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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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그 젊은 꽃 붉게 피었네
구본형
나의 집에 있는 배롱꽃
우리 집에 온 다음
그 나무는 한 번도 꽃다운 꽃은
피워 보지 못했네
실망한 아내는
석녀야 석녀
꽃을 피워라
아니면 베어버리리
협박도 하고 애원도 했지만
그녀의 마음 그 나무는 받아주지 않았네
몇 년이 지나
우리는 지치고 말았어
아내도 나도 다 지치고 말아
그 자리에 붉은 벚꽃을
피울 벚나무를 심어 두었지
그리고
배롱나무는
개똥 가득한 개 집 옆으로 옮겨 심었지
그게 올 여름은 다르겠지 기다리다 지친
그 해 가을이었지
그 다음해 여름
개똥 밭 배롱나무는
온통 붉은 폭탄꽃으로 천지를 붉게 불들였지
보아라
몇 년을 피지 못한 설움이여
크고 작은 벌들이 달려들어
잔치하듯
윙윙거리니
아내는
좋다 좋다
봇물 터지듯 꽃터졌다
기꺼워하고
계단 오르내리며
꽃구경에 겨워 볼터지네
모든 초라한 청춘은
개똥밭 배롱꽃 보러 와라
모든 외로움 폭죽처럼 터지는
꽃피는 여름
제발 여름 작물만 같아라
그렇게 푸르게
짙은 초록으로 쑥쑥 자라라
개똥밭 거름
더럽다 피하지 말고
못 먹은 피처럼 들이켜
맘껏 자라라
아, 붉은 토양 붉은 꽃
맘껏 피어라
(2009.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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