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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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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10일 17시 27분 등록
 

사이즈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것은 뭐지?


큰 그림을 시작했다.


전쟁장면을 그린 그림을 마치면 무엇을 그릴지 물으셨다. 나는 특별한 계획은 없었다. 막연하게 인물을 한번 더 그려보고 싶다는 것. 그것 뿐이었다. 옆에서 파스텔로 그림을 그리는 아저씨도 물으셨다. 다음번에 수채화를 그리냐고. 나도 색을 쓰고 싶다. 수채화를 배우고 싶은데.. 그건 그저 막연한 것이다. 나는 사람을 그리고 싶었다. 사람을 잘 그리고 싶다.


나는 작년에 배울 때와는 달라졌다. 서두르기도 해야하지만, 서두르지 말아야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한번의 연습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수채화로 바로 넘어가지 않는다 하여도 조급증을 내지 않게 되었다. 내가 지금 배우고 싶은 것은 인물을 제대로 그리는 것, 그것이었다.


마크 선생님은 인물화를 크게 그리는 것을 제안하셨다. 작게 그리는 것과 크게 그리는 것은 차이가 있다며, 크게 그린다해서 작은 것보다 시간이 더 많이 들지는 않을 거라고 덧붙이셨다. 작은 그림은 좁은 공간을 조심스럽게 꼼꼼히 그려야 하지만 큰 것은 자신이 나타내고자 하는 것을 넓은 면에 걸쳐서 전체를 살려야 하니까 작은 그림 그리는 것과는 다를거라고 하셨다. 큰 그림을 그리는 것도 배워야 하니까 수채화 과정을 들어가기 전에 크게 그리는 것도 한번쯤은 해봐야 해서 모든 크게 한 장씩 그리는 것을 지도해보겠다고 하셨다. 몇 달전에는 작게만 그린다고 무척 힘들어했는데, 큰 그림을 제안 받았는데 덤덤하다. 다행인가, 원하는 것을 하게 되었으니. 크게 그리고 작고 그리고는 그냥 핑계였던 것 같기도 하다. 원하는 대로 그리게 되면 크게 그리나 작게 그리나 마찬가지겠지. 2절지라고 해서 벽화만큼 큰 것은 아니니까.


2절지. 여지껏은 8절지만을 사용했는데 그것의 4배다. 4배. 작은 것 꿈쩍이는 것에서 짜증부리지 않아도 된다. 자세히 하고자 하면 얼마든지 자세히 그릴 수 있는 사이즈다.

이젤을 앞에 두고 제일 큰 화판을 찾아다가 걸었다. 그 위에 2절지를 하나도 자르지 않고 붙였다. 앞쪽이 다 가려진다. 크다. 위에서 아래로 손을 크게 놀려야 한다. 어쩌면 손이 아니라 어깨를 사용해 할 것이다. 사진에서 가로와 세로 비율을 보고는 외곽선을 그린다. 참 크다. 2절지가 이렇게 큰 종이였나. 크다.


형태를 잡기 위해 사진에 가로선을 넣어서 반으로 가르고, 그 반을 또 반으로 갈라서 4등분을 만들었다. 그 간격만큼 세로로도 만들었다. 그래서 세로에는 중심선을 쓰지 않았다. 왼쪽부터 시작해서 가로의 간격만큼 세로에도 간격을 두어 보니 3칸 반. 정사각형이 내가 다둘 수 있는 비례이다. 가운데 중심선을 넣고서 그로부터 가로를 4등분을 했다면 직사각형들이 만들어져서 내가 가로와 세로의 비율을 맞추지 못할 것 같았다. 그냥 정사각형이 내가 다루기에는 편한 선들이다. 2절지 종이에도 같은 비율로 가로와 세로를 만들었다. 세로로는 4등분 가로는 3칸 반 그렇게 그림의 틀을 정했다.


