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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23일 10시 41분 등록

삶은 홀수다_구달리뷰#48

김별아 산문

한겨레출판

 

1. 저자에 대하여

 

김별아제일 좋은 부모는만만한 부모입니다

외로웠던 시간이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
김별아 『삶은 홀수다』 삶이 풍요로워지는 한 가지 방법
꿈은 망연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

 

아버지와 어머니가 떠난다. 아들만 덩그러니 내려놓는다. 자전거를 내려 자전거에 타라고 말한다. 아들을 독립시키기로 결정한 부모다. 네 인생, 네가 사는 거야. 다른 사람들이 네 인생에 끼어들게 하지 마. 이런 말, 건넨다. “We all love you. Now go out there and make a difference, your mother and I tried. And don't let anybody tell any different.” 도피 중인 반전운동가 부모는 히피처럼 떠돌아다녀야만 했다. 아들은 그런 부모를 어쩔 수 없이 따라야했다. 그러나 어느덧 10대 후반이 된 아들, 부모는 아들을 세상 속으로 방생한다.

나는 그 아들의 미래가 궁금했다. 그러나 불안하진 않았다. 그는 누구도 아닌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이니까. 지난 11 28, 김별아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허공에의 질주>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19년 전, 10월의 마지막 날 떠났던 리버 피닉스의 눈빛이 말하고 있었다. ‘홀수여도 괜찮아!’ 최근 개봉했던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늑대아이>도 겹쳐진다. <늑대아이>는 또 다른 홀수적 삶을 이야기한다. 늑대와 사람 사이에서 늑대로 살기를 선택한 아이, 엄마를 떠난다. ‘헬리콥터 부모가 판을 치는 지금, <늑대아이>는 동물의 감수성이 본디 홀수임을 거듭 확인한다. 제 몫의 사냥을 할 수 있는 때가 되면, 독립된 개체로 살아가는 것.


부모를 극복하는 것, 홀수의 삶을 위해 필요하다


김별아 작가는 최근 4천원 인생』을 읽었다. 기자들이 최저임금을 받는 공장, 식당 등에위장취업을 하고 쓴 수기다.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전기밥통을 만드는 공장에서 납땜을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공장에 동갑내기가 있었다. 생일잔치 한다고 집에 놀러갔는데, 역시 동갑인 동네 점쟁이도 왔다. 8세에 무당이 됐고, 예쁘고 눈이 말간 친구였다. 그 친구가 나에게, ‘넌 여기 있을 애가 아닌 것 같다고 하는 거다. 들키는 줄 알고 이야기를 만들었다. 부모가 이혼했고, 집안이 파탄 났다는 엉터리 이야기를 지었다(웃음). 뭘 했으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손으로 하는 일을 하라고 하더라. 미용을 해보라고 하더라. 올해 작가 20주년을 맞았다. 머리를 예쁘게 해줘서 한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게 더 가치 있는 일이 아닌지 가끔 생각한다. 독자들에게 그런 기쁨을 줄 수 있는지 늘 고민이다.”

『삶은 홀수다』는 신문에 연재한 칼럼을 모으고, 덧붙였다. 그는 제목을 달면서 자신을 돌이켜보니, 어렸을 때는 외톨이였고, 자폐증적인 면도 있었다. 한 마디로, ‘어두운 아이였다. 유일한 친구가 책이었고, 열일곱에 문학을 만나면서 새로운 계기가 만들어졌다. 문학을 알게 됐다는 건, 세상에 홀로 서는 것이 두렵지 않다는 것과 동의어였다. 성격적으로 아버지를 많이 닮았었는데, 부딪히기도 엄청 부딪혔다.

딸들은 아버지의 지지가 절대적인 것 같다. 딸이 자기 이름과 목소릴 갖고 사는 데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중요하다. 딸을 옹호하고 지지하는지, 상처를 주는 존재인지에 따라 차이가 드러난다. 부모와의 문제를 극복하는 게 중요하다. 홀수라는 건, 자기 자신으로 서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나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 되니, 부모한테 고마운 부분이 있다. 어머니는 내게 감정의 쓰레기통과도 같았다. 학교에서는 나는 학교에선 모범생이었지만, 내 안에서는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서 어머니에겐 폭군으로 군림했다. 부모는 아이에게 허들과 같은 존재다. 너무 높으면 걸려 넘어지기 쉽다. 부모에게 효녀효자들 중에 실은 괴롭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 많다.”

그는 반항하는 아이들이 건강하다고 강조한다. 통과의례를 잘 거치기 때문이다. 마흔 넘어 회사에서 쫓겨날 지경인데도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황하는 사람 부지기수다. 그가 만난 칠십 넘은 독자 중에도 방황하는 분이 있었다고 전한다. 공통점? 착한 아이였다는 것! 그런 많은 경우, 부모는 강한 분들이거나 자식에게 죄책감을 주거나 다른 아이와 비교를 했다. 아이들의 많은 문제는 부모에서 비롯된다.

제일 좋은 부모는만만한 부모. 내 부모도 나를 꺾지 않았다. 아버지와 여러 번 싸움을 하고 박차고 나왔지만, 내 자리를 부모가 치우지 않았다. 나를 지지했던 거다. 건강한 홀수의 삶을 위해 부모를 극복해야 한다. 각자의 이야기나 상처가 다를 테니, 그건 평생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인간은 약하고 어리석은 존재라, 원하는 건 인정받는 것 하나다. 최초의 양육자가 그래서 중요하다. 한 사람이 믿고 지지해주면, 그 사람은 훼손되지 않는다. 그게 대부분 부모인데, 믿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끊임없이 흔들린다. 온전하게 나 자신으로 건강하지 못하면 옆에 사람이 있어도 외롭다. 친구 속에서, 군중 속에서, 연애하면서도 그렇다.”

글을 쓰는 두 가지 욕망

김별아 작가는 글을 쓰는 두 가지 욕망을 언급한다. 하나는 자백의 욕구. 많은 사람들, 말한다. 죽기 전 내 얘기를 책 한 권으로 써보고 싶다고. 내 이야기나 가족 이야기 등을 고백하고 싶은 자백의 욕구가 누구에게나 있다. 다른 하나는 발언의 욕구이자 소통의 욕구이다. 그에겐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욕구가 학생운동을 하면서 생겼다. 물론, 그땐 몰랐다. 역사소설을 쓰고 있는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좌충우돌한 게 이런 식으로 흔적이 남았음을 느끼고 있다.

독자들이 왜 역사소설, 즉 과거를 쓰냐고 묻는다. 1991, 대학 4학년 때 총학생회 간부였다. 열사 추모 집회가 있었는데, 나는 못가고 총학생회실을 지키고 있었다. 저녁에 전화가 왔다. 학교병원에 시신이 들어가는데 받으라고 하더라. 명지대 신입생 강경대였다. 그것으로 분신정국이 시작됐다. 강경대는 학원자주화 투쟁을 했는데, 백골단(사법경찰)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서 사망했다. 시신을 탈취 당할까봐 영안실을 지켰다. 그로부터 며칠 동안 연쇄적으로 11명이 죽었다. 분신정국이었다. 난리가 났다. 자고 일어나면 영정사진이 하나씩 들어오는데, 23~24살의 나이,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우리들끼리도 서로 죽을까봐 감시를 했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왜 이런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랬다. 당시에는 서로의 영혼을 돌볼 틈이 없었다. 적은 너무 강했고, 상처를 어루만질 수가 없어서, 어루만지는 법을 몰라서, 서로 사고 칠까봐 감시만 했다. 그도 그랬다. 전날 봤던 사람이 투신을 하고 시신으로 돌아오는 나날 앞에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 달 뒤문학이냐, 운동이냐를 놓고 고민하던 상태였던 그에게 결정적 계기가 다가왔다
.

어느 날 새벽, 자신과 동갑이던 강경대 열사의 누나가 뭔가를 줍고 있는 모습을 봤다. 강경대 생전과 사후 사진이 함께 들어간 유인물을 바닥에서 줍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생각했다. ‘이렇게 모인 사람들도 다시 흩어지지 않을까? 그러면 역사에 어떻게 남고, 이 시간을 어떻게 기억할까. 내가 느끼는 슬픔 등의 복합적인 감정은 어떻게 될까. 그걸 쓸 수 있는 건 문학이지 않을까.’ 그는 다시 문학으로 갔다. 나는 역사소설을 쓰면서 과거를 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도 지나면 역사이겠고, 내가 쓸 수 있는 역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젊은이들에게저항하고 반항하라


과연 지금 젊음은 어느 자리에 있는 것일까. 그도 요즘 젊은 친구들을 만나면, 패기가 없다는 것을 느낀다. 꼰대 같은 얘긴데, 우리 때는 23~24살에 혁명을 할 거라고 여겼다. 지금은 그런 생각은 없고, 스펙을 쌓아 잘 살겠다는 모습을 주로 본다. 무기력증은 그들의 문제가 아니다. 어른이 만든 서열주의에 길들여진 까닭이다. 심리학책이 한때 많이 팔렸다. 지금 30대 초반은 조기교육 1세대로, 사교육이 일상화됐었는데, 마음이 가장 약한 세대라고나 할까. 영혼이 허기지니까, 심리학책에 기댔던 거다. 반항해라. 부모와 어른에게 저항해라. 그들이 틀리고 내가 옳아서가 아니다. 허들을 넘을 시도조차 안 하면 세상과, 내 삶과 싸우기 힘들다.”

젊은 친구들이 조로한 얼굴로꿈만 먹고 살 수는 없잖아요?”라고 되물어올 때 여전히 철없는 나는 가슴이 아프다. 꿈은 망연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p.105)

 
말이 좋아 기성세대지, 꼰대세대가멘토링이랍시고 위로하는 것들, 청춘은 개무시 해야 한다. 시큼한 냄새나 풍기는 세대들의 수작에 넘어가선 안 된다. 아프니까 청춘이고, 백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말 따위 집어치우라고 외쳐야 한다. 아프니카 청춘이고 백번을 흔들리니 머리가 아파 죽겠다고, 그동안 잘 먹고 잘 싸고 다닌 꼰대들에게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 세상이 이리 힘들게 된 것엔 청춘의 잘못은 하나도 없다. 그러니까, 의아한 것이다. 왜 청춘은 분노하지 않는가. 지금 청춘은 왜 이리 싸가지가 있는가. 돌직구를 던져야 한다.

