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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13일 17시 31분 등록

<전설의 여기자 오리아나 팔라치> 산토 L. 아리코 지음. 김승욱 옮김. 아테네.

 


1. 저자에 대하여

 

산토 L 아리코

 

미시시피 대학에서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 <신엘로이즈에 나타난 루소의 설득기술> <이탈리아 현대 여성작가들 : 현대의 르네상스>

    

 

2. 내가 저자라면

 

1) 뼈대와 목차

 

서문

감사의 말

프롤로그 _진실을 찾아서

1 피렌체

2 키플링, 런던, 헤밍웨이

3 조명, 카메라, 액션

4 중앙 무대에서

5 달을 향해서

6 동남아시아를 무대로

7 발코니의 슈퍼스타

8 일생일대의 연기

9 사느냐 죽느냐

10 남자 혹은 여자

11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그리고 팔라치

에필로그 _낯선 괴물과 마주보기

  

  

2) 장점 및 보완점

 

<전설의 여기자 오리아나 팔라치>로 번역된 책의 원제는 <Oriana Fallachi : The Woman and The Myth>. 저자는 팔라치의 열렬한 단골 독자였다. 그녀의 기사는 물론, , 소설이나 인터뷰를 묶은 책이 나오면 구해서 읽고 그것에 대한 글을 썼다. 1980년 친구에게서 <무 그리고 아멘> 소설을 선물받은 후 친밀하고 감정적이며 대단히 긴장된 관계가 시작되었다. 그녀의 책을 개인적으로 해설하는데 집착하던 저자는 책과 신문기사들이 밀접하게 관계가 되어 있음을 알아챈다. 오리아나의 삶을 연구해 보고 싶다는 편지를 쓰게 된다. 팔라치가 왜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었는지 이유를 알고 싶어서 전기 집필을 시작했다. 그가 발견한 건 팔라치가 지금까지 해온 활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감정적인 여정이라는 거였다. 스스로 만들어낸 이미지를 대중에게 드러내 자신을 신화적인 인물로 만들려는 의식적으로 노력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상상력을 발휘하여 소설을 쓰면서 저널리즘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했다. 상상력을 주로 발휘하는 소설가와 사실에 엄정해야 하는 기자, 저널리즘 사이에서 문학적 저널리즘을 형상화했다. 그녀는 인터뷰 기사에서 자신을 전면으로 내세웠다. 전기를 쓰는 과정에서 변덕스러운 성질과 몇 차례 조우한다. 이 책이 발간되던 2005년 당시 오리아나 팔라치는 암에 걸리긴 했지만 생존상태였다.

 

책은 피렌체에서 살던 집, 부모님, 아버지의 사고로 의대를 그만두고 얻은 첫 직장부터 어떻게 인터뷰 전문 기자가 되었는지, 그리고 팔라치가 이탈리아 잡지의 특파원 자격으로 뉴욕에 머물면서, 미국의 헐리우드를 취재하고, 우주 비행사를 면담했으며, 종군기자로서 베트남전과 멕시코의 학살 현장을 어떻게 보도했는지, 세계 유수의 지도자들과 공격적인 인터뷰를 하며 세계적으로 독자를 확보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전쟁터의 페넬로페>, <무 그리고 아멘>,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 <한남자>, <인샬라> 그녀가 작품들을 잉태하고 낳는 과정을 추적한다. 모든 작품을 애정을 갖고 경탄하며 모두 읽은 이의 자취가 여기저기 드러난다. 팔라치는 베트남전을 지켜본 후 <무 그리고 아멘>을 썼다. <한남자>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애인 그리스의 저항 시인 파나고울리스의 추억이 담겼다. <인샬라>는 전쟁소설이었다.

 

이 책을 읽은 건 순전히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 한 권 때문이다. 그것만 읽고 싶었다. 이 책에 그 글이 들어 있을 거라고 기대하며 주문했는데 아니었다. 내용 요약은 충실하다. 우리집 근처 도서관에 그 책은 비치되어 있지만 대출은 안되는 걸로 분류된 도서다. 아직 읽지 못했다. 그녀가 여러 번의 임신을 했지만 매번 유산으로 아이를 잃었다는 걸 이 책에서 읽었다. 책은 낙태의 찬반론이 팽팽하던 70년대를 환경으로 태어났다. 그녀는 소설 말고도 인터뷰 집을 여러권 냈다. <이기주의자들>, 헐리웃에 대한 기사모음 <헐리우드의 일곱 가지 죄악>, 30일간 세계일주를 하면서 여성의 지위와 생활에 대해 쓴 <쓸모없는 성>, 우주비행사들을 면담한 기사들은 <만약 태양이 죽어버린다면> 제목으로 단행본 출간되었다. 첫 번째 인터뷰책은 <촌놈의 스케치>이고, 국가원수나 중요 정치인 인터뷰는 <역사와의 인터뷰>로 묶여졌다. 그녀의 기사는 모아서 책으로 낼 가치가 있었다. 팔라치는 역사 현장이나 헐리우드, 달 탐사의 관심사에 용감히 뛰어들고, 인터뷰를 전부 녹음한 뒤 녹취를 푸는 작업을 한 후 영화감독이 영화를 만들 듯이 기사를 썼다. 인터뷰 주인공보다 자신을 더 드러냈다.

