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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16일 01시 06분 등록

어느새 인가요. 불쑥 자라있습니다. 조금만 지나면 금세 천정에 머리가 닿을 기세입니다.

“나보다 키 더 크면 쪽팔려서 함께 못 다니겠다.”

엄포를 내보지만 그게 어디 맘대로 되나요. 여중생 조카 녀석 이야기입니다. 땅으로 지고 있는 어른들과는 달리 아이는 하늘을 바라보며 가지를 뻗습니다.


5월 어버이날을 앞두고 처갓집을 방문하였습니다. 가파른 계단의 오르막길. 장인어른이 힘드신지 몸을 휘청 입니다. 잡아드리려고 손을 내밀자 굳이 당신 걸음을 고집하십니다.

“내 정신은 똑바르고 바르게 가려고 하는데 의지와는 달리 비틀거리니 …….”

가슴 저 밑 물안개가 차오릅니다. 벌써 그만한 세월이 되셨나요. 젊은 시절 월남 정글과 사우디 사막을 누비고 다녔던 기개는 어디에. 당신의 현실이 믿기지 않는 눈치입니다. 한해두해 나이가 들어갈수록 저도 신체적 변화가 느껴집니다. 침침한 눈, 가물가물한 기억, 술의 여독과 함께 조금 무리를 할라치면 탈이 생깁니다.

젊은 시절 잘나갔음에도 흐르는 날들 앞에는 장사가 없으니 그런 시절을 못내 붙잡고 싶으신 모양입니다. 절뚝이는 발걸음이 오늘따라 더욱 눈에 박히네요. 사위인 나도 이럴 진데 가족들의 마음은 어떠할까요.


“노래방 가실래요.”

나름 야외 활동을 계획하고 왔지만 당신의 몸이 따라주질 않음에 저녁식사이후 대안을 내세웁니다. 시설이 도시에 비할 바야 아니겠지만 소박한 공간 안에서 정말 열심히 밤을 불태웠습니다. 펼쳐진 무대에서 아버님은 소싯적 한가락 솜씨를 맘껏 풀어놓습니다. 아니 그동안 묵혀두었던 삶의 묵직함의 해체라고나 할까요. 제스처에 목소리까지 남진, 나훈아 가수의 재현. 거기에 평소 내색을 하지 않던 마늘님까지 가세합니다. 전날 몇 시간 눈을 붙이지 못한 터이지만 저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탬버린과 추임새로 한껏 분위기를 고취시킵니다. 문득 이 순간을 사진과 동영상에 담고 싶어졌습니다. 이 자리의 누군가가 떠났을 때 다시 그 모습을 찾아보노라면 어떤 감정이 들까요. 얼마나 이런 시간이 다시 올수 있을 지요.


“이제는 숨이 차고 목소리가 올라가질 않아.”

호흡을 잠시 내려놓으며 테이블에 놓인 소주잔을 연신 들어 올리는 당신. 한 잔의 술은 자식들의 재롱과 어울린 기쁨이겠지만, 이후의 잔들은 뒤돌아설 수 없는 여운과 아쉬움에 젖은 들이킴이 아닐는지요. 오래전 그때를 떠올리면서 두 시간여를 감회에 젖을 즈음 이젠 힘이 달립니다.

“마늘님. 평소 그렇게 좀 해봐라. 빼지 말고.”

“내가 그냥 뛰어다닌 줄 아니. 어머니 아버지 앞에 재롱떨려고 그랬지.”

그랬었구나. 효과는 나타났습니다.

“나는 네가 그렇게 잘 노는 줄 몰랐데이.”

두 분의 얼굴 환한 달덩이 하나 길어 오르며 밤은 흘러갔습니다.


조카들의 커가는 모습과는 달리 날이 갈수록 작아지시는 분들. 저도 당신들의 역사를 따라가고 있는 터이기에 예사롭지 않아 보입니다.

‘나고 자라고 죽고, 꽃은 피고 지고...’

삶의 순환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를 부정하고픈 것이 사람 마음이고 인생인 오늘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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