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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20일 20시 22분 등록

자연의 법칙상 죽음은 흙으로 돌아가 다시 새로운 종을 일깨우는 역할을 합니다. 반면 인간은 이를 거부하고 역행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죽지않기위해 발버둥을 치고 살기위해 온갖 애를 씁니다. 이에 현자들은 받아들임의 묘수를 제안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네 중생들. 그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요.

 

보직 발령. 최근의 인사 결과는 여러 생각을 안겨주게 하였습니다. 뭘까요. 회사는 나에게 어떤 선택을 바라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주어진 권한이 없다는 것. 역할과 자리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 무엇을 말함일까요. 잠이 오질 않습니다. 뒤숭숭한 꿈을 꿉니다. 가족에게 말을 못하고 혼자 속으로 앓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산에 올라가 봅니다. 그러다 서서히 끓어오르는 분노. 화병인가요.

 

그동안 회사에 기여한 게 얼마인데.

왜 내가.

이제 쓰임새가 다되었나.

 

암이라는 통보를 받고나서 일반적 일어나는 사람들의 반응처럼 닥친 현실을 수용하지 못합니다.

 

임산부처럼 배가 불러있습니다. 복수가 찼다고 합니다. 병원 응급실. 흙빛 얼굴에 힘든지 누워서 가쁜 숨을 몰아쉽니다. 어찌 이지경이 되도록. 의사는 몇 개월밖에 남지 않았기에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형.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야 될 것 같다.”

드라마의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왜 내가 이 역할을 담당해야하는지. 재판관이 사형선고를 내리자 그의 얼굴 인상은 참으로 묘해집니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야릇한 표정. 나름 자신 병세의 심각성을 알고는 있었겠지만 직접적 듣는 당사자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초점 없는 풀린 눈동자. 시간이 정지된 느낌.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그 시간 다른 환자들은 담소를, TV에서는 프로야구 중계를 하고 있었습니다. 각자의 몫대로 여전히 돌아가는 세상 안에 자신의 존재가 사라진다는 사실. 이제 얼마 후면 태어난 출발점으로 되돌아가야한다는 사실. 어떻게 해석할까요.

 

가장 믿는 사람에게 배신당한 입장의 서러움이 이러한지요. 오십대 이후 타의로 회사를 물러나는 남자들의 무력함을 조금이나마 실감하게 됩니다. 물론 이런 감정이든 가장 큰 이유는 자존심의 무너짐입니다. 세상에 그나마 뻣뻣하게 고개 치켜들던 나의 시대가 이제 허물어지고 있다는 현실. 그것을 억지로 잡고 싶은 그래서 그 책임을 타인에게 돌리고 싶은 인간적인 나약함에서 나온 것입니다. 몸담았던 조직생활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 모든 일련의 단서는 본인에게서 비롯됨을 작지만 깨닫게 됩니다.

 

나이 듦은 앞서 어른이 되었던 이의 말씀들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만듭니다. 순리대로 살아야 된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생명체들은 주어진 기한이 다하면 예외 없이 병들고 죽음을 대면합니다. 이의 논리에 대입하면 직장인은 입사 - 승진 - 정체 - 누락 - 퇴사의 순환을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탈락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합니다. 줄을 놓치면 죽을 것 같고 그것은 낙오를 의미한다고 여기기에. 똑같은 젊음이 있었듯이 뒷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어야 합니다. 올라갔으면 내려와야 합니다. 하지만 이 명제를 받아들이기는 무던히도 어렵습니다.

 

 

‘자연계에서는 균의 활약을 통해 모든 물질이 흙으로 돌아가고, 살아 있는 온갖 것들의 균형은 이 ’순환‘속에서 유지된다. ... 부패가 생명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 와타나베 이타루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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