 

오리아나 파라치가 종군기자였다는 말이 책의 표지에 있었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가 흉흉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나는 비장한 마음으로 5차 이식을 한 채 두문불출하며 이번에는 꼭, 제발요매달리고 있었다. 그녀의 여행기를 읽으며, 떠나지 않으면서 여행과 모험을 대리충족 좀 하고 싶은 맘이었다. 시험관이 실패로 돌아간 뒤에는 원했으나 아이를 낳지 못한 여자가, 그 경험을 책으로 만들어 영속적인 생명을 준 그녀의 방식을 배우려 했다. 이 책은 후딱 마무리짓고 애초 목표했던 소설을 읽으려고 맘 먹는다. 그녀의 인터뷰가 어땠길래 저자가 이리도 매혹당했는지, 그녀의 매력 또는 위험을 직접 접하기 위해 인터뷰집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3) 감동적인 장절

 

1) 고향 피렌체, 어떻게 교육을 받지 못한 부모가 중군기자이면서 소설가 작가인 딸에게 책을 사랑하게 했던가? 부모 자체가 공식적인 교육과는 상관없이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었다. 이런 환경이라면 자녀 역시도 책에 대한 흥미를 자연스럽게 가지는게 당연하리라. 그렇다고 내가 작가가 아닌 이유를 내 부모님의 책사랑이 부족해서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우리집에도 아버지의 책시렁이 있었다. 책시렁은 기도서를 놓는 선반처럼 높이 괴어져 잇었고 금장의양장본 책이 꽂혀 있었다. 소크라테스, 장자, 노자, 논어, 성경, 프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세잌스피어전집, 등이 꽂혀 있었다. 아버지가 그 책들을 읽는 건 본적 없다. 내가 본 건 칼의 노래와 아라비안나이트를 읽는 모습이었다. 엄마는 토스카 팔라치처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었고, 딸에게 여자도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집에 책이 가득하고, 내가 그 책들을 읽었다는 밑줄이 쳐져 있는 서재를 꿈꿨다. 바람대로 현재 작은 우리집에는 조그만 서재방이 있다. 팔라치의 어린시절을 내가 어릴 때 원하는 대로 살기에 적용하는 한편 나는 만약 내가 부모가 된다면 어떤 환경을 만들어줄까?’ 생각이 들어, 그 욕망과 싸워야 했다.

 

28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대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도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그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프라 안젤리코, 미켈란젤로, 치마부에, 보티첼리 등 유명한 예술가들의 걸작을 매일 접할 수 있었다.

 

28 목련나무가 있는 정원

 

29 토스카 팔라치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친척들의 손에 자라면서 정식 교육을 조금밖에 받지 못했다. 에도아르도는 생계를 위해 장인으로 일하면서 이탈리아의 파시즘 반대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9 두 사람은 학교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는데도 탐욕스럽게 책을 읽어대며 문학의 세계에 중독되었다. 오리아나는 책을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교실에서 얻을 수 있는 얄팍한 지식보다 개인적인 공부가 훨씬 더 실속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오리아나의 부모님은 마치 옆집에 사는 이웃사람 얘기를 하듯이 알레산드로 만조니와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디킨스를 얘기했다.

어쩌지? 나는 TV나 보는데

 

에도아르도 팔라치와 토스카 팔라치는 빠듯한 사람을 하면서도 책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마치 냉장고를 살 때처럼 할부로 걸작들을 사들이곤 했다. 이렇게 사들이 보물같은 책들은 거실에 있는 유리문이 달린 서가에 꽂혔다. 어렸을 때 오리아나는 소파에 누워서 빨간 표지의 책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잠이 들곤 했다. 그때마다 그 책들이 자신의 상상력에 도발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느껴졌다. 매일 이 책을 바라보는 것이 그녀의 일상에서 떼래야 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그 책들의 활기 속에 온 몸이 푹 잠겨있는 것 같았다. 미소를 짓거나 다른 아이들과 노는 적이 드문 진지한 아이였던 팔라치는 글자를 깨우치자 마자 게걸스럽게 책을 읽어대기 시작했다. 이것은 평생에 걸친 버릇이 되었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작가들의 작품 앞에서 신성한 경외감을 느꼈다.

부모의 교육 정도가 중요한 건 아니다. 아이들은, 나도 그랬지만 부모님이 진심으로 교육에 대한 존경심이 있는 지를 직감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까 저런 장서가 집에 있었다는 것보다 진심으로 책을 좋아하고 읽고, 작가를 존경했는지가 중요한 거다.

어머니는 <죄와 벌><전쟁과 평화>등 금지된 책들이 꽂힌 칸에 꽂았다. “이건 아빠 책이야. 어른들이 보는 책이라고. 아이들은 안돼

 

33“넌 지금 아파서 열이 나니까 책 읽을 시간 있지. 읽어빨간책 한 권 빼주다. 잭 런던의 <야생의 외침>. 이 책을 계기로 그녀는 잭 런던의 세계를 알게 되었다. 어린시절부터 사춘기 초기까지 팔라치는 그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어댔다.

