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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12일 08시 26분 등록
직장인, 책에서 길을 묻다

    

당나라 선사인 조주(趙州)에게 수행자가 찾아와 불법의 큰 의미에 대해 물었다. 조주가 차를 내어 주며 이렇게 말했다. “차나 한 잔 하시게” 이때 옆에서 보고 있던 원주가 물었다. “스님! 어째서 ‘차나 한 잔 하시게’라고 말씀하십니까?” 조주가 말했다. “원주, 자네도 차나 한 잔 하시게”


조주는 무엇을 말하고자 한 것일까? 사실 여기에는 숨은 비유가 없다. 문자 그대로다. 차 한 잔을 제대로 마실 줄 알면 그것이 그대로 깨달음이라는 것이다. 차를 마실 때는 마음이 온전히 차에 머물러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아주 맛있는 커피를 앞에 놓고도 맛을 음미하는 것은 대개 첫 모금뿐이다. “아, 맛있다” 하고는 곧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미래를 걱정하느라 어느새 커피 맛은 흐릿해진다. 이내 무엇을 마시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린다.


‘힐링’ 열풍으로 많은 이들이 가족과 자연을 찾는다. 그러나 캠핑을 가서도 정작 빈 마음으로 자연을 느끼는 사람은 드문 듯하다. 사진을 찍고, 고기를 굽고, 이야기하고 영화를 보느라 어느새 자연은 ‘배경’으로 전락해버린다. 자연 속에서도 자연을 느끼지 못한다. 누군가는 힐링을 위해 명상을 하기도 한다. 선방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마음을 가라앉히고 평화를 찾는다. 한없이 고요해진다. 그러나 문을 열고 나오면 곧 어깨는 무거워지고 평화는 사그라진다. 삶은 그만큼 힘겹다.


정말로 깨어있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따로 자연을 찾거나 명상을 할 때만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일상 속에서 깨어 있어야 한다. <틱낫한 명상>은 이러한 생활 속의 명상에 대해 다룬다. 바쁜 생활을 어떻게 ‘쪼개어’ 명상할 것인지가 아니라, 생활의 모든 순간을 어떻게 명상하듯 깨어 있을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힐링 타임’을 따로 낼 것이 아니라 먹고, 걷고, 일하는 매 순간 힐링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은 가장 단순한 일인 설거지를 할 때조차 깨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설거지하는 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릇을 깨끗하게 하려고 설거지를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설거지를 하려고 설거지를 하는 것이다. 설거지를 하면서 뒤에 차 마실 일만 생각하고 그래서 마치 성가신 일을 처리하듯 서둘러 그릇을 씻는다면 그것은 ‘설거지를 하기 위해서 설거지를 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자기 삶을 알차게 살지도 못한다. 지금 설거지를 하지 못한다면 이따가 차도 제대로 마실 수 없다. 차를 마시면서 다음 일을 생각하느라고 자기 손에 찻잔이 있었는지 모를 테니까. 그렇게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서 헤매느라고, 자기 삶의 한순간도 알차게 살지 못하고 만다.”


설거지를 할 때에는 설거지만 해야 한다. 자기가 설거지를 하고 있음을 순간순간 알아차려야 한다는 말이다. 내가 여기 서서 그릇을 닦고 있다는 사실이 그대로 놀라운 현실이다. 내 숨을 따라,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과 내 생각, 내 행동을 다 알아차림으로써 온전하게 나 자신으로 현재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면 물결 위에서 이리저리 떠다니는 병처럼 생각 없이 떠밀려 다닐 리 없다.


“인생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다. 경험해야 할 신비다.” 영국의 작가 체스터턴의 말이다. 이 말을 곱씹어 봐야 한다. 마음이 오직 ‘현재’에 머무를 때, 싱크대 앞에 서있는 동안에도 우리는 인생의 기적을 실현할 수 있다. 삶은 경이로 가득해진다.


- 박승오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directant@gmail.com


*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에서 한겨레 신문에 '직장인, 책에서 길을 묻다'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5월 11일자 신문에 위 칼럼이 게재되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6907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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