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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23일 00시 16분 등록

우정 지속의 법칙, 창비, 설흔 지음

 

1. 저자에 대하여

 

설흔

 

고려대학교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며 소설을 썼다. 선인들, 그중에서도 조선 후기를 살았던 인물들의 삶과 사상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그들이 생각하고 열망했던 것들을 이 시대에 소통되는 언어로 재연하는 것이 앞으로의 꿈이다. 지은 책으로『추사의 마지막 편지, 나를 닮고 싶은 너에게』, 『칼날 눈썹 박제가』, 『책의 이면』,『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공저), 『소년, 아란타로 가다』, 『퇴계에게 공부법을 배우다』 등이 있다. 조선의 문장가 이옥과 김려가 나눈 우정 이야기를 그린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로 2010년 제1회 창비청소년도서상 교양기획부문 대상을 받았다.

 

2. 내가 저자라면

 

- 책의 핵심을 몇 줄로 요약할 것.

(책의 핵심 메시지와 키워드를 가지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이 책을 명확하게 소개한다는 기분으로 쓸 것)

 

우정 파탄의 법칙에서 우정 지속의 법칙으로!

 

3때 단짝 친구를 잃은 아픔이 있는 저자에게 중3짜리 조카가 친구문제로 도움을 청한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자살로 생을 마감한 저자의 단짝 친구를 저자는 그 친구를 단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저자의 삶은 우정 파탄의 법칙으로 일관되어 있었다. 조카의 고민으로 저자의 기억은 다시 중3때로 돌아가게 된다. 죽은 친구와 같은 고민을 하는 조카는 학교를 그만두는 것으로 고민을 해결한다. 저자는 조카와의 갈등과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반추하며 <우정 지속의 법칙>을 완성한다.

 

- 이 책의 특징을 몇 가지로 도출해볼 것.

(이 책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이 책이 다른 책과 뭐가 다른가?)

 

저자의 이야기와 고전, 영화, 위인들의 일화가 한꺼번에!

 

저자의 실제 사연(친구의 죽음, 조카와의 갈등)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저자의 노력(고전, 영화, 위인들의 일화에서 우정에 관련된 것들을 수집) 끝에 11가지 우정 지속의 법칙을 만들어냈다.  

 

- 특히 감동적인 장절과 해석, 그 구절에 꽂힌 이유  

 

28

내가 왔다는 전갈을 들은 선생은 옷을 차려 입고 나와 맞으며 왠 친구 대하듯 따뜻하게 손을 맞잡았다. 자리에 앉은 뒤에는 또 어떠했나? 선생은 자신이 지은 글을 전부 꺼내 보여 주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선생은 직접 쌀을 씻어 밥을 했다. 밥이 다 된 후에는 술잔을 들더니 내 앞날에 좋은 일만 있기를 기원했다.

 

42

나는 깨달았다. 친구와의 우정에도 피할 수 없는 성쇠가 있다는 것을. 지난날은 지난날이고 지금은 지금이라는 것을.

 

50

낮에는 사냥하고 밤에는 책을 읽는다. 사이사이 바둑도 두고 술도 마신다. 그 기상이 답답한 책상물림들과는 다르니 웃을 만하다. 아쉬운 것도 있다. 아픈 몸이 온전히 낫지를 않았다. 답답한 것도 있다. 함께 한 이들은 멋진 강산을 보고도 시 한 수를 뽑기는커녕 책만 보고들 있다.

 

이럴 때면 더욱더 네가 생각난다.

 

줄기차게 만나되 가끔은 헤어져 있어야 우정이 더 깊어진다는 것입니다.

 

61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야 나는 왜 친구가 내게 <사람의 아들>을 주었는지 깨닫습니다. <사람의 아들>을 한 권도 아닌 두 권이나 산 이유를 말입니다. 친구에게 <사람의 아들>은 단순한 책이 아니라 공유물이었습니다. 친구는 그 책을 통해 우리의 우정이 지속되길 바랬던 것입니다. 김광수와 이광사가 그러했듯, 김유근과 김정희와 권돈인이 그러했듯, 우리의 우정 또한 책 한 권을 통해 계속해서 이어지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나는 벼루를 갖고 싶은데

친구는 곤란하다는 표정뿐

미불은 옷소매에 벼루를 숨겨서 훔쳤고

소동파는 벼루에 침을 뱉어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옛사람도 그랬는데 나라고 못 할 이유가 있나?

재빨리 낚아채 달아나는 걸음은 기분이 좋아 저절로 우쭐우쭐

이 벼루가 귀한 건 색이 붉은 까닭일까?

적간관, 그 이름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벼루 대신 시를 내민 유득공에게 이정구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시는 시이고 벼루는 벼루이니 그냥 줄 수는 없다고 했을까요, 아니면 시 한 수와 벼루를 바꾸자는 억지에 가까운 친구의 요구를 받아들였을까요? 결론만 말하겠습니다. 이정구는 벼루와 시를 바꾸었습니다.

 

103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요. 그래도 그중 하나만 꼽으라면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겠습니다. 나는 친구와의 우정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약속을 어기는 무례를 서슴지 않은 것입니다. 친구이니까, 다른 친구도 아닌 가장 친한 친구이니까 당연히 나를 이해해 주겠지, 하고 제멋대로 생각해 버렸습니다. 세상에 당연히 존재하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그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모든 것에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 또한 그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우정은 단단하고도 연약합니다. 때로는 강력한 도끼질에도 끄떡없이 견디지만 때로는 한 줄기 바람에도 허무하게 무너집니다. 그래서 나는 그때는 몰랐던 그 깨달음을 또 다른 우정 지속의 법칙으로 옮겨 적습니다. 그 법칙은 바로 함부러 대하지 말자입니다.

