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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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일
무궁화호를 타고 선발대가 떠났다. 부푼 마음을 안고 가방을 둘러맸다. 오후의 볕이 낯설고 따뜻했다. 서울역과 시청을 방황하다가 웨버와 조우하러 보정역으로 떠났다. 예전에 언니가 살았던 동네라 나도 몇 번 가보았고, 웨버쪽에서도 오기 수월한 편이라고 했다. 광역버스를 타고 예전에 언니가 살던 집 근처로 갔다. 창문 밖으로 쏟아져내리는 햇볕을 받으며 쿨쿨 잤다. 정거장을 몇 개 거치지 않는 버스라서 만나기로 한 시간에 맞게 도착했다. 보정역쪽으로 걸어가면서 바나나 우유랑 찐계란, 과자 한봉지, 딸기 모찌와 찹살떡을 샀다. 어젯밤부터 감기 기운이 조금 있어서 겁이 났지만, 여행을 가는 것이 즐거웠다. 보정역에서 웨버를 만나 차를 타고 내려갔다. 선형언니는 더 늦게나 나올 수 있는 것 같았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려 호두과자와 커피, 호박엿을 사먹었다. 호두과자 맛이 제법 괜찮았다. 웨버랑 이야기를 이렇게 오래한 것은 일년 중 처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업종이 비슷하다 보니 회사에서 만났다면 어떤 인상을 받았을까에 대해 상상해본다. 아마 인사만 하는, 어려운 사람이었겠지. 그래도 무언가 저지르고 싶어하는 욕망에 공감하고 있어 함께 있는 것이 즐겁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목포엘 왔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데 새빨간 석양이 선명하게 눈을 찔렀다. 무작정 석양을 따라 어느 한적한 연구소 뒷뜰에서 낙조를 바라보았다. 이 석양을 보기 위해 이 먼 길을 달려왔구나. 좋은 징조였다.
첫날 묵을 목포 가족호텔은 열댓명의 인원이 어울려 놀다가 자기 딱 좋은 구조였다. 답사도 없이 이런 곳을 낙점하다니 우리 총무가 이제 완전히 도가 텄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은 독천식당이란 곳에서 낙지를 먹었다. 몇 가지 젓갈이 포함된 찬이 나오고 산낙지와 낙지 볶음이 나왔다. 산낙지가 싱싱했다. 낙지볶음은 큰 스테인리스 그릇에 밥과 비벼먹었는데, 정말 훌륭한 메뉴였다. 연포탕과 낙지 무침을 섞어 먹고 아쉬운 첫 식사를 마무리했다. 선발대는 고창 선운사를 보고 나오며 장어와 복분자주를 먹었다고 했다. 문득 장어가 무척 먹고 싶어졌다. 창선배, 교감쌤, 승호선배와 같은 테이블이었는데, 특히 창선배가 맛있게 잘 먹는 통에 경쟁적으로 잘 먹으려고 노력했다.
목포 거리가 아주 어릴 때 보던 골목 같아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막자 사발 같은 것을 파는 의료기기 가게가 있었고, ‘서림’으로 끝나는 책방이 있었다. 좁은 길에서 자동차들이 매우 빨리 달렸다.
잠시 숙소에 짐을 풀고 우리는 유달산엘 올라가기로 했다. 처음 목포에 도착해 숙소에 가는 길에서 해저문 유달산에 조명을 밝혀놓은 것을 보았다. 바위가 아주 멋있어서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마침 잘 되었다.
