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에달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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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여행_구달칼럼#53
구선생님이 자신의 길을 찾아 일인기업가의 길을 걷기 전, 한 달 반의 남도 여행을 하신 길을 일부나마 따라가 보는 것이 이번 여행의 컨셉이었다.
“우리를 나왔지만 홀로 살아가는 것이 두려운 짐승 같았다. 내 속에 숨어있는 자유로운 영혼을 꺼집어 내는 나만의 의식이 절박했다.”
이 여행이 졸업여행이라곤 하지만 책 쓰기(홀로서기)를 위한 새로운 시작의 의미도 있으니 스승님의 마음을 따라가 보는 것도 의미 있겠다.
우리는 멀쩡한 좌석을 두고 무궁화 카페칸에 퍼질고 앉았다. 서대전에서 전용버스로 갈아타고 남도여행을 시작하기에 서울서 서대전까지는 기차를 이용하여 가지로 했다. 여행 기분을 내기에는 이전의 비둘기호에 해당하는 무궁화호가 안성맞춤일 테다. 학창시절 방학을 맞아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서울이 고향인 친구와 함께 부산에서 용산행 비둘기호 입석을 끊어, 제일 뒤 칸 바닥에 주저앉아 엿가락처럼 끝없이 뒤로 뽑혀 나오는 철길을 바라보며 마냥 즐거워하던 그 때가 생각났다. 우리는 동그랗게 열차 카페 칸에 자리잡고 바닥에 주저앉아 계란에 맥주을 마시며 끝없이 수다를 떨었다. 수원과 조치원에서 녕이와 에움이 차례로 합류하여 우리는 총 8명의 대부대가 되었다. 온통 유리로 만들어진 대형 차창을 통해 쏟아지는 봄볕을 어깨 위로 받으며 우리는 스쳐가는 개나리의 눈부신 노란 황홀 속으로 빠져들었다. 우리가 본격적으로 회포를 풀어볼까 하니 벌써 서대전역 도착 방송이 나온다. 남은 이야기는 2막 버스 안에서 나누기로 하고 모두들 총총히 일어선다. 여행 떠나면 모든 장면이 거침없이 흘러가니 흐름을 즐기면 되는 것이리라.
눈물처럼 후두둑 떨어지는 동백꽃을 보기 위해 고창 선운사로 향했다. 우리를 태운 25인승 미니버스도 우리처럼 즐거운 양 거침없이 달린다. 벌써 늦은 점심 때가 되었다. 풍천장어에 복분자주는 환상의 궁합으로 우리의 주린 배를 북소리가 나도록 채워 주었다. 자전거를 탈 때면 운동이 되니 먹는 재미가 70% 이상 솟구치지만 일반 여행이라도 먹는 재미가 반 이라 한다. 비록 버스 여행이라 하지만 장어가 이 지역 명물이라 맛은 보증수표다. 거기다 맛을 위하여 천리를 마다 않는 달자샘이 발품팔아 찜한 장소가 아니던가. 한껏 장어와 복분자주로 포식을 하고 조금 나른해진 몸으로 선운사의 동백꽃을 찾았다.
그런데 선운사 정면에 담장을 둘러친 듯 핀 동백꽃들은 사람들 손을 많이 타서 그런지 비루 먹은 듯 했다. 실망한 발걸음을 돌려 절 뒤 야산으로 오르려니 선홍빛 동백이 불타는 듯하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서 만난 뜻 밖의 횡재에 데카상스 여심들이 신바람이 났다. 모두들 방금 떨어진 동백꽃을 주워 귓가에 꽂고 환호한다. 역시, 남이 가지 않은 길이 꽃길이었다.
목포의 낙지집에서 희동과 해언이 합류하여 피울과 찰나를 제외한 데카상스 전원이 서로 얼싸안고 목포 회동을 기뻐했다. ‘목포는 항구다’그러니 낙지를 먹어야지. 그 찐득하고 쫄깃한 세발낙지가 입안 가득 감겨올 때, 비로소‘아! 여기가 목포구나’ 하는 실감이 난다. 창선배는 자기가 태어나 여태까지 먹어본 낙지는 모두 낙지도 아니 였다며 완전 감동모드다. 여기 토박이들이야 항상 먹는 낙지일 테니 생활에 너무 밀착되어 있어 느끼지 못할 테지만 여행자의 입맛에는 신천지의 발견이다. 담박에 ‘목포는 낙지다’로 구호가 바뀌었다.
