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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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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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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1일 09시 22분 등록


<어쩌다 어른>, 이영희가 쓴 책을 처음 보는 순간 헉! 독자의 의표를 찌르는 타이틀에 시샘이 몰려왔다. 나도 이렇게 몇 글자로 전부를 말하는 타이틀을 가진 책을 쓰고 싶다. 자신의 나이가 실감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내 경우에는 실제 나이에서 10년쯤 빼면 위화감이 덜해진다. ‘나이라고 하는 객관적 수치이든 외모라고 하는 희망사항이든 그 정도인 줄 알고 살다가 번번이 상처를 입는다. 내가 처해 있다고 생각하는 연배가 새파랗게 젊을 때, 그리고 사진을 볼 때 잠깐씩 우울하고 헷갈린다. 그래도 아직은 괜찮지만 10년 후, 20년 후를 생각하면 두려움이 몰려온다.


 

이런 기분이 최고조에 달하는 것이 30대 말이 아닐까 한다. 그것도 여성, 그리고 싱글. 가정을 이루는 것이 성인의 기본요건으로 치부되는 사회에서, 청춘이라는 축제도 충분히 즐기지 못했는데 떠밀려서 어른이 되기를 강요받는 세대, 사회적인 성취에 대한 스트레스도 큰데 옴짝달싹도 하지 못할 꼰대의 연배인 40대가 코앞이라면, 그녀들이 느끼는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고 고달픔이 얼마나 클지 감히 전부는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짐작이 된다.


 

그래서인가 요즘 30대 싱글여성을 위한 책이 눈에 많이 띄는데, 이 책은 그 중에 최고였다. 일단 그녀는 해 본 일이 많다! 늦은 밤 택시가 안 잡힌다고 투덜대면, 거기 꼼짝 하지 말라며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려오는 누군가 있었고, 성형외과에 취재 갔다가(그녀는 기자다) 작고 둥근 코에 대한 견적을 받은 날에는, 오뚝한 코는 그녀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결사반대해 준 그가 있었다. 헤어진 남자친구의 유형을 투명인간 취급하기, 친목회원처럼 심상하게 굴기, 결혼소식 알려오는 스타일로 분류하는 것을 보면 연애도 꽤 해 봤다는 얘기다.


 

해 봤는지 안 해 봤는지 이 부분은 상당히 중요하다. 해 본 일에는 환상이 없기 때문에 회한이 없고 마음을 접기가 쉽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팬질이 있다! 애초에 그녀가 기자가 된 것도 80%는 팬심이었다. 중딩 때 연모하던 연예인이 유학을 떠난대서 그가 좋아하는 소주 선물 싸들고 김포공항에 갔더니 자기는 근접도 못하는 오빠옆에 스스럼없이 서서 사진을 찍는 무리가 있었는데 바로 기자였던 것. 그 자리에서 그녀는 기자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일본의 아이돌 그룹 스맙에 대한 팬심은 내게는 낯설지만 더할 나위 없이 따스한 신천지를 보여준다. 그녀는 말한다. 20년쯤 되면 팬심은 일종의 동지애라고. 아이돌과 팬이 같이 늙어가며 보여주는 훈훈함은 부러울 지경이었다. 십 대 때 백턴으로 무대를 누볐던 구사나기가 백턴을 보여주려 하자, 팬들이 다쳐. 하지 마! 하지 마!” 이구동성으로 말리는 장면에서 가슴이 말랑말랑해진다. 아아! 이러니 사랑하는 것이 능력이랄 밖에! 스맙을 검색해보니 내 눈에는 그저 그런데 20년을 한결같이 사랑하는 팬심이 있었기에 저토록 따스한 감정에 젖어들 수 있는 것 아닌가.

그 외에도 이 책에는 저자가 빠져들었던 수많은 매혹의 대상이 소개된다. 주로 일본만화와 드라마인데, 그녀는 몰입할 수 있는 힘이 자신이 가진 재능 중 최고로 값지다고 말한다.

 

 

좋아하는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시간, 나만 아는 기쁨을 점점 늘려가는 삶, 그것만으로도 썩 괜찮아 보인다. 그것들이 분명 어쩌다 어른이 된 나와, 그리고 당신에게, 돌연한 슬픔과 맞서는 두둑한 맷집이 되어주리라 믿으며, 그렇게 삶은 계속된다.

 

 

나도 여기에 깊이 동의한다. 내가 아닌 외부의 것에 올인하다 보면 시간도 감정도 물 흐르듯 흘러간다. 이른바 flow. 사람이든 무엇이든 대상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거기에 얹힌 마음 때문에 의미가 생긴다. 그러니 사랑하는 힘이 중요한 거고, 그 사랑이 반드시 낭만적인 사랑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어쩌다 어른이 된 사람이 어찌 30대 뿐이랴. 누구나 어! ! 하는 사이에 떠밀려간다. 그러니 어쩌다 어른이 된 내가 어쩌다 어른이 된 상대를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가능하리. 이래저래 좋은 타이틀을 가진 진솔한 책 한 권이 내 마음을 한껏 넓혀준다. 이것 또한 빠져들 수 있는 힘일 것이니, 앞으로 더 많은 것에 더 깊이 빠져볼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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