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 조회 수 1415
- 댓글 수 0
- 추천 수 0
조금 전 여천역에 내렸습니다. 강렬한 햇살은 7월 같지만 바람은 5월에서 불어온 것처럼 상쾌했습니다. 승강장에 서서 택시를 기다리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그녀였습니다. 그녀를 처음 본 것은 4년 쯤 됐을 겁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녀와 사적인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녀는 한 대학의 대학원에 행정직으로 근무하면서 강좌를 기획하고 외부 강사를 섭외하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며칠 전에 강의를 했으므로 또 강의를 요청할 일은 없을 텐데…’ 라고 생각하며 그녀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지난 번 나의 강의 때 그녀는 대학의 직원인데도 맨 뒷자리에 앉아 강의를 들었습니다. 전에도 몇 번 내 강의를 청강했으나 그것은 단지 진행자로서 함께 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녀의 태도가 예전의 모습과 사뭇 달라보였습니다. 그녀는 꼼꼼히 메모를 해가며 강의를 들었고 무엇보다 받아들이는 태도가 예전과 분명히 달라보였습니다. 그 달라진 모습을 인상 깊게 느꼈으나 나는 그냥 그런가보다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어제 그녀는 내게 SNS 이웃을 신청했고 해서 그녀의 기록들을 짧게 보게 되었습니다. ‘아하, 맞다. 이 양반이 출산 휴가를 간다고 했었지. 그래서 두 학기 가까이 보이지 않았구나. 그 사이 엄마가 됐어.’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녀가 지금 걸어 온 전화의 용건을 들어보니 지난 번 강의 때 그녀의 상사와 밥을 먹으면서 내가 던진 어떤 이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새로운 강좌를 고민하는 책임자에게 인문학과 결합한 여행 강좌를 개설하는 것에 대한 의견을 준 적이 있습니다. 그냥 가벼운 의견이었는데, 책임자는 그 아이디어를 조금 더 발전시켜 보면 좋겠다고 그녀에게 구체화할 것을 과제로 준 모양입니다. 나는 그녀가 강좌의 구성을 상상해 볼 수 있도록 예를 들어 설명해주었습니다. 용건만 말하고 전화를 금방 끊는 것이 서로 미안했던지 우리는 처음으로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전화를 끊기 전, 나는 그녀에게 SNS를 본 소감과 내 강의를 듣던 느낌을 전했습니다. “아이가 몇 개월이죠? … 아주 단란하고 행복해 보였어요. … 그리고 강의를 듣는 모습이 예전과 무척 달라 보이던데 …”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이가 조금씩 더 들어가면서 산다는 것이 전보다 더 힘겹다고 느끼기 시작했나 봐요. 강의가 더 없이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어요. 삶을 이루는 한 측면, 즉 빛과 그림자에 대한 선생님 강의가 특히 절절했어요.”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덧붙여 주었습니다. “엄마로, 아내로, 직장인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들지 짐작할 수 있어요. 그런데 나중에 아마 그게 멋진 시간이 되었구나 하고 느낄 거예요. 처녀 때는 몰랐던 걸 지금 알게 되듯이 시간이 흐르며 몸으로 겪어내는 것들만이 가르쳐 주는 것이 있으니까요. 삶에는 그렇게 시간만이 알려주는 것들이 있어요. 내 나이가 되면 당신도 알게 될 거예요. 그 힘겨웠던 과정들이 삶에 흐르는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해준 과정들이었구나. 그래서 마주하는 모든 시간들을 맛있게 만나야지 하고 깨닫게 될 거예요.”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156 | 두려운 날 있으십니까? | 김용규 | 2014.10.23 | 2334 |
2155 |
나를 기억해줘 (도대체 무엇으로?) ![]() | 한 명석 | 2015.06.10 | 2336 |
2154 |
인공지능의 시대, 창의성이란?(5편) ![]() | 차칸양(양재우) | 2016.09.20 | 2338 |
2153 | [변화경영연구소] [월요편지 44] 가난한 아빠가 해준 말, 부자 아빠가 해준 말 [2] | 습관의 완성 | 2021.01.24 | 2342 |
2152 | 고1 때 동거를 시작한 친구 | 김용규 | 2014.12.04 | 2343 |
2151 | 재미있게 사는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 | 한 명석 | 2015.02.25 | 2344 |
2150 | 가족처방전 - 명절에 시댁에 가기 싫어요. | 제산 | 2018.02.12 | 2345 |
2149 | 2015년에도 다사다난 하세요~ | 차칸양(양재우) | 2014.12.30 | 2351 |
2148 | 살아남기 위하여 | 박미옥 | 2014.10.24 | 2352 |
2147 | 참된 공부란 무엇인가? | 김용규 | 2015.04.09 | 2355 |
2146 | 목요편지 - 건배사 | 운제 | 2020.04.23 | 2355 |
2145 |
세계인의 일상을 엿보다 - airbnb ![]() | 한 명석 | 2014.07.30 | 2356 |
2144 | 경제공부를 위한 4가지 중요 포인트 | 차칸양(양재우) | 2014.12.02 | 2356 |
2143 | 부부는 부창부수하며 산다 | 연지원 | 2015.10.12 | 2358 |
2142 |
[용기충전소] 서울한달살이의 최고 맛집 ![]() | 김글리 | 2020.12.18 | 2360 |
2141 | 사부님, 이제 저 졸업합니다! [14] | 박미옥 | 2013.12.20 | 2368 |
2140 | 노년 (老年) | 書元 | 2014.12.27 | 2368 |
2139 |
한달 감사노트 함께 쓰지 않을래요 ![]() | 로이스(旦京) | 2015.01.04 | 2370 |
2138 | 리듬 위에서 펼쳐가는 삶 | 김용규 | 2015.02.12 | 2371 |
2137 | 적석산, 쌓는 자의 꿈 [1] | 장재용 | 2020.12.15 | 23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