김별아 작가는 작가 외에 다른 꿈을 안 꿨는데도 등단을 생각하지 않았다. 이른바코스를 밟지 않았다. 앞선 세대들이 만든 길을 꼭 따라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 자신의 삶은 자신이 책임지고 싶었다. 그래서 책을 먼저 냈다. 졸업 직전, 『신촌블루스』라는 단편 소설집을 내고, 글을 썼다. 권위나 절차를 거부하고 싶었다. 돌직구를 던졌다. 그러나 한 선배 문인이 별아 작가가독고다이짓 하는 것이 안 돼 보였는지, 작품을 빼앗아 문학상에 제출했고, 그 작품은 수상을 했다.
내가 생각하는 문학은, 리얼리즘은 불신에서 온다. 나는 아무 것, 아무 사람도 안 믿는다. 그래서 실망이라는 걸 하지 않는다. 기대를 안 해서. 문학은 시대와 불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끊임없이 불화해왔다. 10년을 무명작가로 살았는데, 굉장히 힘들다. 물질적, 정신적으로. 어느 장르나 냉정하게 1% 99%는 있다. 특히 예술 분야에선 발버둥을 쳐서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데, 1년에 한 권씩 책을 내도 초판을 소화하기 힘들었다. 연봉 이래봐야 200~300만 원이었다. 10년을 그렇게 살았다. 문학을 포기 않으려고 다른 걸 하면서. 직장이라고 딱 하루 아니, 반나절을 다녔다.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로 나갔는데, 점심시간 전에 알았다. 나는 남의 지시를 받을 게 아니라, 내 질서와 속도로 살아야 하는 사람이구나. 그래서 나왔다(웃음).”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여성지 프리랜서, 고스트라이터(대필작가)도 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그렇게 10년을 버텼다.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작가들 중 뛰어난 작가들도 하나둘 사라졌다. 생활고 등으로 못 견딘 것이다. 루쉰이 그랬다. 반향이 없는 작품을 쓰는 게 얼마나 공허한가.” 확신 없이 글 쓰는 것, 굉장히 힘이 든다. 그렇게 다 떨어져나갔다
.

나는 재주가 없어서 이게 아니면 할 것이 없어서 버텼다. ‘1만 시간의 법칙이니 뭐니 하는데, 문학도 10년을 버티면 뭐가 되긴 한다. 10년을 계속 쓰니, 이 작가가 뭐가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해 하고, 10년이 지나면 더 이상 다른 것을 할 수가 없다. 배수진을 치는 거지
.”

이때 중요한 것은 욕망의 다이어트!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남들처럼 살 수 없겠다는 생각에 그가 택한 방법이었다. 청년들이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그 일이 돈이 안 된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다. 그는 늘 같은 답을 해준다. 포기하라! 다만 그걸 못하면 죽겠다는 생각이 들면 하라고 말해준다. 누군가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하면 하지 말라고 말린다
.

안톤 체홉의 글에도 나온다. 아이가 나오면 글을 쓰게 하지 마라, 작가가 되면 안 된다(웃음). 남들 가지는 가방, , 차 등을 다 가지고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가 없다.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돈이 되고 성공하는 경우는 있지만, 성공하기 위해 달려간다고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다. 그렇게 달려가서 성공한다 해도 세상은 다른 식의 보상을 요구한다. 성공이라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


자신의 기준을 갖고 세상을 만날 것


김별아 작가는 문단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만의 리그가 돼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서 해야 한다고 권유했지만, 그렇게 못해서 그쪽 끈 놓았다. 남는 건 독자들뿐이었다. 그게 그의 자산이다. 변하는 유행, 작가도 그 물결을 탈 수밖에 없음을 알았다. 예전에 상을 휩쓴 작가도 퇴물이 되거나, 청탁이 안 들어오니 글도 안 쓰는 경우도 봤다. 그가 보기에, 작가는 과거형이 없다. 현역작가만 있을 뿐이다. 작가란 이름을 갖고 있어도, 더 이상 쓰지 않으면 작가가 아니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별아 작가는 그래서 이런 바람을 갖고 있다.

독자들이 최소한 자기 세대의 작가를 같이 데리고 갔으면 좋겠다. 같이 성장하고 성숙하는. 백만 부를 파는 한 명의 작가보다 만 부를 파는 백만 명의 작가가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그렇지 않다. 모두의 손해다. 한 작가가 하나의 세계거든. 그걸 지지할 수 있는 사람은 독자밖에 없다. 외로웠던 시간이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 어떤 자리에서 무엇을 꿈꾸고, 생각하는지 몰라도, 잘 견뎠으면 좋겠다
.”

그리고 여성의 30대가 무척 중요하다는 말을 건넨다. 바깥에서 제시된 성공이 아닌 내가 지금 가진 것에서 내 꿈에 얼마나 근접하느냐의 문제. 꿈을 향한 촉수나 방향을 놓치지 않으면 갈 수 있다는 응원을 보낸다. 하는 일 사이에 다른 길이 있음을 찾으라는 것. 홀수여도 괜찮아
!

홀수는 싱글로 잘 살자는 것이 아니다. 자기 기준으로 서지 못하면 불행해진다. 부모에게 의존하면서 성인이 되지 못하고, 세상의 가치 기준에 따라가고 남과 비교하면서 스스로 불행해진다. 유행의 심리는 남들이 가진 것을 갖고 싶은 것과 남들이 갖지 않은 것을 갖고 싶은 두 마음이 공존한다. 두 개의 욕망이 동시에 자극하는데, 그건 남의 욕망이다. 그때 힘이 되는 것이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실용적인 게 아니고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힘을 만들어준다
.”

김별아 작가, 요즘 하고 있는 현장인문학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탈성매매여성 자활센터에서 인문학 강의를 듣는데,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분포의 사람들이 있다. 탈성매매여성들을 상대로 하는 니체와 스피노자 강의? 누군가는 그게 가능하냐고 쉽게 단정을 하지만, 그렇지가 않단다. 까다로울 수도 있는 그것을 그들은 자신의 삶에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이해를 한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브레히트 공연을 올리기도 한다
.

노숙인, 빈민 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뭘까. ? 아니다. 당장의 배고픔을 면하게 할 순 있어도 빵으로 그들을 일으킬 수는 없다.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 자신이 살아가는 힘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게 인문학이다. 누군가는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데 천 번을 흔들리면 토하지. 마음의 힘이, 홀수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있으면 자유롭게, 여러 사람과도 잘 살 수 있다. 혼자 놀면 재밌다
.”

체로키족은 12월을다른 세상의 달이라고 했다. 다른 세상을 위해 청년들이 존재 증명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별아 작가, 신문을 통해 그 방법을 제시했다. 젊은 벗들이여, 그대들의 미래에 투표하라! 그것이 바로 과거의 망령과 현재의 굴레가 침범하지 못할 그대들만의 세상을 만드는 첫걸음이리라.” 그는 고립을 통해 저항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에 맞서 필사적으로 세상 속의 나를 증명하자고 권한다
.

별아 작가에게 묻고, 별아 작가 답하다


역사소설과 에세이를 쓰는 건, 많이 다른가? 글쓰기를 잘하려면?

많이 다르다. 장르도 다르고. 소설이 좋은 게, (작가가) 숨을 수 있다. 내 얘길 쓰면서도, 시치미를 뗄 수가 있다. 역사소설은 다른 소설과도 다른데, 나는 사실을 중시해서 자료를 수집?분석하는 과정이 더 필요하다. 에세이는 가장 솔직한 글일 수 있다. 누구나 쓸 수 있는. 생활인과 가장 가까운 장르다. 글쓰기 비법은 없다. 있으면 알려줘(웃음). 나도 커서가 깜빡거릴 때 막막하다. 그걸 극복할 수 있는 건 생각이다. 생각을 만들어내기 위해 별별 방법을 다 쓴다. 책을 읽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내게 생각을 정돈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걷기다.

순우리말 어휘력을 가지려면 어떻게 하면 되나?


『미실』이 내겐 첫 번째 역사소설이고 이른바 출세작인데, 그때 난 자유로웠다. 청탁도 없으니 혼자 기획하고 쓰고. 안 해본 일에 도전한 거다. 내가 풀숲을 헤쳐서 내 길을 만든 거지. 1500년 전의 이야기인데, 고대사 자료도 별로 없었다. 순우리말 표현을 많이 쓰려는 게, 독자들이 그 순간에 간 것처럼 느끼게 하고 싶어서다. 의태어, 의성어를 많이 쓰다 보니 감각적인 표현이 되기도 하는데, 우리말을 더 잘 쓰고 싶다. 싫어하는 독자도 있다. 모르는 단어 쓴다고. 나는 사전을 여러 개 띄워놓고 쓴다. 한 문장을 50번만 읽고, 50번 고친다. 요즘 공모전을 종종 심사하는데, 맞춤법이 비어 있다. 문장에 대한 자의식도 없이 1,000매를 어떻게 쓸까 싶다. 나는 한 문장을 내 리듬을 만들 때까지 쓴다. 사전을 많이 활용하면 좋다.

역사 속 여성을 계속 표현할 생각 있나? 그런 소재를 선택하는 이유는?

역사소설은 대부분 남성 작가들이 해서, 나름 블루오션이었다. 남성과 여성의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고, 하다 보니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지금 조선시대 여성 3부작을 생각하고 있다. 처음이 『채홍』의 봉빈이었고, 지금 마무리 중인 것은 순애보를 다룬다. 사랑 때문에 죽은 여자이야기다. 조선시대엔 사랑이 법적으로 금지됐다. 유일하게 인정받은 남녀관계는 집안이 정혼해서 결혼한 것밖에 없었다. 나머진 다 간통이었다. 국법에 의해 처벌당했다. 그 시절, 기준으로 지금 우린 다 간통이지. 세종 때가 배경인데, 그때 실은 참형이 많았다. 그 와중에 목숨을 걸고 사랑했던 여자이야기다. 다만, 연애세포가 다 죽어서 죽을 뻔 했다. 세 번째론 『미실』보다 더 야한소설을 생각 중이다. 여성이라고 하나의 모습이 아니고, 한 여성 안에도 여러 모습이 있다. 옛날에도 분명 나쁜 여자들이 있었을 텐데, 왜 착한 여자만 나오는지 궁금했다. 여성들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싶다.

홀수, 외롭지 않을까?


외로운 것이 나쁜 게 아니다. 심리학에선, 우울이 인류가 진화하면서 꼭 필요한 감정이었다고 한다. 스페인 속담에 ‘365일 태양이 비치는 날만 된다면 그것은 사막이 될 것이다라는 게 있다. 정호승 시인의 詩(. 「내가 사랑하는 사람」)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시구가 있다. 그늘, 비 오는 날도 인생에 필요하다. 우울한 기분이 드는 건, 위나 장이 나쁜 것과 같다. 나는 우울이 오면 운동화를 신고 나가서 햇빛을 맞는다. 여러 방법을 쓴다. 우울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법은 없다. 나를 잘 알면 조절할 수 있다.

 

 1969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후 1993년 실천문학에 「닫힌 문 밖의 바람소리」를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2005년 장편소설 『미실』로 제1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데뷔 초기 사회변화와 함께 불어닥친 혼란을 개인적 감성으로 써내려간 『내 마음의 포르노그라피』, 『개인적 체험』을 발표해 젊은 작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고, 이후 소재의 다각화에 몰두한 『축구전쟁』으로 호평을 받았다. 