 

182

경보여, 나 박지원과 그대와의 인연은 참으로 공교롭고도 오묘합니다. 누가 우리를 만나게 한 걸까요? 우리가 친구로 만났다는 것, 이는 참으로 보통 인연이 아닙니다.

그대가 먼저 태어나지도 않고 내가 뒤에 태어나지도 않아 우리는 같은 세상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대가 흉노족이 아니고 내가 남쪽의 오랑캐가 아니라 우리는 같은 나라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대가 남쪽에 살지 않고 내가 북쪽에 살지 않아 우리는 한마을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대가 무인이 아니고 내가 농사꾼이 아니라 우리는 글 읽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어찌 보통 인연이겠습니까? 이렇듯 큰 인연을 지니고 있다 해서 상대방 말에 무조건 동조하거나 상대방 행동을 무조건 따라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럴 바에야 옛사람과 벗하거나 후세 사람을 기다리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나의 친구여, 나날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나 또한 나날이 나아갈 테니.

 

203

친구가 많은 자에게는 친구가 없다 아리스토텔레스

 

204

내 친구는 오래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나와 친구의 우정은 그것으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친구는 내 인생 내내 나와 함께하며 내가 가야 할 길을 알려 주었습니다. 오늘날 내가 얼치기 작가라도 된 것은 어쩌면 친구 덕분인지도 모릅니다. 여태껏 나는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이제 나는 친구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믿습니다.

 

- 이 책의 구성에 대해 논할 것.

(탄탄한가? 일관성이 있는가? 신선한가?)

 

친구의 죽음을 말리지 못한 후회와 자책에서 시작된 우정 지속의 법칙세우기는 우정이라는 한 가지 주제를 중심에 두고 탄탄하고 일관성 있게 법칙을 완성해 간다.  

 

우정에 관한 글을 쓰게 된 이유

 

1. 만남: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관계의 시작

 법칙 1. 불쑥 찾아가자

 법칙 2. 줄기차게 만나자

 법칙 3. 둘만의 것을 공유하자

 

2. 깊은 사이: 내가 너의 진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법칙 4. 소중한 것을 아낌없이 내주자

 법칙 5. 약속을 꼭 지키자

 법칙 6. 함부로 대하지 말자

 

3. 갈등: 싸울 수도 있지만

 법칙 7-1. 잘못을 인정하자

 법칙 7-2. 잘못을 알려 주자

 

4. 지속 가능한 우정: 오늘의 우정을 내일로

 법칙 8. 모두가 외면할 때 손을 내밀자

 법칙 9. 함께 가자

 법칙 10. 함께하는지금을 즐기자

 

 일종의 후일담: ‘우정의 끝에 대해

 

- 내 책을 쓸 때의 참고사항을 기술할 것.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아이디어를 정리할 것.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우정편에 링크해 둔 책이다. 우정의 시작에서부터 우정의 끝까지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감동 스토리는 진한 여운을 남긴다. 이 책을 읽어주자 큰 아이는 감동받아 울었다.

 

3.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우정에 관한 글을 쓰게 된 이유

 

15

대학에 들어가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친구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습니다. 나는 내 소설에서 친구를 다시 살리기도 하고, 친구와 내 상황을 교묘히 바꾸어 놓기도 했습니다. 이유는 명확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양심의 가책 나의 거절이 친구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을지도 모른다는 을 해소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소설은 소설일 뿐이지요. 실제의 나는 하나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옛날 친구에게 그랬듯이 주위 사람들과 다른 친구들의 마음에 크고 작은 상처를 주며 살았습니다. (수많았던 만행과 우행들을 생각하니 부끄러워 고개도 들 수 없을 정도입니다.) 최신형 스마트폰을 들고서도 끝내 통화 한 통 할 수 없었던 것은 친구들이 나와의 통화를 정말로 원할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는 연락도 없더니 마음이 우울하다는 이유로 (그러니까 위로받고 싶어서) 전화한 나를 친구들이 진정으로 반길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기형도의 시에 등장하는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의 주인공은 바로 나였고, 그렇게 된 이유 또한 나에게 있습니다.

 

저자는 나와 두 가지 면에서 나와 비슷하다.

1. 나는 웬만하면 전화를 못한다. 꼭 용건이 있어야 한다. 이유를 들라면 끝도 없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부끄럽기 때문이다.

2. 나도 기형도의 시를 좋아한다.

서문에서 나와 유사한 점을 발견해서인지 이 책을 펼치자마자 다 읽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저자는 나와 꼭 닮은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16

이덕무의 글을 읽는데 깨달음이 왔습니다.

 

나를 알아주는 단 한 사람의 친구를 얻으면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십 년 동안 뽕나무를 심을 것이다. 일 년 동안 누에를 길러 내 손으로 오색실을 물들일 것이다. 열흘에 한 가지 빛깔씩 물들이면 오십 일에 다섯 가지 빛깔을 물들일 수 있으리라.

그 오색실을 따뜻한 봄볕에 내놓고 말린다. 여린 아내에게 부탁해 백 번 달군 금침으로 친구의 얼굴을 수놓게 한다. 고운 비단으로 장식하고는 옛 느낌이 나는 옥을 달아 축을 만든다. 뾰족하고 험준한 산과 세차게 흐르는 물 사이에 펼쳐 놓고 말없이 바라본다. 해가 지면 다시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 순간, 바람도 불지 않았는데 책상 위의 연필이 저절로 움직였습니다. 등이 서늘해졌습니다. 저 혼자 힘으로 미묘하게 움직이는 그 연필을 보며 내가 왜 하필 우정에 관한 글들을 모았던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오래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내 친구가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친구가 이제 금침으로 자신의 얼굴을 수놓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만든 얼굴을 내가 품에 안아 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나는 요 몇 해 동안 그 사실을 모른 척 외면하려 했습니다. 친구는 내게 큰 의미가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고 믿으려 했습니다. 내 전략은 성공한 듯했지요. 내 나름대로 즐겁게 살았고, 그 친구를 거의 잊은 듯했으니까요. 아니었습니다. 나는 단 한시도 그 친구를 잊지 못했습니다. 그저 잊은 척 했을 뿐입니다. 나는 실패했습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친구의 바람을 들어주는 것, 그 하나뿐입니다.

