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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22일 15시 51분 등록

치곡_작가론

2015. 3. 17


“한 번도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고 했더니 “정말 그럴까?” 해언이 되물었다. 정말 그럴까?


사진을 제법 오랫동안 찍어오면서 작가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내가 작품을 만들고 있는 것인가?’라고 여러 번 물었지만 ‘택도 없는’ 질문이었다. 기실 나는 ‘작가’라는 단어가 흔해 빠진 지금의 세태에 동의하지 못한다. 적어도 내게 ‘작가’는 높고 숭고하다. 나는 권정생 선생을 사숙한다. 적어도 그 어른 정도는 되어야 ‘작가’란 칭호를 쓸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만이 작가인 것은 아니지만 그는 분명 작가다. 그는 자신을 탐험하며 살고 산대로 썼다. 그래서 그의 글은 ‘작품’이고 그는 작가라야 마땅하다. 


‘작가’란 말은 일인칭으로 쓰여질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따라서 스스로 작가라 참칭하는 것은 성립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작가라고 서슴없이 규정하는 경솔함에 조소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옷 만드는 사람, 빵 만드는 사람, 김밥 마는 사람, 그릇 만드는 사람, 책상 만드는 사람, 집 짖는 사람, 배달하는 사람, 물건 파는 사람 ... 들처럼 그들도 그림 그리는 사람, 조각하는 사람, 글 쓰는 사람, 사진 찍는 사람이라야 옳다. 그가 하는 일(어떤 일이 되었건)이 지극한 경지에 이르면 만들어낸 결과물은 저절로 ‘작품’이 되고 그는 비로소 ‘작가’가 된다.


변화경영 사상가 구본형은 스스로 ‘작가’란 호칭을 받아들이는데 1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그는 그의 책 <깊은 인생>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늘 쓴다. 그렇지만 내가 작가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10년이 걸렸다. 10년 동안 열 권이 넘는 책을 써왔지만 내가 작가라고 불릴 수 있는지에 대해 마음 깊은 곳에서 의구심이 올라왔다. 스스로 작가라고 부르는 것이 불편했다. 이유는 잘 알 수 없었다. ... 10년이 지나면서 내 생각은 바뀌었다. 내가 작가가 아니면 그럼 무엇이란 말인가? 매일 글을 쓰고, 매년 책을 내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는 내가 작가가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 글을 쓰기 시작하고 10년이 지나서 나는 나를 작가로 받아들였다.” 적어도 이 정도의 성찰과 성취가 있은 후에야 비로소 ‘작가’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중용에 ‘치곡致曲_23장’을 말하는 대목이 있다. 원문을 옮겨보면 이렇다.

‘其次致曲. 曲能有誠, 誠則形, 形則著, 著則明, 明則動, 動則變, 變則化, 唯天下至誠爲能化

기차치곡. 곡능유성, 성즉형, 형즉저, 저즉명, 명즉동, 동즉변, 변즉화, 유천하지성위능화’


치곡致曲은 ‘사소한 일에도 지극하게 정성을 다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내면의 바른 이치가 구체적으로 형상화되고 형상화되면 밖으로 드러나게 되어있다. 그렇게 드러나게 되면 밝아지고 밝아지게 되면 움직인다. 움직이면 변하게(물리적) 되고, 변하게 되면 근본적으로 변화(化)하게 된다. 그러니 오로지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스스로 변화할 수 있고 이윽고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옛사람들은 물리적 변화(變)를 통해 근본적인 변화(化)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동인으로 지극한 정성(誠) 즉 성실을 수단으로 말한다. 그래서 큰 사람은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중용은 가르치고 있다.


나는 이 장을 읽으면서 ‘變化장’ 그리고 ‘專門家장’이라고 메모해 두었다. 변화의 정곡을 무찔러 드는 우람한 말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각 분야에서 최고 경지에 이른 전문가들이다. 전문가는 잘 알(知)고 잘 할(行) 수 있는 사람이다. 잘 할 수 있으려면 아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나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글쓰기’가 아니라 글감이 되는 그 ‘무엇’이었으면 좋겠다. 그것으로 글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세상과 만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렇게 앎과 지혜가 쌓여 뭔가를 말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이렇게 살았노라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다시 생각해 봐도 내게 ‘작가’란 말은 버겁고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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