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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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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31일 23시 53분 등록

9기 선배들의 졸업여행 소식을 듣고 부러워만 하던 일이 너무나 생생한데, 이제 우리가 졸업여행을 가게 되었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의 흐름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이전의 기억들은 손에 잡힐 듯이 아직도 느껴지는데 말이다. 아마 남도를 누볐던 졸업 여행도 훗날 계속해서 마치 어제 일처럼 기억되리라.

 

우리는 수줍은 봄 햇살을 맞으며 면접 여행에서 만났고, 태양의 나라인 스페인에서 사랑이야기를 하며 그야말로 뜨거운 여름을 보냈고, 이제 이렇게 남도에서 활짝 피어나는 꽃들과 함께 새 출발을 위한 여행을 마쳤다. 연구원 과정 자체가 하나의 영웅의 여정과 같은 진대, 그 시작과 끝을 여행으로 장식할 수 있었다는 것이 더욱더 멋드러지게 느껴진다. 물론 우리는 다시 홀로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향해 떠나야 하지만 말이다.

 

기차 카페 칸 바닥에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며 시작된 우리의 여행은 말 그대로 자유로우면서도 생동감이 가득한 여행이었다. 오감이 풍요롭게 만족되는 시간이었음은 물론이다. 25인승 버스는 온몸이 쿵덕쿵덕 용솟음 칠 정도로 신나게 남도를 누볐다. 우리는 마치 신선 유람을 하는 듯 잠시 내려 맛 집에서 배를 가득 채웠다. 첫날부터 점심에는 장어와 복분자를, 그리고 저녁에는 산낙지를 먹으며 마음껏 스태미너를 보충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여행 전에는 피곤하다는 말을 달고 살던 나였지만, 여행 내내 온 몸이 가벼웠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푸짐한 식사 후에 금새 돌아서서 또 간식들을 먹었고, 그래서 덕분에 우리의 예산은 초과되기는 했지만, 등따시고 배부른 경험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부푼 배를 안고 다시 버스에 올라타면 수다를 떨기도 하고 버스 기사님이 틀어주시는 추억의 옛 가요들을 같이 합창하기도 했다. 아는 노래들이 나오면 왜 그렇게 반갑던지, 나는 어느새 노래를 흥얼흥얼 거리고 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다 지치면 꿀 같은 낮잠을 청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숨 푹 자고 일어나 또 다시 내려 눈부신 풍경들에서 충만함을 느꼈다. 또 그 안에서 노래를 부르고 시를 읊으며 풍류를 마음껏 느끼기도 했다. 아직도 교장선생님께서 동백꽃이 가득 피어있는 선운사에서 불러주신 선운사와 에움언니가 낭랑한 목소리로 읽어준 최영미의 선운사에서’, 그리고 다산 선생님의 숨결이 가득한 곳에서 해언이가 열심히 필사까지 하며 준비하여 읊어준 죽란시사첩은 그 여운이 아직도 느껴지는 듯 하다. 앨리스언니와 에움언니, 그리고 해언이가 셋이 어깨동무를 하고 재미난 춤을 추며 어깨동무 내 동무를 합창하던 모습도 잊지 못할 것 같다. 빨강머리앤이 너무나 아끼는 친구 다이애나와 함께 어깨동무를 하며 달려갈 때 부르는 노래라던 그것은 보는 이도 어깨춤을 들썩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가 재미진 길로 함께 어깨동무 내 동무를 외치며 달려가는 모습이 상상되기도 했다.

 

야간 산행은 일출을 보기 위해 태백산을 오르던 이후에는 전혀 없는 경험이었다. 그마저도 그 때는 추운 날씨로 그저 앞만 보며 이 순간이 빠르게 지나가기를 기도하며 올라가느라 정신이 없었기에 그닥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큰 기대 없이 약간은 툴툴거리며 올라간 유달산은 마치 은하수를 걷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 줄 정도로 아름다운 절경을 선사했다. ‘목포는 항구다라는 말은 이제 나에게는 목포는 유달산 야경이다라고 뇌리에 강하게 남을 정도로 말이다. 큰 고래를 닮은 바위를 보며 빵 터져 혼자 웃기도 했고, 앞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약간 무서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앞에서 뒤에서 계속 일행들이 넘어지지는 않을까 배려해주시던 마성의 매력남 구달님 등 데카상스들을 의지하며 그 길을 걸었다. 내가 혼자서는 절대 연구원 과정의 수료 여행까지 오지 못했을 것임이 새삼 생각나며 감사함이 가득해지는 시간이었다.

 

스승님의 발자취를 따라 가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수문 해수욕장에서 우리 모두가 사부님께 술을 올렸던 장면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정지 화면으로 내 마음 속에 남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우리 데카상스는 책을 내면 또 수문 해수욕장에 가서 스승님께 인사를 드리기로 했다. 내년 이맘 때쯤 모두가 함께 그를 다시 찾아뵐 수 있었으면 좋겠다.

