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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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기획안>
제목: 다시 하게 된 결혼
부제: 재혼 수업
한 줄 책 소개: 수 많은 그 남자와 그 여자는 재혼을 선택한다. 매년 결혼하는 부부의 20%이상이 재혼이란다. 하지만 통계자료로 존재할 뿐 그들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재이혼율이 높다’는 기사만 보일 뿐이다. 그들은 왜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하지 않을까? 맘 놓고 이야기할 공간이 없는 것일까? 사회적인 선입견이 두려운 것일까?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를 일부나마 이 책에 담고 싶었다. 개인의 이야기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 우리의 이야기가 되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저자소개: 엄마는 싱글맘, 아버지는 재혼남. 둘 사이를 천륜이라는 이름으로 오가며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온전한 가정을 갖는 것이 지상 최대의 꿈이었다. 그런 내가 재혼을 하게 될 줄이야! 처음부터 재혼을 꿈꾸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삶의 몫이었다. 치열한 삶의 다른 이름 이혼과 사랑의 또 다른 이름 재혼을 하게 되면서 조금 더 아프고 깊어진 인생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행복한 재혼 생활에서 뭔지 모를 갈증도 함께 있었다. 그 갈증은 안개 속을 헤매는 것처럼 답답하고 암담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재혼에 대한 이야기를 세상의 자식으로 꺼내 놓아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수 많은 재혼 커플이 나와 같은 갈증에 허덕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려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 책의 특징: 재혼한 부부의 이야기를 남편과 아내의 시각에서 그리고 부모와 아이의 시각에서 바라보았다. 서로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대상 독자층: 30~40대의 자녀가 있는 재혼 가족들.
목차:
프롤로그: 재혼 전성시대
흔들리는 결혼 & 흔들리는 재혼
결혼을 또 한다고?
재혼의 조건
600억의 사나이
우리는 폭탄제거반
두 번째 결혼의 첫 번째 결혼기념일
알고 보니 새엄마
진정한 빈말
통과의례
다리미가 필요해
‘다름’의 두 얼굴
‘유령(Ghost)’과 함께 살기
돌아오지 않는 부메랑을 날리다
재혼의 비애
재혼의 행복
우리 ‘재혼계약서’ 써 볼까요?
내탓? 남탓?
팥쥐엄마 콤플렉스
천륜의 길을 오가는 아이
아들의 카운셀링
동지애
쉿! 비밀이에요
처음처럼, 친구처럼
통과의례
새엄마라 더 좋아!
에필로그: 특수가 보편에게
서문:
“결혼식 잘 치르셨어요?”
“잘 모르겠어요. 기억이 안나요. 좀 떨렸나봐요.”
“어머, 그래요. 그럼 다음 번에 할 때는 좀더 잘 하세요.”
“네~~~?”
그 일이 있은 후 14년이 흘렀다. 더 이상 뜨거울 수 없을 것 같은 내 피의 온도와 심장의 박동을 주체할 수 없게 되던 어느 해, 두 번째 결혼을 하게 되었다. 마치 첫 번째 결혼에서 헤라 여신의 계시를 실천하듯이 말이다. 인생을 살면서 재혼을 꿈꾸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삶의 풍랑이 갖다 준 결실이었다. 두 번째 결혼은 처음과 많은 것이 달랐다. 나이가 많아졌고, 배우자의 자녀를 받아들이는 일이 동반되어야 했다. 하지만 두려울 것이 없었고, 죽음 앞에 가장 선행되어야 할 가치였기에 두 번째 결혼을 선택하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행복이라는 것의 맛을 알게 된 선택이었다. 그 동안 알지 못했던 맛을 인생은 마치 아껴 두었던 종합선물세트를 선물하듯이 한꺼번에 갔다 주었다. 골라먹는 재미와 호기심을 채워주는 다양함이 있었다. 하지만 그 종합선물세트에는 판도라의 상자처럼 맨 마지막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있었다. 처음에는 새로운 변화에 정신이 없어 잘 몰랐지만, 감당해야 할 것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제 모습을 또렷이 보였다. 쌓이는 추억만큼 같이 하는 역사만큼 커가는 답답함의 존재들이 있었다. 개인의 문제라고 치부해버리던 그 어느 날, 그것은 다름 아닌 재혼 가정에서 겪어야 하는 성장통과 같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 무겁고 심오한 주제로 글을 써야 되겠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이기도 했다. <다시 하게 된 결혼이야기>는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나와 비슷한 길을 걸었을 세상의 많은 그 남자 그 여자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때로는 답답함이 가슴을 짓누를 때, 무엇 때문인지, 왜 그런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조차 알 수 없이 오롯이 혼자 감당하는 법을 선택했다. 