좁은 골목들을 이리 저리 돌며 산으로 갔다. 낙산 밑 혜화동과 비슷한 분위기가 났다. 경사는 훨씬 덜했다. 불꺼진 창문들이 조용히 줄지어 자고 있고 가끔 먼 곳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 차가운 밤길을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걸어갔다. 유달산은 평평하게 깎은 돌계단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분홍색, 하얀색 겹동백이 품위 있게 피어있었다. 좋은 포인트라고 생각하는 곳을 갈 때마다 더 높은 곳이 더 좋아보여 우리는 한참을 올라갔다. 일등바위까지 올라가 네온사인으로 불을 밝힌 목표 대교를 바라보고 나서야 우리는 발걸음을 돌릴 수 있었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목포는 산을 중심으로 둥글게 동네가 퍼져나가는 모양이었다. 조용히 길을 밝혀주는 가로등과 도시의 불빛이 넓은데도 소박하다. 항구에서부터 뜨거운 배의 엔진 소리가 도시를 덮고, 좁은 바다 너머로 다른 섬들의 선착장 불이 밝게 빛났다. 그래서 목포는 항구라고 하는가 보다, 그렇게 생각했다. 아래 있는 정자에서 들고왔던 복분자주와 고구마 말랭이를 먹고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를 나눴다.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자신의 현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2월 수업 이후에 과제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어 속으로 좀 쭈그러져 있었던 나도 다시 한번 해보아야 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모두의 이야기가 한바퀴 돌고 우리는 각자 잠자리로 돌아갔다. 집에서 가져갔던 타이레놀을 먹어도 기침이 심하다. 완전히 감기가 왔다. 내일 아침에는 사우나라도 해보아야겠다.
3/28 토
간밤에 맞춰놓은 알람을 듣고 일어났다. 아직 몸이 움직일만 했다. 지친 어둠 속에 모두들 한참 단꿈을 꾸고 있었다. 혼자 세면도구가방을 들고 방을 나섰다. 머물렀던 호텔에서 추천받은 목욕탕은 2블록쯤 떨어져있어서 꽤 걸어가야 했다. 입장료는 5,500원이었다. 너무 싸서 깜짝 놀랐다. 들어가보니 만원이었다. 공중 목욕탕은 오래간만이라 고향에 온 것처럼 즐겁고 새로웠다. 탕에 몸을 담그니 정신이 들어왔다. 모처럼 사우나도 해볼까 싶어 들어갔는데, 이미 거기 있던 아주머니들은 목욕탕에 같이 다니는 친구들인 모양이었다. 내가 들어가고 얼마 안되어 두부 한 모를 쟁반에 받쳐 내더니, 어떤 아주머니는 두르고 온 방수천 밑에서 매실주를 꺼냈다. 분위기가 나에게도 권할 것 같아 황급히 나왔다. 탕에서 조금더 몸을 달구고 목욕탕을 나섰다. 기분이 아주 상쾌했다.
아침으로 먹은 곳은 유달 콩물이라고, 여름에 콩국수를 파는 곳이었다. 지금은 콩나물 해장국을 시켰다. 세상에 너무 맛있었다. 아침 목욕 후에 먹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목포를 떠난 우리들은 강진 다산초당으로 갔다. 근처에 새로 생긴 다산 박물관은 고증을 아주 탄탄하게 해두었다. 3D 비슷하게 영상도 제작했는데, 아주 그럴싸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글씨도 보았는데, 그 관찰력과 세심한 안목처럼 글씨도 아주 가늘고 깔끔했다.
다산 초당은 공사중이어서, 우리는 천일각에서 구강포를 내려다보고 고즈넉한 산길을 걸어 백련사로 갔다. 재작년 아빠가 돌아가신 가을에 왔을 때 ‘동백이 피면 또 보러 와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이 기억나서 마음이 흡족했다. 코를 푸는데 코피가 났다. 백련사 찻집에서 오미자를 마시며 일행을 기다렸다. 확실히 잠을 적게 자니 몸이 약해진 모양이다. 그래도 다같이 떠들썩하게 웃으며 있자 그런 것은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차를 달려 고금도 충무사로 떠났다. 점심을 먹은 곳은 설성식당으로 빈방에 앉아있으면 밥상채로 아주머니들이 차려 들고 가져다 주셨다. 종류도 다양하거니와 무척 맛있고 저렴했다. 옅은 홍어와 살짝 맵게 볶은 제육 볶음이 있었다. 정신 없이 먹었다.
