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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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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10일 11시 32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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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스타일은 아닌데 아들 따라 갔다가 심취한 영화가 있다. 오랫만에 보는 TV가 하도 맹탕이라 볼 수가 없어서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그냥 갔다. 초반은 블록버스터급 게임 같았다. 핵전쟁으로 인류가 망한 22세기, 독재자 임모탄 조가 호위부대인 워보이와 독점한 물을 가지고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여기에 저항하는 사령관 퓨리오사가 임모탄의 여인들 다섯 명과 함께 녹색 땅을 찾아 탈주를 시작한 때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서서히 영화에 빨려들어 가게 된 것은 텅 빈, 광활한 사막을 질주하는 자동차 씬이 멋있어서였는지 아니면 심장을 두드려대듯 빠른 비트의 음악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이 영화가 여러 면에서 "장난이 아님을" 느끼고 집중하기 시작했으니, 단 한 컷을 찍기 위해서 동원했을 것들이 너무 많았다. 음악의 집단최면효과를 잘 알고 있는듯 도망자를 추격하는 대열에 음향장치로 가득 채운 차량이 있어 그 앞에 빨간 내복을 입고 매달려 기타를 뜯어대질 않나, 장대 끝에 매달려 크게 호를 그리며 공격하질 않나, 세련된 감각이 한낱 추격씬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었다. (장대 공격씬을 보면서 '태양의 서커스'를 떠올리고 있는데 옆에서 아들이 진짜 '태양의 서커스'팀이 연기를 했다고 말해준다.)

 

영화의 수준을 알아본 내 느낌은 당연했으니 이 영화는 각 분야의 최고들이 모여 만든 대작이었다. 칠순의 감독 조지 밀러는 30년 전에 만든 매드맥스 세 편으로 거장의 반열에 올랐고, 초반의 질주장면은 2편에서 전설적인 장면을 보여준 스턴트맨 가이 노리스가 30년 만에 다시 나섰고, 오토바이를 타고 공격하는 라이더족은 호주 모터크로스 챔피언에 5차례나 오른 스티븐 갤을 비롯한 선수들이었다는 식으로 말이다. 여기에 음악은 전형적인 액션음악이 아니라 모던 록 오페라에 가깝게 과장되게 만들었다. 200개에 가까운 악기를 이용한 테마곡은 사막의 추격씬이 전부인 이 영화에 장엄함을 선사한다

 

누런 사막을 배경으로 쫓고 쫓기는 것이 전부인 영화, 그래도 충분히 재미있고 충격적인 영화, 과묵하지만 문제의식 있는 대본에 묵직한 연기, 음악과 소품 같은 고급장치가 어우러진 종합예술로 가히 추격씬의 오페라 같은 영화. 우리가 아직 물이 샘솟는, 녹색의 땅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알려주는 영화.


화염방사기에서 뿜어나오는 불꽃이 리얼하다 싶더니 모래폭풍 장면과 몇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CG를 사용하지 않았단다. 촬영장면을 찾아보니, 머리가 허옇게 세고 체격이 당당한 감독이 장면 하나하나를 놓고 배우들과 세심한 논의를 거치고 있다. 스탭 1700명이 4개월간 남아프리카의 나미비아 사막에서 찍었다든가, 영화가 편집의 예술임을 새삼 깨닫는다. 워낙 위험도가 높은 장면이 많고, 아날로그식의 진짜 연기를 펼치다보니 수없이 끊어졌을 장면을 이어붙여 시사회에서 보고난 뒤에야, 비로소 감독도 배우도 감격할 것 같았다. 과연 애초의 필름은 400시간에 달했다고 한다. 이것을 120분짜리 영화로 조각해 낸 편집자 역시 최고였을 테니, 나는 한 편의 영화가 아니라 집념과 근성의 정체를 들여다 본 것 같았다.


느슨하고 널널하게 살아 온 내 생애를 연료로 삼아 이 영화를 찍는다면 단 10분도 못 버틸 것 같다는 생각에 민망해지는데, "나를 기억해줘" 마지막 대사를 남기며 마음이 따뜻한 워보이 눅스가, 제가 운전하던 차량을 뒤집어 적군의 진로를 막는다. "Remember me "가 아닌 "Witness me" 이니 "기억해줘" 보다는 "나의 선택의 증인이 되어줘"로 봐야 할까. 누가 내 삶을 지켜본다는 것은, 목숨을 던지는 순간에 요청할 만큼 뜨거운 사안이었던가, 그렇다면 조지 밀러 감독의 생애는 이 영화 한 편으로 기억되리라. 매드맥스가 그의 삶을 증거하는 것이다.

 

 

치열한 데가 없는 만큼 욕심도 없어서 명예에도 별 관심이 없는 나는 도대체 무엇으로 반평생을 채워 왔는지, 계속 그렇게 살아도 될 것인지, 총체적인 질문을 던져 준 영화였다. 이다음에 누구에게든지 나를 기억해줘한 마디도 하기 어려울 것 같다. 도대체 무엇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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