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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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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26일 00시 33분 등록

 

믿었던 신념과 품었던 지향이 벽을 마주했을 때, 걷던 길이 뚝 끊겨 절벽이 발 앞에 놓인 것 같을 때 비로소 삶은 새로운 박동을 시작합니다. 그 선생님은 서른두 살까지 해왔던 공부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했습니다. 박사학위논문을 쓰기만 하면 되는데, 그 마지막 과정만을 앞두고 있던 때 당신 회의감으로 가득했다고 했습니다. 해오던 공부는 물론이고 지녀온 신념, 지향, 심지어 삶 전체에 대한 회의감…… 그것은 벽 혹은 절벽을 마주한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문득 삶은 남루하게 느껴졌고 연구자로서의 성취감도 보잘것없다 여겨진 그 순간 선생은 다 포기하고 만주벌판으로 나섰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들개처럼 사는 시간을 보냈다고 했습니다.

 

나의 스승도 비슷한 회상을 내게 들려준 바 있습니다. ‘마흔 어간에 직장인으로서의 내 삶이 코너에 몰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삶에 극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전환을 향해 발을 내딛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했다. 결국 밥에 대한 두려움 때문임을 알아챘다. 그래서 밥을 굶어보기로 결심했다. 굶주림의 끝을 만나보기로 했다.’ 나의 스승님은 그렇게 지리산 자락으로 스며들어 단식을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스승님은 훗날 내게 당시 당신의 경험과 깨달음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강을 이루고 싶다면 떨어져야 한다. 떨어지지 않고 강을 이룰 수 있는 폭포수가 있더냐!’

 

나 역시 그랬습니다. 마흔 살을 향해가던 어느 즈음 나는 내 삶에 대해 뼛속깊이 회의했습니다.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는 자각은 내게 몸으로 말을 걸어왔습니다. 여기저기가 아파왔습니다. 그러다가 숲을 만났고 나무와 풀의 소리를 듣는 귀가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숲으로 떠나기로 결심해놓고 나는 스승님을 만나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떨어지지 않고 강을 이룰 수 있는 폭포수가 있더냐!’ 앞의 선생님은 그것을 들개의 시간이라 했고, 내 스승은 그것을 추락하는 시간이라 했습니다. 이제 당시 그 말씀을 해주셨던 스승님의 나이가 된 나는 후배들에게 그것을 엎드려 통곡하는 시간이라 표현합니다.

 

집을 나와 들판을 선택하면 안락한 집은 이미 사라진 것입니다. 그 개는 막 바로 풍찬노숙의 나날을 보내야 합니다. 바위 밑으로 기어들어가 비바람을 피하는 방법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운이 없는 날은 가시덤불 속에서 그저 숭숭 눈보라를 비켜야 합니다. 차려진 밥그릇은 이제 없습니다. 스스로 사냥하는 법을 익혀가겠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날은 어느 집 개의 밥그릇을 훔치기 위해 악다구니를 써야만 합니다. 때로는 비럭질을 해야만 하고 이도저도 안 통하는 날은 그냥 굶어야만 합니다. 개울의 얕은 물을 휘돌던 안온함은 없는 시간입니다. 폭포 아래로 떨어지며 놓인 돌과 부딪혀 박살이 나고 산산이 흩어지며 피멍을 추슬러야 하는 시간입니다. 엎드려 통곡하고 포복하며 울부짖는 날이 언제 끝날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들개로 사는 시간, 추락하고 또 엎드려 통곡하는 시간을 누가 만나고 싶겠습니까? 하지만 여기의 자신에게 분노하고 절망한 사람, 마침내 진짜 자기의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그 눈물겨운 시간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머리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경지의 세계와 마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떨어져 자신을 박살내 봐야 두려움의 본질을 간파할 수 있고, 들개로 사는 시간을 보내봐야 싸움의 기술을 터득할 수 있습니다. 엎드려 통곡하는 날들을 보내봐야 더는 거짓에 속지 않을 수 있는 새로운 자신을 일으켜 세울 수 있습니다. 마침내 무쇠팔 무쇠다리처럼 강인해지고 또한 큰 강물처럼 담대하면서 동시에 부드러운 움직임을 구사할 수 있는 자신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하루하루 스스로 사냥하는 기술을 터득해가게 됩니다. 하여 몇 날의 굶주림과 비바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인하고 담대하며 부드러운 사람으로 거듭날 때, 그 사람은 비로소 새로 태어나게 됩니다. 새로 태어나기 위한 시간이 바로 들개로 사는 시간입니다. 추락하는 시간이고 엎드려 통곡하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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