그의 대표작 『미실』은 '화랑세기'에 기록된 신비의 여인, 미실을 천오백 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현대에 되살린 소설이다. 타고난 미색으로 진흥제, 진지제, 진평제와 사다함 등 당대 영웅호걸들을 녹여내고 신라왕실의 권력을 장악해 간 미실의 일대기를 통해 현대와 같은 성모럴이 확립되기 전의 여성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작가는 본능에 충실하면서도 요녀로 전락하지 않은 자유로운 혼의 여인과 그런 여인이 가능했던 신라를 그려낸다. 또한 가장 자연스러운 여성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이 작품은 적극적인 탐구 정신, 작가적 상상력, 호방한 서사 구조를 바탕으로 그간 우리 문학에서 만나지 못했던 전혀 새롭고 개성적인 여성상을 그려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예스럽고도 우아한 문체 속에 거침없는 성애 묘사가 소설과 역사를 읽는 묘미를 풍성하게 해준다.

『가족 판타지』에서 작가는 아이와 그녀의 사랑이, 그가 중심이 되어 이루고 있는 가족 관계가, 그리고 전통적 가족의 범위를 벗어난 확장된 관계로서의 가족이 인류애와 박애주의로 연대하는 것을 꿈꾸고 내일에 저당 잡히지 않은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가족, 혼자서도 행복하고, 헤어져서도 행복하고, 다시 만나서도 행복하고, 상처와 장애와 실패와 절망 속에서마저 행복할 수 있는 것이 그가 희망하는 가족 판타지를 넘어선 가족의 참모습을 제시하였다. 

‘일본 천황가 폭탄 투척 사건’의 주인공이었던 조선 청년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치명적 사랑을 그린 『열애』에서 작가는 『미실』에 이어 다시 한 번 가열 차게 벼린 내공 풍부한 역사소설을 선보인다. 일본제국주의와 식민지 간의 관계, 일본 내의 식민지였던 가네다 후미코, 일본 사상사에서 후미코의 의미, 아나키스트이자 허무주의자이며, 테러리스트이자 시인인 박열의 투쟁 그리고 이들의 사랑을 버무려 그저 ‘조선인 독립운동가와 일본인 아내'라는 한 문장으로 일축되었던 이들을 생생하게 복원하였다. 국경, 이념, 죽음까지도 초월한 ‘인간의 인간에 대한 사랑’, 즉 인류의 숭고한 가치인 휴머니즘이 발로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에세이집 『죽도록 사랑해도 괜찮아』에서는 상처와 시련이 바닥을 치는 고통 속에서도, 죽도록 사랑할 수 있는 지금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귀하고 감사한 일인지. 저자는 자신이 책과 시를 읽으며 삶과 사랑을 사유하고 길을 찾아간 경험을 토대로 눈물 흘리고 힘을 얻고 닫힌 마음을 열었던 그의 지난한 기억들을 글로 담아냈다. 

소설집으로는 『꿈의 부족』, 장편소설 『미실』『열애』『내 마음의 포르노그라피』『개인적 체험』『축구전쟁』『영영이별 영이별』, 산문집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식구-우리가 사랑하는 이상한 사람들』,『가족 판타지』,『모욕의 매뉴얼을 준비하다』등이 있다.

 

2. 내가 저자라면

소설은 삶의 참 맛을 알고 인생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야 글의 행간이 들어오기 때문에 소설은 성인의 오락이다

 

소설가 김별아는 언제 어디서고 사람과 삶을 본다. 선배와 밥을 먹으면서, 먹는 일은 본능을 넘어선 삶의 방식에 대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시대가 바뀌면서 대충 사먹는 일에 익숙한 우리의 삶을 본다. 시위 중인 재향군인들의 군모 바깥으로 삐져나온 백발의 구레나룻을 보며, 군복을 벗으면 사회에서 외면당하고 마는 노년의 존재를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나약하고 무능력한 존재인지를 깨닫고, 가끔씩 얼굴을 맞대는 지인들의 삶에서도 하나하나 생의 이치들을 그러모은다. 그리고 생애전환기 마흔을 넘어가며 자신의 삶에 대해 조금은 느긋해진 마음과 오롯이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독자들에게 넌지시 건네준다.

이 책은 2009 2월부터 최근까지 인기리에 연재했던 한겨레 칼럼을 비롯하여, 몇몇 신문들의 지면을 통해 발표했던 글들을 모았다. 각 부마다 일상, 사람, 아이, 우리 사회 이야기로 엮었다.

그녀 곁에는 사람이 많다. 소설가를 꿈꾸었지만 두 살 터울 동생의 분신 이후 사회 곳곳 아픈 곳만을 돌아다니며 가장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박래군, 가수가 되고 싶어 시골에서 올라와 억척같이 꿈을 이뤄낸 강허달림, ‘바로 지금을 즐겁고 행복하게, 어떻게든 앙버티며 열심히 사는 것이 이 난경에 처한 우리의 의무’라는 가르침을 주고 세상을 먼저 떠난 작가 김백리(본명 김은숙), 시인과 소설가들은 술을 먹는 게 투쟁이라며 시위 현장에 찾아온 김별아를 반갑게 맞이해준 시인 송경동……. 가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질 때면 자신의 삶으로, 온 몸으로 그 길을 보여주는 고마운 이들이다. 이들 외에도 김별아는 스치고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본다. 찬바람이 오가는 지하상가 층계참에 쭈그려 앉아 김밥을 먹고 있는 노숙인의 모습에서, 아파트 청소업체 아저씨의 팔뚝에 새겨진 ‘추억’이라는 글자에서, 평생을 맨몸뚱이로 바벨과 씨름하며 지루한 훈련을 이겨내는 역도선수들 앞에서 삶을 떠올린다. 

무엇보다 한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가 갖는 존재의 크기는 대단하다. ‘한 생명의, 존재의, 삶의 무게가 오롯이 내 어깨에 얹히는 듯’한 양육의 시절이 지나고, 체력과 인내심과 자제력을 쌓게 만드는 사춘기 시절에 접어든 아이를 보며 나와는 다른 독립된 존재라는 것을 하나씩 깨달아간다. 또 아이를 바라보던 시선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로 넓혀진다. 어른들이 많든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이 숨통을 틔우기 위한 절규처럼 내뱉은 욕설, 어른들의 잔혹성을 빼닮은 왕따 사건들, 교실 붕괴와 냉소적인 아이들…… 김별아는 나쁜 아이들이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나쁜 세상이 아이들을 망가뜨리고 있는 현실, 그것을 자초한 어른들의 책임을 따끔하게 묻는다.

작가는 어렸을 때부터 무리 지어 어울리는 것이 어려워 혼자였노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혼자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고, 이후 삶은 한결 가벼워졌다. 

외로워서 그리운 게 아니라 그리워서 가만히 외로워져야 사랑이다. 마음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허겁지겁 사랑하기보다는 지나친 포만감을 경계하며 그리움의 공복을 즐기는 편이 낫다. 무릇 성숙한 인간관계란 서로에게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라도 내가 주고픈 만큼 돌려받을 생각을 하지 않고 깜냥껏 베풀면 그만이다. 그러니 정기적으로 만나거나 단짝처럼 붙어 다니는 친구가 없어도 서운하거나 불안치 않다. 진정한 믿음과 이해는 미주알고주알 일상을 보고하지 않아도 내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통해 전달된다.
삶은 어차피 홀수이다. 혼자 왔다가 혼자 간다. 그 사실에 새삼 놀라거나 쓸쓸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가장 좋은 벗이 되어 충만한 자유로움을 흠뻑 즐길 수 있다면, 홀로 있을지언정 더 이상 외톨이는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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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홀수다 p.17

김별아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정해준 ‘생애전환기’라는 나이 마흔이 되어서야, 외로워져야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인간의 삶에 숙명적 존재인 외로움을 인정하고 나니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의 삶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오로지 나로 오롯한 평화의 상태. 

또한 마흔의 고개를 넘어서니 죽음에 가까워진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하면서 한 시대가 저무는 것을 느끼고, 존경하던 박완서 선생님의 영면 소식에 사는 동안 고통만큼 행복하셨을 거라 생각하며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그린다. 그렇지만 김별아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언제고 피었다 지고 다시 피어나는 꽃처럼, 언젠가 우리 모두 꽃밭에서 만날 것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이를 먹으면서도 변치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오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내놓는다. 나이 대에 따라 반드시 해야 할 과제란 없으며, 삶은 바로 여기, 지금 이 순간에 있으니까.

 

작가는 소설가답게 순 우리말의 아름다움에 일찍 눈떠 곳곳에 우리말의 꽃밭을 펼쳐 놓았다. 몰랐던 우리말을 사전을 찾아가며 읽는 재미가 있었다. 작가는 10년을 무명으로 년 200-300만원의 소득으로 견디며 오롯이 작가의 길을 걸어온 보기 드문 문인이다. 쉽지 않은 삶의 척박함에 정면으로 부딪치며 살아가는 가운데 일상에서 길어 올린 깨달음이 보석처럼 빛난다. 글은 역시 삶 속에서 나와야 진짜다.

 

3. 내 마음을 무찔러온 장절

5
한겨레 문학 담당 기자 최재봉 선배의 연락을 받았다. 6개월만 칼럼 한 꼭지를 맡아 쓰라는 것이었다. 당시의 개인적인 형편이나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생각하면 모르쇠를 잡고 숨어들고만 싶었으나 그와중에도 칠실지우나마 넋두리를 풀어놓고픈 의뭉수가 있었나 보다. 얼결에 제안을 수락하고 시작한 연재가 어찌어찌 당초에 약속한 6개월을 넘어 4년 동안 이어졌으니 내가 아니라 시간이 쓴 듯한 토막글을 모아 이렇게 책을 엮는 지경에 이르렀다.

 

6
세상은 이미 충분히 수다스럽다. 말과 글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넘쳐서 문제다. 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는 말하기보다 곰곰궁리가 가능한 글을 쓴다는 건 다행이지만, 신문에 칼럼으로 게재하는 글은 엄연한 발언이기에 사뭇 조심스러웠다. 잡설, 독설, 객설이 범람하는 세상에서 무슨 말을 할까를 고민하기 보다 무슨 말을 하지 말아야 할까를 고민했다. 내 깜냥이 닿는 한도에서 정직하게 폼 잡지 않고 할 수 있는 말만 하려 했었다. 언제까지고 성실한 학생으로 사는 것이 나의 소원인바.

 

18
외로워져야 자유로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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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먼저 고아가 된 엄마 와 이제 막 고아가 된 아버지는 내리사랑에 뭐라도 하나 챙겨 주려 찬장을 뒤진다. 버스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터미널에서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노라니 울컥 가슴에 뭔가가 치민다. 이렇게 자꾸 헤어지는 연습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웃으며 이별을 할 수 있을까?

 

때맞춰 언론에서는 기념일 주인공들에게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은? 같은 질문을 퍼붓고 몇몇 소수의 의견을 제외하고는 부동의 1위가 "닥치고 현금"이라는 결과를 발표한다. , 현금이 좋다는 의견이야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취향에 맞지 않거나 필요없는 물건을 받으면 주는 사람은 맥없고 받는 사람도 허탈하다. 하지만 편리하고 확실한 만능의 현금이 얼마만큼 사랑과 감사를 표현 할 수 있을까? 십만 원 어치의 사랑과 50만 원짜리 감사가 과연 가능할까?