고금도 충무사엘 다시 왔다. 이곳도 이른 봄으로 동백이 여기저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쓸쓸한 곳. 이곳의 파토스는 여전했지만, 많이 담담해진 기분이 들었다. 내가 많이 치유가 되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스스로의 운명을 기다리며 최선을 다한 하루를 살아내는 한인간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에움을 따라 충무사 뒷길로 가보았다. 숲이 작고 깊었다. 갯벌이 있는 쪽으로 내려왔다가 반도를 한바퀴 쭉 돌아 가매장 되었던 소나무숲을 갔다. 한참 앉아있다가 일행에게 돌아갔다.
중간에 길을 잠시 잃었지만, 다행히 수문 해수욕장을 찾아갔다. 2년만에 간 바다는 많이 변해있었다. 나무로 만든 산책로 같은 것이 생겼고, 배가 메여있었다. 모래사장 침식이 일어났는지 물살이 빠르고 작아졌다. 배의 들고남으로 깨진 조개 파편과 자갈들이 가득해졌다. 그래도 바다 멀리 보이는 병풍 같은 푸른색 섬들은 그대로였다. 날이 흐려 낙조는 볼 수 없었지만, 다시 이곳에 와 기뻤다. 근처 가게에서 소주 한 병과 새우깡을 샀다. 웨버는 품 속에서 소주를 한 병 꺼냈다.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고 소주를 뿌렸다. 신기하게 예전처럼 북받치거나 서글프지 않았다. 오히려 무척 기뻤다. 여기에 같이 올 연구원 동기가 있다는 것, 함께 와준 변경연 선배들이 있다는 것. 또 내가 보냈던 지난 1년이 매우 즐겁고도 나를 키워냈다는 것. 그랬기에 나의 올해도 더욱 열심히, 빛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했다.
저녁은 장흥 삼합을 먹으러 갔다. 감기가 점점 더 심해졌다. 한우와 키조개, 버섯으로 삼합이다. 고기가 무척 싸고 맛있었다. 조개를 얹어 파채를 곁들이니 정말 맛있었다. 좋아하는 것들을 한꺼번에 먹으니 더욱 행복했다. 우리는 소화제가 필요할 만큼 많이 먹었다.
오늘 잘 곳은 편백나무로 지은 한옥이었다. 나중에 들었지만 우리가 처음 자는 손님들이었다. 예쁜 건물이었지만, 편백나무 벌레들이 시도때도 없이 날아다녔다. 이상하게도 벌레가 무섭지 않았다. 너무 많이 있으니 오히려 차분해진 것 같았다. 성가시긴 했다.
우리는 연구원을 하면서 무엇이 달라졌는가에대해 이야기했다.
교육팀 네 분에게 선물을 했다.
만년필을 시험해보려고 노트를 꺼냈는데 다행히 만년필과 잘 맞는 노트였다.
한차례 이야기가 돌고 우리는 술을 마시여 이야기를 계속했다.
마지막 밤이라고 생각하니 헤어짐이 성큼 다가온 것 같았다. 아쉬웠다.
3/29 일
오늘은 늦게 일어났다. 나를 깨워주는 사람들의 얼굴이 머리 위로 보였다가 사라졌다. 목이 완전히 잠겨있다. 어제 몸을 좀 씻고 잤어야 했는데, 수건이 없어 세수만 했던 것이 화근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편백나무 집과 뜨뜻한 황토 덕에 몸이 뜨거웠다.
몸을 씻고 나니 좀 났다. 오늘은 구례로 가는 길에 맑은 대구탕을 먹었다.
구례는 산수유축제로 사람이 많아 조금 떨어진 수락폭포를 보러 갔다. 남원에서 추어탕을 먹고 천안의 마실 신규 위치로 가는 팀과 헤어져 웨버, 녕이언니, 에움언니와 같이 차를 타고 올라갔다.
