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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2일 22시 52분 등록

2001년 꿈이 있었으나 현실은 암울했던 시절 '낯선 곳에서의 아침'은 나에게 정신차리라는 듯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지도교수는 박사과정 제자의 논문 표절로 정직처분을 받았고 그의 제자들은 갈 곳 없는 기러기마냥 이리저리 흩어졌다. 서른 살이었던 그 해는 나에게 박사과정 5년 차였다. 세상에 나가고 싶지만 아직 졸업을 못한 채 시간에 쫓기며 조마조마 하던 새파란 청춘의 그림자를 밟고 있었다.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 하루는 나에게도 누구에게도 하루였다. 그 시절 내가 살아가야 할 시간도 하루였다. 남아 있던 석사 2년차 후배들의 논문을 봐주고 애써 괜찮은 듯 하루를 버텨나갔다.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지도교수는 다시 복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연구실을 다시 열어 학생을 받기까지는 그 후 2년이 지난 뒤였다. 나는 그 시간에 갇혀 있었다.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 1 1쇄를 가슴에 품고 그 해 겨울을 버텼다.

 

지도교수의 부재로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았던 나의 자리는 다행이 다른 교수님의 배려로 연구실을 옮길 수 있었고, 같이 공부하던 후배들의 도움으로 실험을 마쳐 이듬해 2002년 졸업논문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 해는 지금 다니고 있던 회사로 입사한 첫해이고 그리고 나의 아내와 결혼을 한 해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도 2002년의 그 폭풍과도 같았던 한 해를 잊지 못한다. 그리고 늘 같이 있던 구본형 선생님의 책들도 함께 말이다.

 

나의 변경연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 후 변경연 홈페이지를 드나들고 있을 무렵 연구원 모집 광고를 보았다. 입사 후 4년이 지나고 회사에 적응할 무렵이었다. 그 당시 나는 아직도 열려있는 나의 미래에 대해 다시 고민하고 있었다. 다시 찾아온 구본형 선생님의 손길은 나를 한 순간에 휘감고 끌어당기고 있었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았고, 아직 고민도 익지 않은 나로서는 욕심만 가득한 30대 중반의 직장이었을 뿐이었다. 이는 곧이어 찾아온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적나라하게 드러났으며 연구원을 지원하고 싶은 마음을 그렇게 접었다. 아직 절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흘렀다. 나는 직장인으로 자리를 잡아갔고, 성과도 냈으며, 제때 승진도 하였다. 그러던 중 2012년을 맞이하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시간은 훌쩍 지나버렸고, 나느 나이 40이 되어 있었다. 깜짝 놀랄 일은 아니었다. 다만 남은 삶을 다시 생각하는 일이 좀더 절실해졌다. 아마도 그 마음이 나를 '단군의 후예' 프로그램 공지를 하는 변경연 메일을 알아보게 했을 것이다. 어느 봄날 그렇게 사무실에 앉아 '단군의 후예' 프로그램을 지원하게 되었다.

 

변화? 변화가 뭘까? 지금도 어려운 이 단어는 나의 주위를 맴돈다. 자기다워지는 것이라는 말로도 이해가 안되었다. 다만, 오늘 하루의 주인이 누구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 단어였다. 단군의 후예 프로그램은 나에게 새벽을 돌려주었다. 나는 그 시간에 잠시 딴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건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답은 없었다. 그저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던 그 계절의 새벽은 좋았다. 시원했고 상쾌했고 포근했다. 변경연은 나에게 그렇게 품을 내어 주었다.

 

2012 5월 변경연 하계연수 공지가 떴다. 그리고, 난 신청을 하였다. 망설임 없이 그렇게 송금을 하고 그 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제 드디어 변경연의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아니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스탄불, 로마, 시칠리아를 돌아본 그 해 여름은 나의 욕망들을 들추어 살려놓았다. 시들었던 생기를 느끼게 했고 맛을 느끼게 했다. 그 해 여름은 날씨와 같이 뜨겁게 흘러갔다.

 

2012년 가을 나는 우연히 갑상선 암을 발견하게 되고 12월 수술을 하게 되었다. 암이란 단어는 사람에게 큰 상처를 준다. 왠지 잘못 산 사람처럼 스스로를 자책하게도 한다. 때론 마음을 힘들게도 만든다. 세상에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도 한다. 12월 수술로 나는 9기 연구원 지원을 할 수 없었다. 수술로 약해진 몸으로는 버텨내질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2013년을 그렇게 맞이했다. 모든 여정이 멈추었다. 그저 버티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그리고 슬퍼졌다. 왠지 못다 핀 꽃이 떨어지지도 못한 채 나무에 매달려 있는 듯 아슬아슬 하였다.

 

그 해 4월 부고를 들었다. 구본형 선생님은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셨다. 시칠리아 타오르미나의 거리를 터덜거리며 같이 걷던 기억이 생생했는데. 나는 장례식장에 조용히 있다가 돌아왔다. 그 날 많은 사람이 있어 그분의 삶을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그저 앉아 있다 조용히 돌아왔다.