 

21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불효녀인 나는 얼마전에 없던 별짓을 했다. 새로 펴낸 산문집을 집에 붙이며 용기를 내 마음을 함께 담아 보낸 것이다. 사실은 책 내용에 소아우울증을 앓았던 나를 방치할 수 밖에 없었던 엄마와 '그 시대의 일반적인 남성을 기준으로 나쁘지는 않았지만 지극히 태무심했던’ 아버지에 대해 긁어 놓은 것에 제 발이 저려 선수를 친 것이기도 하지만, 언젠가 한번쯤 꼭 하고 싶었던 말을 마흔이 넘어서야 책 속지에 적어 넣었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준 엄마와 아버지께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합니다. 엄마와 아버지는 지금껏 속만 썩히던 말썽쟁이 딸의 고백을 마음의 백지수표처럼 받아 들고 끝내 눈물을 흘리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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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말했다. 표현 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삶이 그러하듯 사랑도 순간이기에 진정한 삶의 용기는 아낌없이 사랑과 감사를 표현하는 일로부터 출발한다.

 

23
정말 두려운 것은 남아있는 부끄러움 보다 남기지 못한 용서와 감사와 사랑이다. 그 세 마디 말 밖에는 더 남길 것도, 가져 갈 것도 없으리니.

 

26
다음 번엔 선배를 집으로 초대해 못난 솜씨로 차린 밥상이나마 대접해야겠다. 거칠고 소박하지만 정겹고 따뜻한 마음으로 고봉밥 한 그릇에 구수한 된장찌개 한 뚝배기 호호 불며 나눠 먹고 싶다.

 

아들아 밥은 그냥 뜨거운 거다 
더럽게나 존엄하거나, 유상이든 무상이든
 
밥을 뜰 때 다른 시간이
 
우리의 몸이 되는 것

 

황규관 밥 중에서

 

누군가를 위해 밥을 지어, 누군가를 위해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을 때 좀비와 보상의 경기는 감으로 사라진다 먼 곳에서 떠돌던 스스로 있으면 시간 바람의 시간 비와 풀벌레 와 그럼 있어 가는 시간이 내 뱃속에 부족하다 그리움의 시간, 외로움은 시간, 홀로 거리를 헤매던 방황의 시간을 연민과 안도감으로 소화한다.
아아, 잘 먹었다!

 

30
큰 재난이 닥쳐 오면 각자 날아 오른다는 속담을 따라 각각이 잘 견디자고 말해야 할까? 피와 오줌 보다 먼저 검사 해야 할 것은 덧없이 부푼 욕망과 혼돈된 가치는 아닐까? 세상에 난지 꼬박 마흔 해 되던 날, 생애전환기라는 한 마디 말이 무겁고 무섭다.

 

31
정신 없이 사노라면 한 해가 금방이다. 봄인가 하면 진땀 나는 여름이고 건들바람에 가을인가 싶으면 어느덧 겨울이다. 경황 없는 그 사이에 우리 사회에서는 1 5천 여명이 스스로 세상을 던졌다. 넋 놓고 사노라면 하루가 후딱 간다. 어영부영 아침 나절을 보내고 점심 먹고 돌아서면 이러구러 오후가 지나고 저녁거리 차려내고 나면 금세 밤중이다.

 

지금이 짧은 글을 쓰는 와중에도 또 한 목숨이 스스로 버려졌으리라. 살아남은 우리 모두가 사형 집행인이다. 아니, 사형수다.

 

32, 그건 다름아닌, 슬픔이었다
우익시위, 군복을 차려 입은 재향군인들이 생뚱맞게도 방송의 공정성을 요구하며

 

33

시위대가 몰고 온 트럭에서는 군가가 우렁우렁 울려 퍼지고 있었다. 너무 덥고, 생뚱맞았던 탓일가? 그들의 시위는 시위라기보다 한 판의 기묘한 연극 같았다.

그런데 구경꾼이 되어 주변을 시적시적 맴돌던 나는 문즉 배꼽노리쯤에서 치밀어 오는 어떤 뜨거운 감정에 사로잡혔다.

분노? 분노하기에는 시위 대열이 지나치게 어설프고 어수선했다.

조소? 차가운 비웃음보다는 착잡한 마음이 더 컸다.

햇살 속에 멍하니 서서 내 감정의 정체를 알기 위해 한동안 고민하다가, 언젠가 이와 같은 감정을 느낀 순간이 떠올랐다.

 

얼마요.”

닭다리 하나에 소주 한 병 해서 4500원이에요. 드릴까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얼른 자리를 잡고 앉지 못하고 다시 한참을 머뭇거렸다. 다른 음식을 먹고 싶다거나 가게의 위생상태가 꺼림칙하다거나 하여 망설이는 태도는 아니었다. 얼마나 알뜰히 재활용했는지 시커멓게 변색된 기름에 튀겨낸 닭다리와 소주 한 병 값인 4500원을 걱정할 만큼 주머니 사정이 옹색한 게 분명했다. 그때도 내 가슴 속에선 뭉클하고 뜨거운 기운이 치밀었다. 슬픔,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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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대전에서 버스를 대절하여 올라올 만큼 방송의 편파보도에 견딜 수 없었던 것일까? 저간에 알려진 대로 일당을 받고 하는 일이라면 슬프기 이를 데 없고, 일당이 없다면 그 또한 서글프기 이를 데 없다.

나는 그들 세대를 존경까지는 못하더라도 연민한다. 조작된 영웅이 그 공로를 독점하려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희생과 헌신으로 폐허에서 성장을 이끌어낸 신화의 주인공이 바로 그들인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지하철의 노약자 좌석에서 졸고 있는 젊은 놈들에게 호통을 칠 때만 기세 등등하다. 그들에겐 문화를 향유할 여유도, 가치관을 재정립할 기회도, 젊은 세대와 자유롭게 소통할 방법도 없다. 그리고 닭다리 하나에 소주를 마음껏 마실 정도의 돈조차 없다. 시위에 나오며 그들이 무겁고 덥고 위협적인 군복을 걸친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그 군복을 벗으면 그들은 사회에서 소외 받고 외면당하는 초라한 노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은퇴자 협회가 개발했다는 노인유사체험이라는 특이한 프로그램이 있다. 머리엔 귀마개와 백내장 안경을 쓰고, 온몸의 관절에 뻑뻑한 보호대와 모래주머니를 차고, 지팡이를 짚고 거리에 나선다. 아직 젊은 것으로는 상상만으로도 불편하고 무겁고 힘겹다. 그래서 프로그램 참가자 중 많은 이들은 프로그램이 끝난 후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노인들은 가난, 고독, 불구, 그리고 절망의 형을 언도 받았다는 시몬느 보부아르의 일갈이 절로 떠오른다. 노년유사체험을 통해 배우는 것은 미래에 대한 이해와 함께 현재에 대한 빼 아픈 성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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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도 언젠가부터 직접 통화보다는 문자메시지를 선호하고 있다. 내가 하고픈 말만, 듣고픈 말만, 그야말로 용건만 간단히 할 수 있는 초간편 메신저! 대화의 물결과 토론의 파도가 사라진 바다에 남은 건 이처럼 고립되어 둥둥 떠다니는 얼굴 없는 메신저와 그것을 낚으려는 수상한 낚시꾼들뿐이다. 문득 두어 해부터 갑자기 싫어하는 단어가 되어버린 소통이란 말이 부표처럼 떠오른다.

 

41

안나푸르나의 관문인 포카라에 일주일 동안 머무르면서도 산에 올라보려는 작심 같은 건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억지로 등산 모임에라도 참석할라 치면 남들이 정상에 올랐다 돌아오는 동안 등산로 입구의 먹자골목에서 동동주에 도토리묵을 먹으며 앙버텼다. 그런데 내가 집 떠나면 개고생이란 걸 뻔히 알면서 어쩌자고 2년 여정의 백두대간 종주에 덜컥 참여했을까?

 

42

격정과 자멸의 충동으로 들썩이던 청춘이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가 버리고, 나는 어느덧 그토록 혐오하던 후줄근한 나이가 되었다. 새삼스레 봄이 좋아지고 젊은 아이들을 보면 , 좋을 때다란 말이 절로 나오고, 가끔은 꼰대처럼 이게 옳고 저게 그르다 훈수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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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너무 익숙해진 삶은 짐이 된다. 변화는 두렵고 몸은 무겁다. 이대로 라면 어느 시구대로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에게 무조건 미안해 하는 웃짐이 될 것이다. 산을 오르는 내내 생각하는대로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살아온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라는 폴 부르제의 말을 곱씹었다. 내가 만든 모든 것들이 가파르고 둔중하게 쌓인, 그 산을 넘기로 했다. 넘어야 한다. 비록 올랐다 내려와 한 며칠 이 지경으로 끙끙 앓는다해도, 후회 따위는 없다. 삶은 바로 여기, 지금 이 순간에 있다.

 

46

사랑의 반대말이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면, 바야흐로 완벽하게 사랑의 반대편에 터를 닦고 말뚝을 박을 지경이다. 솔직히 말해 이제는 별로 화도 나지 않는다.

 

47

꽃이 위로가 되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고, 꽃에 위로 받을 줄 아는 사람이 많아져야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48 <곡강> 두보

조정에서 나오면 봄 옷을 잡혀놓고

매일 강가에서 취하여 돌아오네

가는 곳마다 외상 술 빚 있지만

일생칠십 살기는 예부터 드문 일

호랑나비 꽃 속 깊은 꿀을 빨고

물 위에 점 찍는 듯 잠자리 한 쌍

세상 모든 것은 변해가는 것

잠시나마 서로서로 어울려 보세

 

평생 고단했던 시성이 그랬듯이, 활짝 핀 시 곁에서 꽃을 읊조린다. 그래도 봄은 온다. 오고야 만다.

 

49 관찰력

헤아려보니 맑은 날에는 지렁이가 장사진을 이루고, 비가 오거나 곧 쏟아질 것 같은 날에는 달팽이가 떼로 몰려 나온다.

 

51

하지만 아무 것도 막을 수 없고 구할 수 없고 언감생심 복 같은 건 받을 수 없다고 해도, 그 작고 약하고 낮은 것들을 향해 무릎을 꿇는 짧은 순간은 분주한 일상에서 가장 신성하고 염결한 때이다.  살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서로를 가엾이 여기며 구제하고픈 마음은 설교와 염불이 필요없는 절대적인 말씀의 정수다. 나는 짓밟히는 지렁이에게서 부처님을, 정처없는 달팽이에게서 예수님을 본다.

 

얼마 전 학부모와 함께하는 수련회를 다녀오다 들른 남한강 강천보 공사를 목도하고 나니 정말 백문이불여일견이 진리로구나 싶다. 일단 가서 눈으로 보면 온몸이 반응한다. 그렇게 초록과 숨 탄 것들을 깔아뭉개고 공구리를 치면서 좋아라 하는 족속은 분명히 정상이 아니다.