다행이도 사진속의 2명은 비례를 보기 위해 그려둔 보조선에 딱 들어맞는 구도를 갖추고 있다. 서로 응시하는 면이 화면을 반씩 갈라서 사용하는 데 우연하게도 보조선이 그들의 배치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수월하게 사진을 종이위에 옮겼다. 보조선에 맞추어서 보조선과 사람의 각도를 살폈고, 각 칸에 어느 정도를 차지하나를 살펴서 한 부분씩 종이로 옮겼다. 그렇게 윤곽선을 그리면서 크게 그리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구나 생각했다. 너무나 쉬워서 혹시 내게 잘못하고 있는 게 하는가 하는 작은 의심이 일었다. 윤곽선으로 큰 형태를 마쳤을 때, 마크 선생님께서 한번 보시고서는 잘 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형태, 비례는 잘 잡았다 하셨다. 그런데 선이 진하고 거칠다 하셨다. 나중에 계속 하면서는 진한 선은 연하게 많이 지워야 한다고도 하셨다. 밑그림으로는 괞찮은가보다. 선이 거친 것은 내 특징이다. 매끄럽게 곡면을 따라가지는 못한다. 아직은. 아직은 그렇다. 선이 부드러워졌으면 하는데 그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게 내 특징이라면 계속 남을 것이고, 미숙해서 그런 거라면 나중에 부드러워지겠지.


20080904-1.JPG 


<얼마전 박흥용의 만화책을 몇 권 더 샀다. 최근 만화와 초기 단편작품 모음집이다. 최근작 『쓰쓰돈』의 그림을 보면서 느낀 점은 ‘박흥용의 인물은 부드럽다, 춤을 추는 것 같다.’였다. 사람들이 원형의 자연스런 부드러움을 지녔다. 인물이 활처럼 둥그렇게 휘었다. 춤의 한 장면을 담아 둔 것처럼 보였었다.


내가 쓰는 선들은 거친 직선들이다.


세잔느의 ‘빨간 조끼입은(한쪽 팔을 괴고 있는) 소년’은 사람이 딱딱해 보인다. 들뢰즈의 사람은 활처럼 휜 부드러운 사람들이다. 물론 그의 선은 곡선이다. 마티스의 춤추는 사람들은 둥그렇게 휘었지만, 선들은 짧은 곡선들이 이어진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사람은 둥글둥글한 근육을 가졌다. 피카소의 사람들은 육덕이 있고 부드러운 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선을 보면 그린 사람이 누구인지 안다. 그게 그 사람의 특징이다. 내게는 어떤 특징이 나타날지 궁금해진다. 현재까지는 거친 선을 겹쳐쓰고, 내가 그린 인간은 딱딱하다는 것.>


우선은 크게 그리기 중에 형태를 잡는 것은 성공한 듯 하다.

이제부터가 문제다. 종이는 이전에 그리던 것보다 4배는 크고, 사진 속의 인물들은 윤곽이 뚜렷하다. 그러면 나도 크고 뚜렷하게 그려야 한다. 검은 종이에 희게 그리다 보니 사람 얼굴에 집중하게 된다. 먼저 가장 흰 부분을 나타내고, 얼굴에 살짝 진 그림자를 나타내고 나니 이상하다. ‘이렇게 거칠어도 되나?’‘지금 이 방법은 작게 그릴 때 쓰는 거잖아. 이 방법으로 그리면 엄청 시간 걸릴텐데.... 크게 그릴 때는 다른 방법으로 써야 하는 거 아냐.’


진행하는 것을 멈추고 그동안 보았던 그림들에서 드로잉들을 떠올려 본다. 색연필로 채워나가는 그림이 아니라 드로잉. 드로잉. 여러 사람들이 연필을 연필답게 썼던 그림들. 연필을 목탄처럼 쓴 게 아니라 연필답게 선을 긋고 해칭을 넣어서 그린 그림들. 들뢰즈의 드로잉, 다빈치의 드로잉. 드로잉... 파스텔화가 아닌 드로잉을 찾아나선다. 화실에 한 점 정도는 빠르게 그린 그림이 있을 텐데하고 찾아나섰다.