 

우정 지속의 법칙이라는, 내가 한 번도 이루지 못했던 제목도 붙였고요. 역설에 가까운 제목까지 정했으니 이제 남은 일은 무엇일까요? 친구에 대한 기억을 덧붙여 원고를 완성하기란, 우정을 지속하는 데 완벽하게 실패했던 나에게 쉽지 않겠지요.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써 보는 것, 남은 일은 그 하나뿐입니다.

 

1. 만남: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관계의 시작

 법칙 1. 불쑥 찾아가자

 

28

박지원은 당대의 명문인 반남 박씨의 후에이자 문단의 총아였습니다. 서얼인 박제가와는 비길 바가 아니었지요. 나이 차이도 꽤 났습니다. 박지원이 박제가보다 열 세살이나 더 많았거든요. 세간에 알려진 모습은 또 어떠한가요? 박지원은 목청은 덩치만큼이나 크고, 말솜씨도 뛰어나서 직설과 농담을 자유자재로 섞어 가며 좌중을 들었다 놨다 했습니다. 따뜻하면서도 엄격하고, 둔중하면서도 날카로운 이가 박지원입니다.

 

박제가는 망설였습니다. 마침내 박제가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박지원과 만나고 싶어 불쑥 발걸음을 했던 그 용기를 떠올리며 어깨와 목에 잔뜩 힘을 주고 자신이 온 사실을 소리를 내어 알렸습니다. 문이 열리고 하인이 나왔습니다. 박제가는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밝혔습니다. 박지원에게 소식을 전하러 가는 하인의 발소리가 아마도 천둥소리처럼 들렸겠지요. 또 박지원을 기다리는 그 시간은 얼마나 길게 느껴졌을까요? 어쩌면 퇴짜를 맞을 수도 있겠다 싶은 순간, 약속도 없이 들이닥친 것을 자책하며 이제 그만 발걸음을 돌려야겠다 싶은 순간, 박지원이 나타났습니다. 외로운 서얼 박제가를 어떻게 맞이했을까요? 흥분으로 가득한 박제가의 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가 왔다는 전갈을 들은 선생은 옷을 차려 입고 나와 맞으며 왠 친구 대하듯 따뜻하게 손을 맞잡았다. 자리에 앉은 뒤에는 또 어떠했나? 선생은 자신이 지은 글을 전부 꺼내 보여 주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선생은 직접 쌀을 씻어 밥을 했다. 밥이 다 된 후에는 술잔을 들더니 내 앞날에 좋은 일만 있기를 기원했다.

 

박지원과 박제가의 수저가 바쁘게 움직이는 장면을 상상하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 집니다. 그러니까 박제가의 불쑥 찾아가기는 보기 좋게 성공한 것이지요. 이날의 만남을 계기로 박제가는 박지원과 평생토록 이어지는 우정을 나누게 됩니다.

 

불쑥 찾아가기는 박제가처럼

불쑥 찾아온 친구에게는 박지원처럼

 

 법칙 2. 줄기차게 만나자

 

살구꽃이 피면 한 번 모이고

복숭아꽃이 피면 한 번 모이고

한여름에 참외가 익으면 한 번 모이고

초가을 서늘해지면 연꽃을 구경하러 한 번 모이고

국화가 피면 한 번 모이고

겨울에 큰 눈이 내리면 한 번 모이고

연말이 되어 매화 화분에 꽃이 피면 다시 한 번 모인다.

 

정약용의 글이라고 겁먹지 마시길. 이 규칙의 핵심은 그저 줄기차게 만나자입니다. 살구꽃과 복숭아꽃과 매화 등을 인용하니 꽤 고상해 보이지만 핵심은 그저 친구들아, 어찌 되었건 줄기차게 만나자.’이지요.

 

42

나는 깨달았다. 친구와의 우정에도 피할 수 없는 성쇠가 있다는 것을. 지난날은 지난날이고 지금은 지금이라는 것을.

 

어느 날 박제가의 친한 친구 이희경이 그에게 <백탑청연집>이라는 책 한 권을 가져왔습니다. 한 때 매일같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던 여러 친구들의 편지와 글을 모아서 엮은 책입니다. 책을 내밀며 하는 이희경의 말이 의미심장했지요.

 

중국의 문인들은 친구들과 만나고 헤어진 사연들을 모아 책으로 내곤 했네. 나 또한 그들의 사례를 따라 우리들이 만나고 이별한 일들을 기록했지. 자네가 서문을 쓰면 참 좋을 것 같아.”

 

이희경은 만남만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희경은 친구들의 만남과 이별을 기록한 책으로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박제가가 쓴 서문에 답이 있습니다.

 

그로부터 육칠년이 지났다.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가난과 병은 날로 심해졌다. 친구들과 어쩌다 만나면 별 탈이 없음을 다행으로 여겼다. 노는 맛은 지난 날에 비할 바가 못 되고 친구들의 얼굴 빛도 지난 날과 달랐다. 나는 깨달았다. 친구와의 우정에도 피할 수 없는 성쇠가 있다는 것을, 지난날은 지난날이고 지금은 지금이라는 것을.

