 황금 같은 기회를 어영부영 보낼 수는 없었다.
꿈을 찾는 것, 내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찾는 건 쉽지 않다.
꿈을 현실에 접목해 나의 필살기로 연결시키는 것 역시 쉽지 않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해 볼 만하다. 왜? 아직 꿈이니까.
꿈과 필살기를 만들어 내는 건 아직까지 머리 속에서 할 수 있지만, 필살기 수련부터는 “진정한 현실”과 상대해야 한다.
그래서였다.
“연구원 끝났지? 이제 일 좀 해야지?”라고 챙겨주시는 실장님이 고마워서뿐만이 아니라, 꿈 같은 연구원 생활이 끝나자마자 마주해야 하는 나의 현실 때문에 시간이 촉박한 일인 줄 알면서도 번역 일을 맡았다.
필살기.
강연에서 사부님께서는 필살기란 "필히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중요도와 적성이 맞아 떨어지는 일에 꾸준히 시간을 투자한다면 그것이 나의 필살기가 될 확률이 높다고 하신다.
어제 난 중요한 네 가지 단어를 들었다.
중요도와 적성이 맞아 떨어지면 P, My project
중요하지 않지만 적성이 맞는 일은 H, hobby
중요하지만 적정에 맞지 않는 일은, S, Stress
중요하지도 않고 적성에 맞지도 않는 일은, J (영 단어 생각이 안 난다 ^^::: 낭비라는 의미셨는데).
내가 흥미를 느낀 건 다름아닌 “중요”의 의미였다.
여기서 중요란, 회사에 몸담고 있는 사람에겐 회사에서 요구하는 일이자 이미 회사를 나온 사람에겐 “시장성”이 되는 거다.
즉, H를 꾸준히 하고 싶은 생각이 잠시나마 들었었는데, 그곳은 안타깝게도 시장의 요구, 즉 밥벌이가 보장되지 않는 길이다.
내게 회사 일은 분명 S였다. 견딜 수가 없었다.
글쟁이는 무척이나 좋아하는 일이지만, 밥에 대한 자신이 없다. 단연코 H다.
그래서 회사에서 배운 기술에 내 적성을 접목시킨 나만의 P에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을 회사를 나온 한참이 지난 이즈음에야 깨달았다..
진작 알았으면 회사를 나오기 전에 필요한 부분을 좀 더 열심히 배워서 나왔을텐데..
진작 알았으면 회사를 나와서도 지난 몇 년간 그렇게 헤매지는 않았을텐데..
강연을 들으며 뼈저리게 느낀 부분이었지만,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그게 중요하다.
이제부터라도 시작하면 되는 거지.
그러나 어떻게?
이에 대한 스승님의 대답은 “십 년의 법칙” 혹은 “일만 시간의 법칙”이라 하신다.
여기서 또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100일간의 습관화”였다.
십 년, 아니 평생을 좌우하는 것이 다름아닌 “100일 동안 습관화”에 성공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하신다.
매일매일을 의지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습관화를 만들어 버리는 것.
그것이 나만의 죽여주는 필살기를 갖추는 첫 번째 실행법이요, “유일한 실행법”이라 하신다.
필살기를 수련할 하루 2시간을 만들 것.
그러기 위해서는 잡다한 일상을 줄일 것.
그런 후, 그 하루 2시간을 내 삶에서 “습관”으로 만들 것.
이 간단한 일이 왜 그렇게도 어려운걸까?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비법이 내 눈앞에 열려 있는데, 도대체 나는 왜 실행하지 못할까?
의지가 약해서? 혼자 하기 힘들어서? 홀로 실행하는 이 길이 외로워서? 현실이 너무 크게 날 가로막아서?
사람에겐 누구나 군중심리가 내재되어 있지 않나 싶다.
회사에서 회식을 뿌리치고 나의 일에 몰두하면 어딘가 마음이 불편하다. 비록 그 회식 자리가 그저 술 마시고 농담하는 자리라는 걸 알면서도, 어쩐지 그 그룹에서 제외되면 소외 당하는 그 느낌이 영 나를 불편하게 한다.
그런데 그 회사에 내 미래가 없다면? 그렇게 흘려버린 내 시간들이 나의 미래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면?
현재 밥벌이를 종사하는 사람이 하루 2시간을 만드는 방법은 단 2가지 뿐이다.
새벽 2시간을 활용하던지, 퇴근 후 2시간을 활용하던지.
어느 쪽이던지 잠자는 시간을 계산하면, 일상의 잡다한 시간을 정리하고 필살기 수련에 “집중”해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힘든 것 같다.
제 아무리 나의 새로운 미래를, 새로운 삶을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처음 눈덩이를 뭉치는 100일간을 견뎌내기가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인거다.
100일이란 인고의 시간을 견디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면 단군 신화의 모태가 되었을까 싶을 정도이다.
그래서 <단군 프로젝트> 준비 중이다.
책을 통해서든 강연을 통해서든, 그것도 안되면 필살기 프로그램을 통해서라도 나의 필살기가 무엇이 될지는 어떻게 해서라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어렵사리 찾은 나의 필살기를 내 삶 깊숙히 끌어오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다. 내 삶에서 우뚝 중심을 세워, 진정한 죽여주는 기술로 만들기 위해선 100일간 마늘과 쑥을 먹으면 인내하는 기간이 필요하다.
그 인고의 시간을 함께 하는 동지들이 있으면 어떨까? 회사의 회식을 뿌리치고 집에 돌아오거나, TV나 인터넷 앞에서 시간을 흘려 보내지 않고, 새벽 시간대를 함께 하는 혹은 늦은 밤 시간을 함께 하는 동지가 있다면 어떠할까?
그런 든든한 울타리가 있다면, 나도 이제 그만 세상을 떠돌고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새로운 삶을 꿈꿔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2010년에는 자랑스러운, 가슴 벅찬 “단군의 후예”로서 거듭 태어나고 싶은데.
2010년.
반드시 나만의 필살기를 연마하여, 진정으로 생명력 넘치는 삶을 살고 싶다.

역쉬 어제 또한 수희향님의 향기 총알이 "뚜뚜뚜두~ 뚜뚜뚜두~!!!" 온통 사방팔방으로 튀더군여... ^^;
우연히 같이 했지만, 그래도 인연이라고 북페어 문지기 역할이 참으로 고마워집니다.. ㅎㅎ
필살기. 직장인에겐 반드시 필요한 중요한 기술이죠.
저 또한 나만의 필살기(소심 필살기? ㅎㅎ)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고민하고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아, 글피는 토요일이라서 하루 쉽니다... ㅋㅋㅋ
사부님 강연대로 열심히 하다보면 우리 자신 만의 필살기를 갖추게 될 그 날이 오겠죠?
그 날을 위해 힘 내자고요~ ^^;
참, 어제 강연에서 사부님이 말씀하신 'J'는 'Junk(쓰레기)'라고 하네요. 참고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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