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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22일 15시 34분 등록
 

그리는 것을 방해하는 것 - 생각과 습관들


화요일의 모임에서 창조성을 가로막는 은밀한 적, 습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모임에서 말하려는 했던 청조성의 적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작업을 방해하는 것, 자신이 그것을 모르는 채 하면서 이용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두 가지를 들었다. 나의 나쁜 습관은 뭔가 시작하려 할 때, 배고프다며 그 순간을 회피하려 드는 것이다. 시작하려 할 때는 긴장된다. 그 긴장을 못 견디고 밥 먹겠다고 도망간다. 밥을 먹고 하는 것이 은밀한 적이 될까 말도 안된다고 하겠지만, 나는 그것을 도피의 방법으로 사용하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밥을 먹은 후에는 그리고 싶은 생각,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줄어들어 있다. 그러니까 뭔가를 먹는다는 것은 아주 좋은 핑계거리가 되는 것이다.


어렸을 적에 숙제를 왜 안해왔냐라는 질문에 한번쯤은 대보았을 그런 핑계처럼 말이다. 숙제를 다 했는데 동생이 공책을 찢었다던가,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다던가, 좀 더 나이드신 분들의 핑계에는 우리 마을에는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는다던가 하는 것처럼. 숙제는 한 사람에게는 핑계가 없다.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갖가지 핑계 중에 하나를 댈 수 있다. 그러니까 내가 잘 쓰는 ‘배고프다’라는 것은 그런 종류의 것이다. 내 경우에는 배고픔이 그림을 그리는 것 뿐 아니라, 글을 쓴다거나 독서를 할 때도 나타나는 것 같다.


어렸을 적에는 나는, 내가 공부를 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거는 게 무척 싫었다. 특히 밥을 먹으라던가, 혹은 고구마 삶았다고 먹으라고 할 때 짜증이 났다. 집중하고 있는 그때에 대답을 하기 위해, 먹기 위해 잠시 그것을 놓아야 되기 때문이었다. 다시 그렇게 집중하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그리고 뭔가를 먹으라는 말을 들을 그 당시는 배가 고프지도 않았으니까. 먹고 나면 입안에 음식기운이 남아 있어서 자꾸 신경이 분산되는 것도 싫었다. 입안에 도는 단맛, 신맛,  이런들을 없애기 위해서 이를 닦았다. 뭔가를 먹고, 이를 닦고, 다시 집중하기까지의 시간이 몇 시간이나 되는 것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부할 때는 왜그렇게 까칠하게 굴었는지. 공부를 할 때는 늘 배가 조금씩 고팠지만 밥을 많이 먹지도 않았다. 부대껴서 공부에 방해되기 때문이다. 뭔가를 하느라 소비하는 에너지는 많은 데, 집중이라는 것을 위해서 일부러 적게 먹었으니까 그래서 자꾸 배가 고팠는지도 모르겠다.  적당한 배고픔이 나는 좋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을 반대로 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그림을 그리려할 때 뭔가를 시작하려 할 때, 나는 도망가는 수단으로 뭔가를 먹으려 했다. 특히 어렵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막닥뜨리게 되면 허기짐이 심했고, 화실 밖으로 달려나가 편의점에서 뭔가를 먹고 들어왔다. 때로는 새로운 작업으로 들어가기 전에 저녁 먹는다는 핑계로 집중할 시간을 다 써버리기도 했다.


내 창조성의 적 첫 번째, 배고픔


==


두 번째 적, 외로움.


