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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26일 11시 32분 등록
직장인, 책에서 길을 묻다
    

어느 날 중국 선(禪) 불교의 고승 운문(雲門)이 주위 사람들에게 물었다. “보름달 이전의 날들에 대해서는 자네들에게 묻지 않겠다. 대신에 보름달 이후에 관해서 말해보거라.” 여기서 ‘보름달’은 ‘깨달음’을 뜻한다. 따라서 ‘보름달 이후’는 깨달은 이후의 삶과 존재를 가리킨다. 본질적이고 어려운 질문이다. 사람들이 말이 없자 운문이 스스로 답했다. “날마다 좋은 날이로다(日日是好日).”


운문의 선배에 해당하는 남전(南泉) 선사는 제자 종심의 “도(道)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도란 평상시의 마음(平常心是道)”이라고 답했다. 여기서 도는 ‘보름달’과 같고, 도를 따르는 삶은 ‘보름달 이후’의 삶과 연결된다. 종합하면 도는 ‘평상심’이고, 도를 따르는 삶은 ‘날마다 좋은 날’이다. 무문(無門) 스님은 ‘평상심’과 ‘날마다 좋은 날’에 대해 아름다운 시를 남겼다.


“봄에는 여러 꽃, 가을에는 달,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 겨울에는 눈,

쓸데없는 일, 머리에 두지 않으면

사람살이 좋은 시절로 편안하리라.”


깨달음과 행복의 관계는 생각보다 가까운 것 같다.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깨달음 이후에는 나날과 범사가 행복이라는데, 행복하면 깨달음도 그렇게 다가오지 않을까?’ 이슬람 수피즘의 신비주의 시인 사디에게서 실마리를 찾았다. 그는 말한다.


“신을 섬기는 일에 푹 빠진 사람은 물레방아 삐걱대는 소리에도 황홀해진다.”


신 섬기는 일만 그럴까. 사랑할 때도 그렇고, 책, 춤, 그림, 요리, 글쓰기 등 자신의 일에 푹 젖은 사람도 그런 황홀경을 맛볼 수 있다. 그렇다면 깨달음과 행복은 우리 일상과 그리 멀리 있지 않다. 깨달으면 행복하고, 행복하면 깨달을 수 있으며, 행복과 깨달음이 일어나는 시간과 장소는 ‘지금 여기’이다.


운문과 남전, 무문과 사디처럼 지혜로운 이들에게 흠뻑 젖을 수 있는 책이 존 C. H. 우가 쓴 <선의 황금시대>이다. 이 책은 선 불교의 역사에서 절정기를 연 위대한 선사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 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문장은 끝이 나되 뜻은 끝나지 않았다’는 말의 의미를 실감하게 해준다. 여운이 짙은 이 책은 새벽이나 밤에 읽어야 제맛이다. 하루의 시작을 깊은 뜻을 담은 향기로운 이야기로 열면 하루 전체가 그렇게 될 것 같고, 밤에 이 책을 읽으면 하루를 그윽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 불자가 아닌 내가 <선의 황금시대>를 수시로 꺼내 보고 10년에 한번씩 정독해야 할 ‘나의 고전’ 목록에 넣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 홍승완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kmc1976@naver.com


*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에서 한겨레 신문에 '직장인, 책에서 길을 묻다'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5월 26일자 신문에 위 칼럼이 게재되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69277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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