 

우정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수량이 풍부해지는 깊은 강이지만 시간과 함께 바닥을 드러내는 얕은 개울이기도 하거든요. 세상엔 깊은 강보다 얕은 개울이 더 많지요. 그러므로 줄기차게 만나자는 실은 지속하기 굉장히 어려운 법칙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깊은 강인 채로 있으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무슨 좋은 방법이 있기는 할까요?

 

50

낮에는 사냥하고 밤에는 책을 읽는다. 사이사이 바둑도 두고 술도 마신다. 그 기상이 답답한 책상물림들과는 다르니 웃을 만하다. 아쉬운 것도 있다. 아픈 몸이 온전히 낫지를 않았다. 답답한 것도 있다. 함께 한 이들은 멋진 강산을 보고도 시 한 수를 뽑기는커녕 책만 보고들 있다.

 

이럴 때면 더욱더 네가 생각난다.

 

줄기차게 만나되 가끔은 헤어져 있어야 우정이 더 깊어진다는 것입니다.

 

 법칙 3. 둘만의 것을 공유하자

 

61

친구로부터 책 선물을 받기는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아니 생일도 아닌데 무언가를 받은 것 자체가 처음이었지요. 좀 어색하기는 해도 속으로는 좋아해야 마땅했겠지만, 사실 내 기분은 정확히 말해 그냥 그랬습니다’! 친구가 선물을 주었다는 사실에 불만을 가졌던 것은 물론 아닙니다. <사람의 아들>을 받는 순간, 나는 내가 그 책을 결코 읽지 않으리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교회도 의무감으로 다니고 있는데 교회 선생님이 읽으라고 한 책 보나마나 고리타분할 것이 뻔한 을 일부러 시간 내어 읽지는 않을 게 너무도 뻔했기 때문입니다. 속내가 그렇더라도 친구에게 대놓고 난 이 책 안 읽을 건데.”하고 말할 수 는 없었습니다. 내게도 그 정도 예절은 있었거든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람의 아들>을 받아들였습니다. 어색한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무마하기 위해 자식, 머리에 총 맞았냐?”하고 덕담(?)을 퍼붓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막 농구를 하려던 참이었지요. 친구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비밀 이야기라도 하듯 낮은 목소리로 그 책이 어땠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능숙하게 눈살을 찌푸리며 더럽게 재미없어. 하여간 꼰대들은.”하고 말했습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별다른 생각도 하지 않고 , 왜 이래? 지루한 책 이야기는 이제 그만해.”하고 일갈해 버렸습니다. 친구의 얼굴이 잠깐 굳어졌습니다. 내 거짓말을 알아챘나 싶어 한순간 몹시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뻔뻔한 사람입니다. 그날 이후 친구가 <사람의 아들>에 대해 다시 말을 꺼낸 적은 없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야 나는 왜 친구가 내게 <사람의 아들>을 주었는지 깨닫습니다. <사람의 아들>을 한 권도 아닌 두 권이나 산 이유를 말입니다. 친구에게 <사람의 아들>은 단순한 책이 아니라 공유물이었습니다. 친구는 그 책을 통해 우리의 우정이 지속되길 바랬던 것입니다. 김광수와 이광사가 그러했듯, 김유근과 김정희와 권돈인이 그러했듯, 우리의 우정 또한 책 한 권을 통해 계속해서 이어지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66

<사람의 아들>은 포기하고 대신 박제가의 산문집인 <궁핍한 날의 벗> <호밀밭의 파수꾼>을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두 책을 장바구니에 담은 까닭은, 조카 녀석에게 주기 위해서입니다. 맨정신에 썰렁하게 이야기하기보다는 공유물인 책이라도 건네며 실마리를 푸는 게 좋을 듯싶었습니다.

 

나는 <사람의 아들>을 결국 읽기는 했습니다. 대학에 다닐 때였지요. 그날따라 왠지 울적해 강의도 빼먹고 도서관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다 <사람의 아들>을 발견했습니다. 곧바로 자리에 앉아 끝까지 다 읽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중학교 1학년이 읽기에는 어려운 책이더군요. 그럼에도 책을 다 읽은 순간 내 머릿속에는 <사람의 아들>을 그 시절에 읽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 것인가 하는 후회가 들었습니다. 너무나 늦은 후회입니다. 친구는 벌써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으니까요.

 

2. 깊은 사이: 내가 너의 진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법칙 4. 소중한 것을 아낌없이 내주자

 

73

청년 시절부터 중국행을 꿈꾸었던 홍대용 앞서 등장했던 박지원의 친구이지요 은 서른 다섯이 되어서야 비로소 중국 땅을 밟았습니다. 북경에 도착한 그는 성당을 방문함으로써 오랫동안 품고 있었던 두 가지 소원 중 하나를 이루었습니다. 다른 한 가지 소원은 중국 선비들을 친구로 사귀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언어도 풍속도 다른 이국 선비들을 사귀기란 여러모로 능력이 뛰어난 홍대용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홍대용은 북경 거리 곳곳을 다니며 기회를 노렸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지요. 홍대용의 속이 잔뜩 달아 있던 그 즈음 하급 무관 이기성이 언뜻 보기에도 희귀한 안경을 가지고 숙소에 들어섰습니다. 호기심 많은 홍대용이 그 안경을 보고 그냥 넘어갈 리가 없습니다.

 

중국에 오면 안경을 하나 구매해야겠다고 진작부터 마음을 먹었습니다. 시장을 두루 다녔지만 뜻밖에도 마음에 드는 안경을 구하지 못했지요. 아쉬운 마음을 안고 고서점 등이 모여 있는 유리창 거리에 갔는데 안경을 쓴 두 선비가 지나가더군요. 그래서 저는 그대들은 중국에 있어 새로 구하기가 쉬울 것이니 그 안경을 내게 파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무작정 물었습니다.”