 

52

영서하지 못할 바에야 잊기로 했다. 그런데공든 탑도 무너질 때가 있고, 십 년 공부도 도로아미타불이라! 내가 누군가를 이렇게 온 맘과 몸을 다해 미워할 줄은 몰랐다.

 

75
이 높디 높은 산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나는 그들이 바다에서 솟아올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없이 깊은 심연에서 더없이 높은 것이 그곳까지 올라왔음에 틀림없다. 나는 차라투스트라의 말에 위로 받는다. 아픈 만큼 성숙하고 깊은 만큼 높아지고 고통만큼 언젠가 행복해지길. 지금 심연에 갇혀 허우적대는 우리, 99%에게 그보다 더 큰 격려는 없다.

 

76
좋으실 대로 하세요. 전 아무거나...... 잘 먹어요. 다잡지 않으면 한없이 피둥피둥 살찔 듯하여 언젠가부터 욕망을 다이어트 해왔다. 타의에 의한 가난은 궁핍이지만 자의에 의한 가난은 청빈 이라기에, 배가 비면 몸이 가볍고 마음은 흔쾌했다.

 

77
, 정말 상처 받았다. 반주라도 한잔하며 울적한 마음을 달랠 심산에 소주 한 병을 집어 들었는데.이 것도 어김 없이 올랐다. 도대체 오르지 않은 게 뭔가? 정말로 직장인들의 월급, 내게는 원고료 밖에 없는가?

 

78
하지만 숨기고 우기고 눌러서 해결되는 것이 있고 안 되는 것이 있다. 민심의 이반을 고려하며 경고하는 대목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대개 경제적인 것이며 좀더 세밀히 말해서 일상적인 것이다. 프랑스 혁명도 파리의 주부 6 천명이 빵을 요구하며 베르사이유로 행진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자식 굶는 꼴은 볼 수가 없다. 그건 내 피와 내 살과 내 뼈를 저미는 일이나 다름없다. 나는 그녀들의 분노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아파트 화단에 매화가 피었다. 세상이 난마라도 봄은 온다. 그런데...... 설탕 값까지 오르면 어쩌라는 거냐? 매실을 담가야 하는데 할일 없이 핀 꽃을 보며 한숨 짓는다. 미안하다 내 근심은 꽃보다 설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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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대화를 나눌라치면 상대의 스마트폰이 거푸 또롱또롱 운다. 그토록 넓디 넓은 세계와 소통하는라 눈앞의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것이다. 방대한 정보 속에 성찰이 없고, 무수히 오가는 채팅 속에 대화가 없다. 끊임없는 일상 업데이트로 적나라 하게 스스로를 노출하지만 정작 누구와도 눈맞춤 하지 않는다. 그토록 얽히고설킨 소셜네트워크 어디쯤에 진짜 나를 아는 사람이 있는가? 그렇게까지 똑똑해질 생각이 없는 내가 똑똑한 폰을 마련해 소셜네트워크 머시기에 몰두 하는 날이 온다면, 그건 아마도 너무나 외롭다는 증거에 다름 아닐 테다.

 

83
하지만 당신의 스마트폰이 당신의 진짜 필요 보다 더 똑똑하게 필요가 있을까? 헛된 욕망과 과다한 필요는 시간과 돈만이 아니라 삶을 낭비한다. 단말기 약정이 한참 남은 피쳐폰 조차 간단한 통화의 용도 외에는 얌전히 모셔두고 사는 나 같은 사람에겐 스마트폰이야 말로 개발에 주석 편자다. 그 속에 아무리 엄청나고 대단한 정보가 있으면 무엇 하나? 실로 인터넷을 떠도는 이른바 정보들 중에 상당 부분은 얄팍할 뿐만 아니라 부정확하다. 휴대폰은커녕 전화도 없이 살았던 옛날보다 똑똑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논어 위정편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망년해진다는 대목이 떠오른다스투피드의 손에 스마트폰을 쥐어주면 스투피드가 스마트해 질까? 스마트폰이 스투피드해질까? 고것이 문제로다.

 

85
아나운서 유정아 씨가 말의 벽과 문에 대해 다룬 산문집 "당신의 말이 당신을 말한다"를 보내 왔다. 책을 읽노라니 글을 잘 쓰는 비법이 없듯이 말을 잘하는 법도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말할까 궁리하기 보다는 무엇을 말하지 않을지를 선택하고 먼저 고민하면 절로 입이 무거워진다. 말은 영혼의 문을 두드리는 일임을 깨달으면 유창한 달변보다는 가만한 경청이 더 값지다.

 

86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일지라도 듣는 이가 주인 일지니, 말은 타인을 이해하고 나를 이해 받는데 쓰일 때에만 뜻있다.

 

87
말이란 세 가지로 이루어진다. 말하는 자와 말에 담기는 내용 그리고 말이 향하는 대상이다. 말의 목적은 마지막 것과 관련되어 있다. 듣는 사람 말이다.

 

90
지갑을 여는 일보다 마음을 여는 일이 문제였다. 마음도 마음이지만 낯선 이에게 손길을 뻗는 일이 보다 큰 문제였다. 습관이 되어있지 않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작고 사소하고 당장 급하게 보이지 않고 내 일이 아닌 남의 일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좁은 가게 안을 둘러보니 보온기에 들어찬 두유 병들이 눈에 띄었다. 마침 원플러스원 행사 기간이라 하나를 사면 같은 것 하나를 증정 한다고 했다. 이거다! 마음속에서 반짝 불이 켜졌다. 내 목을 축이고 배를 불리기에는 두유 한 병이면 충분하다. 나를 위해 하나를 사는 김에 공짜로 하나를 가졌으니 그건 누군가를 위해 나누어도 마땅한 것이다.

 

뿌리깊은 병을 치유 할 수는 없을지라도 잠시 고통을 덜 수 있다면, 그것으로 원플러스원은 단순한 둘이 아니라 플러스알파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따끈하게 데워진 두유 한 병을 품고 나오는 가슴이 두근두근 했다. 아무리 길고 추워도 봄은 변함없이 봄이었다.

 

91
비정한 도시의 흔한 풍경 하나.
엄마의 손을 잡고 쪼작대며 가던 아이가 지하철 역사 한구석에서 쓰러져 잠든 노숙인을 보고 엄마의 옷자락을 붙잡으며 묻는다.

 

저 아저씨는 왜 길에서 자는 거야?

 

교육적이고 교훈적인 양육자로서의 본분을 한시도 잊지 않는 엄마는 불현듯 찾아온 가르침의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는다.

 

엄마 말을 듣지 않고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저렇게 되는 거야!

 

이로써 한마디도 토설한 바 없는 삶의 내력과 무관 하게 노숙인은 불효자에 학습 부진아가 되고, 졸지에 엄마에게 협박당한 아이의 얼굴에는 공포와 혐오가 선명하게 새겨진다. 그런데 이때 엄마의 대답에 따라 아이는 평생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도 있다.

 

저 아저씨도 언젠가 너처럼 누군가에게 사랑과 기대를 받는 아이였겠지!

 

삶의 교훈이 꼭 악담과 으름장을 통해 얻어져야 마땅한가? 사람이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에 연민과 애수, 혹은 공포와 혐오 중 무엇이 앞서야 마땅한가?

 

93
수술이 잘되어서 돋보기 없이도 신문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시력이 좋아지긴 했는데... 눈이 침침할 때는 보이지 않던 웬 백발노인이 거울 안에 들어앉아 있구나.

 

94
하지만 이제 인정 할 수 밖에 없다. 아버지는 늙어 간다. 밝아진 눈으로 백발이 다가오는 현실부터 바라봐야 한다. 그러기 전에 아버지라는 이름의 한 남자와 좀 더 일찍 대화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버지라는 이름을 넘어서 한 사람을 더 많이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면서 가만히 수화기를 들어본다.

 

95
아버지와 딸은 서로 가장 많이 닮았으면서도 서로를 가장 모르는 상대였다.

 

102
만약 형이 문학 따윈 다 잊었다고 발뺌 해도 이미 우리의 술자리는 지극한 문향으로 가득할 테다. 고리끼 선생의 말씀대로 소설은 곧 인간학 일지니.

 

105
젊은 친구들이 조로한 얼굴로 꿈만 먹고 살 수는 없잖아요? 되물어올 때 여전히 철없는 나는 가슴이 아프다꿈은 망연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깨어지고 부서지는 것에까지도 행복을 느낄만큼 절실하고 절박해져야 이루어진다, 아니 쟁취된다
그들에게 나와 닮은 바보인 강허달림의 노래 가사를 빌어 말하고 싶다

또다시 쓰러져도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 웃음 짓고/ 아무일 없다는 듯이 그렇게/ 그게 나인 걸 <독백>

그렇게 꿈은 나를 깨닫고 찾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내 쓰린 상처와 실패의 경험을 통해 누군가에게 삶의 어느 순간 힘이 되고 위안이 되는 노래를 꿈꾸며 오뚝이처럼 발딱 일어나 목청을 돋울 때 비로소 구체적인 무엇이 된다 

 

106
2010
년 가을 장충동의 작은 극장에서 강허달림의 콘서트가 열렸다. 술 한 병 옆에 차고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이 설렜다. 그녀가 소리가 되고 소리가 그녀가 되어 간절한 꿈이 마침내 무대 위에 눈부시게 펼쳐지는 모습이 눈앞에 가물가물했다.

 

107
새벽 어둠 속에서도 왜 이리 비는 반가울까? 살아있는 생명을 감지해서일까....?

 

109
언니는 내게 즐겁게 살라고, 어떻게든 행복하게 살라고 했다. 그 말은 격려이자 꾸지람이었다.
이즈음 나는 시시때때로 사는 게 참되다며 엄부럭을 부리고 있었다.  나를 불면과 우울에 시달리게 하는 건, 고단한 밥벌이와 떼어먹힌 인세와 헛똑똑이의 자괴감이라기보다는 언젠가 다가올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었다. 희망 없이 사는 일이 두려웠다 오토바이를 못하니 피자 배달도 할 수 없고 꼴같잖은 자존심에 이웃집 문을 두드려 밥을 빌 재간도 없는데, 누군가 낯선 죽음이라 부른 그것이 고립된 개발자인 내게는 너무도 익숙했다.

 

그런데 언니는 미래의 공포에 사로잡혀 오늘을 허비하지 말라고 했다. 정현정 선생의 시 제목처럼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기억하며 지금을 즐겁고 행복하게, 어떻게든 앙버티며 열심히 사는 것이 이 난경에 처한 우리의 의무라고.

 

통증도 멎고 문득, 바깥 풍경을 보니 굽이굽이 산등성이에 춘설이 너무 아름다워... 행복!

 

살아 있어서 행복하다는 언니 덕분에 나도 잠시 행복했었다곰곰 새겨보면 우리 중 누구도 시한부가 아닐리 없건만.

