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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3일 22시 26분 등록

“별일 없니.”

“네.”

“감기는 괜찮고.”

“네.”

어색한 대화 속에 차만 홀짝거려봅니다. 감정 표현이 없는 건 어찌 그리 자기 아버지를 닮았을까요. 어릴 때부터 봐왔던 아이입니다. 고등학교 졸업식. 꽃다발을 들고 혼자 축하를 해주러 갔습니다. 담임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돌아서니, 교복이 아닌 이제는 여인의 나이로 변한 이가 들어옵니다. 세월이 빠릅니다. 앞으로의 진로를 물어보았습니다. 답변이 마음에 차지 않습니다. 물론 저도 그러했었겠지요. 당시 불투명한 미래에서 앞으로 무얼 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안은 채. 그럼에도 구체적인 계획을 원했는데 저의 욕심이었을까요.

 

“삼촌, 나 집구해야 되요.”

오랜만에 도착한 문자 메시지입니다. 반가운 마음에 열어보니 내용은 돈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그렇지. 스무 살. 세상에 이제 혼자서 살아야 한답니다. 돌보아줄 사람이 없기에 걱정이 우선 앞섰습니다. 집은 잘 알아보았는지. 시세는 비싸지 않는지. 사기는 아닌지. 눈에 밟히어 내려가 부동산 중개소에 동행 되물어봅니다. 직원은 이미 얘기가 끝난다는 듯 귀찮은 표정으로 요청한 등기부 서류를 떼어줍니다. 방을 보고 화장실에 방범이며 꼼꼼히 재점검을 하였습니다. 우려와는 달리 혼자 생활하기에도 괜찮아 보입니다.

“잘 골랐네.”

아이의 얼굴이 그제야 환해졌습니다. 깐깐한 내가 신경 쓰였나봅니다.

“월세는 감당할 수 있니.”

“월급으로 내면 될 거예요.”

부담이 될 터인데도 씩씩하게 답변을 합니다. 어리게만 봐왔던 녀석이 이제 성인이 되어 대답하는 폼이 조금은 미더워보였습니다. 보증금 이백만 원 금액. 낯이 익어 생각해보니 스물아홉 살 무렵 서울 지하 월세 방 구할 때의 금액과 같습니다. 감회가 밀려옵니다.

 

온수가 나오질 않아 겨울 찬물에 세면과 손을 호호 불며 빨래를 했던 기억.

좁은 방임에도 불어난 객식구덕분에 세 명이 생활했던 추억.

그녀가 멀리까지 방문해 서글픈 서울 행색을 보고 눈물 글썽이던 그때.

 

그럼에도 참 행복했었습니다. 낯선 곳 아프지 않고 혼자 힘으로 살아나갔던 모습이 스스로도 대견해보였습니다. 녀석도 그러하겠지요.

 

어르신 분들은 이야기합니다. 타고난 자기 밥그릇이 있다고. 아빠와는 달리 녀석은 닥친 현실을 좀 더 잘 헤쳐 나가리라 여깁니다. 혼자 남겨진 티를 내지 않고 세상이라는 배를 잘 저을 것입니다. 작은 월급이지만 본인의 힘으로 감당하며 씩씩하게 스스로 설 것입니다.

조카는 알까요. 잔소리만하는 삼촌이 살갑지는 않겠지만, 아버지를 대신하여 본인을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수줍은 포옹 짧은 만남을 뒤로한 채 돌아서는 길 마지막 말을 되뇝니다.

“밥 잘 먹고, 아프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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