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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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가까이 적지 않은 책을 읽어왔다. ‘앞으로 몇 권을 더 읽을 수 있을까?’ 인생의 유한함에서 기인한 자조적 질문이 아니다. 독서에 할애한 시간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싶은 열망에서 온, 정열의 질문이다. 하지만 지혜롭지 않은 질문이다. 몇 권을 읽느냐보다 무엇을 읽느냐가 중요하고, 읽은 것들을 얼마만큼 살아내느냐가 성장의 관건일 테니까.
무엇을 읽을 것인가? 다시 말해, 한 개인의 조화로운 성장을 위해 어떤 텍스트를 읽어야 할까? 이 질문으로 한동안 고민했다. 세 가지 텍스트를 읽어야 한다는 일차적 결론을 얻었다. 주체적 텍스트, 인문적 텍스트, 시대적 텍스트가 그것인데, 자기 삶의 발전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에도 관심을 둔 이들이라면 세 가지 텍스트가 모두 중요하다.
주체적 텍스트는 세상 문화와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기 삶의 주체로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는 책들을 말함이다. 자기를 이해하고, 삶을 경영하는 길을 제시하는 텍스트들인데, 이를테면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켄 윌버의 『무경계』, 월터 미셸의 『마시멜로 테스트』, 히스 형제의 『스위치』 등 자기경영서와 긍정심리학의 명저를 꼽을 수 있겠다.
인문적 텍스트는 문학, 역사, 철학을 일컬음이다. 왜 인문서가 중요한가. 연말에 한해를 돌아본다면, 우리는 잠시 역사적 인간이 된 셈이다. 내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고민은 철학적 인간의 모습이다. 질문하고 사유하는 일은 철학의 본질이니까. 누군가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감수성이다. 문학 읽기는 감수성의 고양을 돕는다.
모두가 문사철 식견을 갖춰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문학, 역사, 철학이라는 학문의 본질이 삶과 별개가 아니라는 뜻이다. 인문적 텍스트는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자신과 인생을 성찰하게 만들고,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며, 타자와 세상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문학이 태어나는 자리』, 『인문학의 꽃, 역사를 배우다』, 『철학을 권하다』는 인문학 문외한에게도 쉽게 읽히는 텍스트들이다.
시대적 텍스트는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다룬 텍스트를 말한다. ‘지금 여기’가 중요하다. 낭만주의나 이상주의자들은 ‘언젠가 거기’를 갈구하면서 ‘지금 여기’를 한심한 눈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여기’에 대한 비판적 대안을 내놓지는 못한다. ‘지금 여기’를 사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젠가 거기’에 대한 지적 작업은 ‘지금 여기’를 비판하는 도구일 때 빛난다.
‘지금 여기’에서, 지금이라는 시간적 경계는 누구에게나 동일하지만, 여기라는 공간적 경계는 사람마다 다르다. ‘여기’란, 어떤 이들에게는 공동체로, 어떤 이들에겐 국가로, 다른 이들에겐 ‘전세계’로 받아들여진다. 서로 다른 경계의 크기는 인정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자기’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공존을 향한 마음을 품고 더불어 번영할 길을 사유하는 이타적 태도다.
『눈먼 자들의 국가』나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세월호의 슬픔을 다룬 시대적 텍스트다. 2015년 초,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을 다룬 슬라보예 지젝의 『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생각들』은 IS 근본주의를 사유하게 만든다. 21세기 정보화 혁명이 안겨 준 편리함 뒤편에서 어떤 문화적 정체가 벌어지는지를 다룬 『가장 멍청한 세대』도 훌륭한 시대적 텍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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