또 다시 실패하면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주입시키며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혼자 삼키고 삼키면 해결되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삼킬 것이 아니라 뱉어내야 함을 알게 되었을 때, 소통과 공감의 본능이 찾아 들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 놓는 것이 무슨 의미냐고?’ 혼자 감당한다는 것은 외롭게 성을 지키는 파수꾼과 같다. 인생의 풍랑을 겪고 도달한 막다른 골목에서 느껴지는 허탈함과 답답함은 당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그 동안의 시선과 생각을 과감히 탈피하고 문제를 풀어나가는 법을 공유하고 싶었다. 정답은 없지만 같이 나누고 공유한다면 올바른 길을 찾아 갈 지혜도 용기도 주어지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집을 가는 길목에 공동묘지가 있었다. 그곳을 혼자 지나가기 위해서는 심호흡이 필요했으며 마음을 단단히 먹는 준비작업이 필요했다. 그래도 혼자 걷는 다는 것은 꽤나 힘들고 공포스러운 일이었다. 두려움이고 버거움이었다. 하지만 친구와 같이 걸으면서 알게 되었다. 그 길이 즐거울 수도 있다는 것을.
“인류가 알고 있는 인간관계 중 가장 복잡하고 까다로우며 부자연스러운 관계” -심리학자 윌리엄 머르켈
“보스턴 지도를 가지고 뉴욕 시내 거리를 찾아 다니는 것과 같다.”-페이퍼나우-
재혼가정의 어려움을 두고 이르는 말들이다. 저마다의 목구멍으로 문제를 삼켜버린 다면 그것은 마음 속에 공동묘지를 품고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는 이야기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야기로서의 존재의 가치를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만큼 삶의 모습도 다양해진 요즘이다. 사전의 지식 없이 받아들인 재혼에서 그리고 무턱대고 가진 결혼의 환상에서 지혜로워 지는 방법은 공유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서로 다른 모습이 어우러져 ‘우리’라는 이름으로 아름답게 피어나기 위한 전제조건이라 생각한다.
꼭지글 1: 재혼의 조건
재혼의 조건
혼자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전 배우자에 대한 평가가 거의 같다. 사별한 배우자는 주로 신성시되거나 숭고한 인물로 묘사되는 반면에, 이혼한 배우자는 ‘미치광이’나 ‘나쁜 놈’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 또한 이런 시간들이 있었다. 분명히 나의 선택이었고 한 때는 좋아했던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내 입에서 나오는 그에 대한 이야기는 괴물처럼 묘사되곤 했다. 속에 무엇인가를 담아 두지 못하는 성격이기에 주변의 친한 사람들을 만나기만 하면 신세한탄과 그에 대한 욕을 있는 대로 쏟아냈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속이 시원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계속 반복되는 이야기 속에서 나는 뭔가 불편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혼을 한다는 것은 지긋지긋하던 그와의 혼인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부부의 관계가 정리 된다고 해서 내가 한 결혼 생활 자체를 백지화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계속 되는 험담 속에서 내 선택과 내 삶의 한 부분을 부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말끔히 사라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야기 속에 난 괴물과 같이 살다 가까스로 도망쳐 나온 가엾은 공주였고, 그 괴물과 같이 사느라 심신이 상처받고 지쳤다는 이야기를 무슨 영웅담처럼 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괴물을 선택한 것도 나였고, 그 사람이 괴물같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어떻게든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고 애쓴 것도 내가 아니던가? 그러는 과정에서 상처와 분노가 더 커진 것이 아니던가? 결국은 모든 선택의 중심에는 내가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헤어질 수 밖에 없는 모든 이유를 그의 습관이나 나쁜 성격때문이라고 치부해야 속이 시원할 줄 알았는데, 그 모든 것을 선택한 것이 나라니. 참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에 대한 분노를 넘어 나에 대한 분노로 화살 시위가 당겨졌을 때, 그 허망함은 어디가서 말로 표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도 피해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만났더라면 그런 괴물의 모습을 하고 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쯤 미치니 억울하기도 하고 바보같기도 한 힘들었던 시간들을 탓할 수가 없었다. 그냥 그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조금 더 지혜로워 지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 옳다는 판단이 들었다. 아무리 억울하다고 가슴을 쳐 보아도 결국은 내 가슴이었고, 멍드는 것도 내 가슴이니 달리 도리가 없었다.