IP *.36.151.187
무궁화호를 타고 선발대가 떠났다. 부푼 마음을 안고 가방을 둘러맸다. 오후의 볕이 낯설고 따뜻했다. 서울역과 시청을 방황하다가 웨버와 조우하러 보정역으로 떠났다. 예전에 언니가 살았던 동네라 나도 몇 번 가보았고, 웨버쪽에서도 오기 수월한 편이라고 했다. 광역버스를 타고 예전에 언니가 살던 집 근처로 갔다. 창문 밖으로 쏟아져내리는 햇볕을 받으며 쿨쿨 잤다. 정거장을 몇 개 거치지 않는 버스라서 만나기로 한 시간에 맞게 도착했다. 보정역쪽으로 걸어가면서 바나나 우유랑 찐계란, 과자 한봉지, 딸기 모찌와 찹살떡을 샀다. 어젯밤부터 감기 기운이 조금 있어서 겁이 났지만, 여행을 가는 것이 즐거웠다. 보정역에서 웨버를 만나 차를 타고 내려갔다. 선형언니는 더 늦게나 나올 수 있는 것 같았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려 호두과자와 커피, 호박엿을 사먹었다. 호두과자 맛이 제법 괜찮았다. 웨버랑 이야기를 이렇게 오래한 것은 일년 중 처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업종이 비슷하다 보니 회사에서 만났다면 어떤 인상을 받았을까에 대해 상상해본다. 아마 인사만 하는, 어려운 사람이었겠지. 그래도 무언가 저지르고 싶어하는 욕망에 공감하고 있어 함께 있는 것이 즐겁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목포엘 왔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데 새빨간 석양이 선명하게 눈을 찔렀다. 무작정 석양을 따라 어느 한적한 연구소 뒷뜰에서 낙조를 바라보았다. 이 석양을 보기 위해 이 먼 길을 달려왔구나. 좋은 징조였다.
첫날 묵을 목포 가족호텔은 열댓명의 인원이 어울려 놀다가 자기 딱 좋은 구조였다. 답사도 없이 이런 곳을 낙점하다니 우리 총무가 이제 완전히 도가 텄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은 독천식당이란 곳에서 낙지를 먹었다. 몇 가지 젓갈이 포함된 찬이 나오고 산낙지와 낙지 볶음이 나왔다. 산낙지가 싱싱했다. 낙지볶음은 큰 스테인리스 그릇에 밥과 비벼먹었는데, 정말 훌륭한 메뉴였다. 연포탕과 낙지 무침을 섞어 먹고 아쉬운 첫 식사를 마무리했다. 선발대는 고창 선운사를 보고 나오며 장어와 복분자주를 먹었다고 했다. 문득 장어가 무척 먹고 싶어졌다. 창선배, 교감쌤, 승호선배와 같은 테이블이었는데, 특히 창선배가 맛있게 잘 먹는 통에 경쟁적으로 잘 먹으려고 노력했다.
목포 거리가 아주 어릴 때 보던 골목 같아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막자 사발 같은 것을 파는 의료기기 가게가 있었고, ‘서림’으로 끝나는 책방이 있었다. 좁은 길에서 자동차들이 매우 빨리 달렸다.
잠시 숙소에 짐을 풀고 우리는 유달산엘 올라가기로 했다. 처음 목포에 도착해 숙소에 가는 길에서 해저문 유달산에 조명을 밝혀놓은 것을 보았다. 바위가 아주 멋있어서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마침 잘 되었다.
