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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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변화경영사상가 구본형선생님 2주기가 됐습니다. 레테의 강을 뛰어 넘지 못하고 훌쩍 가버린 1년. 오늘은 지난 주말, 그 추모의 자리에서 낭독했던 스승께 보냈던 편지를 드립니다.
스승님께.
지난 설날, 저는 유후인의 료칸에 있었습니다. 기모노를 입고 노천에 걸터앉아 발을 담그고 칠흑같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해마다 그 무렵, 가족분들과 그곳에 가신다고 하셨던 스승님 생각에 하염없이 잠겼습니다.
스승님이 그곳에서 보내셨던 '온천장에서의 편지'에는 많이 편찮으셔서 사람들이 잠든 후에도 잠들지 못해 홀로 깨어 밤을 어떻게 지냈는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후 내내 그 온천장에서의 편지를 생각하며 저도 꼭 한 번 그렇게 가족들과 그 장소에 가보고 싶었던 가 봅니다.
지정도서를 읽고 칼럼을 쓰며 오직 저를 중심으로 돌던 세상이 비로소 너를, 우리를 이해하게 되는 지각변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던 그해. 저는 잊을 수 없는 특별한 하루를 맞게 됩니다. 그날, 저는 스승께 편지를 보냈습니다.
" 스승님. 마음이 내내 잠들지 못한 갈대밭처럼 수런거렸습니다. 오늘은 특별한 날입니다. 돌이켜 보니 오늘을 맞으려, 저는 사십 여 년 간, 오랜 밤 시간을 잠들지 못했나 봅니다"
이 편지의 답장을 당신은 마음 편지로 이렇게 써 주셨습니다.
'그날 아침 그녀가 쓴 시가 당선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그녀가 쓴 소설이 당선되었습니다. 그녀는 일천만원의 고료를 받게 되고 소설가가 됐습니다. 그리고 그날 낮에 그녀는 내년 일 년 동안 여러분에게 가는 '마음을 나누는 편지'의 필자 중의 한 명으로 선정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내년 매주 한 번 씩 그녀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기쁨이고 또한 그녀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그날 하루 동안 세 개의 기쁜 소식이 그녀에게 달려갔습니다. 신기한 일입니니다.
그 날은 온 우주가 그녀를 축하해 주기 위해 그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선물을 준비해 준 날인가 봅니다.
그녀는 강한 성분의 감성적 소화액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더욱이 이야기의 실을 자아낼 수 있는 탁월한 거미류의 소설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랜 밤 시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쓸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런 어쩔 수 없는 힘 때문이었을 겁니다.
때때로 두려워 제방을 쌓아 흐르는 기를 잡아 가두려 하지만 인생의 어떤 때는 살아지는 대로 살아야합니다. 가두어 둔 뚝이 터져 흐르듯 그 힘이 넘치게 놓아 두어야 합니다. 한군데로 밀려 쏟아지는 물길에 삶을 맡겨 두어야합니다. 도도한 물길이 제 길을 찾아 흐르도록 말입니다. Let it go ! 그러면 일 년도 지나지 않아 지금과 비교할 수 없는 정말 좋은 일이 그녀에게 생길 겁니다. 그녀는 이미 매우 그녀다운 주제의 밝고 감미로운 글들을 차곡차곡 써가고 있으니 그녀와 사회는 잘 어울려 춤추게 될 것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글로써 사회를 격려하고 그 어둠을 밝히게 되는데 그녀는 특히 밝고 유쾌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그녀를 표현하는 가장 유사한 상징은 꽃이 피기 시작한 벚나무입니다. 곧 꽃으로 가득 뒤덮일 것입니다.
스승의 과분한 이 편지를 저는 마치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습니다. 수상을 축하하려고 동기들이 모였을 때 큰 절을 올리자 당신은 ‘내가 한일이 뭐 있느냐’ 라고 말씀 하셨지만 연구원에 들어 갈 때 저는 말라비틀어진 나무, 생각하되 정말 해야할 생각을 못하고 제 멋대로 산 빈 나무 등걸이었습니다. 그런 나무에 물을 주고 뭔가 하고 싶다는 추동을 끊임없이 일으켜 주신 분이 바로 스승님이셨으니 큰 절을 수없이 해도 그 감사를 어찌 갚을 수 있었을까요.
전에는 오직 저를 위한 미시적 생을 설계 했다면 지금은 끊임없이 우리를 고민할 수 있는 삶의 지평을 넓혀 주신, 시냇물만한 세상에서 바다를 볼 수 있도록 시야를 넓혀 주신, 생을 마감할 때까지 유일한 스승이실 분. 그저 스승의 등만 보며 따라가기만 하면 될 거 같았던 제 보너스 같던 축복의 삶.
읽어 볼수록 감당하셨을 고통이 느껴졌던 온천장에서의 편지.
‘문득 모든 고통이 사라지고, 사케 몇 잔을 마시고 깊은 잠들어 나를 부럽게 했던 사람들은 결코 보지 못했을 이 아름다운 광경에 내가 이 밤에 깨어 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작가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혹은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고통 속에서 볼 수밖에 없는 불행한 존재들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렇게 숨막히게 아름다운 것일 때도 있습니다'
료칸에서 눈을 만나셨던 거처럼 저도 어느새 흐려져 점점이 내리던 흰눈을 봤습니다. 사케 한 잔을 따라 스승님을 추억하며 그 구절을 다시 기억해 봅니다. 편지의 이 구절을 따라 스승님 다시 뵐 때까지 다시 걸어 보겠습니다. 수많은 꽃을 피워 주시고, 너무 갑작스레 가셔서 우리에게 고통이 된 이름, 구본형. 그 상실의 이름을 나눔의 꽃으로 활짝 피워 스승님을 기리도록 부족하지만 다시 힘을 내 보겠습니다.
이렇게 봄 꽃 찬란한 날 더 사무치게 그리운 우리 스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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