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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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설악산에 다녀왔습니다. 어느 조직의 승진자들을 위한 워크숍에 특강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가는 길과 오는 길, 한계령 굽이굽이에서 마주한 바람 맛은 정말 맑고 맛있었습니다. 맑은 햇살에 드러난 설악의 늦은 봄빛은 가히 예술 그 자체였습니다. 참 좋은, 혼자만 누리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시간이었습니다.
강연장에서 컴퓨터를 연결하고 마이크를 점검하며 강연 시작을 준비하는 나에게 한 남자가 다가왔습니다. 그는 내게 대뜸 인사를 건넸습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나는 그 사람이 누군지 떠오르지가 않았습니다. 누구시냐 물었더니 내 아내의 친구의 남편이라 했습니다. 서울에 있을 때, 내가 30대 초중반이던 때, 아내의 친구들을 중심으로 남편들까지 합류해 이따금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부인의 이름을 물어 들어보니 그제야 어렴풋이 기억이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15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지났고 그때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는 나를 알아보는 그가 참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떠나오기 전 나와 그는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내게서 자신이 알던 나를 볼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의 말이 싫지 않았습니다. 아니 안도감까지 들었습니다. 나는 분명히 거듭나서 새로 살기 위해 떠나온 사람이었으므로 예전의 나를 발견할 수 없다는 그 말이 기분 좋았습니다. 그는 지금 내 모습이 참 좋아 보인다고 했습니다. 나는 강연 중에 ‘누군가의 모습이 좋아 보인다면 그 뒷면에 그가 짊어지고 살고 있을 그림자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타인의 삶에 대한 선망 때문에 지금의 내 삶을 작게 만들 일 아니다.’라는 내용을 포함했었습니다. 그의 표현은 선망이라기보다 나에 대한 순전한 느낌으로 들렸습니다.
15년 뒤에 다시 지금 나를 알던 누군가가 오늘처럼 모처럼 우연히 나를 만났을 때는 그 누군가가 내게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군요.’라고 말해주기를 기대합니다. ‘다만 더 간결해지고 깊어졌군요.’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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