좁은 골목들을 이리 저리 돌며 산으로 갔다. 낙산 밑 혜화동과 비슷한 분위기가 났다. 경사는 훨씬 덜했다. 불꺼진 창문들이 조용히 줄지어 자고 있고 가끔 먼 곳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 차가운 밤길을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걸어갔다. 유달산은 평평하게 깎은 돌계단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분홍색, 하얀색 겹동백이 품위 있게 피어있었다. 좋은 포인트라고 생각하는 곳을 갈 때마다 더 높은 곳이 더 좋아보여 우리는 한참을 올라갔다. 일등바위까지 올라가 네온사인으로 불을 밝힌 목표 대교를 바라보고 나서야 우리는 발걸음을 돌릴 수 있었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목포는 산을 중심으로 둥글게 동네가 퍼져나가는 모양이었다. 조용히 길을 밝혀주는 가로등과 도시의 불빛이 넓은데도 소박하다. 항구에서부터 뜨거운 배의 엔진 소리가 도시를 덮고, 좁은 바다 너머로 다른 섬들의 선착장 불이 밝게 빛났다. 그래서 목포는 항구라고 하는가 보다, 그렇게 생각했다. 아래 있는 정자에서 들고왔던 복분자주와 고구마 말랭이를 먹고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를 나눴다.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자신의 현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2월 수업 이후에 과제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어 속으로 좀 쭈그러져 있었던 나도 다시 한번 해보아야 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모두의 이야기가 한바퀴 돌고 우리는 각자 잠자리로 돌아갔다. 집에서 가져갔던 타이레놀을 먹어도 기침이 심하다. 완전히 감기가 왔다. 내일 아침에는 사우나라도 해보아야겠다.
3/28 토
간밤에 맞춰놓은 알람을 듣고 일어났다. 아직 몸이 움직일만 했다. 지친 어둠 속에 모두들 한참 단꿈을 꾸고 있었다. 혼자 세면도구가방을 들고 방을 나섰다. 머물렀던 호텔에서 추천받은 목욕탕은 2블록쯤 떨어져있어서 꽤 걸어가야 했다. 입장료는 5,500원이었다. 너무 싸서 깜짝 놀랐다. 들어가보니 만원이었다. 공중 목욕탕은 오래간만이라 고향에 온 것처럼 즐겁고 새로웠다. 탕에 몸을 담그니 정신이 들어왔다. 모처럼 사우나도 해볼까 싶어 들어갔는데, 이미 거기 있던 아주머니들은 목욕탕에 같이 다니는 친구들인 모양이었다. 내가 들어가고 얼마 안되어 두부 한 모를 쟁반에 받쳐 내더니, 어떤 아주머니는 두르고 온 방수천 밑에서 매실주를 꺼냈다. 분위기가 나에게도 권할 것 같아 황급히 나왔다. 탕에서 조금더 몸을 달구고 목욕탕을 나섰다. 기분이 아주 상쾌했다.
아침으로 먹은 곳은 유달 콩물이라고, 여름에 콩국수를 파는 곳이었다. 지금은 콩나물 해장국을 시켰다. 세상에 너무 맛있었다. 아침 목욕 후에 먹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목포를 떠난 우리들은 강진 다산초당으로 갔다. 근처에 새로 생긴 다산 박물관은 고증을 아주 탄탄하게 해두었다. 3D 비슷하게 영상도 제작했는데, 아주 그럴싸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글씨도 보았는데, 그 관찰력과 세심한 안목처럼 글씨도 아주 가늘고 깔끔했다.
다산 초당은 공사중이어서, 우리는 천일각에서 구강포를 내려다보고 고즈넉한 산길을 걸어 백련사로 갔다. 재작년 아빠가 돌아가신 가을에 왔을 때 ‘동백이 피면 또 보러 와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이 기억나서 마음이 흡족했다. 코를 푸는데 코피가 났다. 백련사 찻집에서 오미자를 마시며 일행을 기다렸다. 확실히 잠을 적게 자니 몸이 약해진 모양이다. 그래도 다같이 떠들썩하게 웃으며 있자 그런 것은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차를 달려 고금도 충무사로 떠났다. 점심을 먹은 곳은 설성식당으로 빈방에 앉아있으면 밥상채로 아주머니들이 차려 들고 가져다 주셨다. 종류도 다양하거니와 무척 맛있고 저렴했다. 옅은 홍어와 살짝 맵게 볶은 제육 볶음이 있었다. 정신 없이 먹었다.
