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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22일 15시 50분 등록

깊은인생

구본형

2015. 3. 22


1. 저자에 대하여


생략


2.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프롤로그


11. 어느 날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한 사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문득 의미를 발견하여 말할 수 없는 헌신으로 열중하고, 평범한 한 여인이 문득 하던 일을 중단하고 내면의 북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하는 느닷없는 전환은 아름답다.


15. 나는 이것을 ‘깊은 인생으로 들어서는 문’이라고 부른다. 첫 번째 문은 ‘깨우침의 문’이다. 소명에 대한 각성과 고유한 잠재력이 발견되는 대각성의 순간이다. 두 번째 ‘견딤의 문’을 들어서면 오래 참아내야 한다. 침묵의 10년을 고독하게 지내며 선택한 삶에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어야 한다. 마지막 문은 ‘넘어섬의 문’이다. 선생을 넘어서야 하고 나 자신도 넘어서야 비로소 우주의 위대함에 닿을 수 있다.


첫 번째 이야기

우연이 운명이 된 이야기다. 사람이 준비되면 상황이 벌어진다. 이때 우주는 우연의 이름으로 다가와 운명으로 이끈다. 간디는 마리츠버그 역에서 지샌 하루 밤 때문에 시시한 변호사에서 위대한 지도자로 바뀌게 된다. 누구에게나 마리츠버그 역과 같은 도약의 순간이 찾아온다. 그러나 이 우연의 상황을 인생의 도약으로 삼으려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37. 사건이 사람을 이끌고 우연이 운명을 결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정신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어떤 우연도 위대한 각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제자가 준비되면 위대한 스승이 나타나듯, 사람이 준비되면 위대한 사건이 일어난다.


39. 약한사람에 대한 공감, 탐욕이라는 열차에서 뛰어내릴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자.


“(여행에서 돌아와) 아르헨티나 땅에 다시 발을 딛는 순간, 이 글을 쓴 사람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 글을 다시 구성하며 다듬는 나는 더는 예전의 내가 아니다. ‘우리의 위대한 라틴아메리카 대륙’을 방랑하는 동안 나는 생각보다 많이 변했다. 그 깊이는 내가 생각하는 정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_ 체 게바라


두 번째 이야기.

재능이 감응할 때 망설이지 않고 따라 나서는 이야기다. 문득 어떤 일이 나를 건드릴 때, 한 순간 폭포수처럼 내면의 에너지들이 분출될 때, 그리하여 신이 내 속에 감춰둔 재능이 그 일에 감응할 때는 망설이지 마라. 그 길을 따라 나서라. 마사 그레이엄은 열일곱 살에 자신의 길을 찾았다. 단 하나의 포스터, 단 한 번의 공연으로 그녀는 온 마음과 몸을 헌신할 천직을 찾았다. 재능이 공명하는 곳, 한 번도 계발되지 않은 야생의 재능이 밖으로 나오려고 외칠 때, 그 소리를 들어주어야 한다.


54. 점점 더 나는 나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내 분야를 이렇게 빨리 터득할 수 있고, 이것을 하면 지칠 줄 모르고, 누구보다 열심히 해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내가 춤꾼이라는 것을 입중해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나는 빛났다. 그리고 기회가 내게 몰려들었다.


59. 마거릿 미드의 가장 돋보이는 재능은 일상생활의 예리한 관찰자로서 특정 문화권을 자세히 살핀 후 패턴을 파악하고 그것을 생생하고 암시적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62. 예술가의 전재성이란 의지로 되찾은 유년기, 이제는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는 어른의 육체적 능력을 갖춘 유년기, 그리고 무의지적으로 축적된 경험의 총합에 질서를 부여하는 분석적인 능력을 갖춘 유년기. _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64. 성공한 보통 사람은 천재가 아니다. 평범한 자질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평범함을 비범하게 발전시킨 사람이다. _ 루즈벨트


평범함이란 없다. 그것은 아직 속에 있는 것이 개화하지 않았다는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것이 터져 나올 때 누구나 비범함으로 도약할 수 있다.


65. 단테의 신곡은 이렇게 시작한다. 인생의 중반에서 나 올바른 길을 잃고 어두운 숲 속을 헤매었네.


68. 나는 늘 쓴다. 그렇지만 내가 작가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10년이 걸렸다. 10년 동안 열 권이 넘는 책을 써왔지만 내가 작가라고 불릴 수 있는지에 대해 마음 깊은 곳에서 의구심이 올라왔다. 스스로 작가라고 부르는 것이 불편했다. 이유는 잘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작가는 곧 문인’이라는 공식이 생각보다 뿌리깊은 편견으로 자리 잡고 있어서인가 보다 했다. 글을 쓰긴 하지만 문학을 하는 것은 아니니 작가, 말 그대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내 의식의 밑바닥에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10년이 지나면서 내 생각은 바뀌었다. 내가 작가가 아니면 그럼 무엇이란 말인가? 매일 글을 쓰고, 매년 책을 내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는 내가 작가가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 글을 쓰기 시작하고 10년이 지나서 나는 나를 작가로 받아들였다.

