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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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강좌에 오는 사람 중에 이미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많다. “작가가 되는 첫 번째 조건은 불행한 유년시절”이라는 말에 딱 부합하는, 소설적인 성장기를 거친 사람이 있었고, 15년 동안이나 출가했던 경험을 가진 사람도 생각난다. 훨씬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 중에도 수려한 글솜씨를 가진 분들이 많았다. 명퇴 이후 목소리가 커진 아내에게 밉지 않게 퉁박을 주거나 출근길 지하철 풍경을 그림처럼 그려내던 분들이 떠오른다.
그들을 보며 우선 직장인에 대한 편견을 깼다. 직장생활을 해 본 적이 없는 만큼 직장인들이 개성이나 자기표현과 거리가 멀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묵묵하게 생활인의 책무를 감내하고 있을 듯한 직장인들이 그처럼 섬세한 표현력을 감추고 있다는데 놀랐다. 소위 “아줌마, 아저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아줌마를 넘어 노땅에 가까우면서도 여전히 아줌마, 아저씨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있다는 것은 엄청난 아전인수지만, 어쨌든 생활에 소용이 닿지 않는 것은 하나도 품고 있지 않을 것 같은 연배가 한 편의 빛나는 글을 쓰는 것을 보며, “세상에 보통사람이란 없다”거나, “우리네 삶은 지극히 일상적이면서도 신화적”이라는 조셉 켐벨의 말을 실감했으니......
그러나 그들 중 대부분은 생활현장으로 돌아갔다. 명퇴했던 분은 부품점을 차렸고, 살림을 해야 하는 사람은 붙잡는 것이 너무 많으며, 다들 열심히 직장에 다닌다. 열심히 사는 것이 뭐가 나쁘랴. 다만 글쓰기수업에 왔던 기억조차 지우고 그 소중한 가능성을 사장시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그들에게 아낌없는 격려를 퍼부었다. 내가 별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아직은 튜터니까, 튜터인 나보다 낫다는 말도 했고, 조직을 떠나는 2막에는 나처럼 책 쓰고 강의하는 패턴이 최고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말도 수없이 강조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첫 책”이 필수적이다.
책쓰기에 대한 내 신념이 어찌나 확고했던지, “글쓰기의 최종 목표가 책쓰기인가요?” 하는 질문도 들었다. 그렇다. 최종까지는 아니더라도 책쓰기를 중간목표로 잡고 글을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책이 별건가? 내가 이런 주제를 이만큼 공부하고, 이만큼 생각해 보았다는 결과를 묶어내어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징검다리 하나 놓아주는 거지.... 책을 씀으로써 내 공부에는 작으나마 매듭이 지어지고, 그럼으로써 홀가분하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고, 어마어마한 유능감을 느낄 수 있고, 후진들에게 지도 하나 줄 수 있고, 인세가 생기고, 잘 하면 강의 요청을 받아 강사료를 받고, 내 강좌를 할 수도 있는데..... 그걸 왜 않겠는가? 책쓰기가 아니라면 무엇으로 내 글쓰기가 1단계를 넘어 섰다는 것을 확인할 것이며, 망망대해 같은 공부의 세계에서 작은 성취감을 맛볼 것인가? 나무에게 부끄럽지 않은 책을 써라, 나 자신과 한 사람의 독자에게 부끄럽지 않은 책을 쓸 수 있다면 그대는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여 놓게 될 것이다.
돌아보면 수려한 글솜씨 순서대로 첫 책을 쓰는 것이 아니었다. 단순하게 말해서 <우선순위>와 <구성력> 순서대로 책을 쓴다. 그녀가 쓴 댓글을 메모하게 될 정도로 표현력이 돋보이면 뭐하나, 한 두 번 시도했다 좌절하면 그만이지. 그러나 투박한 글솜씨로 시작했어도 내 책을 쓰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꾸준히 아웃풋을 내는 사람들은 끝내 책을 썼다. 문학적인 성향과 구성력이 반비례하는 경향도 분명히 있는 듯하다. 문학은 워낙 크고 심오한 것이라 뭐라고 말을 보태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문학에도 주제의식은 있는 것 아닌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독자가 읽기 좋은 토막과 순서로 배치하는 <구성력>을 갖춘다면, 글솜씨를 타고난 사람들은 순풍을 만날 것이다.
글쓰기강좌가 해를 더할수록 더 좋은 선생이 되고 싶어진다. 한 번 수강생은 영원한 수강생이니 다시 마음을 돌이켜 도전하기 바란다. “나를 딛고 넘어가라”던 큰 스승의 흉내를 낼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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