 

이기성의 말을 들은 한 선비가 곧바로 안경을 내주었습니다.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 내준 것입니다. 그 당시 안경은 비싼 물건이었지요. 뜻밖의 상황에 깜짝 놀란 이기성은 은으로 사례하겠다고 했습니다. 선비들의 안색이 변했습니다.

 

안경이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것인데 우리가 어찌 값을 요구하겠습니까?”

결국 이기성은 사례를 치르려던 생각을 포기했습니다. 대신 선비들이 머무는 곳을 물어 다시 찾겠다는 약속만 하고 돌아온 것이지요.

그 순간 홍대용의 마음속에서 무엇인가가 꿈틀했습니다. 홍대용은 선비들에 대해 더 물었습니다.

 

절강성 출신인데 과거를 보러 올라왔다더군요.”

홍대용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자신이 쓰고 있던 안경을 아무 대가 없이 내주는 행동, 거기에 더해 수천 리 먼 곳에서 과거를 보기 위해 북경까지 온 것, 이 두 가지는 두 선비의 마음 씀씀이며 학문이 보통은 넘는다는 뜻이었지요.

 

며칠이 지난 후 홍대용은 두 선비가 머무는 숙소를 찾았습니다. 홍대용은 비로소 두 선비의 이름을 알게 되었지요. 그들은 엄성과 반정균이었습니다. 손님을 맞는 예의, 짧은 문답으로 확인한 학식만으로도 이미 만족스러웠지만 이어진 반정균의 말은 홍대용의 가슴을 완전히 흔들어 놓았습니다.

 

김상헌을 아십니까?”

노론 집안의 자제인 홍대용이 김상헌을 모를 리 없지요. 더군다나 홍대용의 스승인 김원행은 김상헌의 후손입니다.

어떻게 그 분을 아십니까?”

엄성은 책 한 권을 가져 왔습니다. 청나라를 대표하는 문인인 왕세정이 엮은 <감구집>이라는 책이었지요. 그 책의 말미에는 김상헌이 사신으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 썼던 시가 실려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정겨운 필담을 나누고 아쉬운 표정으로 일어서는 홍대용에게 엄성은 <감구집>을 건넸습니다.

이 책을 아예 가져가시는 게 어떠신지요?”

홍대용은 귀한 물건이라 그냥 받기 힘들다고 거절했지만 엄성을 이길 수는 없었지요. 결국 홍대용은 <감구집>과 필담을 나눈 종이를 가지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홍대용은 조선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그들을 일곱 번이나 만났지요. 조선으로 돌아온 후에도 홍대용은 편지를 보내 그들과의 인연을 이어 갔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멀리 떨어진 사람들끼리의 우정이라 천애지기로 불리며 조선 후기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우정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77

정조 시절 규장각을 빛낸 네 사람의 검사관 중 한 명으로 후대에 이름을 남긴 유득공은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이에게도 소유욕은 있기 마련이지요. 유득공에게는 벼루가 바로 그 대상이었습니다. 벼루의 역사를 다룬 책을 썼을 정도로 벼루 애호가였던 유득공은 친구인 이정구의 집을 방문했다가 두 눈이 휘둥그레지는 멋진 벼루를 발견했습니다. 이정구는 뿌듯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붉은빛을 띤 그 멋진 벼루가 일본의 적간관(시모노세키)에서 만든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통신사로 다녀온 이에게 부탁해서 얻었다는 말은 유득공의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겠지요. 유득공은 벼루를 이리저리 만져 보고 뒤집어 보며 감탄사를 내뱉기에 바빴으니까요. 오랜 감탄사의 향연 끝에 마침내 나온 유득공의 한마디!

벼루를 내게 주게.”

이정구는 웃었습니다. 그러고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다시금 유득공의 한마디!

벼루를 내게 주게.”

이정구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습니다. 유득공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경계해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하던 그 순간, 유득공은 벼루를 집어 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이정구가 뭐라 말할 사리도 없이 유득공은 재빨리 문을 열고 밖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며칠 후 유득공이 다시 이정구를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유득공이 내민 것은 벼루가 아니라 시 한 편이었지요. 이정구는 일단 그 시부터 읽어 보았습니다.

 

나는 벼루를 갖고 싶은데

친구는 곤란하다는 표정뿐

미불은 옷소매에 벼루를 숨겨서 훔쳤고

소동파는 벼루에 침을 뱉어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옛사람도 그랬는데 나라고 못 할 이유가 있나?

재빨리 낚아채 달아나는 걸음은 기분이 좋아 저절로 우쭐우쭐

이 벼루가 귀한 건 색이 붉은 까닭일까?

적간관, 그 이름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벼루 대신 시를 내민 유득공에게 이정구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시는 시이고 벼루는 벼루이니 그냥 줄 수는 없다고 했을까요, 아니면 시 한 수와 벼루를 바꾸자는 억지에 가까운 친구의 요구를 받아들였을까요? 결론만 말하겠습니다. 이정구는 벼루와 시를 바꾸었습니다.