죽음학으로 유명한 의사 퀴블러 로스는 ‘죽음을 인정하는 다섯 단계’를 정의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들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하지만 이는 이별을 받아들이는 과정과도 비슷한 듯 하다. ‘부정 → 분노 → 타협 → 절망 → 수용’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든 천하에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원수 같은 사람과의 이별이든 우리는 두 번째 단계인 ‘분노’에서 멈춰있는 사람을 많이 보게 된다. 물론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긴 하지만 그 단계에 오래 머무르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또 한번 자신으로부터 상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상황을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꼭 필요한 길이 아닐까? 나는 이것이 ‘재혼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돈이나 건강을 준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중요하다면 자기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냉정한 판단과 수용을 하는 것은 어떤 조건보다도 선행되어야 하는 ‘재혼의 조건’ 말이다. 지난 결혼 생활에서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라는 것이 인지가 되어야만 똑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일은 없어지리라 생각된다.
꼭지글2: 600억의 사나이
‘그 놈이 그 놈이다. 믿을 만한 놈 하나 없다’라는 안경을 쓰고 살면서도 굳이 나가게 되는 소개팅 자리는 ‘백마탄 왕자’에 대한 환상일까? 아니면 그 환상을 깨기 위한 것일까? 동화책과 현실은 다르며 드라마와 현실 또한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혼자되어 자유를 만끽하던 어느 날, 데이트 정도 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소개팅을 시작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평생을 같이 할 남자라면 옷깃만 스쳐도 알 것 이라는 예지력을 조물주는 선물해 줄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소개팅을 일체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인생의 모든 존재의 이유와 목표가 사랑이었기에 나에게도 백마탄 왕자는 아닐지라도 운명의 남자가 짠하고 나타날거라 생각했다. 소개팅은 웬지 인공조미료를 잔뜩 친 듯한 느낌을 주었기에 거부감이 들었다. 운명이라면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내 앞에 나타나리라는 어이없는 생각은 만화책으로 사랑을 배운 휴유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이 먹고 이혼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누군가를 만나려니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영 모르겠다. 일단 친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이제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졌다고. 남자를 보는 나의 feel과 판단력을 믿을 수 없었기에 남의 판단에 의지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feel만 믿었다가 혹독한 수업료를 치르지 않았던가? 대학시절에도 절대 하지 않던 소개팅은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도 어느 정도 내려 놓고 세상을 좀 살다가 하는 소개팅은 ‘남자가 다 그렇고 그렇지 뭐’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나가게 되는 자리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던 언니로부터 소개팅 제안을 받았다. ‘그래, 어느 구름에 비 들었는지 모르니 무조건 만나보자’라는 심정으로 흔쾌히 오케이를 불렀다. 전화번호만 주면 둘이 만날 텐데, 굳이 양쪽의 소개자까지 포함해서 4명이 만나잔다. 그것도 일식당에서. 여기서 누군가 피식하고 웃을 텐데, 한번 나이 들어 해보시라, 갈 곳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적당히 술이 곁들여야 분위기도 흥겹고 좋을 듯해 소개자 양쪽이 머리를 맞대고 고른 자리였다. 약속한 시간에 맞추어 갔는데 남자 쪽은 아직 도착전이었다. 퇴근시간에 걸려 막히는 길 때문에 15분 정도 늦게 도착을 한 일행이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한 명은 맞선 남, 한 명은 소개팅 주선자가 분명한데, 둘 중에 누가 맞선 남일까? 순간적으로 모든 feel을 가동시켜 안테나를 세웠다. 같이 온 언니한테 직업과 나이 그리고 먹고 살만하다는 것 이외에는 전혀 들은 것이 없었던 터라 안테나를 가동시켜봤자 헛수고였다. 그렇다면 촉에 맡기는 수 밖에. 한 남자는 인상이 서글서글하고 덩치가 다부지다. 다른 남자는 완전 조폭의 두목처럼 험상궂은 인상에 덩치도 남산만하다. 언뜻 봐도 무서워 보이는 인상이다. ‘설마 저 남자는 아니겠지?’하는 초조한 마음을 숨기고 있는데 맞선 남이 나를 알아보고는 내 앞에 와서 앉는다. 숨이 턱 막힌다. 무서운 인상의 그 남자였다. 이런 자리가 아니면 절대 말 한 번 붙여볼 엄두가 나지 않을 사람이었다.. 마음에서 보이지 않는 기대의 벽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럼 그렇지’.