검은 바탕에 흰색으로 단숨에 그린 듯한 그림이 한점 있다. 크기도 2절지 사이즈다. 참고할 그림으로 딱 좋은 것이다.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낸 그림. 검은 종이에 밝은 부분만을 흰색 연필로 그린 그림. 원본의 그림은 고전주의 화가였던 것 같은데... 작가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다. 고전작품을 보고, 흰색 연필로 간단하게 그린 그림.


20080904-5.JPG 


이 그림에 쓰여진 방법으로 그려야 할 것 같아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하나씩 뜯어보기를 한다.

‘칠하고 문지른 게 아니다.’

‘진하게 해야 할 부분에서 손에 힘을 주어 눌렀다.’

‘약한 부분은 약하게’

‘밑그림은 연하게. 외곽선을 넣었구나.’


20080904-4.JPG

 

모자에 달린 방울에서, 손에서 형태를 먼저 잡고 그 안을 채워 넣은 것을 볼 수 있다.

얼굴에 들어간 선들이 참 차분하다. 한번에 그리는지는 않은 선이다. 그런데도 참 차분하다. 모자에 딸린 장식에 비하면 얼굴은 조금 더 조심스럽게 그려진 것 같다.



20080904-3.JPG


손. 형태만을 찾았다. 얼굴에 비해서 자세하기 그리지 않았다. 얼굴과 모자는 자세하게 그리고 손은 빠르게 형태만을 캐치한 것 같다. 이렇게 그리면 크게 그리나 작게 그리나 시간의 차이는 별로 없을 듯 하다. (마크선생님이 크게 그릴 때 작은 것과는 다르다는 얘기가  이걸 얘기한 것일까?)


넓은 면에 쓰는 선과 좁은 면에 쓰는 선은 다르다는 데, 여기에 쓰여진 선들은 넓은 면에 쓰는 선들 같다. 여지껏 내가 연습한 것들에는 이렇게 듬성듬성하게 상징적으로만 표시된 것들은 없었다. 나의 시선은 선들을 따라 위에서 아래로, 다시 선을 따라 가서 진한 곳에서 오래 머물고 연한 선들이 이어지는 곳에서는 빠르게 지나갔다. 선이 빨리 지나갔을 법한 곳에서 빨리, 천천히 지나갔을 것으로 느껴지는 곳은 천천히 훓는다. 눈으로 따라 그리는 것이다.


이것을 따라 하고 싶다. 열심히 하나씩 눈으로 더듬 후 연습을 하던 연인 그림 앞에 앉았다. 모자쓴 여인을 보기 전에 그렸던 것들은 대부분 지웠다. 밝은 부분을 표시한 것이 얼룩덜룩하게 보여서였다. 그 방법은 아닌 듯 했다. 다시 밝은 부분 표시. 그리고 나서 중간 밝은 부분 표시. 여배우의 고운 얼굴이 곱게 보이지 않는다. 어떡하지. 계속 진행해야 할까 불안하면서도 작은 그림을 그릴 때 하던 방법대로 계속하고 있다.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그것 말고는 모르는 사람처럼. 조금전에 모자 쓴 여인을 보고 느낀 것들은 반영하지 못했다. 늘 해오던 방법대로 해버린다.


 20080904-6.JPG


마크 선생님께서는 가장 밝은 부분만 손대고 아직은 중간톤 부분은 그대로 두라고 하신다.

다시 지워야 할까? 고민이다.


20080904-7.JPG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거쳐가야 할지 모르겠다. 선을 쓰겠다하고서는 면을 칠하는 방법으로 하고 있으니... 그림이 그려지고 난 후는 보았는데, 그리는 과정을 보지 못했다. 중간에 어떻게 그려졌는지는 모른다.  

큰 그림과 작은 그림의 차이는 사이즈만이 아닌 것 같은데, 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는 모르겠다. 사이즈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것은 어떻게 해야하지? 그래서 선생님이 큰 그림을 해보고 수채화과정으로 넘어가자고 하신 걸까? 어떻게 해야하지?


아직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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