 

34 런던의 책을 읽었던 열 두 살 때의 그날, 그녀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딜레마 중 하나라고 생각되는 문제(자유의 문제)에 대한 답을 자신도 모르게 찾아 헤맸고, 거기서 찾아낸 해답으로 어른의 사고를 갖게 되었다.

열 두 살 즈음은 한 사람의 인생의 주요 주제를 결정하는 특별한 시기인 듯 하다. 캠벨은 인디언 가면에 매료당했고, 예수는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는데 왜 나를 찾아다닙니까?” 물었고, 고타마 싣다르타는 염부수 아래에서 매질을 당하며 땅을 가는 소와, 벌레를 잡아먹는 새를 보며 첫 명상을 시작했다.

 

35 미국출신인 이 작가의 상상력과 사냥에서부터 정치학까지, 과학소설에서부터 사회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주제의 글을 쓸 수 있는 정신적 풍요로움에 경탄했다.

 

팔라치는 자신이 여행을 갈망하게 된 데는 어렸을 때 잭 런던의 작품에 매혹되었던 것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고 솔직히 인정한다.

 

37 토스카 팔라치는 딸이 읽을 책들을 신중하게 골라주었으며, 루드야드 키플링의 <>을 읽으라고 명령함으로써 딸에게 또 다시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나는 그 덕분에 이국적이고 신비한 나라들에 대한 사람이 내 안에서 눈을 뜬 것 같다.”

 

파라치는 키플링의 소설 때문에 자신이 인도, 중국, 아프가니스탄에 반해 버렸음을 인정했다.

 

33 그는 팔라치에게 자신의 물건 두 가지를 물려주었다. 19세기의 위대한 화가이자 조작가인 구스타브 도레의 <그림 성경>과 낡은 사냥용 총.

 

38 열여섯살에 러시아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집에 그 책들이 있었다. 부모님이 할부로 산 책들이었다.”

 

42 부모님 덕분에 교육과 자기절제가 신앙처럼 그녀의 머릿속에 자리잡았기 때문에 그녀는 모든 일에 전적으로 자신을 바칠 수 밖에 없었다. 엄격하게 일상을 고수하고,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매진하며, 작업 스케쥴을 엄격하게 지키는 생활. “나는 희생에서 나오는 힘과 자기절제가 없으면 인생을 살아나갈 수 없다고 절대적으로 확신하고 있다.”

나 역시 몸으로 근면하게 성실하게 일하며, 거짓 없이 살아온 부모님을 모시고 산 건 행운이다.

 

레지스탕스 활동. 아버지와 함께 2명을 탈출시킴

 

96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보도하라는 지침이 그녀의 흥분을 가라앉혔다. “여자는 특별한 동물이 아니다. 왜 여자들이 별도의 이슈로 취급되어야 하는지, 특히 신문에서 왜 그래야 하는 지 도무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여자들을 마치 단성생식으로 태어난 존재처럼 취급하는 것은 비논리적이라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온 세상을 여행해보라는 어머니의 충고가 망설임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되었다.

 

토스카 팔라치는 딸에게 반드시 결혼을 해서 남편에게 복종하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강조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녀는 바느질을 하고, 옷을 빨아 다리고, 살림을 하기보다는 여행을 할 수 있는 직업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여섯 살 그녀는 머리가 토스카의 어깨에 닿을 만한 높이에 있었기 때문에 뒤로 몸을 젖혀야 어머니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어머니는 분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에 이어진 어머니의 말이 그녀의 가슴에 영원히 각인되었다.

넌 절대 나같이 되면 안돼! 누구 마누라나 엄마가 되지 마. 그건 무식한 노예니까. 넌 반드시 일을 해야 돼! ! 여행도 하고1 세상을 돌아다녀야 한다고! 세상 속에서 살아야 해!”

 

사춘기 때 팔라치는 어머니와 이야기를 하면서 앞으로 살림할 생각을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토스카는 곧장 단호하게 대답했다. “안돼. 그건 노예생활이야

 

116 토스카 팔라치가 딸에게 선물로 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미국에 대한 파라치의 애정을 더욱 키워주었다.

    

 

2)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와 그녀의 다른 소설들의 창작과정을 그녀는 잉태로 비유했다. 아이 대신 책을 낳아야겠다는 건 한 대안일 수 있을까? 그것 또한 쉽지 않다. 그녀는 휴직해서 뉴욕이나 피렌체에 거의 칩거하다 시피 책에 10시간~12시간 작업을 했다. 헬링거는 아이가 없는 이들에게 직업경력을 쌓으려는 방식이 아니라 돌려주기의 목적이어야 직업을 통한 돌려주기, 균형맞추기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아이를 영영 가질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상실감은 데메테르여신이 주원형, 지배원형인 나로서는 커다란 좌절거리다. 그걸 보상하려는 시도가 진정한 균형잡기일 수 있으려면 팔라치처럼 삶의 경험, 감정적 여정이 잉태한 걸 써내되 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균형잡는 방편을 선택함의 방식이어야 할 듯 하다. 그러니까 어떤 이가 선조가 한 또는 그 자신이 했던 어떤 일의 균형을 잡기 위해 많은 기부를 하고 선행을 했지만, 그걸로 칭찬을 받으려 하거나, 남들이 칭찬을 한다면 단견이 될 수 있다. 나 역시 상실감과 열등감이 가득한 채 아이 대신 책을 낳으려는 시도는 결국 더 큰 불균형을 가져오리라. 그렇다면 지향은 뭔가? 필요한 상황에서 정말로 쓸모 있고 소용 있는 것을 만들어내고 수용 가능한 것으로 가공하되 목적, 태도가 달라야 하리라. 내가 끌려오는 단서가 된 책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 는 낙태 찬반 토론이 활발했던 1970년의 시대흐름을 탔다. 그건 조류를 읽는 그녀의 감각에서 나왔으리라. 오랜 기사쓰기와 바쁜 와중에도 소설을 쓰면서 소설에 대한 애정을 증명하던 팔라치기에 가능했다. 나는 내가 쓰고 싶어하는 것이 나만의 관심꺼리인지, 이 시대에서 이야기될 필요가 있는 것인지가 궁금해졌다.