이젠 낙지로 채운 배를 꺼뜨리기 위해서 유달산 야간 산행이다! 내가 알기로는 목포의 대명사 ‘유달산아 말해다오’의 그 유달산이 전부였는데. 이제 유달산, 널 보러 내가 간다. 그것도 이 야심한 밤에. 초입의 진입로는 계단과 시멘트 포장길로 부산 용두산 공원길처럼 멋대가리 없기는 매일반이다. 그런데 점입가경이란 말이 유달산을 두고 나온 말같다. 임진왜란 때 충무공과 함께 활약한 노적봉이란 범상치 않은 바위를 필두로 가파른 기암 절벽길이 이어진다. 구비구비 절경 포인트마다 누각을 세워서 목포항을 한눈에 조망하며 풍류를 즐기도록 배려한 것이 돋보인다. 어느 누각에서나 바라보나 아기자기한 목포항이 손에 잡힐 듯 하다. 목포항의 불빛과 하늘의 별빛이 어우러져 밤을 수놓는 이곳은 천지가 꽃밭이다. 이런 곳에서는 ‘목포의 눈물’쯤은 구성지게 부를 만도 한데 노래방 기계에 익숙해진 탓에 생뚱맞게 ‘우리들의 이야기’로 목포의 밤하늘을 어지럽힌 죄가 크다. 내가 가사를 완전히 아는 유일한 곡이라 할 수 없었다는….
다산초당에서 백련사 가는 길이 담우숙 유한코나. 이 길을 걸어 혜공을 찾아가던 다산의 숨결이 느껴지는 길이다. 봄볕은 따사롭고 해풍은 살랑살랑, 휘감아 도는 산길에 진달래들이 점점이 수줍은 미소로 우리를 반긴다. 해월루에서 바라본 구강포의 경치가 예사롭지 않다. 큰 강 같기도 한 좁은 해협이 깊숙하게 이어지는데 이 해협 곳곳에 9개의 강을 낀 9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고 해서 구강포라 부른단다. 9 개의 강이 여기서 모여 바다를 이루는데 그 모습이 올망졸망한 9 마리의 새끼를 품에 안고 젖을 물리는 도야지처럼 그 품이 넉넉해 보인다.
백련사는 공사중이라 어수선했지만 산행의 땀을 일거에 씻어주는 다실에서 마시는 시원한 오미자 차와 통유리 창을 통해 내다보이는 앞 바다의 풍경이 나그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 이 절은 어디에서도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것이 매력적이다. 정 중앙에 맞창이 뚫린 누각은 대중 법회를 위해 만든 듯하지만 하도 넓어 수백 명이 드러누워 음풍농월하기가 더 좋을 것만 같다. 우리는 데카상스 전원출간을 기원하는 글을 기왓장에 써서 봉헌했다. 2년차 각자의 출간 여정의 장도에 오르는 시발점이기도 한 이번 졸업여행은 또 다른 시작으로 우리들만의 의식이 필요했다.
희동이 차에 올랐다. 때가 되매 막걸리 한 사발을 시켜도 열두 찬이 기본으로 깔린다는 남도의 백반정식을 찾아 간다. 꼬불꼬불 굽이진 남도의 시골길이 무척 정감이 간다. 먹는 건 뒷전이고 그 집을 찾아가는 과정의 길이 진짜 남도 여행이란 기특한 생각이 든다. 드라이브를 하는 내내 우리는 별 말이 없었다. 열어 젖힌 차창을 통해 불어오는 바람과 스치는 풍경을 즐기기에도 여념이 없다. 둘만 모여도 끊임없이 수다를 떨어 솥뚜껑을 들썩거리게 하는 여자들에 비하면 참 다른 광경이다. 말이 별로 없어도 충만할 수 있는 관계가 우리가 추구하는 경지다. 희동이는 이번 여행에서 사진사와 운짱을 자진해서 맞아 투철한 봉사정신으로 맹활약 중이다. 어디에서든 희동이가 눈에 띄면 그는 어느새 카메라 렌즈로 우리를 포착하고 있다. 강진터미널로 찰라를 마중 간 것도 희동이다. 그가 데카상스 여자들의 인기몰이를 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고금도 충무사 – 아무도 없는 늦은 오후 이곳에 오면 한 사람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구선생님이 충무사에 그토록 매혹을 느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곳은 충무공의 영혼의 서기가 어려있는 곳이다. 비록 명량해전에서 승전했으나 그나마 남은 12척의 전함들은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이곳 고금도에 수군통제영을 설치하고 몸을 추스르기 위한 아지트로 삼았다. 만약 일본 수군이 전열을 가다듬어 대군을 이끌고 다시 대공세를 펼친다면 명량해전과 같은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2-3년간 공은 전함을 수리하고 건조하며 군사를 훈련하고 군량미를 비축하며 다음 전쟁에 대비했다. 그리고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 공은 자신의 생명까지도 바쳐 원수를 갚고는 싸늘한 죽음이 되어 이곳으로 되돌아 왔다. 공의 매장터를 둘러보았다. 여기서도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공은 죽어서도 바다를 응시하셨다.
희동이 준비한 향을 피우고 묵념을 올린다. 공이 생전에 걸었음직한 동산의 산책로를 따라 해안으로 한바퀴 돌았다. 앨리스가 묵묵히 동행했다. 깊이 생각하며 앞날을 설계하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이 곳에 온 것이 무척 다행스럽다. 논두렁 태우는 연기가 사당 뒤 소나무 숲을 가득 채워 신비감을 더한다. 무언가 영적인 분위기가 가득했다. 외롭고 적막할 때 이 곳을 찾으면 새 힘을 얻을 것 같다.
