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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27일 18시 21분 등록

20150327

 

나는 내가 될 뿐이다.

 

변화경연연구원이 되어서 나는 더욱 더 공고히 내가 되었다. 첫 과제로, 면접여행에서 변화경영연구원의 책을 기획해오라 했을 때, 내가 낸 제목은 그래서, 변했니?”였다.

 

이제 내게 내가 꺼내든 짱돌을 되던진다. ‘그래서, 너는 변했니?’

 

면접여행의 목적지 수유리에 들어섰을 때, 그 산으로 둘러싸인 청명한 공기와 익숙한 산세의 삼거리에 내렸을 때, 나는 이 여정의 끝이 어떠할 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막막했다. 내 인생은 아주 기묘하게 꼬여가고 있었다. 직장의 굴레를 벗어나 사방 팔방으로 트일 줄 알았던 백수의 길은 처절한 감옥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 생각에 나는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왜 이런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불안을 냉담으로 무장하고 면접장에 들었다. 모든 질문에 답을 피하려 애쓰며 내 상황을 노출할 수 있는 힌트를 흘리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면접장에 들어섰고 하루를 보냈다. 나는 나를 꽁꽁 싸매 감추었다. 무섭고 쪽팔려서 나를 보여줄 수 없었다

 

이제 1년이 지났고, 그래서 내가 변했느냐고?

지금 나는 오픈 북이다. 속셈이 다 보이고, 속셈을 굳이 들여다 볼 필요도 없이 먼저 다 떠벌려서 저 혼자 후련한 푼수가 된 듯 하다. 상황이 달라졌느냐고, 뭔가 많이 나아졌느냐고, 뭔가 깨달았느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그렇지 않다. 나는 사실, 원래부터 유명한 오픈북이었다. 보여줄 곳이 없어서 못 보여줬을 뿐. 워낙이 팔랑귀였고, 아무리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어도 좋아하는 친구가 연락이 오면 차 한잔 마시자는 다정한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고,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속내를 다 드러내 보이며 네가 좋아를 온몸으로 표출하는 강아지과 인간인걸.

 

나이가 드니, 숨길 게 많아지니 그런 나를 보이기가 쉽지 않았다. 누군가에 대한 애정도 그렇지만, 내가 진정 원하는 걸 인정하는 것은 더욱 더 어려웠다. 여태껏 쌓아둔 경력이, 고이고이 숨겨둔 나의 서툰 욕망으로 망가질까 두려웠다. 쓰고 싶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2년이 걸렸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어린 꿈을 유치하게 여겨서, 간신히 커버해둔 커리어우먼 코스프레를 벗겨버릴까봐 스스로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뭐, 글을 잘 쓰든 못 쓰든 내 욕망의 카드를 오픈하고 나니 뭐 더 이상 숨길 방법이 없다. 어디를 가든 전력질주를 해야 되는 순간이 오면 등골이 서늘해지며 불안을 가중시키던 검은 커튼 뒤의 존재도 조금씩 신비주의의 힘을 잃어가는 중이다. 팔랑귀, 오픈북 나에게 비밀은 언제나 너무 버거운 짐이었다. 짐을 덜고 가벼워져서 나는 좋다.

 

변화경영연구원 때문에 나는 다시 오픈북이 되었다. 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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