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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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조직으로부터 초대가 있어 제주에 와있습니다. 제주 지인으로부터 매화 소식을 들은 것이 달포에 가까운데 와서 보니 지금은 벚꽃의 시절입니다. 밭둑과 집 담장에는 또한 동백의 붉은 빛이 형형합니다. 목련도 만개했습니다. 내리는 빗속에서도 봄꽃들은 제 빛으로 빛날 줄 아는군요. 중문에서 새벽을 맞았습니다. 어둠도 사라지지 않은 시간 번쩍 눈이 떠졌는데 어둠 그대로 속에서 새소리를 완상하며 아침을 맞았습니다. 밝아지니 몇 개의 새소리가 보태지며 더욱 풍성해집니다. 꽃만이 아니라 소리마저 제주는 지금 봄이 틀림없다고 알려줍니다. 나 사는 곳보다 한 달이나 앞서 만난 봄이 참으로 반갑고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저 아름다운 봄은 누가 오라 했을까요? 저 꽃들은 누가 피라 했을까요? 저 새들더러 저렇게 노래하라 한 이는 누구일까요? 나를 이곳으로 부른 이들은 있지만, 저 봄과 꽃들을 부르고 새들의 가락을 키우게 한 이는 눈을 씻고 보아도 보이질 않습니다. 하지만 어김없이 봄은 찾아들었고 꽃과 새들은 제 때를 찾아 제 빛깔, 제 크기, 제 향기, 제 소리로 피어나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바로 저것이 理(리)겠지요. 누구도 시키지 않지만 반드시 그러한 모습으로 현현하는 저 절대 법칙, 그 법칙이 우주를 관통하고 있다는 통찰을 표현한 한 단어! 선현들은 만물이 모두 그 길 위에서 생성하고 성장하고 결실을 맺고 또 소멸하여 다시 본래의 곳으로 되돌아가는 여정을 가졌음을 갈파했습니다. 사람 역시 그렇습니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우리는 태어나 스스로 눈을 떴고 뒤집었고 기었고 마침내 걷는 법마저 제 힘으로 터득했습니다. 또 대부분은 열 몇 살에 몽정을 했을 테고 초경을 시작했을 텐데 이 역시 시킨 이가 없습니다. 그러다 누군가를 만나 요샛말로 썸도 타고 케미도 생겨 男女相悅之樂(남녀상열지악)도 만났을 것입니다. 나와 가족을 지키자고 길 위에서 분투하고 그러다가 주름은 늘고 힘이 줄어드는 경험도 간직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누구나 어딘가로 돌아가며 주어진 여행을 닫게 됩니다.
맹자는 만물을 관통하는 이 자연한 흐름과 모습 중에서 사람의 본성에도 그것이 있음에 주목했습니다. 하늘이 내린 인간의 본성은 본래 善(선)하다는 것이지요. 《大學(대학)》에는 그 본성을 따라 살면 그것이 곧 道(도)가 된다고 적고 있지요. 그런데 인간에게는 본래 아름답고 위대한 본성이 품부되어 있으니 그것을 따라 살기만 하면 된다는데 왜 나는, 그리고 세상은 이토록 어지러울까요?
제주의 이 눈부신 봄날을 마주하며 또 생각하게 됩니다. 벚꽃은 벚꽃으로, 동백은 동백으로 피어나고 있구나. 까마귀는 까마귀의 소리로, 직박구리는 직박구리의 소리로, 동박새는 동박새의 소리로 노래하는구나. 만물은 그렇게 우주의 리듬 위에서 제 자신에게 깃든 본성과 기질을 펼치며 피어나고 노래하는데, 그런데 나와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빛깔 내 향기로 피지 못할까? 왜 나의 가락을 찾아 노래하지 못할까?
4월 3일 여우숲에서 열리는 첫 번째 인문학 공부모임 ‘참된 공부란 무엇인가?’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모색해 보려 합니다. 다음 주 편지에는 그 경과를 담아 보내드릴 생각입니다. 한 주 편안하시기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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