 

보통 어딜 가든지 급한 성격으로 인해 앞장서 걷기를 좋아하는 나지만, 이번 여행에서 나는 늘 끄트머리에 위치했다. 그저 천천히 걸어 가는 것은 내게 새로운 감흥을 주었다. 현재의 나의 체력에 맞는 느릿느릿한 걸음걸이로 한 발짝씩 나아가는 것이 왠지 더 편안하게 느껴졌다. 먼저 가서 이런 저런 풍경을 다 보고 와야지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 순간 내리 찌던 태양의 따사함을 더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일행에서 낙오되어 에움언니와 해언이와 백련사에 먼저 가 오미자차를 마시던 그 시간도 더 없는 행복감을 주었다. 앞으로도 나는 나에게 맞는 걸음걸이로 묵묵하게 이 세상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충무사에서는 무슨 용기가 났는지 홀로 돌아다니는 시간을 많이 가지기도 했다. 외로움을 많이 타고 무엇이든 혼자서 하기 겁나하는 나이지만, 왠지 혼자 걷고 싶은 기분에 인적이 드문 산책로를 가보기도 하고, 바닷가에 앉아 절대적인 고요함을 느끼며 이전의 이순신 장군이 바라보았을 그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했다.

 

마지막 여정은 구룡폭포였다. 가는 길 내내 너무 좋은데 어떻게 말을 할 방법이 없다는 유명한 광고의 주인공인 산수유가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처음 보는 산수유 꽃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 한껏 폭포 구경을 잘 하고 나서는 찰나 언니 덕분에 아들을 점지해준다는 바위와 동상 에 가서 기도를 하기도 하고 사진을 찍는 추억을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런데 딸을 낳아야 할텐데….말이다. 찰나 언니로부터는 내가 요즘 계속 갑갑함을 느끼던 이슈에 대해서 명쾌한 해답을 듣기도 했다. 아마 그래서 내가 엄두도 안 나서 지레 겁먹고 자꾸 발을 빼려 하는 그 길을 언니는 누구보다도 장쾌하고 걸어가시고 계신지도 모른다. 언니의 워킹맘 책이 빨리 나와서 누구보다 고민이 많은 쌤쏭우먼들을 구원해주기를…..

 

수학여행을 가는 듯한 아이들처럼 상기되어 있었고, 연이어 웃음이 끊이지 않던 데카상스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 앞에 있는 것처럼 기억난다. 그리고 각자 시간을 내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혹은 차를 몇 번을 갈아 타야 할 상황임에도, 모두가 열심히 배려한 끝에 한 자리에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나는 데카상스로부터 배운 것이 참 많은 것 같다. 따뜻한 카리스마, 세심한 배려, 세상에 대한 열정, 매사 즐길 줄 아는 풍류, 가슴 깊이 느껴지는 잔잔한 정, 생동감 넘치는 긍정의 힘 등등을 나는 이제 조금씩 따라해 보고 싶다. 결국 나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을 데카상스로 부터 오롯이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에움언니가 일상 속에서 우리들을 금새 떠올리고 추억하는 것처럼 나 또한 내 책과 관련된 것보다는 다른 사람의 책에 도움이 될 것 같은 글들을 더 많이 발견하며 보내주면 도움이 될까 고민하는 적이 더 많을 정도로 나는 그들에게 빠져버린 것 같다.  .

 

지난 시간들이 참으로 새삼스럽다. 내가 이러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또 즐거운 와중에도 가끔은 부담스럽기도 하고 또 힘겹기도 했다. 그러나 돌아보니 그 모든 순간들이 분명 더 많이 용감해지고 더 많이 본연의 모습과 가까워진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다.  

 

그 동안 나는 아마 혼자의 틀 안에 갇혀 괜히 힘들어 했는지도 모른다. 하루 종일 걱정 안해도 되는 일들을 사서 걱정하고, 안 해도 될 준비를 plan C까지 마련하느라 종종거린 후 또 괜히 멍부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지쳤던 오늘 하루처럼 너무 지나치게 생각이 많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만의 주도성을 가지고 걸어가야 할 앞으로의 길에는 더욱 자유롭게 사고하고 조금 더 과감해지고 싶다. 물론 그 과정이 지금껏 걸어왔던 그 시간들 보다 더 힘겹겠지만, 책 쓰기가 어렵다며 투정도 부리고, 함께 공감할 데카상스들이 있어 크게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따뜻한 가슴으로 언제든지 두 팔 벌려 안아주시고 때로는 따끔한 충고도 아끼지 않으실 선배님들도 계시니 천군만마가 따로 없다.

다음 여행은 이제 집필 여행인가? 집필 여행 후기를 쓸 그 날의 광경을 벌써부터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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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4 23:46:53 *.231.195.140

윤영아 졸업 축하해. 해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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