 

8월 몽골로 하계 연수를 같이 떠났다. 드넓은 초원과 바다같은 흡수골 호수는 나에게 나의 정수를 다시 찾은 듯 맑은 기운을 불어넣어 주었다. 말을 탔다. 처음 타본 말이다. 그 말을 타고 달렸다. 초원을 달렸다. 살아 생전 구본형 선생님께서 다시 가고 싶다던 그 곳에 나는 있었고 같이 느꼈다. 하늘은 푸르렀고 호수는 거울 같았으며 숲은 나를 품었다. 나의 삶은 그렇게 다시 태어났다.

 

2013년 겨울 10기 공고를 보았다. 어려운 결정을 누군가 한 것이다. 아니 누구들이 한 것이다. 나는 반신반의하며 지켜보았다. 9기 연구원들의 그 어려운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과연 10기를 해낼 수 있을까? 구본형 선생님에게 물었다. 연구원은 언제까지 운영하실 계획이신지요? 10? 10년의 기수를 누군가 책임지겠다고 나섰다. 새로운 교육팀이 꾸려지고 10기 선발을 하였다. 망설임은 여전히 나를 주저주저하게 만들었다. ? 그만한 시간을 낼 수 있을지? 놀기 좋아하는 내가? 정말 멋진 한 해가 될까? 2013년은 그렇게 저물었다.

 

20141 2 3월을 지나고 나니, 나는 변경연 연구원이 되어 있었다. 무엇엔가 홀린 듯 많은 시간을 쏟아 부으며 하루하루 변경연 연구원이 수행할 과제를 하고 있었다. 하물며 출장 중에도 쉴 수가 없었다. 아내는 책과 과제에 파묻혀 사는 나를 보고는 이내 불만을 토로하였고 모든 것이 해체되어 다시 섞이는 듯 어지러운 시간들이 찾아왔다.

 

4 2차 방사선 치료를 위해 휴가를 내었다. 아침을 굶고 TV를 지나는데 배 한 척이 기울어져 있고 사람들은 모두 대피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다행이었다. 오후에 병원에 들러 진료실에 접수 후 대기실에 앉았는데 아침의 그 배는 꼭지만 남고 모두 잠겼다. 달라진 것은 타고 있던 사람들이 대부분 죽었다는 뉴스가 나왔고 수행여행 가는 학생이라는 말이 전해졌다.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4월은 슬펐고 5월도 힘들었다.

 

시간은 흘렀고 8월이 되어 스페인으로 떠났다. 변경연 하계 연수를 3년째 갈 수 있게 되어 좋았다. 스페인은 나에게 한가지 큰 선물을 주었다. 그것은 과거의 나와 마주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풀어줄 수 있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그건 바로 사랑수업이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나의 이야기를 말해주며 나는 알게 되었다. 사랑 그 자체만으로 아름다운 것이라는 것. 그러니 사랑하라는 것. 스페인은 사랑을 내게 주었다.

 

2014년 늦가을 포항으로 12일 오프수업을 떠났다. 바다를 먹었고 바다를 마셨다. 그리고 바다가 되었다. 나는 가을 내내 하루와 맛에 관심이 많았다. 하루의 맛을 어떻게 살려 맛깔 나는 하루를 만들 수 있을까? 하지만 여전히 하루는 녹녹하지 않았고 맛은 변덕을 부렸다. 나는 아직 제대로 맛을 모르고 살았다. 살 맛나는 하루를 말이다.

 

2015년은 불현듯 나에게 새로운 모습을 요구했다. 직장에서의 변화가 왔고 모든 시간을 쏟아 붓게 만들었다. 변경연 과제를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아직 포기가 안되나? 이 시점에서 나는 지금 있는 자리가 나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알게 되었다. 나로 인해 변해가는 사람들과 나로 인해 나아지는 관계들을 보면서 나는 내가 할 일을 더 잘 알게 되어갔다.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사람을 돕습니다." 내가 할 일은 바로 이 일이었다. 그렇게 3개월이 흘렀다.

 

2015 3월 변경연 10기 졸업 여행을 다녀왔다. 다산을 만났고 충무공을 뵈었다. 그리고 구본형 선생님을 품에 그렸다. 수문해수욕장 저녁 바다에 바람이 불었다. 구름이 드리워 낙조를 볼 수 없었다. 나의 마음도 그랬다. 쨍한 하늘과 화려한 낙조를 볼 수 없는 나의 마음은 모두 떠난 수문 해수욕장을 떠나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다시 앉았다. 구본형 선생님을 대신해 오병곤 선배가 그 자리에서 있어주었다.

 

그 동안 나는 편해졌다. 마음 안에 싸우던 것들이 많았는데 어느 것 하나 편들어 줄 수도 없었는데 하지만 어느 것 하나로 정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알겠다고. 모두 다 같이 있어야 하고 같이 어르고 달래야 할 내 인생인 것이라는 것을.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어둑해진 수문해수욕장을 뒤로하고 여행을 마쳤다. 그리고 이제 나만의 여행이 다시 시작되었다.

 

"지난 15년간 구본형 선생님 덕분에 좋은 여행을 하였습니다. 아직도 남은 인생의 여정에 꼭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가끔 찾아가 뵙겠습니다. 선생님께서 남겨주신 말씀이 늘 제 인생에 나침반이 됩니다. 그리고 함께 여행할 벗들을 갖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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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222.1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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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8 10:13:14 *.230.103.185

참으로 진솔한 글이네요.

마지막  세 줄에서 뭉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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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8 13:36:33 *.255.24.171

내가 본 희동의 글 중에 최고다. 수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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