 

낙태반대운동들도, 급진적인 여성주의자들도 모두 <태어나지 못한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가 낙태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뒷받침해준다고 주장한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 때문에 이 책을 주문했다. 그녀의 전기를 다 읽을 생각은 없었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에서 오리아나 팔라치의 저 소설을 소개하는 글을 읽었고 주문한지 몇 년 되었다. 마침내 읽게 된 건 아마도 어쩌면 나도 아이 출산이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들어서다. 난임휴직 1년 반, 시험관 5차의 실패를 받아들이면서다. <아직 잉태되지 않은 미래의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계속 쓸 건지에 대한 판단이 더 필요했다. 그녀는 아이를 낳지는 않았지만 아이를 잃은 과정을 소설로 써서 책을 낳았다. 그녀의 방식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나? 알 수 없다. 나는 커다란 상실감을 느끼고 있다. 거의 우울증에 걸릴 만큼. 아니 이미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상실감을 다루자면 그것에 관한 글을 읽는 게 도움이 될지도.

 

52 고전에 대한 지식, 독서와 모험에 대한 갈증, 성격적인 특징과 자기절제, 작가가 되고 싶다는 소망 등이 합쳐진 그녀의 기질 상 그녀가 가질 수 있는 직업은 단 하나, 기자 밖에 없었다.

 

292 팔라치는 태어나지 못한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6~7년 전쯤) 그녀가 처음 이 책의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은 상상력이라는 난자와 결합하는 정자에 대해 대단히 개인적인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아이를 잃은 슬픔, 상처, 절망의 직접적인 산물이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아이를 여러 명 잃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이런 유산 경험 중 하나가 그녀에게 이 책에 대한 영감을 주었던 것이다. 그녀는 즉시 자신의 비극적인 경험을 이야기로 구성하기 시작했지만 서너 쪽을 쓰고는 멈춰버렀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아서라고 대답했다. 팔라치의 주장에 따르면, 이 책에 대한 생각이 상상력이라는 자궁 속에 얼어붙은 배아처럼 오랫동안 계속 남아있었다고 한다.

 

293 1970년대 여성운동의 가장 중요한 테마는 자신의 몸에 대한 여성의 권리가 여성해방의 가장 중요한 상징이라는 것이었다.

 

294 1달 휴직으로는 불가능하므로 그녀는 6개월을 쉬게 해달라고 <에우로페오>에 요청했다. 휴직을 허락해주지 않자 그녀는 무급 안식년 휴가를 쓰기로 했다.

 

295 “그것은 운명이 안겨준 선택이었다. 난 낙태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도 항상 아이를 잃었다. 어쩌면 내가 아이를 갖기로 결심했을 때 내 나이가 너무 많았던 건지도 모른다. 혹은 내가 나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고. 사실 나는 나 자신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 그녀는 임신과 출산을 도와주는 약을 찾아내려고 항상 골머리를 앓았다. “아이를 갖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약은 편안하고 차분한 생활이었지만 나는 그런 생활을 해본 적이 없었다.”

 

295 아이가 없다는 사실은 지금도 그녀를 괴롭히고 있다. 그녀는 아이가 없기 때문에 자신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생각에 시달린다.

 

아이가 없이 죽은 사람은 두 번 죽는다. 꽃을 피우지 못하는 식물이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처럼 자기 자신의 씨를 뿌리지 못하고 죽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그것은 영원한 죽음이다.”

이 비극에 대한 이야기를 씀으로써 그녀는 자신이 죽은 후에도 세상에 남아있게 될 책을 손에 쥘 수 있게 되었다.

 

299 모호한 태도 때문에 이 책은 즉시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었다. 유동적인 내용 덕분에 독자들은 주인공이 낙태에 찬성하는 지 반대하는지, 아이가 태어날 수 있게 허용해주어야 한다는 쪽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나름대로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313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 팔라치는 이 책이 앞으로 어떤 구조를 취하게 될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당시 그녀는 즉 작품의 개요를 간단히 요약한 글을 쓰지 않았다. 개요를 쓰라는 그의 충고는 그가 평생 동안 책을 한 권도 만들어내지 못했음을 지적하면서 깡그리 무시했다.