‘그래, 회나 먹고 가자’라는 심정으로 회를 연신 입으로 집어 넣었다. 마치 생선살이 나의 기대감인 것처럼 질근질근 꼭꼭 씹어 먹었다. 질문이 날아온다. 초면에 실례를 범하고 싶지 않았고 소개팅 주선자의 안면도 있어 또박또박 대답을 해주고 맞장구도 쳐 주었다. 이 남자가 왜 4명이 만나자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마 둘만 있었던 자리라면 아무리 변죽이 좋은 나라도 얼어붙어 말도 못했을지도 모른다. 같이 따라온 주선자들이 옆에서 바람을 잡아주는 바람에 그나마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맞선 남은 나의 마음을 읽은 듯 하다. 누구보다도 자기의 덩치와 인상을 알 것이 아닌가? 내가 가장 흥미진진하게 생각하는 상황은 ‘반전’이다. 반전의 매력이 넘치는 사람에게는 마음이 약해진다. 호기심이 갑자기 왕성해지기 때문이다. 내 앞에 앉은 험상궂은 이 남자, 가만히 보니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애교와 유머감각이 있다. 처음 보았을 때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마음이 좀 녹아 몇 시간을 마시고 웃다가 헤어졌다.
며칠 후 연락이 왔다. 점심을 먹기 위해 만났다. 맞선 남은 나를 경치 좋은 곳으로 데리고 갔다. 내 덕분에 드라이브 한다며 헤헤거리는 그의 모습에서 바쁜 일상이 그려졌다. 그가 심혈을 다해 고른 메뉴는 다름아닌 ‘닭죽’이었다. 데이트에 닭죽이라…..나이를 먹으니 데이트 하는 것도 다르구나! 그래, 나이 먹고 힘도 부치는데 보양식이나 먹자. 하기야 결혼 후에 살려고 노력했을 것이고, 이혼은 삶의 다른 이름이 아니던가? 그러니 서로가 서투를 수 밖에. 닭죽을 같이 마주하고 앉아 있자니 웃음이 났다. 쌀과 닭살로 범벅이 된 죽을 보며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고 있을 때 거구의 남자가 말을 꺼냈다. 내가 마음에 든단다. 둘 다 두 번 실패할 수 없으니 6개월은 만나보자고 한다. ‘그래 나 정도면 당연히 괜찮지. 사람 보는 눈은 있어가지구!’
그가 갖고 있는 반전의 매력에 끌려 3번인가 4번을 만났다. 척 보면 다 안다는 착각과 오만에 빠져있던 나로서는 기네스북에 올라갈 횟수이다. 나를 끌리게 하는 것에는 반전의 모습도 있었지만 무시할 수 없는 그의 배경도 한 몫 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재력가였다. 첫 번째 결혼에서 쩐의 전쟁을 살벌하고 치열하게 치른 나는 그의 배경이 당연히 매력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반전 매력보다도 그의 배경이 더 크게 어필이 되었던 것 같다.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속물근성이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내가 이렇게 생겨먹은 것을 어떡하리오’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주지도 않는 김칫국을 사발 채 들이마시며 상상의 나래를 펴기도 했다. ‘내가 만약 그 집의 안방 마님이 된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까?’ 돈 네 이놈! 네가 무엇이길래, 사람의 마음을 이리 어지럽히느뇨? 돈 앞에 내가 이렇게 맥빠지게 흔들릴 줄이야! 그 동안 혼자 깨끗한 척, 고고한 척 하더니 드디어 껍질을 벗는구나!
그 한테는 뜨문뜨문 연락이 왔다. 사귄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지금 그의 회사는 너무도 중요한 순간이기에 이해를 해달라고 말했지만, 그는 지독한 워커홀릭이었다. 항상 일순위가 일이었다. 도대체 소개팅 자리에 왜 나왔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였다. 둘 다 필요에 의해 그 자리에 나간 것은 맞지만 나는 사랑이 절실했고, 그 사람은 간간이 남는 시간을 채우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누군가를 만나고 있으나 마음에 들어서지 않는 그의 존재감, 나에게 관심은 있다고 하나 느껴지지 않는 그의 마음. 스스로에게 몇 개의 질문을 던졌다.
Q.. 배경을 제외해도 매력적인가?
Q.. 평생을 연인처럼 친구처럼 지낼 수 있을 만큼 코드가 맞는가?