 

125
그 누가 나를 사랑한다고 해도 
이젠 사랑의 불꽃 태울 수 없네
 
슬픈 내사랑 바람에 흩날리더니
 
뜨거운 눈물 속으로 사라져 버렸네
 
텅 빈 내 가슴에 재만 남았네
 
불씨야 불씨야 다시 피어라
 
끝내 불씨는 꺼져 꺼져 버렸네
 
이젠 사랑의 불꽃 태울 수 없네
 
<
불씨> 중에서 한돌 작사 작곡 신형원 노래

 

131
직장이란 곳을 하루 만에 때려치우고 혼자 틀어박혀 글을 쓰고 있던 내게 제이씨는 사회에서 처음 사귄 친구나 다름 없었다. 그런데 제이씨 집에 초대받아 차를 마시던 나는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몇 학번이세요
?
저는 대학에 다니지 않았어요.

 

139
다만 시시때때로 되살아나고 이따금 눈물과 미소로 기억되는 것은 그의 삶, 오욕과 영광과 풍운과 비운과 고통으로 좌충우돌하는 삶에서 잠시 잠깐 스쳐 갔던 순간이다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다면 더 많이 살지어다. 남기고 가져갈 것은 오직 추억 뿐이다.

 

141
가벼울 때도 있어요. 충분한 훈련과 감정조절로 몸과 마음의 상태가 좋을 때는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볍기도 합니다.

 

142
전신 근력을 쓰는 운동의 특성상 역도 선수는 이틀에서 사흘 이상은 쉴 수 없다. 언제나 근육이 긴장 되어 있는 상태를 유지 하지 않으면 200kg을 드는 선수도 50kg에 다칠 수 있기에 역도선수는 늘 성실과 인내로 오로지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 해야 만 하는 일이다오랫동안 자신을 들여다 본 사람은 넓고 넉넉하다. 역도선수들이 대부분 내성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성격을 지닌 것 또한 끊임없는 훈련의 결과인 듯 싶다. 3년쯤 지나면 몸은 자연스레 운동에 적합하도록 길들여진다그때부터 자기 관리라는 진짜 싸움이 시작된다. 매일 들어도 바벨론 무겁다. 하지만 들면 들수록 무게를 견딜만큼 근육이 만들어지고 관절이 강화 된다. 단에 오르면 봉 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까지, 그리하여 천근만근의 쇳덩이가 깃털처럼 가볍게 여겨질 때까지 그들은 버틴다. 침묵과 집중 속에서 자신을 벼린다.  어쩌면 역도는 삶과 많이 닮은 운동경기일지도 모른다.

 

태산 같은 짐 앞에서는 누구나 아득해진다. 그런데 꿈이 뭐냐고 묻는 내게 유준호 선수는 무거운 짐은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를 제대로 가르쳐 주었다. 그는 미래의 꿈이란 건 없다고 했다. 바벨의 무게를 조금씩 늘여 목표를 하나하나 이루어가는데 익숙하기에꿈은 오직 그의 발치에 놓여 있다고. 그는 다시 씩 웃고는,, 눈앞의 삶을 번쩍 들어 올렸다

 

146
무엇으로도 마지막 순간을 목전에 둔 이를 위로할 수 없어서, 외로울 것이었다. 분노, 억울함, 슬픔 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오직 지독한 외로움뿐.

 

147
기어코 꽃을 꽂아두고 보고 싶다며 난데 없는 고집까지 피웠다. 면목동 주택가엔 꽃병을 파는 가게가 없었다. 꽃병 비슷한 거라도 찾으려고 골목 골목을 헤매노라니 언니가 떠나면 아마도 이것이 가장 선명한 추억이 되리라는 생각에 장례식에서도 나지 않은 눈물이 왈칵 솟았다.

 

149
소설가 박완서 선생께서 영면하셨습니다. 라면 국물이 흔들려 출렁댔다. 컵라면을 내려놓고 믿기지 않는 그 내용은 다시금 확인했다. 선생이 가셨다. 헐 벗은 산자락을 망연히 바라보는 사이 라면이 다 익었다. 선생이 떠나셨다. 그럼에도 갈 길은 멀고 넘어야 할 산은 높고 여기서 열량을 보충 하지 않으면 남은 산행이 버거울 것이었다. 자동 인형처럼 뚜껑을 열고 나무젓가락을 들었다언젠가 내가 이 세상을 떠나는 그 날에도 누군가는 살겠노라고 이렇게 부르터진 면발을 빨고 있을 테다.

 

150
이문구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까지만 해도 장례식장에서 만취해 공연한 멱살잡이를 하며 설움을 한풀이 하는 문인들이 왕왕 있었건만, 작금의 조문객들은 얌전하고 유순하다. 다만 마음속에서 출렁이는 야릇한 상실감을 나눌 길 없어 시시풍덩한 농지거리를 주고받으며 허허롭게 웃는다. 필승을 외치며 폭주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필패할 수 밖에 없는 문학을, 예술을 운명으로 받아 들인 이들은 외롭고 가난하다. 재수없으면 100살 이라는 저주 어린 축복의 말이 유행하는 고령화 사회에서도 소설가들이 평균수명은 64, 시인들은 한술 더 떠서 62세란다.

 

151
그런 맥락에서 장르는 다르지만 궁핍과 소외만큼은 크게 다르지 않은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의 사망 소식은 슬프기보다 아프다. 문화 예술은 이윤을 창출하는 사업이기에 앞서 그 자체로 값지고 귀한 사회적 자산이다. 백만 부를 파는 한 명의 작가보다 만부를 파는 백 명의 작가가 필요한 것은 작가의 수만큼 다양한 세계가 확장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의 숱한 모욕에도 불구하고 나는 작가로서의 운명을 사랑한다하나 둘 떠나는 선생들을 눈물보다는 미소로 배웅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고통만큼 행복했음을 알기 때문이다

152
내가 육신에 집착하는 것은 영혼이 있다는 것을 못 믿어서가 아니다. 영혼이 있으면 뭐 하나, 육신이 없는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무슨 수로 알아 보나 싶어서다....
박완서 왜 사느냐고 물으면 중에서

 

158
아이를 키우는 일은 정말 힘들었다.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여자들이 당연히 하는 생물학적 역사적 사회적 숙명에 왜 너만 호들갑에 엄살이냐고 야단친대도 소용 없었다. 내게는 그것이 인생에서 처음 겪는 일이었고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로 인해 내가 얼마나 모성애가 강하고 희생적이면 헌신적인가를 확인 했다기보다, 아이를 통해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나약하고 무능력한 존재인가를 깨달았다. 아이는 시시때때로 나를 시험에 들게 했고 나는 지면서 배웠다. 그것은 애초에 이길 수 없는 싸움, 기꺼이 지기 위해 하는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159
나쁜 엄마 뒤에는 대개 나쁜 아빠, 무심하고 이기적이며 방관자처럼 아예 교육을 몽땅 엄마 책임으로 돌리는 아빠가 있다. 그리고 이 나쁜 아빠 보다 더 나쁜 것은 이처럼 고립된 채 불행한 엄마에게 현실적인 모성보호는 해주지 않으면서 환상 속의 모성애 만을 강요하는 세상이다. 무지하고 나약하고 나쁜 엄마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엄마의 아이가 결국 세상의 우리 아이이기 때문이다. 사실 프로그램의 제목은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보다 우리 엄마가 달라졌어요가 더 잘 어울린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

 

164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여러 일들을 노래로 만들어 노래가 곧 삶이고 시가 된다는 것을 알려 주기도 했습니다

 

165
행복은 현재 진행형이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라. 그 진실만 가르치고 싶었기에, 아이를 이끌고 낯선 동네로 이사했다. 가파른 산 언덕에 자리한 대안학교가 허울뿐인 공교육과 미쳐버린 사교육에서 벗어나 가쁜 숨이나마 토해낼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167
, 쟤 아직 공 안 던져 봤어. 이번엔 쟤한테 기회를 줘. 아이들이 공을 돌리고 있었다. 한번도 공을 잡아 보지 못하고 뒷전에서 어물쩍대는 친구들에게, 남들보다 좀 못한다는 것이 부끄럽지 않도록 그들은 승부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배려와 존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야 비로소 나는 교육이 교육 환경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 아이가 아닌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예쁜지 가슴 뭉클하게 느꼈다.

 

168
아이들은 오로지 축제와 놀이와 노래와 장난 속에서 키우고자 한다. 플라톤이 아이들에게 바라는 바다교육의 이상은 아이들이 스스로 즐기는 법을 충분히 배우는 것이었다. 잘 놀아야 잘 큰다. 잘 놀아야 잘 배운다. 잘 산다. 며칠 전 고딩이 된 아들 놈은 지금 비 내리는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하며 잘 놀고 계시다. 그들만의 다른 삶, 다른 세상을 위해서는 엄마들만 잘 참으면 된다. 잘 놀며 크지 못한 엄마는 오늘도 어금니를 꾹 물고 플라톤만 믿는다.

 

172
모 초등학교의 공동생활규칙을 보고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화장실 용무 외는 복도에 나가지 않는다.

교실 밖을 나가더라도

3명 이상 모이지 않고

30초 이상 만나지 않고

3문장 이상 이야기하지 않는다.

(333규칙)

 

173

교실 안에 꼭꼭 숨어 있으면 모든 것이 안전할까? 3명이 모여 30초 이상 3문장 이상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면 폭력, 따돌림, 갈취가 사라질까? 전체주의 국가의 감시제도에서나 본 듯한 항목이 버젓이 생활규칙으로 초등생들에게 제시되는, 여기가 정말 정상적인 사회인가? 저 문장, 저 문장을 만든 사람, 저 문장으로 아이들을 교육하는 사람들에게는 눈곱만큼의 사랑도 없다. 아이를 성장시키는 것은 오로지 사랑과 관심뿐일진대, 고립과 굶주림에 대한 강요보다 더 큰 폭력은 없다. 어른인 내가 감당하기에도 너무 아픈 강펀치다.

 

174

터진 보자기에서 쏟아진 햇콩 같은 아이들로 일순 주위가 떠들썩해졌다. 삼삼오오 무리 지어 팔짱을 낀 계집애들은 종달새처럼 음으로 지저귄다. 사내애들은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아 깃발처럼 펄럭거리며 달려간다.

 

175

우리 때는 ‘X을 주로 썼는데 요즘은 ‘X가 대세인 것이 다를 뿐이다. 다만 우리 때의 욕이 비올 때 떨어지는 낙숫물 정도였다면 지금은 마르나 궂으나 졸졸 흐르는 시냇물 같다는 것이다. 청소년 세대에 유행처럼 욕설이 번지는 이유를 그들 또래인 아들아이에게 물으니 두 번 생각지도 않고 대답한다. “습관이지!”

 

176

청소년기를 관통하는 심리는 한마디로 불안이다. 철저히 서열화한 학교와 무자비한 학원 사이를 뺑뺑이 돌며 아직도 맞을만한 짓을 하기에 때려야겠다는 어른들의 으름장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자해적인 무기인 욕이라도 없으면 무엇으로 불안과 맞선단 말인가?

 

177

파김치가 되어 학원 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들이 누구에게인지 모르게 나지막이 내뱉는 ‘X소리가 숨통을 틔우려는 마지막 절규처럼만 들린다.