 

 법칙 5. 약속을 꼭 지키자

 

83

친구는 나에게 편지 한 통 남기지 않았습니다. 믿기 어렵게도 우리는 사진 한 장 같이 찍지 않았습니다. 조선 시대를 살았던 홍대용과 엄성,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초상화와 먹을 주고 받았던 그 둘보다 못한 것입니다. 변명거리는 있습니다. 늘 붙어 있었으니 편지와 사진은 필요 없었습니다. 그렇더라도 후회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내게 친구를 추억할 물건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친구가 주었던 <사람의 아들>, 그 책밖에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친구에게 소중한 것을 하나도 내주지 않았습니다. 말로만 친했지 실제로는 무엇 하나 기꺼이 준 게 없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느냐고 물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나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우정 지속의 법칙을 쓰면서 새삼 깨달은 이 사실이 더욱 내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법칙 6. 함부로 대하지 말자

 

103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요. 그래도 그중 하나만 꼽으라면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겠습니다. 나는 친구와의 우정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약속을 어기는 무례를 서슴지 않은 것입니다. 친구이니까, 다른 친구도 아닌 가장 친한 친구이니까 당연히 나를 이해해 주겠지, 하고 제멋대로 생각해 버렸습니다. 세상에 당연히 존재하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그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모든 것에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 또한 그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우정은 단단하고도 연약합니다. 때로는 강력한 도끼질에도 끄떡없이 견디지만 때로는 한 줄기 바람에도 허무하게 무너집니다. 그래서 나는 그때는 몰랐던 그 깨달음을 또 다른 우정 지속의 법칙으로 옮겨 적습니다. 그 법칙은 바로 함부러 대하지 말자입니다.

 

109

이황의 제자인 김성일은 스승을 이렇게 평했습니다.

 

선생은 상대방의 말이 다 끝난 뒤에야 천천히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쉬운 질문에도 곧바로 답하는 경우가 없었다. 늘 한참 생각한 뒤에 대답했다.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는 법도 없었다. “내 의견은 이러한데 어떨지 모르겠다.”, 이것이 선생이 자신의 의견을 내놓는 방식이었다.

 

3. 갈등: 싸울 수도 있지만

 법칙 7-1. 잘못을 인정하자

 

128

우정 지속의 법칙? 웃기지도 않아. 삼촌은 정말…….”

그만해!”

녀석이 하려는 말을 굳이 끝까지 들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녀석이 말하지 않아도 나 또한 이미 충분히 깨달았으니까요. <사람의 아들>은 내겐 평범한 책이 아닙니다. 이제는 만날 수 없게 된 친구가 준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이었습니다. 단 하나뿐인 우정의 흔적입니다. 그런데도 나는 책을 분류하는 과정에서 그 책을 골라내지 않았습니다. 당장 글을 쓰는 데 필요한 자료들 위주로 서둘러 분류하다 보니 자료와는 무관한 일개 소설은 별다른 주목도 못 받고 곧장 창고로 들어가 버린 것입니다. 그래 놓고 나는 그 사실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우정 지속의 법칙을 쓰기 시작한 후에야 비로소 <사람의 아들>을 떠올렸고, 당연히 책장에 있겠거니 하고 하릴없이 책장만 뒤지고 또 뒤졌던 것입니다.

그 친구가 왜 삼촌 같은 사람을 좋아했는지 모르겠네.”

녀석은 아예 대놓고 비아냥거렸습니다. 생각하는 게 조금 독특하기는 해도 기본적으로 착한 녀석입니다. 욕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올바른 청소년입니다. 그런 녀석이 삼촌에게 앞뒤 가리지 않고 마구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아무 죄도 없는 입술을 깨물며 내가 녀석에게 주먹을 날리는 게 우정 지속의 법칙에 부합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잠시 생각했습니다. 친구에게 독설을 퍼부은 남공철과 친구의 볼기를 때린 박지원 사이에서 잠시 갈등했습니다. 남공철이 간신히 박지원을 물리쳤습니다. 나는 다시 한번 감정을 억누르고 말했습니다.

조심해라. 앞뒤 사정도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지 마라.”

모를 게 뭐가 있어?”

조심하라니까.”

조심하긴 뭘 조심해? 어차피 삼촌은 자기밖엔 생각하지 않잖아? 약속도 일방적으로 깨 놓고서.”

그렇지 않아. 그리고 지금 너, 그게 삼촌한테 할 말이냐?”

녀석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물러서기는커녕 혀를 차며 대꾸했지요.

그 친구는 삼촌 때문에 죽은 거야.”

우정 지속의 법칙이고 뭐고 간에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녀석의 뺨을 때렸습니다. 쫙도 아니고 쿵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에 자리한 소리가 났고, 거의 동시에 녀석의 안경이 방바닥으로 수직 낙하했습니다. 안경다리가 부러지고 안경알이 빠졌습니다. 녀석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녀석은 눈물을 흘리면서 나를 보았습니다. 녀석은 맞을 짓을 한 것입니다. 내 글을 읽고 나에게 실망한 녀석의 심기가 몹시 불편했다는 사실은 변명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녀석은 해서는 안 될 말을 했습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해서는 안 되는 말을 뱉은 것입니다.

사과해라.”

도대체 뭘?”

옷소매로 눈물을 닦았습니다. 눈물이 사라진 얼굴에는 비웃음이 자리했습니다. 녀석은 흐흐 웃으며 마지막 일격을 가했습니다.

삼촌, <사람의 아들>을 읽어 보기나 했어?”

가까이 있던 종이 뭉치를 녀석에게 던졌습니다. 종이 뭉치는 녀석 대신 애꿎은 방문만 때리고 떨어졌습니다. 녀석은 다시 한번 비웃음을 던지고는 방을 빠져나갔습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녀석은 다시 나타나서는 내 앞에 책들을 집어 던졌습니다. 내가 쓴 책, 내가 선물한 책들이었습니다.

 

<우정 지속의 법칙>의 갈등이 최고조에 다다른 장면

속이 시원하다. 싸울 땐 확실히 싸워야.

 

132

<사람의 아들>을 집어 들었습니다.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게 된 세로쓰기 책이라는 사실이 내 가슴을 더 아프게 했습니다. 조심스럽게 책장을 한 장 넘겼습니다. ‘수상 소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약속뿐이다라는 문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약속이라니, 나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고는 이어지는 글을 읽었습니다.

