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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23일 17시 22분 등록
 

화실일기 20080918- 표정그리기(2)

2008.09.18 목요일


내 눈은 전체를 보는 데 손은 순차적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그리는 동안은 계속 마음에 들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림이 크니까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은 불안함도 있다. 전체를 끌고 나가는데 그림은 일부분씩 순차적으로 가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 상태가  계속된다. 끝을 미리서 보지 못하는 마음이 이렇게 자신에게 불만으로 나타나나 보다.


솔직히 그리는 동안은 별 생각이 없다.
그러니까 나는 아무 ‘생각없음’과 ‘생각있음’을 반복하는 거다. 아무 생각없이 닮게 그리는 것을 침묵 속에서 하다가, 그것을 마쳤다 싶으면 그때 이것저것 생각이 난다. 그때의 생각은 일종의 보완이다. 다른 말로 하면 흠잡기이다. 여전히 그림에 대해서는 불만이고 뭔가 부족한 듯 느끼지만 딱 꼬집어서 말할 수는 없다.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때 드는 생각은 이런 것들이다. ‘이쪽 눈 있는 데가 좀 어색한데.’ 그게 내가 말로 표현한 것의 전부다. 어색하다는 것은 어딘가 조화롭지 못하다는 것인데, 크기가 이상한지 비례가 이상한지, 위치가 이상한지, 혹은 잘 보이지 않는지 분위기로만 알아차리는 그것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눈썹이 꼭 남의 것을 가져다 붙여 둔 것처럼 이상하다. 눈 주변에 손이 많이 간다. 눈 주변에는 선이 많다. 이마의 형태를 따라가는 이마에서 이어지는 눈썹, 그 아래로 푹 꺼지는 중에 보이는 깊은 쌍거플, 쌍거플 아래로 살짝 도르라진 위쪽 둥근 눈두덩, 그리고 속눈썹, 눈동자, 그리고 눈 아래 눈두덩. 가끔은 그 아래쪽으로 잔주름도 있다. 눈은 올록볼록이 많은 부위이다. 그리려고 자세히 들여다 보니 이 여성 눈에 눈화장도 했을 것 같다. 속눈썹이 엄청 길다. 콧등의 위쪽까지 닿아있다.

남성의 얼굴에도 신경을 써야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쪽을 만지작 거린다. 눈 옆으로 이마에서 눈썹꼬리를 지나서 광대뼈로 이어지는 부분을 더 밝게 수정한다. 밝은 부분을 넓혀가면서 광대뼈가 있을 법한 위치로부터 볼로 이어지는 부분을 찾아나간다. 그러다가는 볼에서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며 이어지는 눈 쪽을 어찌해야 할지를 모른 채 막혀있다.


남성의 눈쪽은 거의가 까맣게 보인다. 까만색으로 칠했다. 마크 선생님께서는 내가 남성의 눈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눈 주변을 가리키면서 그 부분이 아주 이상해 보인다고 말씀하신다. 까맣게 칠해버린 눈 때문에 신사가 괴물이 되었다. 눈이 없는 괴물이다. 역시 눈 그리기를 포기하면 얼굴 그리는 것을 망치게 된다. 까맣게 보이는 중에서도 희미하게 드러나는 눈 주변의 선들을 찾아야 한다. 쌍커플이 엷게 보인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선이다. 처음에는 전체가 그냥 움푹 들어간 까만 눈이었을 뿐이다. 찐한 눈썹을 그리고 그 아래에 엷게 밝은 부분을 넣은 후에 쌍커플 선을 그리고는 눈 크기를 가늠할 만한 선을 넣어서 전체 눈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를 나타냈다. 전체가 까맣던 것에서 조금씩 눈 안쪽으로 밝은 부분을 찾아 들어가고 있다.


눈 아래쪽에서 보로 이어지는 부분은 어느 정도로 중간색을 넣어야 할지 모르겠다. 눈은 까맣고 광대뼈 부분은 남성의 얼굴 중에서도 하얀 부분에 해당된다. 움푹 들어갔던 것이 갑자기 솟으면서 연결이 자연스럽게 되지 않는다. 눈 주위에서 헤맨다. 애굿은 이마를 고친다.


코에서 수염을 지나서 입술 옆으로 이어지는 선이 보인다. 그 선을 따라서 볼 살을 표현한다. 입술 옆쪽에 붙은 살도 둥그스름하게 만든다.


귓불과 귀바퀴의 명암도 한 번 더 손질한다. 대충 형태만 잡아서 윤곽만 표시했던 것을 귀바퀴에 생기는 그림자를 진하게 넣는다. 귀 역시 선이 많이 들어간 부분이이다. 남자의 귀를 만지다가 여자의 귀도 한번 더 명암을 체크한다.