팔라치에 따르면, 창작 과정은 아이를 낳는 것과 같다. 오랜 기간의 잉태 끝에 새로운 생명이 나타나는 것이다. 태아는 준비가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어머니의 자궁을 떠난다. 작품의 아이디어를 품고 배양하는 기간이 때로는 5~6년이나 될 수도 있다.

 

313 작품이 걸작인지 아닌지는 마지막 붓질이 끝난 후에야 비로소 판명된다. 전체적인 창작과정은 느리게 진행된다. “마치 빵을 부풀게 하는 효모와도 같다.”

 

313 그녀는 <태어나지 못한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가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내서 작가를 활동적인 참여자로 맞아들였다고 단언했다.

 

320 그녀가 낳은 적이 없는 아이의 자리를 이 책이 차지할 것이며, 그녀가 아이를 키우듯이 이 책을 엄격하게 다듬었다는 것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즐겁고 대중적인 문화의 형태로 다듬어져 삶과 죽음에 대한 오리아나 팔라치의 고뇌와 회의를 전달해주고 있다.

 

창작과 잉태를 연결하는 글들이 뒤의 소설의 창작과정에서도 나와서 발췌해 본다.

365 아이를 잃은 후 소설 <태어나지 못한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던 것처럼, 그리고 파나고울리스의 죽음이 소설 <한 남자>를 낳은 것처럼,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생겨난 강렬한 감정이 <인샬라>를 낳았다. 그녀는 이렇게 작품이 만들어지던 순간들을 역시 잉태로 비유한다.

우리 머릿속에 들어 있는 알이 왜 아이디어라는 정자에 의해 수정되는 지 우리는 결코 알지 못한다. 수십 개, 수천 개의 아이디어 중에서 어느 하나의 아이디어가 특별히 배란을 하는 이유도 우리는 알지 못한다.”

369 내가 앞으로 쓸 책. 난 지금 책을 하나 임신하고 있거든.

 

362 1984년 그녀는 뉴욕에 있는 자신의 집 1층 방 하나를 개조해 책상과 서가, 복사기, 타자기 등을 들여놓은 다음 마치 수도승처럼 그 안에 칩거했다. 그녀가 인생의 모든 것을 책이 담당해야 할 부분으로 생각하며 이 힘든 작업을 끝마치는 데는 무려 6년이 걸렸다. 그녀는 자신이 작품 전체를 세 번이나 다시 썼으며, 토요일, 일요일, 트리스마스, 부활절에도 아침 10시부터 12시간 동안 고집스럽게 일을 계속했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기분전환을 위해 그녀가 한 일이라고는 티파니 램프의 불빛 속에서 일을 하다가 서재 창문을 통해 가끔 거리의 삶들을 흘깃 보거나 길모퉁이의 식품점에서 담배와 식료품을 산 것 뿐이었다. 자신의 책에서 그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이 스스로에게 가한 신체적, 정신적 고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소설 인샬라를 쓸 때의 모습

 

325 내가 탄탈루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 신들의 벌을 받아 물을 마시려 하면 물이 빠지고 열매를 따려고 하면 가지가 물러났다 옮긴이) 가 된 것 같았다. 난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었다. 책이 우선이었다.

멈출 수 없는 노동의 상징

 

328 그녀는 3년 동안 <한 남자>를 집필하면서 글의 형태를 여러번 바꿨다. 그녀는 프롤로그를 나중에 썼는데, 처음 완성된 초고의 분량은 최종원고보다 거의 300쪽이나 많았다. 그녀는 이 초고가 장식이 지나치게 많이 달린 옷 같았다면서 나중에 개정을 거쳐 완성된 성숙한 소설에 비하면 젖먹이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나중에 삭제된 초고의 내용 중에는 그녀의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었는데도 그녀는 편집자의 의견을 무시하고 230쪽을 삭제해버렸다.

 

333 그녀가 살아있는 독자들 대신 죽은 남자와의 대화를 선택한 것은 그들을 결합시켜 주었던 고독이 어떤 것인지를 강조해준다. 프롤로그에서 그녀는 (그에게 그의 장례식을 설명해주고, 죽은 연인을 자신의 유일한 대화상대라고 지칭함으로써 자신의 서술방법을 정당화한다. ..이렇게누군가에게 직접 말을 거는 기법은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 에서도 이미 주인공이 뱃속의 아기에게 말을 거는 형태로 등장했었다.

편지의 형태에 대해 고민한다. 브런치에서 글을 써나가지 못하는 이유는 나는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로 쓰고 있었는데, 정보와 마음 돌보기를 나눠서 일기나 편지체가 아닌 것으로 쓰는 게 낫지 않겠나 했었다. 그런데 대화체가 나에게 익숙하긴 하지만 다른 성인여자를 향하는 글이 왠지 불편한 거다.

 

351 알렉코스가 죽은 후 팔라치는 내면의 고통을 다스리면서 소설집필이라는 마법을 통해 파나고울리스가 망각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막았다. 1976년에 서른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역사적 인물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곧 사라져버렸지만, 팔라치가 쓴 기사같은 소설 속의 주인공으로 살아남았다.