 

장중하고 관념적인 문어체 문장들 밑에 검은 볼펜으로 쓴 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문장이라고 부르기에는 우스운 글씨들이었지요.

뭔 닭대가리 씹는 소리냐?’

친구의 글씨였습니다. 인쇄된 것처럼 절도 있는 명조체로 쓰려고 딴에는 무척 노력했지만, 심히 흔들린 글씨는 친구의 노력이 헛되었음을 숨기지도 않고 드러냈지요. 깊은 한숨을 두어 번 토해내고 서야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수 있었습니다. 친구가 쓴 글씨가 더 있나 하고 곰곰히 살피며 느릿느릿 책장을 넘겼습니다. 친구의 글씨는 42쪽에 가서야 다시 등장했습니다.

씨벌,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 하여간 꼰대들은 맨날 이런 책만 권한다니까.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호밀밭의 파수꾼>이란 책이 아주 끝내준단다. 우리, 그거나 한번 읽어 보자. 그 책은 니가 사서 줘라.’

나는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입술을 깨물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처럼 계속해서 책장을 넘겼습니다.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친구가 남긴 흔적은 책 전체를 통틀어 오직 그뿐이었습니다. 친구는 42쪽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책을 읽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다시 42쪽을 펼쳤습니다.

 

역시 만만치 않은 문장이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41쪽의 알프스 산맥을 넘어 42쪽의 히말라야 산맥까지, 산소도 없이 낑낑대며 읽어 나갔을 친구를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오더군요. 아리우스와 네스토리우스라는 강력한 눈보라에 핍박받다가 마침내 깊고 깊은 크레바스인 바르바로사도(신성한 단순)”에 이르러 전진을 포기하고 두 손을 들었을 친구를 생각하니 도저히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지요. 그러나 그 웃음은 실은 웃음이 아니기도 했습니다. 나는 이제야 그 오래전 친구가 내게 했던 질문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책을 건네고 며칠 후에 내게 또 할 말 없느냐고 물었던 까닭을 말입니다. 나는 친구에게 <호밀밭의 파수꾼>을 선물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의 아들>을 펼쳐 보지도 않았으니 선물하려야 할 수도 없었지요. 웃으며 43쪽을 읽었습니다. 친구는 도달하지 못했을 문장들을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나는 책을 덮었습니다. 책을 덮고도 계속해서 웃었습니다. 웃을 일도 아닌데 미친놈처럼 한참을 더 웃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웃음을 멈추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무 의미도 없는, 너무도 뒤늦은 눈물만 끝없이 흘렀습니다.

 

치열한 다툼 후 반성하는 장면

가장 감동적인 대목

 

 법칙 7-2. 잘못을 알려 주자

 

149

매일 아침 너를 깨우고 너와 함께 놀고 취하는 것도 정말 좋아. 하지만 내 최고의 날은 이 골목에 들어서서 너의 집 문을 두드려도 아무런 대답이 없을 때야. 안녕이란 말도 남기지 않고 네가 떠나 버릴 바로 그날이란 말이야.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난 정말 행복할거야.”

 

친구가 나와 함께 해도 좋지만 친구가 잘 되서 나와 다른 사람이 된다면 더 좋겠다는 말

 

4. 지속 가능한 우정: 오늘의 우정을 내일로

 법칙 8. 모두가 외면할 때 손을 내밀자

 법칙 9. 함께 가자

 

168

네 말이 맞다. 네가 나와 같은 사람이 된다면 어머니는 굶주리다 돌아가실 것이다. 하지만 너는 나와 다르다. 나는 몸이 약해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할 수 없다. 그래서 책을 읽는 것이다. 너는 몸이 튼튼하다. 그러므로 어머니를 봉양하면서도 책을 읽을 수 있다. 너는 나보다 훌륭한 자질을 지녔다. 그래서 너에게 자꾸 권하는 것이다. 너라면 할 수 있으니까. 나 같은 사람을 본받으라는 말이 아니다. 내 스승을 찾아 뵙는 것은 어떻겠느냐? 그분에게 가르침을 받으면 너의 삶이 달라질 것이다.”

 

임간은 스승에게서 <소학>을 빌려 와 임보에게 읽어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시큰둥해 하던 임보였지만 몇 장을 계속해서 읽어 주자 표정이 달라졌습니다. 임간은 거의 일주일 동안 임보를 쫓아다니며 책을 읽고 내용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기를 며칠 후, 임보가 형의 손을 꼭 잡고 말했습니다.

너무 좋습니다. 형의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평생을 잘못 살 뻔 했습니다. 형은 저를 속이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 임보는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책부터 펼쳤지요. 책을 읽고 또 읽은 후에는 임간의 스승을 찾아가 공부를 했고요.

몇 년 후 임보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를 봉양하면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거든요. 행동 하나하나에 신중함이 깃든 사람이 되었습니다.

 

178

고등학교에 가지 않겠단다.”

비로소 지난 한두 달간 이 집안을 휩쓸었던 낯선 기운의 정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삼촌, 난 왜 친구가 없을까?”

어찌 되었건 나는 녀석이 그 말을 했던 이유가 단지 친구의 부재를 아쉬워하는 마음 때문만은 아니라고, 분명 뭔가가 더 있다고 줄곧 생각해 왔습니다.

너와도 의논할까 했는데 기형이가 반대했다. 늘 삼촌한테 기대는 게 버릇이었는데 이제 스스로 결정을 내려 보겠다고 하더라.”

스스로 결정을 내려 보겠다…….”

마음 한구석이 뜨거워졌습니다.

 

스스로 결정을 내려 보겠다. 대견하면서도 서운한 말, 상대가 성숙해졌음을 알려주는 말. 상대가 나를 넘어섰음을 깨닫는 말.