Q.. 돈이 필요한 것인가? 사랑이 필요한 것인가?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있는 질문이 하나도 없었다. 특히 마지막 질문에서는 더 그랬다. 대답을 찾는 과정에서 마음이 정리가 되었다. 돈이라는 요물은 내 손으로 번 것도 지키기 힘든 법인데 남의 주머니에 있는 것이 아무리 크다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돈이 많은 사람과 결혼을 한다면 명품은 실컷 걸치겠지만, 그것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재혼일수록 둘 사이의 소통이 최우선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는 자식을 낳고 키우는 재미로 살 수 있을 나이가 아니지 않은가? 그 놈의 사랑은, 열렬하다가도 세월이 지나면 금방 얼굴을 바꾸어 버리는 위인이 아닌가? 그러기에 지금이라도 뜨거워야 힘들 때마다 그 추억을 들여다 보며 살 일이 아닌가? 여자가 가장 좋아하는 남자는? 자신을 위해 순정을 바치는 남자란다. 나 또한 그랬다. 그렇다고 명품에 별 관심도 없는 내가 아닌가? 그래, 600억이 아깝긴 하지만, 인연이 아닌 것을 어떡하리오. 이 사람과는 닭죽과 도미회만을 같이 먹을 인연인것을!
꼭지글3: 알고 보니 새엄마
대부분의 여성들이 겪게 되는 ‘출산’이지만 나에게는 동경이었고, 가슴앓이였고, 이루지 못한 소망이었고 그리고 본능을 거스르는 고통이었다. 원치 않는 불임. 여자로서 이 보다 더 한 고통이 있을까? 이것은 내가 아는 가장 가혹한 형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창살 없는 감옥에서 받고 있는 형벌을 남편을 만나면서 면제받게 되었다. 남편 덕에 아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중학교 1학년을 거의 다 지낸 어느 겨울. 누구나 두려워하는 ‘중2병’을 목전에 둔 나이 때 아이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여자로서 40년 동안 기다리고 갈망해왔던 ‘엄마’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고 아이들과 통하는 비밀의 열쇠를 예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의 염려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 있었다.
언제부턴가 친구들을 만나면 늘 대화의 중심에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입은 닫고 귀만 열어 놓아야 했다. 불편한 내색을 하면 행여나 친구들이 언짢을 까봐 아무렇지도 않은 척 같이 웃으며 맞장구를 치기도 했다. 친구들은 말했다. ‘아이가 없는데도 너랑 이야기하는 것이 편해’라고. 그러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선행되어야 했는지 아마 친구들은 몰랐을 것이다. 비어버린 한쪽 가슴을 들키지 않기 위해 무던히 표정관리를 했다는 것을. 모임을 파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 나의 초라함을 달래주려 한 노력들을. 그것은 프랑스에 다녀 온 적이 없으면서도 그 여행 모임에 나가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왜 그렇게까지 했냐고 묻는 다면, 사람을 좋아하는 나에게 엄마가 되지 못한 슬픔에 친구까지 없는 외로움을 감당하는 것은 너무도 잔인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같이 대화에 동참할 수 있게 되어 더 없이 기쁠 따름이다.
처음 아이와 전화 통화를 하게 된 날, 전화를 끊고는 숨죽여 울었다. 밝고 당돌한 목소리, 그리고 시작된 우리의 인연은 생각지도 못한 감정들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운명은 말문을 닫고 수용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우리는 토를 달 이유도, 겨를도 없이 서로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적어도 겉으로는 편안해 보였다. 재혼 가정의 특징 중에 하나는 자녀가 결혼 전에 결정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고, 엄마라는 자리 또한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다 얻은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불려 진다는 것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엄마가 되는 일도 처음에는 생각보다 난감했다. 이제까지 같이한 추억과 역사가 없기에 공감대를 찾는 것이 몹시 힘이 들었다. 갑자기 나타난 큰 아들과의 코드를 찾는 일은 미로처럼 어지럽고 안개 속에서 헤매는 것 같이 불투명했다. ‘진심 어린 말과 행동만 하자. 형식을 내세우거나 가식을 앞세우지 말자.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자.’ 라는 나름의 룰을 정하고 나서야 마음이 편안해 질 수 있었다.