이렇게 나도 기억하고 싶은 죽음이 있다. 그걸 써내면 자유로와질 것 같다. 또는 그들의 죽음에 대해 할 일을 한 것 같다. 내가 살아있으면서도.

 

352 파낙울리스가 죽은 후 그녀가 처음 타자기 앞에 앉은 것은 슬픔과 분노 때문이었다. 그리고 토스카나에서 스스로 죄수가 되어 글을 쓰던 3년 동안 그녀를 지탱해준 것은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가 잊혀지게 해서는 안된다는 결의였다.

그는 패배한 것이 아니다. 내가 그 사람 대신 말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책은 팔라치 자신의 자서전이기도 했다.

 

369 내가 앞으로 쓸 책. 나는 지금 책을 하나 임신하고 있거든.

그녀는 아직 태아 상태인 책에 대해 구체적인 얘기를 전혀 하지 않았지만 글쓰기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그건 아이를 낳는 것과 같아요. 사람이 죽더라도 덜 죽는 것과 같아요. 아이를 남기는 사람은 남들보다 덜 죽어요. 그런데 난 아이를 낳은 적이 없어요.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죠. 날 덜 죽게 해주는 건 내 책들뿐이에요. 책을 남기는 것이 아이를 남기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373 <인샬라>를 쓸 때 팔라치는 전략이나 군사용어를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었다.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살육과 전투를 이미 자세히 알고 있었으니까. 단지 아이디어를 떠올려서 적절한 수단을 통해 표현하기만 하면 되었다.

 

383 쓰고, 고쳐 쓰고, 또 고쳐 쓰고, 또 고쳐 쓰고, 마침내 적어도 열 네 번 정도 고쳐 쓰는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글을 쓰고, 다시 고쳐 쓴 다음에야 영화를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공을 들이는구나. 한 두 번 고쳐 썼다고 포기하는 건 말도 안되는 거구나.

 

392 소설은 사람이 현실과 공상, 논리와 시, 생각과 감정을 동시에 쏟아 넣을 수 있는 그릇이오.

 

409 작가가 죽더라도 그가 만들어낸 것은 계속 살아 있다. 죽음에 집착하는 사람은 책과 글쓰기에 매혹된 사람이다.

 

410 팔라치가 보기에 어떤 작가들은 글은 잘 쓰지만 인생은 형편없다. 그들은 자신이 쓴 글을 배신하는 행동을 한다. 그녀는 이런 작가의 대표적인 예로 장 자크 루소를 들었다. 그는 훌륭하고 교육적인 글을 썼지만 자기 자식들을 버렸다.

내가 사부님을 존경했던 이유는 그가 지행합일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루소의 책은 읽고 싶지 않다.

 

411 여러 가지 면모를 지닌 팔라치는 어쩌면 서로 모순되는 두 개의 기질을 바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의 주장에 결코 굴복하지 않는 모험가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사색적이고 지적이며, 예술에 관심이 많고, 책 한 권을 끝내기 위해 몇 년이고 책상에 붙어 앉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이다. 서로 상반되는 이 두가지 기질은 항상 전쟁을 벌이는 적들과 같다.

 

416 그녀가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이 그녀에게 기운을 불어넣어주며, 어떤 의미에서는 그녀의 목숨을 지켜주고 있다. 비록 종이로 된 것이기는 해도, 이 책은 그녀의 아이가 되어서 그녀가 사라진 후에도 계속 생명을 이어가며 그 낯선 존재를 조롱할 것이다. 암은 이 아이에 대해 아무 힘도 휘두를 수 없을 것이다. 이 아이의 존재 속으로 침투할 수 없을 거니까. 그래서 팔라치는 마치 마라톤을 하는 것처럼 미친 듯이 시간과 경주를 벌이고 있다. 이제 곧 나올 그녀의 책은 2차 세계대전 전후 이탈리아의 파시즘을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서 그녀는 자신의 창조력을 또 다시 완전히 자신에게 돌린다.

    

 

3) 문학적 저널리즘이라고 부르는 그녀의 서술 방식에서 배우고 싶다.

-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사실에 충실한 기사처럼 정확한 글쓰기 훈련이 필요하다.

- 상상력을 발휘하되, 사실에 근거한 글쓰기

- 유혹하는 글쓰기 (이건 스티븐 킹이 쓴 소설작법을 다룬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 자신의 이야기를 기사에 끼워넣는 그녀의 방식은 대중에게는 몰입도를 높이고, 그녀와 함께 평소에 접할 수 없는 헐리우드, 정치지도자와의 인터뷰자리, 우주비행사와의 만남 장면에 자신이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보통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경험을 하는 그녀를 보면서 대리충족을 했을거다. 객관적 중립이란 없다는 말, 주관성이 오히려 인간다울 수도 있다. 그게 진실에 진실하다는 말일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이미 너무나 주관적인 북리뷰를 쓰고 있다.

- 무엇보다 그녀의 매력적인 글은 그녀의 삶에서 나왔다. 아버지와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고, 베트남전쟁의 참호에서 병사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멕시코 유혈사태의 발코니의 현장에 있었다. 전쟁소설 <인샬라>를 쓰기 위해 그녀는 레바논을 침공하는 이스라엘로 날아갔다. 그러니 책이든 글이든 집에 틀어박혀 할 수 있는 건 아닌 듯 하다.