20080918-1.JPG 


여성의 오른쪽 팔을 드러내기 위해 배경인 공기를 더 밝게한다. 여성의 앞쪽의 밝은 부분과 뒤쪽이 밝은 부분의 밝기가 비슷한 정도라고 여기지 않았는데, 다시 보니 밝다. 뒤쪽도 앞쪽 만큼이나 희게 만들고 싶은데 되질 않는다. 이유를 모르겠다. 앞쪽을 했던 방식으로 뒤쪽도 희게 했을 것 같은데 되질 않는다. 앞쪽을 희게 만들 때는 어떻게 만들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무리 연필을 꾹꾹 눌러서 덧칠을 해도 둘은 달라보인다. 눌러서 그리는 것에는 한계가 있나보다. 내가 평소에 쓰던 방식으로 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방법이 다르니까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문질어서 틈새를 메꿨나?  여성의 얼굴 부위에서는 칠하고 문지르고 해서 고르게 펴는 것을 계속 반복해서 부드럽게 만들었었다. 그 방법을 계속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여성의 옷 소매 레이스 때문에 생기는 엷은 그림자를 검은색으로 만들었다. 사진 속에서 어느 위치쯤인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희미한 영역이다. 여성의 팔뚝을 원통형이 되어 보이도록 둥그스름하게 다듬었다. 여기에서도 차분하게 빗금을 치지 않은 것을 곧 후회했다. 빗금 때문에 팔이 옆으로 틀어져 보이므로.


 20080918-3.JPG


조금씩 명암을 체크해서 형태를 잡아가는 데도 진도는 나간 것 같지 않다. 여성은 여전히 청동조각이고 남자는 역시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매끈하다. 조금씩 손을 대긴 했지만 남아있는 어색함. 마크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한 때다.


선생님께서는 흰색 연필로 여성의 얼굴 전체에 엷은 선을 길게 휙휙 그으셨다. 중간 밝기의 선을 얼굴 전체에 빠르게 휙휙 그은 후 손으로 문질러서 폈다. 얼굴 전체를 조금 더 밝게 하신 것이다. 밝은 부분과 그림자가 진 부분을 모두 흰색을 엷게 칠해버림으로써 명암대비를 감소시켜 버린 것이다. 밝은 부분에서 조금 어두운 부분으로 이어지는 부분에서도 밝은 부분을 조금 더 넓히혔다. 귀에서 볼로 이어지는 곳이라던가 턱선 바로 위쪽의 살짝 튀어나와 보이는 곳, 목 쪽에서 아주 살짝 튀어나온 부분들을 살리셨다. 그것은 중간 밝기의 명암을 밝은 곳과 어두운 곳 사이에 추가하면서 전체적으로 부드럽게 이어지게 만드는 것이었다.


청동 조각상처럼 보인다는 것은 명암의 대비가 금속에서 나타나는 광택처럼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이 칼을 대고 잘라 낸 깔금한 경계를 가진 것을 풀로 그 둘을 붙여놓는 것처럼 두 부분이 인접해서 서로를 더 두드러지게 한다는 것을 의미했는데 그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 그림을 그릴 때의 순서를 살펴보면 드러나는 것이었다. 처음에 검은 바탕에 얼굴부분을 살리기 위해 경계를 만든 곳에서 경계선을 진하게 눌러서 그은 후에 경계선으로 안쪽으로 흰색을 칠해나가는 데 경계선이 가장 밝게 안쪽으로 가면서 그 흰색이 사라지게 표현했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사진에서 보이는 것보다 흰색의 공간을 조금 더 적게 표현하라는 선생님의 말을 따라서 어느 정도 밝게하다가는 멈추었던 것이다. 그렇게 중간 정도의 밝은 부분은 터치를 하지 않은 상태로 그대로 두었으니 중간 정도의 밝은 부분이 없어서 어색했던 모양이다.


얼굴 전체를 덮어 버린 것 때문에 아주 밝은 부분이 사라져서 다시 볼 부분을 손봤다. 주변을 바꾸면 그에 맞추어서 드러내야 할 부분도 조금씩 손봐야 한다. 코 부분도 다시 만지고 흰색으로 뭉개져 버린 입술선도 매만졌다. 그리고 턱선도 만들었다. 턱은 검은색으로 형태를 나타내는 곳이다. 턱이 부드럽게 이어지도록 각이 진 부분을 주변의 흰색과 섞이게 문질렀다.


 20080918-8.JPG


계속 미뤄 두었던 남성의 눈을 다시 세세하게 다듬었다. 속눈썹이 만드는 그림자를 넣기 위해 흰색을 이용해서 눈 안쪽으로 칠해 들어갔다. 흰색이 어디까지 칠해들어가냐에 따라 눈의 형태가 드러났다. 사진 속에서 형태가 드러나지 않고 희미하게 보이는 눈이다. 그것을 종이에서도 희미하게 그려야 한다. 일반적으로 이러이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눈 형태는 여기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냥 보이는 대로 따라가야 할 뿐이다. 그림자를 그려서 그게 무엇이 되게 만드는 것이었다. 까만 부분을 놔두면 그것은 그림자가 되었다.


 20080918-4.JPG


코쪽에서 눈으로 이어지는 부분에 검은 부분은 속눈썹이 만든 그림자로 여겨졌다. 그 부분을 살렸다. 마크 선생님께서는 눈 바로 옆쪽에서 코의 밝은 부분을 찾으셨고, 코에서 밝게 빛나는 부분을 두 군데 찾으셨다.