남편과 아이의 예전 모습이 궁금했다. 사랑은 그 사람의 옛날 모습도 알고 싶게 만드는 법이니까. ‘같이 하지 못한 과거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기대와 함께 앨범을 찾았다. 거실에 있는 장식장의 서랍문을 열자 그곳에 내가 찾는 물건이 바로 있었다. 그것을 두 손에 들고 한장한장 넘기기 시작했을 때의 설렘이란. 그런데 앨범 곳곳에 존재하는 뜻 밖의 얼굴. 남편 옆에 서 있는 한 여인. 아이와 같이 있는 그 여인. 당혹감에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왜 그런지 심장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마치 나쁜 짓을 몰래 하다가 걸린 것처럼. 그래도 손에서 놓아지지 않는 앨범. 남편의 이야기 속에 존재하던 원망과 상처의 주인공이 그곳에 있었다. 재혼은 이혼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혼은 결혼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초등학생도 뻔히 아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때, 말로만 듣던 존재를 확인하게 될 때, 엇나간 질투와 삐딱한 호기심은 가슴 한 복판에 강한 펀치를 날렸다. 바로 가정 연구학자들이 말하는 ‘유령’의 실체를 확인하게 되는 날이었다. 같이 살지 않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따라다니며 힘을 발휘한다는 그 유령 말이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전 사람의 사진을 치워주는 배려는 기본적인 것 아닌가?’ 하지만 곧 깨달았다. 사진 속의 여자는 남편의 배우자이기도 했지만 아이의 엄마라는 것을. 사진은 역사이다. 아이의 역사 속에 엄마가 없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아이의 백일, 아이의 돌, 그리고 가족 나들이. 남편과 단 둘이 찍은 사진이 없는 것을 보니 이미 한 번은 정리가 된 듯하다. 누군가의 엄마가 된다는 것은 그 이전의 역사를 모두 수용하고 인정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나같은 새엄마들의 숙명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새엄마’ 였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는 기쁨은 그 자리가 새엄마라는 것을 빠른 시간 안에 알게 해주었다.
한 남자와의 사랑을 선택한 자리에는 아내 말고도 ‘새엄마’의 자리가 있었다. 배가 아프지 않은 대신에 큰 아들을 얻은 대가로 ‘새엄마’. 라는 이름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로만 듣던 유령의 실체를 보고 새엄마라는 나의 자리를 확인하게 된 하루였다. 이런 복잡한 마음을 남편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퇴근했을 때 활짝 웃어 주었다. 그 동안 숱하게 해왔을 마음 고생에서 편안해 진지 얼마 되지 않은 남편이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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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72 | 재혼의 조건 | 왕참치 | 2015.03.23 | 22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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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70 | 출간기획안과 출판사목록 [6] | 앨리스 | 2015.03.22 | 2239 |
4569 | #48 치곡 | 정수일 | 2015.03.22 | 2194 |
4568 | #47 아날로그형 인간 [1] | 정수일 | 2015.03.16 | 2268 |
4567 | 몰입의재미_구달칼럼#50 [2] | 구름에달가듯이 | 2015.03.16 | 1960 |
4566 | 그런 저녁. [2] | 에움길~ | 2015.03.16 | 2016 |
4565 | 메기와 미꾸라지 [4] | 왕참치 | 2015.03.16 | 2832 |
4564 | 새로운 친구가 필요해!? [3] | 앨리스 | 2015.03.16 | 2130 |
4563 | 여행의 기술 [6] | 어니언 | 2015.03.09 | 2125 |
4562 | 세상을구할3가지_구달칼럼#49 [6] | 구름에달가듯이 | 2015.03.09 | 2033 |
4561 | 인간을 믿어라, ‘실험과학’이 아닌 ‘도덕과학’을 [2] | 에움길~ | 2015.03.09 | 1973 |
4560 | 있는 그대로 [6] | 왕참치 | 2015.03.09 | 2078 |
4559 | 나는 무슨 일하며 살아야 할까? [6] | 앨리스 | 2015.03.08 | 2632 |
4558 | #46 그래도 다행인거지_정수일 [6] | 정수일 | 2015.03.08 | 1984 |
4557 | #46 - 세상을 구할 세 가지 - 이동희 [5] | 희동이 | 2015.03.07 | 2075 |
4556 | 3-43. 4차 이식을 마치고 보름달 [1] | 콩두 | 2015.03.07 | 4992 |
4555 | 3-42. 4차 이식날 봄 기차에서 | 콩두 | 2015.03.07 | 2570 |
4554 | 3-41. 우리집 당호 수오재(守吾齋) [2] | 콩두 | 2015.03.07 | 3767 |
4553 | 회피하고 싶었던 일을 직면하는 것의 즐거움 [3] | 녕이~ | 2015.03.02 | 2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