 

114 고향이란 어떤 사람이 우연히 태어나게 된 장소가 아니라 어른이 돼서 앞으로 평생 동안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고 하기 싫은 일이 무엇인지 결정할 수 있을 때 직접 고른 장소를 말하는 거야.

 

137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기자로서 성공을 거둬 전 세계의 부자와 유명한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게 된 것에 만족하며 미지의 새로운 영역으로 발을 내딛는 것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그러나 팔라치는 그들과 달랐다.

 

54 오리아나 팔라치에게 있어 저널리즘은 항상 단순한 정보전달 역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생생한 아이디어, 문화적인 문제에 대한 지적인 논의, 그리고 예술성이 그녀 기사의 특징이다. 인터뷰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내 기사가 ..의 시보다 지적인 면에서 열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내 기사를 문화의 연장으로 보고 문화적인 활동을 할 때와 똑같은 에너지를 들인다. 그리고 나는 신문이 지적 능력을 가장 힘차게 자극하는 자극제라고 생각한다.

 

54 기사에는 그녀 자신의 의견, 사상, 신념 등이 속속들이 배어 있으며, 그녀는 기사를 쓸 때 마치 선교사처럼 열정적인 태도로 임한다.

 

55 그녀의 글은 픽션이라는 자원을 이용해 씌어진 정확한 논픽션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55 이런 현대적인 문체가 저널리스트의 글에 운치와 인간성을 덧붙여 저널리즘을 예술의 영역으로 밀어넣는다.

 

55 팔라치의 미덕은 바로 전통적인 보도기법 대신 문학적인 글쓰기를 시도하려는 노력에 한층 박차를 가함으로써 놀라울 정도로 다른 저널리즘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57 그녀는 일부 기사들을 쓸 때 처음부터 마치 명문집에 실릴 작품을 쓰듯이 했다. 그녀는 결코 평범한 기자가 아니라 죽어서도 빨간 표지의 책을 통해 불멸의 생명을 얻게 될 선택받은 자들의 왕국에서 정체를 숨기고 있는 미래의 작가였다.

내 경우를 이해하려면 키플링, 런던, 헤밍웨이 같은 사람들을 생각해봐야 한다. 그 사람들은 저널리스트였지만, 그냥 저널리스트가 아니라 저널리즘에 몸을 의탁한 작가들이었다. 키플링이 인도에서 쓴 편지들을 한 번 보라. 불쌍한 사람 같으니. 그는 기자로서 할당받은 기사를 써야만 했다. 하지만 그 기사들을 소설처럼 썼다. 그는 저널리스트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본 것이다.”

 

59 팔라치는 많은 기사들을 줄거리와 뒤틀린 결말이 있는 이야기로 바꿔놓았다. 그 기사들을 책 한 권으로 묶는다면 단편집을 만들 수도 있을 정도였다. 그 기사들은 소설과 닮은꼴이었지만 분명하게 확인된 사실들을 담고 있었다.

 

80 팔라치가 기사에 자신의 목소리를 분명히 끼워 넣는 성향은 독자들의 흥분을 끝까지 유지시키는 데서 가장 힘을 발휘한다.

 

 

93 팔라치는 1인칭 대명사를 동원해 이 기사를 유머러스하게 마무리 지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먼로를 만나는데 실패한 사람이다.”

 

122 팔라치는 인물들에 대한 묘사를 피하고, 대신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세부묘사를 통해 그들의 성격을 드러낸다. (그가 그녀를 끌어안을 때 버럭 하는 전우-동성애, 동침 직전 술 꿀꺽-수줍음보다 두려움)

 

124 파라치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초창기에 <전쟁터의 페넬로페>가 발표되었다는 사실은 직업과 관련해서 문학적인 글쓰기가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그녀가 기자로 활동하면서도 문학에 대해 여전히 커다란 애정을 갖고 의욕을 불태웠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중요한 상징이다. 미셜 프리스코는 이야기를 만들려는 그녀의 경향이 팔라치의 기자기질을 끊임없이 몰아냈다고 썼다.

 

125 이 책(<이기주의자들>)에서 그녀는 매번 인터뷰를 할 때마다 자신이 어떻게 시간 약속을 얻어냈으며 인터뷰가 어떻게 진행되고 어떻게 끝났는지를 설명했다. 그녀는 또한 자신이 인터뷰한 사람들에 개한 개인적인 판단, 편견, 결론 등을 밝혔다. 편견이 없는 공평무사한 태도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이른바 객관성이라는 것이 위선이거나 주제넘은 가정이라고 생각한다. 객관성이라는 말 속에는 글을 쓴 사람이 진정한 진실을 보도한다는 암시가 들어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26 그녀는 이 인터뷰 기사들을 도구로 삼아 우정, 정치, 미학 등에 대한 자신의 개인적인 견해를 밝혔으며, 언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자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녀의 가사에서 중요한 것은 완성된 기사 그 자체라기보다는 기사를 쓰는 과정에서 발휘된 그녀의 탁월한 능력이다. 기사의 속도, 기사에 제시된 논박과 새로운 사실들, 그녀의 어조, 기사에 형태를 부여하는 그녀의 존재감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그녀는 언론계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인터뷰를 무대로 이용하는 기자로 떠올랐다.

