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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9일 01시 27분 등록
 #. 마무리(1)


지난주에는 10분만 주워진다면 마무리를 다 할 수  있을 것 같더니, 오늘은 어디를 손댈려고 했는지 까먹어 버려서 그림을 새로 봐야했다.


경계를 정리했다.

가늘게 보이는 팔과 다리는 조금 더 두껍게 했다.

20080903-1.JPG


마크 선생님께서는 앞쪽의 사람들이 더 진해야 한다고 하는데... 얼마나 더 진하게 나타낼 수 있을지 의심하면서 계속 했다. 그림을 가만히 나둔 사이에 검정이 떨어져 나가 버렸나 보다. 군데 군데에서 뭉개져서 내가 그려넣지 않은 얼룩이 있다. 뭉개지 않으려고 일부러 지우개도 조심스럽게 썼는데.... 그동안의 보관이 잘못되어서 그런 거다. 이삿짐을 나르려할 때 누군가가 스케치북 한 장을 찢어서 그림 위에 덮어서 그림이 상하지 않게 덮어주었던데.... 너무나 고맙다.


앞쪽의 사람들을 진하게 하고, 참호를 표현하고 싶어서 일부러 얼룩덜룩하게 만들고 있을 때, 사람들 얼굴이 이상하다고 손 좀 보라고 하셨다. 이때까진 까만 몽달귀신이었다. 내가 손을 봤을 때는 진한 것이 강렬하게 들어간 날카로운 눈매의 사람처럼 보였다. 세부묘사에서 실패해서 길게 삐친 선을 그대로 두었기 때문이다. 조그만 얼굴에 그보다 더 괜찮은 선을 넣을 자신이 없었다. 어차피 얼굴은 너무 작아서 잘 안 보이는 거니까  까만 거 자체로 눈이 쑥 들어갔다는 느낌과 코 때문에 그림자진다라는 것만을 표현해 넣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마크선생님께서 슥슥 지우개로 얼굴을 살짝 지우시더니 색연필을 놀리기 시작하셨다. 순간 숨을 멈추고 지켜보았다. 보통 이런 경우 나는 거절했었는데 이번은 아니다. 세부묘사하는 것은 내가 연습해 보아야 한다며 거절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다르다. 선생님의 손놀림을 보고 싶었다. 미세한 놀림. 얼굴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좌우로 살짝 움직이는데 그 잠깐 사이에도 손에 힘이 들어갔다가 풀렸다가 하나보다.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데 손은 아주 잠깐 좁은 그 안에서 좌우로 꿈틀, 상하로 꿈틀했을 뿐이었다. 그러는 중에 얼굴윤곽이 살아나고 눈과 코가 생겨났다.


잠깐의 꿈틀거림. 그 사이에 의아해서 색연필 끝을 주시하기도 했다.

‘연필을 새로 깍은 것은 아닌데, 어떻게 저렇게 작은 부분에서 미세하게 하시지?’

‘더 날카롭게 깍아쓰는 것도 아닌데....’

‘색연필의 가는 면을 어떻게 찾아 쓰셨지?’

‘손끝의 힘조절이 세미하구나.’

‘감으로 어느 정도 폭으로 그려질지 아시나?’

‘연필을 돌리시나?’


이미 눈, 코를 찾아서 찍을 만큼이 못되게 뭉뚱해진 연필인데 그것으로 표현하신다.

감? 필압(筆壓)?

 

연필로 켄트지를 다 채우는 선긋기를 연습할 때 뭉뚱하게 연필을 깍아서 가는 선을 그리게 한다. 계속 깍아서 쓴다고 가는 선을 그리는 것은 아니라고. 가는 선을 그리고 싶다면 연필을 가볍게 쥐고한다. 그리고 연필을 돌린다. 먼저 선을 그릴 때 닳아버린 그 면 말고 연필의 다른 면이 종이에 닿도록..... 지난번에 옆에서 연습하던 학생에게 설명하던 것이 생각났다.

‘모든 끝은 뾰족하다 ? ! !’


몇 초 동안의 마크 선생님의 손놀림에 몽달귀신이 사람이 되었다. ‘화룡점정(畵龍點睛)’

여기서 마친다. 눈을 얻었으니 그림에 더 이상 손대고 싶지 않다.

 20080903-5.JPG


#. 마무리(2)

전쟁그림은 더 이상 손보지 않겠다는 의미로 정착액을 빌려서 뿌려둔다.


먼저 정착액을 뿌려둔 그림을 가지고 들어온다. 옆에 붙여두었던 마스킹 테이프를 뜯어낸다. 그림을 집으로 옮기기 위해 정리하는 모습을 보시며 마크 선생님께서는 여인 그림의 다리를 조금 더 두껍게 수정했으면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미 정착액을 뿌린 상태라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쳤다고 생각한 것을 또 손대고 싶지 않아서 수정이 가능하냐고 여쭈었다. ‘그러면 더 잘 올릴 수 있어요. (정착액이 그림) 표면을 거칠게 만들어주어서.’


수정할 수 있다니 해봐야 했다. 사진을 찾아왔다. 사진을 쳐다보고 그림을 쳐다봤다. 사진 속 다리는 더 두꺼워 보였다.

‘아, 가는 팔다리. 내 성향이 또 들어갔다.’

가늘게 호리호리한 몸매를 좋아하는 성향이 나도 모르게 들어간 것이다. 살짝 수정을 했다. 아주 조금. 사진을 보았을 때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두껍다고 느꼈지만 그림을 들여다 보면 여전히 조금만 수정한다.


 

발끝도 실제 사진과는 달라 보인다. 그림 속에서 더 길다. 끝부분의 신발을 줄여야겠는데, 지워지질 않는다. 

“칠하는 것은 되는 데 지우기는 안돼요. 칼로 긁어내도 되나요?”

“칼로 긁으면 종이가 상해서 일어나요.”

덧칠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지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우는 것은 포기한다. 처음 검게 할 때 조심해야겠다. 수정이 불가능한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여인의 금발 머리는 더 생생하게 하시려 했던 건지 마크 선생님은 머리에 진한 선을 몇가닥 넣으셨다. 그리곤 소파의 질감을 보셨는데, 사진 속의 소파의 질감은 화강암처럼 보인다. 그런데 나는 매끄럽게 표현했다. 넓은 면에 둥그스름하게 나타내기 위해 지우개를 넓게 펴서 곡면을 따라서 지워냈기 때문이다. 지우는 동안 검댕들이 종이의 미세한 홈에 들어가 버려서 소파 전체가 부드러워져버렸다. 소파... 지울 수 없다.

“점으로 찍어서 표현했으면 좋았을 껄.”

그렇다. 여인은 매끄럽게 그리고 소파는 화강암처럼 그릴 껄 그랬다. 둘이 뒤바뀐 것 같다.


‘더할 수는 있지만 뺄 수는 없다.’ 마무리에서 고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20080903-3.JPG

 

조금 더 조심스러워져야 하는 걸까? 아니다.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릴 때는 다른 마음이었으니까. 그리면서 자꾸 마음이 바뀌니까.

마무리에서는 경계를 정리하듯 마음을 닫아 주어야 한다. 계속 무엇인가를 발견해서 고치고 싶은 것...그런 마음을 닫아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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