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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2일 13시 39분 등록

졸업여행이었다.

1년이 지나서 내 안방으로, 제 자리로 돌아왔다. 그간 변화경영연구원이라는 커다란 기차에 몸을 싣고 떠나는 여행이었다면, 이제 우리는 각자의 차량으로, 또는 자전거로, 혹은 뚜벅이로 알아서 간다. 이것은 명확하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각자의 목적지를 어디로 할 지, 어떻게 갈 지, 목표를 세우고 방법론을 익히고자 1년 간 열심히 배우고 부대꼈다. 이제는 내 무기를 챙겨서 떠날 때다. 어차피 인생은 각자, 우리는 모두 칼 찬 무사로서 홀로 서야 한다. 그러나 가끔 한 도장에서 수련한 강호의 고수들이 객주에 모여 술 한잔에 회포를 풀 듯, 그렇게 우리는 만날 수 있어야 한다. 함께 도모할 큰 목표가 생기면 기쁠 것이다. 결연하게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고 고대한다. 책과 일과 즐거운 회합을 통해 다시 만날 동지들을 생각한다. 진짜 인연은 이제부터 만드는 거다 

 

졸업여행은 시시했다.

우리는 부둥켜 안고 춤추며 노래하지도 않았고, 전처럼 인생의 숙제를 앞에 놓고 함께 울지도 않았다. 지난 1년을 돌아보고 숙연하기보다는 2015 3월의 봄, 그 순간을 맘껏 누렸다. 스치듯 덧없는 봄날의 동백을 만끽하고, 남도의 정취를 가득 담은 밥상에서 또 봄을 맛봤다. 나는 혼자 몸살을 앓느라 밤을 세우지도, 동기들과 선배들과 이야기를 하지도 못했다. 그냥 그들의 곁에서 몸을 눕히고 기력을 회복한다며 나만큼 나를 알게 된, 그만큼 나도 알게 된 그들이 만드는 편안한 공기에 나를 맡기고 쉬었다. 그걸로 되었다. 그간 수업이 있을 때마다, 아무리 많이 떠들고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렸어도 진짜는 수업을 끝내고 돌아오는 기차 안, 또는 여행을 하고 돌아와 앉은 책상 앞에서 나 혼자 배우고 있었다는 사실, 홀로 즐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했다. 그러니 1년의 수업을 돌아보려면, 내 생애 가장 큰 격동을 지나온 한 해를 돌아보려면 앞으로도 한참은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졸업여행은 끝남을 각인시켜 주지 않았다.

나는 몇 주, 혹은 몇 달이 지나고 나서야 지난 1년을 그리워 할 것이다. 지금 그 시간을 돌아보기엔 너무 이르고, 지난 시간의 덩치가 너무 크다. 이 커다란 녀석을 소화하려면 당연히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모든 위대한 것, 진정으로 훌륭한 것이 생겨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잠깐, 아주 잠깐 눈물이 났다. 구본형 선생님의 유해를 뿌렸다는 바다 앞에서, 내 얼굴도 모르실 나의 멘토, 얼굴 한번 뵌 인연 밖에 없는 그 분의 유산으로 우리가 이렇게 모인 것, 내가 여기까지 온 것, 지난 한 해 동안 겪은 수많은 일들이 눈물로 터져 나오려 했다. 다시 그 곳에 가야 하겠지. 그때 내 곁에 당신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여전히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거기서 그 간의 고해성사와 함께, 그 분께 내 모든 짐과 미련을 홀라당 던져 버리고, 그리고 소중한 내 안의 사리를 바치고 오리라. 자 이만큼 키웠습니다. 이제 세상에 내보내도 될까요?


나는 그날, 장흥 앞바다에 다시 가면 당신들 모두와 얼싸 안고 울고 싶다.

바다가 떠나가도록, 대성통곡을 하고 싶다. 다시 한번 당신들과 시원하게 울어 보고 싶다. 오래된 나의 죽음을 애도하는 장례식으로 시작해 1년 후 아기처럼 새로워진 나를, 우리를 축하하기 위해. 태어난 날 힘껏, 죽을 힘을 다해 아기가 울 듯이. 그렇게, 우리는. 큰 소리로 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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