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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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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13일 00시 06분 등록


오늘은 사부님의 2주기 추모제 행사가 있었습니다. 어느 행사를 가나 늘 청중으로 있던 사람이 마이크를 잡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한 날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연대님께서 전화를 하셔서는 추모제 사회를 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물론 그런 전화가 올거라 귀뜸을 받은 터라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통화를 하게 되니 당황스럽더군요. 그런데 이상하게 묘한 끌림이 있는 제안이기도 했습니다. 경험부족과 능력부족을 핑계로 난색을 표하기는 했지만, 전화를 끊을 때는 , 알겠습니다라는 대답이 나도 모르게 나와 버렸습니다. 그 후부터 고민은 시작되었습니다. ‘어쩌자고 그런 대답을 했을까? 못한다고 할까?’ 등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지만, 번복한다는 것이 더 내키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동기들 중에는 직접적인 사부님의 가르침을 받지 않았는데 추모제 사회를 보는 것이 좀 그렇지 않냐?’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그 말에 잠깐 흔들렸던 것이 사실입니다. 아마 수문에서 사부님을 가슴으로 만나지 못했다면 그 말에 아주 깊게 흔들렸을 것 같습니다. 졸업여행의 거의 막바지에 간 수문해수욕장에서 우린 사부님께 술 한잔씩을 올리고 왔습니다. 그때 아버지처럼 따뜻하고 다정한 분이 저의 가슴속으로 하고 들어오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 드디어 내가 사부를 만났구나!’ 가슴이 벅차 울었고, 그 여운이 며칠을 갔습니다. 살면서 처음으로 해보는 경험이었습니다. ‘이제, 추모제 사회를 봐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시점이기도 했습니다. 언젠가는 연구원에 국한된 사람이 아닌, 진심으로 사부를 사모하는 이가 추모제 사회를 볼 날도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쩌면 변경연에 국한된 사부보다 그런 모습을 더 기다리고 좋아하지 않으실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한번 잠이 들면 알람이 깨우기 전까지 얼어나지 못하는 사람인데, 이상하게 새벽에 눈이 떠졌습니다. 추모제가 가까워올수록 아무리 마음을 편하게 먹으려 해도 긴장이 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4기의 박 중환선배에게 S.O.S를 청했습니다. 그렇게 한 번의 미팅이 이루어졌고, 그리고는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사회를 본다고 하니 생각보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더군요. 게스트에게 무슨 질문을 던질 것인지, 청중과 어떤 식으로 소통을 할지, 전체적인 흐름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등 머리 속으로 그 날의 행사를 몇 번을 그렸는지 모릅니다. 경험이 없는 저에게는 아무리 해도 역부족의 준비였습니다.

그래도 한 켠에 사부님이라는 백그라운드가 있다는 생각에 든든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똥배짱이 생기더군요. 그렇게 불안과 긍정의 생각들이 시소를 타고 시간은 흘렀습니다. 드디어 그 날은 오고야 말았네요. 목욕을 하고 오래 간만에 정장을 입고 까페로 갔습니다. 벌써 여러 분들이 오셔서 준비를 하고 계시더군요. 얼굴이 민망했습니다. 변경연은 그렇게 부지런한 분들의 움직임이 항상 있었던 듯 합니다.

추모제 시작 시간 1 30. 마이크를 켜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어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써 온 대본을 손에 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의 멘트는 벌써 다른 말을 하고 있네요. 대략난감이군요. 그 동안 연습한 시간들이 공중으로 흩어졌습니다. 없어지는 아득한 정신을 바로 세워가며 겨우 인사를 하고 진행을 시작했습니다. 몇 번은 혀가 꼬이고 더듬는 일들이 발생한 듯 합니다.

그런데 변경연은 역시 다르더군요. 사부님이라는 공통된 그리움은 우리를 가족으로 만들었습니다. 진행을 혼자 하겠다는 생각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저 보조 사회에 지나지 않더군요. 그곳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이 구본형사부님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하고 노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느새 저도 긴장이 풀어지고 그 분위기에 같이 동참을 하게 되었습니다. 미숙했지만 즐겁고 남다른 짜릿한 경험을 했네요. 특히, 마이크를 넘겨가며 사부님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때,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쟈스민차를 말씀하시며 친구에 대한 그리움으로 발길을 하신 분도 계셨고, 아버지 대신 추모제에 참가해서 끝까지 자리를 지킨 20살의 청년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사부님은 어디에나 누구의 가슴에도 살아 계시더라구요. 생각했던 것보다 더 멋진 분입니다.

한 사람의 죽음이 이리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날입니다. 사부님께서 원하시던 쏘시게 불꽃의 역할을 여전히 하고 계시다는 것도 알게 된 날입니다. 참 아름다운 분입니다. 오늘의 이 감정을 삶의 에너지로 승화시켜 하루하루 걸어가는 일이 그분을 그리워하는 이들의 몫인듯합니다. 아름다운 시절에 가신 그분을 닮고 싶네요 


IP *.255.24.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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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3 06:24:53 *.146.231.234

그렇게 울먹이더니... 아, 수문에서 그렇게 사부님을 가슴으로 만났군요.  그래서 후기도 참 가슴 찡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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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3 09:30:10 *.255.24.171

그래지더라구요.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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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4 12:47:39 *.7.56.228
모선배 왈.
"사회, 좋다."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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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4 19:59:43 *.223.49.53

아직 믿기지 않아요. ㅋㅋ 다 선배님 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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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4 13:47:33 *.182.55.123

발을푹담그지못하는것같아내가내게안타깝고있습니다.

스승을만났다니기쁘고고맙습니다.

스스로에게좀더다가간것일테지요.

예상컨데앨리스다음은은시미일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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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4 20:02:21 *.223.49.53
뭔가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의 존재가 우리 10기들의 느낌일거에요. 저도 이번 일이 감사해요. 이제 '사부'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아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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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6 21:17:40 *.230.103.185

.

수문에서 사부를 영접하는 장면, 감동적입니다.

나야말로, 돌아가신 후에야 익숙하게 "사부"라고 칭하게 되었답니다.


감기가 심해 결국은 못 갔는데 수고 많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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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7 23:04:53 *.255.24.171

그러셨군요. 기다리는 얼굴이 보이지 않아 궁금했답니다.

수문은 꼭 다시 간다는 약속을 하고 왔네요.

약속의 힘이 참 큽니다.

담에 운전을 모실테니 같이 함 가시죠.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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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2 07:07:11 *.209.104.15

수고 많았어요. 온몸으로 사회를 본 그대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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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2 08:58:48 *.255.24.171

감사합니다.

그거 아세요?

신비주의를 고집하시는 선배님께 궁금한게 아주 많다는 거.

준비하고 계세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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