고금도 충무사엘 다시 왔다. 이곳도 이른 봄으로 동백이 여기저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쓸쓸한 곳. 이곳의 파토스는 여전했지만, 많이 담담해진 기분이 들었다. 내가 많이 치유가 되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스스로의 운명을 기다리며 최선을 다한 하루를 살아내는 한인간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에움을 따라 충무사 뒷길로 가보았다. 숲이 작고 깊었다. 갯벌이 있는 쪽으로 내려왔다가 반도를 한바퀴 쭉 돌아 가매장 되었던 소나무숲을 갔다. 한참 앉아있다가 일행에게 돌아갔다.
중간에 길을 잠시 잃었지만, 다행히 수문 해수욕장을 찾아갔다. 2년만에 간 바다는 많이 변해있었다. 나무로 만든 산책로 같은 것이 생겼고, 배가 메여있었다. 모래사장 침식이 일어났는지 물살이 빠르고 작아졌다. 배의 들고남으로 깨진 조개 파편과 자갈들이 가득해졌다. 그래도 바다 멀리 보이는 병풍 같은 푸른색 섬들은 그대로였다. 날이 흐려 낙조는 볼 수 없었지만, 다시 이곳에 와 기뻤다. 근처 가게에서 소주 한 병과 새우깡을 샀다. 웨버는 품 속에서 소주를 한 병 꺼냈다.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고 소주를 뿌렸다. 신기하게 예전처럼 북받치거나 서글프지 않았다. 오히려 무척 기뻤다. 여기에 같이 올 연구원 동기가 있다는 것, 함께 와준 변경연 선배들이 있다는 것. 또 내가 보냈던 지난 1년이 매우 즐겁고도 나를 키워냈다는 것. 그랬기에 나의 올해도 더욱 열심히, 빛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했다.
저녁은 장흥 삼합을 먹으러 갔다. 감기가 점점 더 심해졌다. 한우와 키조개, 버섯으로 삼합이다. 고기가 무척 싸고 맛있었다. 조개를 얹어 파채를 곁들이니 정말 맛있었다. 좋아하는 것들을 한꺼번에 먹으니 더욱 행복했다. 우리는 소화제가 필요할 만큼 많이 먹었다.
오늘 잘 곳은 편백나무로 지은 한옥이었다. 나중에 들었지만 우리가 처음 자는 손님들이었다. 예쁜 건물이었지만, 편백나무 벌레들이 시도때도 없이 날아다녔다. 이상하게도 벌레가 무섭지 않았다. 너무 많이 있으니 오히려 차분해진 것 같았다. 성가시긴 했다.
우리는 연구원을 하면서 무엇이 달라졌는가에대해 이야기했다.
교육팀 네 분에게 선물을 했다.
만년필을 시험해보려고 노트를 꺼냈는데 다행히 만년필과 잘 맞는 노트였다.
한차례 이야기가 돌고 우리는 술을 마시여 이야기를 계속했다.
마지막 밤이라고 생각하니 헤어짐이 성큼 다가온 것 같았다. 아쉬웠다.
3/29 일
오늘은 늦게 일어났다. 나를 깨워주는 사람들의 얼굴이 머리 위로 보였다가 사라졌다. 목이 완전히 잠겨있다. 어제 몸을 좀 씻고 잤어야 했는데, 수건이 없어 세수만 했던 것이 화근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편백나무 집과 뜨뜻한 황토 덕에 몸이 뜨거웠다.
몸을 씻고 나니 좀 났다. 오늘은 구례로 가는 길에 맑은 대구탕을 먹었다.
구례는 산수유축제로 사람이 많아 조금 떨어진 수락폭포를 보러 갔다. 남원에서 추어탕을 먹고 천안의 마실 신규 위치로 가는 팀과 헤어져 웨버, 녕이언니, 에움언니와 같이 차를 타고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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