 

아침 7시 반부터 밤 10시까지 학교에 붙잡혀 있는 일은 ‘X힘들다.

짙은 갈색으로 염색했을 뿐인데 머리를 지휘봉으로 툭툭 얻어맞으면 ‘X기분 나쁘다.

시험 성적이 떨어지면 세상이 다 무너질 듯 한숨 쉬는 부모가 ‘X지겹다.

학교가 끝나고 학원을 뺑뺑이 돌아야 하는 일은 ‘X끔찍하다.

학교에서 주 5일 수업을 한다니 ‘X발 빠르게 학원에 토요일 강좌가 생겼다.

게임도 영화도 소설책도 친구도 보지 말고 오로지 공부, 공부만 하라니 ‘X답답하다.

그래봤자 공부 잘하는 놈들 들러리나 서며 병풍으로 사는 신세가 ‘X후지다.

 

178

그러다가 지잡대나와 취직도 못한 루저가 되리라는 세상의 저주가 ‘X재수 없다.

…….

‘X

 

181

불안과 미성숙과 우둔의 시기에 나는 간절히 친구를 갖고 싶었고, 그들과 소통하고 싶었다. 그래서 잠깐이나마 친구들처럼 들떠 친구들과 함께 몰려다니며 브로마이드를 사들이는 빠순이 노릇을 흉내 내기도 했다. 입시와 경쟁에 찌든 제도 교육과 숨막히는 사회 문화적 통제 속에서 넘쳐나는 사춘기의 에너지를 퍼부을 곳을 찾지 못해 이리저리 방황할 때, 아이돌 스타들은, 우리의 환상적으로 멋지고 근사했던 누나오빠들은 가장 값싸게 살 수 있는 꿈이자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비현실로 도피하는 데 유용한 아름다운 착각이었다.

 

아이들은 언젠가, 반드시 어른이 된다. 값싼 꿈과 아름다운 착각을 부끄러워하거나 시시하게 여기는 때가 오고야 만다. 그때 추억할 어리석고 어설프지만 순진하고도 앙큼했던 격정마저도 없다면, 대체 삶이 무슨 재미란 말인가?

 

182

거의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요새 젊은 것들은 한결같이 싸가지가 없고 경망스럽고 허파에 바람이 잔뜩 들어가 있다.

 

184

내가 직접 놀리진 않았지만…. 다른 아이들이 놀리는 걸 그냥 구경했어. 그러니까 나도 @@를 괴롭히는 데 가담한 거잖아.

 

185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마음과, 비겁을 떨치고 용기를 내어 그것을 표현하는 마음의 힘을.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때면 그녀는 시르죽은 얼굴로 도망치듯 산에 왔다. 집에서 부모에게 쪼이고 학원에서 압박 당한 아이들이 스트레스와 분노를 학교에서 터뜨리는 바람에 평소보다 사건 사고가 서너 배 이상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친구를 때리고, 물건을 훔치고, 유리창을 깨면서 발버둥질해야만 배겨낼 수 있는 압박 속에서 아이들의 일탈은 가학적이자 피학적일 수밖에 없다.

 

194

고려대학교 학생 김예슬이 자퇴를 하며 공개한 대자보 중 스무 살이 되어서도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는 대목이었다. 사회에 의해, 부모에 의해, 타인에 의해 이식된 꿈이 아닌 자신만의 꿈을 찾는 일, 그보다 더 중요한 삶의 문제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어쩌면 젊은 벗들에게 힘보다는 짐이 되는 기성세대가 된 채, 나는 그래도 그녀의 글 마지막 문단에서 희망을 읽었다.

누가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렇다. 내가 고통스럽지만 황홀한 젊음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런 오기와 믿음 덕분이었다.

 

197

남이 부여한 명문의 타이틀을 얻기 위해 우리는 청소년기를 온통 저당 잡혀야 했다. 끝없는 시험과 교실 앞 복도에 게시된 1등부터 꼴등까지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두루마리, 몽둥이찜질과 단체기합과 수치심을 자극하는 욕설, 평균점수가 떨어졌다는 이유로 흙 바닥에 한 시간 동안 꿇어앉았다 일어났을 때 벌목된 나무처럼 쿵쿵 쓰러지던 친구들을 나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성적이 오르는 만큼 맷집과 반항심은 비례하여 졸업할 때쯤은 학교 쪽으로 고개도 돌리기 싫었다.

 

적어도 후배들은 나처럼 학교와 교사와 교육 자체에 트라우마를 가진 성공적인 실패작으로 자라서는 안 된다.

 

198

강연장에서 만난 아이들은 예상대로 예뻤다. 하나 그들은 속내에 감춘 만큼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다.

 

친구들이 미팅을 하고 운전면허학원에 등록을 할 때 도시외곽의 벽촌을 도는 시내버스의 안내양으로 취직했다. 가출을 하기에는 타이밍이 좋지 않았고 알바 치고는 생뚱맞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선거 관련 뉴스 앞에서 아버지와 밥상을 던지며 싸웠다고 해서 정치적인 가출이라 할 수도

곱씹어 보건데 열아홉의 내가 저지런 돌발적인 사건들은, 오직 경쟁과 억압 속에서 잃어버린 나를 알고, 나를 찾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198

나는 오직 인생의 선배로서 조언한다. 여태껏 받아 들고 한숨짓던 성적표의 등수 따위는 깨끗이 잊어 버리길. 지금은 믿지 못하겠지만 정말로 행복은 성적순일 수 없다. 진짜 공부 세상 공부, 사람 공부, 인생 공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허용되어 마땅한 지적 허영과 권장되어 마땅한 체험에 대한 탐욕으로 한껏 들썽들썽 걸신스럽게 공부해야 한다. 부디 그 큰 배움터에서 용맹 정진하기를!

 

199

스스로 빛나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빛나 보이는 것들로 치장을 한다. 세상에는 학벌과 집안, 고급차와 명품가방으로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고자 하는 사람들이 허다 하지만 , 그것은 그들이 애써 가리고자 하는 결핍을 더욱 확연히 드러낸다.

난폭한 운전 버릇을 가진 이에게 고급차는 흉물스런 무기이며, 다정하게 웃지 못하는 여자를 명품 가방과 명품 옷이 아름답게 해줄 리 만무하다.

 

200

재량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반을 지원한 아이들을 만나 말로만 듣던 교실 붕괴를 직접 체험하게 되었다.

 

201

인사를 나누기 전부터 아이들 절반은 스마트폰에 코를 박은 채 고개를 들 줄 모르고, 나머지 절반은 끼리끼리 쑥덕거리거나 정신 없이 돌아 치거나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난장판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그야말로 개판으로 치달아 갔다.

쟤네는 포기하고 우리끼리 수업해요!”

여학생 대여섯이 가방을 싸 들고 앞자리로 옮겨왔다. 그런데 포기 당한 채 날뛰는 학생들만큼이나 포기하자며 다가온 아이들이 기묘했다. 철저히 냉소적인 그들의 표정은 이런 상황에 충분히 익숙해져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괴롭고 싫다면 하지 않는 편이 더 교육적이라고 믿는 나는 문학 강연이고 나발이고 제쳐두고 아이들에게 운동장에서 뛰어 놀거나 마음껏 노닥거릴 자유를 주었다.

 

202

내가 중학생 아이를 키워봐서 아는데, 그들에게 학교는 여전히 중요하다. 인관 관계를 맺고, 갈등을 조절하고, 성취와 좌절을 경험하고, 질서와 부조리를 동시에 체득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학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움에 대한 열망 없이 학교는 없다. 그곳은 다만 잘 지어진 사육장일 뿐이다.

 

203

나는 그때 그곳에서 나를 맨붕시킨 중딩들에게서 내 스승의 그림자를 발견했다. 그들을 보고(상호작용이 없었으므로 만나고를 쓸 수 없다) 나서야 비로소 단호한 이기심으로 무장한 고등학생들과 냉소적이거나 무기력한 대학생들의 과거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육장에 갇힌 채로는 아무 것도 스스로 꿈꿀 수 없다. 완벽한 수동과 완벽한 방임 속에 가장 아름답게 빛나야 마땅할 한 시기가 고사하고 있다. 그리고 더 나쁜 것은, 마침내 그 사육장을 벗어난 후에도 자유와 책임을 견디지 못하도록 길들여진 습성을 쉽게 떨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의 아이들이 가여운 만큼, 미래의 우리가 두렵다.

 

208

졸지에 생사의 갈림길에서 빠져나오니 세가지 생각이 났다. 첫 번째는 꿈자리가 뒤숭숭하다며 꼭두새벽부터 전화를 걸어오신 어머니, 불길한 전조는 과학적인 근거 너머에 있다.

두 번째는 며칠 전 장편소설을 초고나마 탈고하길 다행이라는 생각.

세 번째, 난데없이 던져진 방향 없는 분노를 생각했다. 성질은 좀 나빠도 누구에게 원한을 살 만한 일은 하지 않고 살아왔다고 자부했건만, 익명의 증오 앞에서는 익명의 피해자가 되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 철없는 아이의 장난이었을까. 애꿎은 두꺼비에게 돌을 던지는 화풀이였을까. 유행어처럼 여기저기 갖다 붙여대는 사이코패스의 짓이었을까.

 

209

아무리 농간을 부려도 역사의 도도한 물결을 거스를 수는 없다는 낙관이 있다. 예측할 수 있고 그 끝이 보이는 것들은 두렵지 않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길을 가다 머리 위에 떨어지는 얼음덩이처럼, 출구를 잃은 사람들의 마음은 무섭다. 소통과 저항의 통로를 동시에 잃은 사람들은 서로를 미워하게 된다. 어떤 이들은 용산 철거민 참사 사건이 연쇄살인범 검거 뉴스로 덮어버리는 상황을 개탄하지만, 두 살인극은 나비효과처럼 서로 교묘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야말로 살기 위해 망루로 올라간 약자들의 날갯짓이 공권력에 처참히 꺾일 때, 인간의 가치를 애완용 시베리아허스키의 그것만큼도 여기지 않는 분노와 증오와 환멸의 허리케인은 언제든 사회 곳곳에서 휘 불수 밖에 없으리니.

 

210

생존을 목표로 하는 삶은 우그러지고 졸아든다.

쫄지 마!”라는 단순하고 거친 목소리에 열광할 만큼, 그리하여 생존을 목표로 한 삶은 어수룩하고도 거세진다. 아무것도 믿지 못하고, 아무 것이라도 믿고 싶을 만큼 지난 시간 참 고단했다. 이제는 휴식이 목표가 될 만큼.

 

215

뱀은 뱀끼리 싸울 때 끝내 독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독은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마지막 무기일 뿐, 동종끼리의 시비에 쓸 수는 없다. 하지만 인간의 역사에는 뱀보다 못한 사례가 비일비재다. 해방공간에서의 좌우익테러, 한국전쟁, 그리고 내가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끔찍한 장면으로 꼽는 살육전 또한 뱀이 뱀에게 독을 쓴 실례다. 그리하여 우리 역사를 알면 알수록 분노보다는 슬픔이, 증오보다는 평화의 소망이 커진다. 같은 모국어를 쓰는 사람들끼리 다시는 서로를 향해 악다구니 쓰지 않기를, 비명과 신음으로 대화를 대신하지 않기를.