10년이 넘게 그림을 거부했었다. 나는 외로운 사람은 그림을 그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20대 초반에 내가 본 그림들은 그리 밝지 않았다. 그림들은 외롭다라는 오라를 내품고 있었다. 그당시 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심리 상태에 따라 그림을 그렇게 그런다고 생각했다. 그림은 그 사람의 반영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90년대 초반 후반은 그림의 성향이 그랬던 듯하다. 실존이니 뭐니하는 것들에 대해 고민하던 때였고, 큰 대회를 통해서 자신을 알리려 했던 화가들은 진지성이란 것을 표현한다고 평소에 그리던 그림보다 더 무겁그렸을 것이기에. 나중에 개인 전시회를 둘러 볼 때도 그랬었다. 그림을 보면서 느낀 것. ‘외롭고 높고 쓸쓸한.’ 어느 시인의 시집 제목인데, 나는 그림들을 볼 때마다 그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높고 쓸쓸하다고. 어느 화가의 작품을 볼 때는 ‘이 작가의 마눌님은 힘들겠군. 남편님은 이렇게 자신에 세계에 옆사람을 끼워주지 않으니까. 이 사람은 매우 젊군. 60대의 작가인데 그림 속의 자신은 늘 청년이야. 마눌님 힘들겠군.’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하여간 그땐 그런 생각을 해버렸다. ‘나는 외로울 때는 그림을 그리지 않을거야. 내 안에 사랑이 넘치게 할 때까지는 안그릴거야.’


화요일모임에서 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 친구들이 웃었다. “말도 안돼.” 옆에 앉았던 사람이 외로운 사람이 외로움을 담아서 그린 그림이 외로운 이들의 마음을 더 잘 위로해 준다고 말해주었다. 지금이야 이러쿵저러쿵 해도 ‘그리고 싶다’와 ‘그린다’ 사이를 오가는 사람이 될 거란 것을 알지만 그때는 왜 그런 생각을 해버렸는지. 그건 나의 오만이었다. 그림을 그리지 않을 이유를 제대로 찾은 것이다.


내게 외로움이란 것은 늘 배고픔과 함께 찾아왔다. 이것은 어쩌면 소통의 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타인과 소통하지 못하거나 자신과 소통하지 못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계속되어 누군가와 소통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어느 날 어느 책에서 전시회장에 가면 화가들이 전시회장에 있을테니 그림을 보다가 궁금한게 있으면 말을 걸어보라는 말을 봤다. 화가들은 언제나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데 그림을 보는 이들은 자신이 그림을 모른다는 핑계로 화가들을 피해다닌다고 씌여있었다. 화가들은 간절히 소통을 원한다고 그러니 아주 기쁘게 대할 거라는 말도 더불어 보았다.


그 말을 본 후에 나는 늘 궁금해 하던 것을 물었다. ‘혹시 그릴 때 외로운가요?’ 혼자하는 작업이니 그럴 수 밖에 없다가 대부분의 답변이었다. 충청남도 미술대전에 그림으로 반해버렸던 사람의 다른 작품이 걸려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축하전화를 했다가 그 궁금증을 물은 적도 있다. ‘전에 전시회에서 보았을 때는 밝고 기쁨이 넘쳤는데, 이번 그림은 좀 묵직해요.’ 무슨 대회라는 이름이 걸린 곳에 작품을 낼 때는 한번 붓질할 거 2~3번 더해서 그림이 물감의 두깨만큼 묵직해 지기도 하고, 심사위원들이 좋아하는 성향을 생각 안할 수 없으니 그것이 그림에 나타나게된다는 말을 들었다. 개인전보다는 ‘~대회’라는 이름이 붙은 전시회의 그림이 훨씬 무거울 거라고....


그림에는 일부러이건 은연중이건 그 사람의 생각이 반영되나 보다.


수요일, 화실을 가기 전에 나는 걱정이 좀 되었다.

‘내 그림 속에는 뭐가 담길까?’ ‘내가 예전에 그렇게 싫어하던 외로운 사람들..... 조금은 외로운 모습, 혹시 지금의 내 초라한 모습이 그대로 담기지 않을까?’

요즘 연습할 때 선(line)에 나의 성격이 나도 모르게 담기듯이 그림 속에는 내 걱정 또한 담아지겠지. 어느 정도는.


어느 정도는.

그렇다면 내 안에 다른 것을 담도록 해야겠다. 안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온다면 안을 내가 원하는 것으로 채워야겠다. 나처럼 속이 밖으로 훤히 드러나는 사람은 '안을 가꾸면 되는 거야.'

내 안에서 나오는 적을 몰아낼 방법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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