그런 후에 여전히 젊어 보인다며 여성의 얼굴에서 중간 밝은 부분을 넓혀 갔듯이 남성의 얼굴에서도 중간 밝은 부분을 넓혀나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선을 듬성듬성 쓰셨다. 많이 문지르지 않는 것 같다. 칠하고 문지르면 매끈해져 버리는 데 그대로 두니 피부가 거칠어 보였다. 나중에 사용한 선들은 방향이 여러 방향인데 얼굴근육을 따라간 듯 하다. 이런 걸 피부결이라고 하나, 하여간 일괄적으로 한방향만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얼굴 부위에 따라서 선을 넣는 방향이 달랐다. 특히 목에서는 목을 쓰다듬는 듯한 방향으로 선을 그리셨다. 그렇게 하고 보니 클라크 게이블이 시작할 때보다 나이를 좀더 먹었다.


연필로 근육을 만들어가듯이, 아니 이 말은 정확하지 않은 것 같다, 연필이 근육의 선들을 늘려 나가듯이, 이 말도 적절하지는 않은 듯 한데, 하여간 조금씩 근육을 키워나가듯이 층을 쌓아가듯이 손을 조금씩 놀려서 밝은 부분을 연장해가거나 어두운 부분을 연장해간다. 그렇게 엷게 지나가는 선은 피부의 질감이 되기도 한다.


여성의 경우는 매끄러운 피부가 적합해서 꼼꼼하게 차분히 붙여서 칠하고 문질러서 부드럽게 만들면 되었지만, 남성의 경우는 그렇게 할 경우 너무 매끄러운 피부가 되어서 거칠은 맛이 나지 않았다. 질감에 따라서 손(연필)을 쓰는 방법이 달라져야 하나 보다.


선생님에 시범을 보이시면 다시 내가 연필을 넘겨받아 확장해서 다듬어가고 하는 것을 반복했다. 흰색과 검정색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조금씩 다듬었다. 보이지 않는 애정까지 넣어서 표정을 살리겠다는 욕심은 얼굴 전체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애쓰다가 잊고 있었다. 우선은 닮게 그려야 하고 이상해 보이는 것들은 없어야 하니까 그것들이 우선시 되었다. 너무 매끈하여 밀랍을 세워둔 듯한 남자를 그리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표정은 마지막 단계인 듯 하다. 전체가 조화로운 중에 그 위에 더하는 것.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어제와 오늘 했던 과정이 예전에 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작은 종이에 그릴 때 치중하는 순서와 큰 종이에 그릴 때 치중하는 것들은 순서가 다르지만 역시나 같은 원리가 작동한다. 여전히 비례를 꼼꼼하게 맞추어야 하고, 명암을 살려야 형태가 살아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작은 그림에서는 손을 어느 순간에 힘을 주고 어느 순간에 힘을 빼느냐에 따라서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는 것에 반해, 큰 그림에서는  손이 훨씬 더 자유로우면서 몇 번의 겹침을 필요로 했다. 큰 그림은 수정하기도 쉬웠다. 그러나 이번에 겪었던 것처럼 크기 때문에 중간 정도의 명암을 제대로 살리지 않으면 분위기가 이상해진다. 작은 그림에서는 밝은 부분, 중간, 어두운 부분들의 면적이 좁기 때문에 손을 떨어가며 조그맣게 점을 찍다시피 명도를 몇 단계 나누지 않았었다. 큰 그림에서는  아주 조그만 차이로 살이 더 도드라져 보이가도 하고 조금 꺼진 듯이 보이기도 한다.


(p.s. 그런데 이렇게 꼭 사진으로 찍어서 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그림을 그릴 때는 충분히 뒤로 물러서서 보지 않았기 때문인가 보다. 전체를 한꺼번에 보지 못하는 근시안은 여전하다.

그리고 사진에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특징 중에 하나는 내 카메라는 중간을 잡아내지 못하는 것 같다. 아니면 내가 여전히 중간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서 카메라가 그것을 반영하거나.... 아마도 후자쪽인 듯하다. 예전에 찍어 놓은 사진을 뒤적거려서 박현만님(나와 같은 사진으로 그림을 그린 아저씨)의 그림을 찾았는데 그 사진에서는 중간이 안 나왔다는 느낌이 없다.)


20080730-9.jpg 

<박현만 아저씨의 그림>

IP *.247.8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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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5 02:37:36 *.38.102.197
정화선배는 별반다르지 않다고 느끼나? 나는 독자입장에서 매일매일 달라지는 그림이 보여. 그것이 이책의 장점 아닐까. 전문가가 아닌 독자와 저자. 묘하게 함께 가는 이입을 느끼게 되거든. 지루하면, 다른글도 올리면서 계속 고고씽하는거야. 책 나오면 내가 선물할 사람 손가락으로 꼽고 있으니 책을 기다리는 독자를 위해 화이팅해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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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8.09.26 09:18:17 *.247.80.52
앤 님 고마워요.

화실일기를 왜 쓸려고 했는지 그리로 돌아가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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