 

180

“……아이는 절을 견디지 못했다. 시내에서 물을 긷다가도 멍하니 달을 보았고, 차를 달이다가도 꽃에 한눈을 팔았지. 새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면 한숨을 쉬었고, 바람이 세차게 불면 꼼짝 않고 서서 바람을 맞았다. 산에 살면서 산 아래를 보는 아이를 더 잡아둘 수 없던 늙은 중, 김교각이 뭐라 했을까?”

 

아이를 불러 가라, 했다. 아이는 챙길 것도 없는 짐을 쌌지. 초라한 짐을 들고 김교각 앞에 섰지. 김교각은 아이에게 다시 한번 가라, 했다.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지. 늙은 중은 아이에게 눈물을 훔치라, 했다. 산 아래로 내려가면 산에서의 일은 다 잊을 것이니 눈물일랑 훔치고 어서 가라, 했다. 아이가 등을 돌렸다. 고개도 들지 않고 등을 돌렸지. 아이에게 늙은 중은 괜찮다, 했다. 자기에겐 안개와 노을이 있으니 괜찮다, 했다.”

 

아이의 모습이 사라진 뒤에도 김교각은 하늘을 보며 혼자서 괜찮다, 했다. 하늘이 어두워지도록 혼자 서서는 괜찮다, 했다. 이 글을 처음 읽었을 때 난 한참을 울었다.”

 

아이를 떠나 보내는 마음. 때가 되면 아이를 떠나 보내야 한다.

 

182

경보여, 나 박지원과 그대와의 인연은 참으로 공교롭고도 오묘합니다. 누가 우리를 만나게 한 걸까요? 우리가 친구로 만났다는 것, 이는 참으로 보통 인연이 아닙니다.

그대가 먼저 태어나지도 않고 내가 뒤에 태어나지도 않아 우리는 같은 세상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대가 흉노족이 아니고 내가 남쪽의 오랑캐가 아니라 우리는 같은 나라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대가 남쪽에 살지 않고 내가 북쪽에 살지 않아 우리는 한마을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대가 무인이 아니고 내가 농사꾼이 아니라 우리는 글 읽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어찌 보통 인연이겠습니까? 이렇듯 큰 인연을 지니고 있다 해서 상대방 말에 무조건 동조하거나 상대방 행동을 무조건 따라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럴 바에야 옛사람과 벗하거나 후세 사람을 기다리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나의 친구여, 나날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나 또한 나날이 나아갈 테니.

 

183

늘 삼촌한테 기대는 게 버릇이었는데 이제 스스로 결정을 내여 보겠다고 하더라.”

조카 녀석이 내게 와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상세히 말했더라면 나는 기뻐했겠지요. 울며 한숨 쉬며 속내를 털어놓았다면 분명 나는 훈계와 충고를 아끼지 않았겠지요. 하지만 스스로 결정을 내리겠다는 녀석의 말은 나를 더 기쁘게 합니다. 약간의 서운함도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보다는 대견함이 큽니다. 녀석은 삼촌인 내가 방황하는 사이 당당한 어른이 되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보다도 훌륭한 어른으로 말입니다.

 

스스로 결정을 내린다는 것 훌륭한 어른이 되었다는 것

 

188

친구가 죽었어도 학교 풍경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렇듯 담담한 혹은 무심하고 어색한 풍경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그랬습니다.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버린다는 개념은 그 당시에만 해도 무척이나 낯설었으니까요. 그렇기에 학교는 그저 쉬쉬하고 넘어가기 급급했고, 아이들 또한 학교의 분위기에 암묵적으로 동의함으로써 자신들에게 닥친 당혹감을 지우려 했습니다.

나는 어땠을까요? 처음에는 친구의 죽음을 믿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거짓말 같았거든요. 다리에서 뛰어내린 친구의 시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오로지 그 사실에 의지했습니다. 시신이 없으니 죽음도 없다는 논리로 내 마음을 방어했지요. 나는 친구가 그 차가운 강을 빠져나가 어딘가로 사라졌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친구의 죽음을 잊었고 친구에 대한 기억을 하나하나 지워 가며 중학교 시절을 끝냈습니다. 하지만 나는 결코 친구의 죽음을 잊지 못했습니다. 친구에 대한 기억 또한 지우지 못했습니다. 친구의 죽음과 기억은 잊힐 듯하면 되살아났습니다. ‘우정 지속의 법칙을 쓰게 만든 것도 그 죽음의 기억이었지요.

 

190

무라고 말해야 하나? 정확히 표현하긴 힘든데 아무튼 진수가 떠난 뒤로 학교가 싫어졌어. 학교의…… 진짜 모습이 보였어. 그게 날 두렵게 만들었어.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진수는 닫혀 있던 내 눈을 뜨게 해 준 거야. 그 동안엔 진수가 늘 곁에 있어서 그걸 몰랐던 거야. 그래서 결심했어. 이 나라에서…… 더 이상 학교 같은 건 다니지 않기로.”

 

부모의 기대와 학교의 강요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한 친구와

부모의 기대보다 자신의 선택을 믿고 강요를 그만두는 조카

 

 법칙 10. 함께하는지금을 즐기자

 

 일종의 후일담: ‘우정의 끝에 대해

 

203

친구가 많은 자에게는 친구가 없다 아리스토텔레스

 

204

내 친구는 오래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나와 친구의 우정은 그것으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친구는 내 인생 내내 나와 함께하며 내가 가야 할 길을 알려 주었습니다. 오늘날 내가 얼치기 작가라도 된 것은 어쩌면 친구 덕분인지도 모릅니다. 여태껏 나는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이제 나는 친구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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