“수산 해수욕장”, 구선생님의 유해를 띄운 바닷가다. 딸들 이름에도 바다 ‘해’자를 넣을 정도로 생전에 바다를 좋아하신 선생님은 여기 내려와서 오두막을 짓고 글을 쓰시며 살고 싶다고 하셨다며 재키샘이 전해준다. 우리는 각각 소주잔을 올리며 선생님께 한 마디씩 했다. 육신은 가셨지만 우리들 가슴에 살아계신 스승님이기에 영영 돌아가셨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 스승의 뜻을 받들어 우리는 각자 자기 세계를 가진 진짜 자기로 살아갈 것을 다짐해 본다.
“장흥한우삼합”이라고 아시나요? 꽤 유명한 장흥의 명물로 한우+키조개+표고버섯 이렇게 삼합으로 맛을 창조한 장흥민의 지혜가 돋보이는 대목이다.‘장흥토요시장’에서 2,7일 5일장과 토요일만 장이 선단다. 마침 우리가 간 날이 장날이라고 토요일로 정남진에 위치한 시골장터가 주차공간이 여의치 않을 지경이어서 괴이쩍다 했는데 알고 보니 그 이름만큼 맛의 지존이었다. 세상에… 한우로 배 터지게 먹어본 적이 있었던가? 우리의 참치 총무는 50~60만원 이상 나올 줄 알고마음 졸였는데 14명이 먹고도 삼십 몇만 원 밖에 안 나왔다고 좋아라 한다. 소주, 맥주, 복분자에 뽕주까지 곁들여 이렇게 먹고도 두당 3만원이 채 안 나왔으니… 여긴 한우고기의 낙원쯤 되나보다. 우리가 자리잡고 앉은 식당의 간판이 “소 몰고 불판으로”다. 환상적인 이름 아닌가? 쭉 늘어선 수십 개의 식당들 중에서 우리는 두말없이 이 집을 선택했다. 간판의 위대함이 여기서도 증명된 셈이다. 장차 자기 책을 쓸 데카상스로서 책 제목을 어떻게 지어야 할 지 확실한 공부를 한 셈이다.
둘째 날 숙소가 장흥 평화당이다. 이 집 주인이 문화재 반열의 대목장이란다. 그가 손수 지은 집이니 만큼 별빛에 어울리는 정통 한옥이다. 여행가방을 끌고 나타난 피울의 등장에 참치를 비롯한 여심들이 팔짝팔짝 뛰고 환호를 지르며 그를 얼싸안고 난리부루스를 춘다. 환호에 감동한 피울은 곤함을 무릅쓰고 보이차를 끓여낸다. 그가 여심을 울리는 비결 중 하나다. 자정이 넘도록 돌아가면서 데카상스 일년 간의 소회를 나누었다. 공부 같은 1차 나눔이 끝나고 언제나처럼 2차 주흥판이 벌어질 참인데 잠이 쏟아진다. 방을 옮겨 뜨끈한 온돌에 등을 대자마자 나도 모르게 녹아 내린다. 신곡발표고 뭐고… 잠 앞에 장사는 없었다.
마지막 날, 이제 상경이다. 오늘은 주일이니 구례 곳곳에서는 매화 등 봄꽃 축제를 하느라고 아수라장이어서 우리는 지리산 폭포를 타겟으로 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폭포 아래 상가에서 이미 발 빠른 달자샘이 산수유 막걸리와 산채전으로 신선노름을 하면서 우리를 불렀다. 제사보다도 젯밥이라고 폭포보다 산수유 막걸리가 훨 낫다. 스페인 여행 때도 성당과 성곽 그만 보고 골목에 올망졸망한 야외카페에서 와인순례나 하며 다녔으면 좋겠다던 그의 말에 나도 적극 동의했다. 그래서 사람은 제 생긴 대로, 제 하고픈 대로 살아야 하는 법. 그래야 행복하지 않겠는가.
천안의 박노진 선배가 ‘마실’ 음식연구소 건물 신축 기념으로 우리를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모두 개인적인 사정으로 다 떠나고 교육팀 셋과 데카상스 다섯이 초대에 응했는데 미스테리 선배도 와서 무지 반가웠다. 박노진 선배의 이야기 중 자기 때는 연구원이 책을 내지 못하면 사람 취급을 안 했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스승님이 그만큼 책 쓰기를 중하게 여기셨구나!’하는 생각에 각오를 달리 했다. 박선배는 연구원 10년 만에 꿈을 많이도 이루어 가고 있었다. ‘음식 연구소’같은 것도 스승께 배워 실천하고 있는 대목이니 음식을 중심으로 한 변경연이라 봐도 별 이견이 없을 것 같다. 한 사람의 꿈이 이렇게 파급효과가 큰 것을 보면서 우리가 각자 자기 꿈을 이루어 가는 것이 왜 중요한지 알겠다.
데카상스여, 이제 각자의 꿈을 향해 힘차게 돛을 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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