 

218

건강을 잃고 아파 본 사람은 안다. 아플 때는 아픈 그곳, 위장이면 위장, 허리면 허리, 발바닥이면 발바닥, 손톱 밑이면 손톱 밑이 모든 일상과 생각의 중심이 된다는 것을.

그러하기에 세상의 중심은 권력자도 아니고 재벌도 아니고, 힘든 사람, 어려운 이웃이어야 마땅하다. 타인의 아픔을 돌아보고 보살필 줄 알아야 내 아픔도 이해받고 존중받을 수 있다. 징검다리의 공감은 동정이라기 보다 연민이다.

 

220

증오에 찬 눈을 희번덕이며 욕설을 퍼붓던 노인과 울분을 참지못해 몸부림치던 사내에게서 자멸과 극단의 징후를 본 것은 소설쟁이의 과한 상상일까? 우연히도 버스 안에 틀어놓은 라디오에서는 묻지마 살인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221

신자유주의란 잔혹한 미궁에 갇힌 채 절망한 개인에게는 두 가지 길밖에 다른 것이 없다. 죽이거나 혹은 죽거나. 그래서 날로 증가하는 자살률, 그 중에서도 급증하는 생계형 자살과 묻지마 살인은 실로 동전의 양면이나 마찬가지다. 마음 약한 사람은 무력감에 스스로를 죽이고, 그 살의가 영혼을 뚫고 나간 사람은 칼을 신문지에 말아 들고 거리로 나선다.

기실 세상을 향해 묻지마를 외치는 이들은 한 번도 세상으로부터 질문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살 만하냐고, 얼마나 힘드냐고, 도와줄 일은 없냐고 물어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소외감이 끝내 분노로 폭발한 것이다. 그래서 창졸간에 목격한 봉변보다 더 오랫동안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은 것은 냉담했던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아무도 노인과 사내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고 심지어 한결같이 무표정했다.

 

222

빈곤층과 소외계층을 지원하는 복지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하는 목소리를 들으면 원초적 본능으로 피가 솟구친다. 표나 인기나 권력을 얻기 위해서든 복지는 끊임없이 수호하고 확장해야 할 영역이다. 멀쩡한 강바닥을 파헤쳐 시멘트 공구리를 치고, 길바닥을 뜯어내 보도블록을 깔고, 세금이 둥둥 떠 다니는 인공섬 따위를 만들지만 않으면 최소한의 방어벽을 칠 수 있다. 그들이 삶의 벼랑으로 떠밀릴 때 추락하는 것은 그들만이 아니다. 그들을 짐짓 외면하고 멸시했던 우리 모두가 추락한다. 우리 모두는 이미 보이지 않는 끈으로 친친 감긴 한 덩어리다. 그 추락에는 날개조차 없다.

 

242

작품의 큰 주제를 사랑과 죽음으로 잡고 있다는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저희들은 언제나 생사를 다투는 현장에서 일하는지라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할 수 밖에 없거든요.

어는 교육학자의 말대로, 체험을 넘어서는 지식은 없다. 그들의 깨달음은 책이나 학교가 아니라 일상적인 삶을 통한 것이기에 더욱 진귀하고 소중했다.

 

243

이런 난국에고 소방 조직이 공공기관 신뢰도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소방 조직이 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이유는 생활 속을 파고드는 일상의 힘 때문이다. 허황된 약속과 오해의 쳇바퀴가 아닌 가장 절박한 순간 우리의 손을 이끌어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사람다운 사람만이 갖는 영혼의 힘이다.

 

247, 에세이 공모전 입선 비결

어쨌던 첫 머리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 그와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 형식적인 특이성으로, 남들이 쓰는 틀에 박힌 방식과 다르게 표현하고 구성해 자신만의 개성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수백 편에 이르는 응모작을 심사하는 일은 피곤하고 지루하다. 따라서 초반에 엄정한 잣대를 들이댔던 심사위원들이 피로감과 마감시간에 쫓겨 인간적 한계를 드러내기 전에 가능한 한 빠른 접수번호를 받을 수 있도록 부지런을 떠는 세심함도 필요하다.

 

248

중요한 것은 인권이 과연 내 삶과 일상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어떻게 실현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며 나의 문제를 깨닫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다. 작더라도 직접 겪고 느낀 것,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어 외부로 확장되는 인권감수성이 절실하다. 용례는 내 눈길이 닿는 곳, 반경 50미터 안에서 찾으라는 것이 에세이 공모전 입선 비결의 핵심이다.

 

258

신현수 선생의 시 한 수가 떠오른다.

말 많이 하고 술값 낸 날은

잘난 척한 날이고

말도 안하고 술값도 안 낸 날은

비참한 날이고

말 많이 안 하고 술값 낸 날은

그 중 견딜 만한 날이지만

엘리베이터 거울을 그냥 깨트려버리고 싶을 만큼 괴로운 날은

말을 많이 하고 술값 안 낸 날

 

262

얼마 전 광주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완만한 능선이 아름다운 무등산을 돌고 김삿갓이 마지막 숨을 거둔 적벽 앞에서 매운탕을 안주 삼아 잎새주를 마셨다.

 

264

나의 젊은 날은 518의 슬픔과 분노와 절망과 희망을 뿌리 삼아 자라났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까지도 그 거대한 뿌리에 기대어 부박한 현실을 앙버티고 있다.

 

나는 역사란 기억하는 자의 것이라고 믿는다. 잊지 않고 마음껏 슬퍼하리라. 의롭게 죽은 자들을 기억하며 슬퍼하는 일이야 말로 인류의 일원으로서 본능이며 살아남은 자로서의 의무일 테니.

 

267

얼마 있으면 70대에 들어설 부모님의 스케줄이 나보다 더 빡빡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난타를 치고 드럼을 배우러 다녀야 한다. 노래교실은 일주일에 두 번, 너무 분주해 어머니는 주부대학을 휴학하셨다지만 문화원의 교양강좌는 꼬박꼬박 참석해 듣는다. 적십자 활동에 지역 봉사 모임까지 바빠 죽겠다!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그들의 용맹한 사회활동은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집에 틀어박혀 있으면 아프기만 하고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보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기 때문이란다. 즐겁게 살다가 주위에 폐 끼치지 않고 떠나려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단다. 그러니 무소식이 희소식임을 믿고 각자 열심히 살면 된다고 주장하는 부모님을 둔 나는 분명히 행복한 자식이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가족 관계는 나를 키우고 북돋워온 힘이다.

 

268

노년기의 가장 큰 특징은 융통성의 저하이다. 지하철 경로 우대석이 유일하게 유세를 부릴 자리인 양 임산부와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까지 젊은 것 운운하며 목청을 돋우는 노인들을 보면 화가 나기보다는 서글프다. 너그럽지 못한 강짜와 우격다짐은 그들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취약하고 소외된 계층인가를 드러내는 징표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전문의 하지원 교수는 나이듦의 양극화를 지적하며 한국의 노인들을 온몸으로 변화를 거부하지만 불안에 떨며 소외 받고 있는 그룹과 어느 정도의 경제적 여유를 기반으로 자신의 자아실현과 행복추구를 제일의 가치로 두는 그룹으로 구분한다. 그의 말대로 미래에는 두 번째 그룹이 실질적 주류가 될 가능성이 크지만, 더 분명한 것은 우리는 누구나 둘 중의 하나에 속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269

부모님을 보면서 나의 노년을 상상한다. 미래에 우리가 어떤 인간일 것인가를 모른다면, 우리가 지금 누구인가도 알지 못한다.

 

274

젊은 날에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흔해만 보였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이상은 의 노래 <언젠가는>의 가사가 가슴을 후벼 팔 무렵부터, 나는 젊지 않았다. 더 이상 젊지 않음을 알기에 서럽고, 가뭄에 콩 나듯 올동말동 한 사랑에 쓸쓸할지라도, 젊음을 몰랐던 젊음과 흔한 줄만 알았던 사랑을 뜨겁게 낭비하고 기꺼이 탕진한 시간은 돌이켜 여전히 아름답다.

 

276

미국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위리엄 제임스는 기억으로 그 조화를 설명한다. 그에 의하면 기억이 시간감각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으며, 시간의 길이와 속도는 바로 기억 속에서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흑백필름처럼 단조로운 기억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회상도 지극히 단순할 수 밖에 없다. 매일이 쳇바퀴를 돌리듯 평범하다면 역설적으로 한 달과 한 해는 무섭도록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따라서 인생을 길고 알뜰하게 사는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여행을 즐기며 사는 것이다.

 

277

여행지에서는 모든 것이 완전히 새롭다. 낯설기에 불안하고 두렵기는 하지만 기억은 시시각각 빼곡하게 들어찬다.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는 여행이 쉽지 않다면 가장 간단하고 값싸게 기억을 사는 방법이 바로 독서다. 한 권의 책은 구태의연한 생각과 무뎌진 감각을 뒤흔들고 읽는 이를 순식간에 낯선 시간 속으로 데려간다.

 

사랑을 잃고 그래도 나는 산다.

 

281

헛된 기대와 섣부른 낙관은 할 수 없을지라도 역사는 언제고 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절망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동안, 일산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버티고 견디는 사이

 

282

새벽 어판장 어선에서 막 쏟아낸 고기들이 파닥파닥 바닥을 치고 있다.

육탁 같다.

더 이상 칠 것 없어도 결코 치고 싶지 않은 생의 바닥

생애에서 제일 센 힘은 바닥을 칠 때 나온다

나도 한 때 바닥을 친 뒤 바닥보다 더 깊고 어둔 바닥을 만난 적이 있다.

육탁을 치는 힘으로 실지 못했다는 것을 바닥을 치면서 알았다.

도다리 광어 우리들도 바다가 제 세상이었던 때 있었을 것이다

내가 무덤 속 같은 검은 비닐봉지의 입을 열자

고기 눈 속으로 어판장 알전구 빛이 심해처럼 캄캄하게 스며들었다

아직도 바다 냄새 싱싱한,

공포 앞에서도 아니 죽어서도 닫을 수 없는 작고 둥근 창문

늘 열려 있어서 눈물 고일 시간도 없었으리라

고이지 못한 시간들이 염분을 풀어 바닷물을 저토록 짜게 만들었으리라

누군가를 오래 기다린 사람의 집 창문도 저렇게 늘 열려서 불빛을 흘릴 것이다

지하도에서 역 대합실에서 칠 바닥도 없이 하얗게 소금에 절이는 악몽을 꾸다가 잠깬

그의 작고 둥근 창문도 소금보다 눈부신 그 불빛 그리워할 것이다

집에 도착하면 캄캄한 방문을 열고

나보다 손에 들린 검은 비닐봉지부터 마중할 새끼들 같은, 새끼들 눈빛 같은

_ <육탁> 배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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