>>매일하면 잘 할 수 있다. 계속할 수 있다면 그것은 천직이 된다. 잘 하게 되면 좋아하게 된다. 


70. 나는 내 비즈니스의 영역을 규정했다. 나는 ‘이야기를 파는 사람’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불가능한 이야기들을 사람들이 믿게 만들수록 내 비즈니스는 번창하게 된다. 이것이 내 정체성이다. 그러나 나는 순수 이야기꾼은 아니다. 왜냐하면 내가 늘어놓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이미 내가 직접 경험해본 일들에서 추출된 것이기 때문이다. ... ‘이야기를 통해 의미를 전달하는 것’, 이것이 나의 직업이다. 나는 이 일을 잘할 수 있다. 이 일이 나를 구해줄 것이다.


세 번째 이야기

스스로 그려낸 삶에 대한 뱃심으로 결코 물러서지 않는 이야기다. 깨달음은 우리에게 통찰을 준다. 그러나 일상의 삶은 여전히 과거의 법칙을 따르게 마련이다. 깨달음이 제시하는 미래와 일상이 규제하는 현실 사이의 괴리는 우리를 주저앉게 한다. 그리하여 종종 정신은 이상을 향하나 우리의 육체는 현실을 따르려고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미래에 대한 나의 통찰을 믿어주고 응원하는 뱃힘이다.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용기다.


77. 나는 세상을 감동시키고 싶었다. 그것이 삶의 단 한 가지 목표였다.


90. 냉소적인 사람은 절대 대성당을 짖지 못합니다. _ 헨리 키신저.


네 번째 이야기.

침묵으로 묵묵히 1만 시간의 레이스를 통과하는 이야기다. 한길에서 두각을 나타내려면 적어도 1만 시간은 묵묵히 매일 연습해야 한다. 스스로 충실한 훈련 규율을 정하고 매일 거르지 말고 그 일을 해야 한다.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엄격한 규칙을 따르는 것이다. 내면의 빛나는 강점에 기대어 매일 나가야야 한다.


103. 나는 제임스 조이스와 오스발트 슈펭글러와 토마스 만의 글을 읽었다. 슈펭글러가 니체를 언급하면 나는 니체의 글도 읽었다. 니체의 글을 읽다 보니 쇼펜하우어의 글을 먼저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쇼펜하우어의 글을 읽으려면 칸트의 글을 먼저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칸트의 글을 일었다. 칸트를 출발점으로 하자니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다시 거기서 굍로 거슬러 올라갔다. 거기서 나는 다시 융의 글을 읽었고, 그의 사고가 근본적으로 슈펭글러의 사고 체계와 똑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버무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내가 책을 읽어 나간 방식이었다.


104. 방황을 할 때는 당장 그날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되, 내일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묻지 말아야 한다. 미리 생각해둔 것에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특히 다음 세 가지는 결코 생각해서는 안 된다. 먼저 하나는 굶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불안해 하는 것이며, 마지막 하나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염려하는 것이다. ... 현재 처한 상황을 희극적으로 바라보면, 우리는 영적인 거리를 얻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웃음과 유머 감각이 우리를 생활고에서 구해준다. 고생은 앞으로 언젠가의 영광을 더 빛내주는 어두운 배경이고, 빈곤은 내가 물질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마음이 커져가도록 만들었다.


105. 방랑과 침묵의 시간은 긍정적인 시간이다. 새로운 것도 생각하지 말고, 성취도 생각하지 말고, 하여간 이와 비슷한 어떤 것도 생각하지 말고, 그저 “내가 지금 무엇을 하면 행복할까?”라고만 말해야 한다. 


변화를 원하는 마음의 근저에는 편함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끝과 화해할 수 있는 사람이 영웅이다. 무덤을 두려워하면 진정한 영웅이 아니다. 그렇게 보면 승리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패배도 나쁠 것이 없다. 모두 끝이 있고 그 끝에서 변화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이 동시에 다가오듯 모든 끝은 끝에서 만나게 마련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뚝 떨어져 나가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 잘 하기 위해서는 매일 해야, 계속해야, 무명의 10년...대가 없는 10년의 위험을 견뎌내야 한다. 성공은 바로 이것의 결과다.


다섯 번째 이야기.

고독을 견디지 못하면 조재를 지킬 수 없다는 이야기다. 스스로 깨달은 진실과 통찰을 오랫동안 지키고 매일 수련하다 보면 세상과의 괴리 때문에 고독해지게 마련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매일 하는 것. 그것이 곧 고독이다. 고독이 지면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꿈은 사라지고, 평범한 곳을 다시 되돌아온다. 고독을 견디는 자만이 위대해진다.


128. 나는 미움을 미음으로 갚는 대신 사랑으로 갚는 것이 미움을 더 쉽게 극복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129. 그 당시 유대인 학자들은 학문에만 힘써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으므로 학자라면 누구에게나 생계를 유지할 기능을 익히게 해야 한다는 유대율법이 몸에 배어 있기도 했다.

-> 학문으로 먹고 살려는 욕심을 걷어라. 그때서야 비로소 배움을 시작할 수 있다. 옛 유대인들은 이러한 진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137. 언젠가 많은 것을 가르쳐야 할 이는 많은 것을 가슴속에 말없이 쌓아둔다. 언젠가 번개에 불을 켜야 할 사람은 오랫동안 구름으로 살아야 한다. _ 니체


여섯 번째 이야기.

스승에 대한 이야기다. ‘그분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우리는 이 질문을 수없이 되녀며 길을 걷는다. 나의 고독을 만들어주고 동시에 이해해주는 사람, 단 한 사람이라도 좋다. 화두를 던져주고 깨달음의 경지를 나눌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어른, 적어도 한 사람의 스승은 있어야 한다. 힘들 때마다 ‘스승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내심 물어볼 그분을 얻어야 한다.


159. 문틈으로 건네진 열쇠


161. 그 말을 들은 나는 신발을 머리 위에 이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러자 스승이 한숨을 쉬며 말씀하셨다.

-> 이 대목까지 읽었는데 울컥 ... 눈물이 핑 돌았다. 왜 그랬는지 모른다. 조주처럼 남선같은 스승을 만나고 싶어서 그랬는지 남선 같은 스승이 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가슴에 뜨거운 불덩어리가 일렁인다.


163. 문이 안에서 열리듯 모든 배움과 깨달음은 안에서 스스로 익어 터지는 것이다.


171. 친구가 될 수 없으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될 수 없으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_ 이탁오


178. 인생에는 여러 가지 길이 있다. 스스로 모색해라. 헌신하고 모든 것을 걸어라. 그러나 그 길이 아니라 하더라도 실망하지 마라. 앞에 다른 길이 나오면 슬퍼하지 말고 새 길로 가거라. 어느 길로 가든 훌륭함으로 가는 길은 있는 것이다.


184. 보통의 선생은 그저 말을 하고, 좋은 선생은 설명을 해 주고, 훌륭한 선생은 스스로 모범을 보이고, 위대한 스승은 영감을 준다.


일곱 번째 이야기.

나를 넘어서지 못하면 위대해질 수 없다. 모든 위대함은 나로 시작해서 나를 넘어선 우주에 다가가는 것에 있다. 그것은 나와 우중의 화해이면 통합이다. 위대하다는 것은 세속의 성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넘어서는 더 커다란 것에 대한 그리움과 지향성을 갖지 못하면 우리의 정신을 고양될 수 없다. 평범함은 아직 개화하지 않고 숨어 있는 위대함에 대한 다른 말이다. 평범함이 깨져야 위대함이 발아한다.


191. 에너지와 열정은 사람을 질리게 한다.


192. 실수를 했을 때는 즉시 그 실수를 인정하고 빨리 바꾸라는 것이다.


193. 따지고 보면 모든 성공의 요인은 사실 내게 돈이 없었다는 점이다. 돈이 없고 배가 고프면 창의력이 생긴다. 노력하지 않아도 가질 수 있으면 생각하지도 않고 추진력도 생기지 않는다. 다른 성공한 기업가들처럼 궁핍이 나를 생각하게 한다. 


196. 우리를 죽이지 않는 고난은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에필로그


220. 인간은 확고하고 명료하고 완성된 것이 아니다. 변화해가는 것이다. 인간은 시도이고 예감이며 미래다. ... 어떠한 상황에서도 현실을 숭배하거나 존경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리가 현실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보여줄 때 비로소 달라지는 것이다. _ 헤르만 헤세


223. 만일 우리 스스로 자신을 위한 신화 한 편을 쓰지 못한다면 결국 자신이 열연해야 할 인생이라는 무대는 없다.



3. 내가 저자라면


[키워드]


깨우침, 견딤, 넘어섬, 스승, 사숙, 깊은 인생, 투사, 그리고 꿈


[책의 특징]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그것을 잘 다룰 줄 안다.


성찰의 고수, 끼어들기의 달인, 이렇게 뻔한 구조가 이야기가 되고 책이 된다는 것이 늘 신기하다.


기획력과 목차의 구성이 기가막히다.

이렇게 기획했다고 하더라고 지난한 탐색과 취재가 없었더라면 풀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십여년의 공력이 고스란히 녹아있음을 알겠다.


많은 이가 공명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다. 대중이 원하는 책을 써야 한다고 하지만 대중이 필요한 책을 써야 한다. 그러나 이것 또한 자격이 되고서야 해 볼 일이다. 스스로를 탐험하고 그 여정을 기록하자.


선생의 책을 읽은 독자들이라면 선도는 다소 떨어지겠다. 인용된 이야기들은 대부분 잘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구성] 


첫 번째, 그를 일인칭으로 만난다. 그에게 들어가 내가 되어 보는 것이다. 저자의 압축능력과 현실성 탄복했다. 방대한 자료들을 압축했을 것이다. 타인에게 나를 이입시키는 작업을 시도했다는 것이 신선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두 번째, 그리고 이인칭인 그를 만난다. 객관적인 그를 만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를 만난다. 내게서 그의 경험을 찾는다. 내게도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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