 

128 그녀는 인터뷰 상대방이 이야기를 하도록 허용하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주도권을 쥔다.

 

133 “나는 녹음된 인터뷰 내용을 전부 종이에 옮겨 적은 다음, 영화감독이 영화를 만들 듯이 기사를 작성한다. 즉 일부 내용을 없애기도 하고 잘라서 이어 붙이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녀는 감독 같은 사람이 된다.

물론 나는 배우이고, 이기주의자이다. 기사에 나 자신을 집어넣으면 더 좋은 기사가 나온다.”

 

152 글을 쓸 때 과거의 기억을 많이 언급하고 대화 중간에 갑자기 과거를 회상하는 것은 지금도 팔라치의 상징이며, 이 기법을 통해 그녀는 스스로 책의 주인공이 된다. 그녀는 또한 자신의 과거 기억을 자세히 묘사함으로써 자신의 이야기를 개인적인 것으로 만든다.

 

162 우주 비행사들과의 인터뷰 기사에서도 팔라치는 자신의 의견과 자신의 과거를 마음껏 집어넣었지만 그로 인해 글의 질이 낮아지지는 않았다. 그녀의 이야기는 그녀가 사는 세상과 그들이 사는 세상을 대비시키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182 1967년 팔라치는 한껏 들떠서 베트남에 가겠다고 자원했다. 종군기자로서 8년에 걸친 모험의 시작이었다. 어느 모로 보나 동남아시아에서 발생한 그 유혈극은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그녀는 전쟁의 지옥 속으로 곧장 뛰어들어 <에우로페오>에 연재기사를 썼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상을 수상한 <무 그리고 아멘>을 썼다. 베트남전을 취재한 여성기자는 극소수였지만 팔라치가 여자라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녀가 자기만의 색깔을 지닌 활동적인 보도스타일을 확립했다는 점이다. 베트남전을 취재하는 동안 내내 그녀는 병사가 적을 죽일 때의 생각과 느낌을 알고 싶다는 욕망에 이끌려 전쟁터에 직접 뛰어들고, 병사들과 함께 순찰을 했으며, 심지어 베트콩들이 있는 곳에 폭격을 퍼붓는 것을 직접 참관하기도 했다. 그녀의 글에는 작가로서 그녀가 지닌 재능이 아주 깊이 배어 있었기 때문에 독자들은 글 속에 묘사된 사건들을 직접 경험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팔라치는 모든 일에 직접 참여하는 보도스타일에 사회적 리얼리즘이라는 문학적 장식을 입혔다. 그녀는 바로 눈앞에 서 보는 것처럼 구체적으로 사건을 묘사하는 강렬한 기법을 이용해서 베트남전을 생생하게 살려냈으며, 그녀의 모험에서 사소한 것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열심인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지금은 Tv 보도와 SNS가 기사를 대신한다.

 

191 팔라치는 자신이 관찰한 것을 엮어서 현실을 빈틈없이 기록하면서도 자신을 일상생활의 중심에 놓은 기사를 만들어냈다. <에우로페오>에 실린 그녀의 기사들은 그녀를 주인공으로 삼은 단편소설 같다.

 

197 종군기자로서 오리아나 팔라치는 기사에서 자신의 의견과 생각과 입장을 강렬하게 표현했으므로 그녀의 보도태도를 열성적이고 활동적인 선교사들과 비교해도 될 것 같다. <무 그리고 아멘>은 물론 베트남전에 대한 그녀의 기사들 역시 행동주의 저널리즘의 고전적인 예라고 할만하다.

 

198 팔라치의 보도태도는 기계처럼 정확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가 쓴 폭로기사들은 픽션의 요소들을 이용하고 글쓰기를 예술의 영역으로 승화시킨 논픽션 산문의 전형적인 예이다.

 

199 팔라치는 국내외에서 거둔 성공 덕분에 자신의 글과 개인적 이미지가 지닌 힘을 인식하게 되었다.

263 팔라치는 인터뷰를 스토리가 내재된 연극으로 생각한다는 점을 전혀 숨기지 않은 채, 더 커다란 진실을 얻어내기 위해서 고함과 비명을 지르며 소란을 피운다.

 

270 팔라치의 인터뷰 기사는 모험적이고, 역사적이고, 대결적이고, 개인적인 측면 덕분에 강렬한 내용을 담을 수 있었지만, 단순히 그것 때문에 그녀의 기사사 세계적인 호소력을 지닐 수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녀의 기사가 성공을 거둔 것은 그녀가 사용한 방법론 덕분이기도 했다. 인터뷰 기사에 문학적인 분위기를 덧씌우려 했던 그녀는 기자로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을 지키기가 어렵다는 문제와 직면했다. 정확한 보도를 위해서는 인터뷰 도중 오간 말들을 쉼표 하나 빠뜨리지 않고 그대로 옮겨야 했다. 그녀는 인터뷰 도중에 각각의 주제에 대해 즉흥적인 질문들을 던짐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그녀는 철저한 준비 덕분에 인터뷰를 하면서 동시에 기사를 쓸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기사를 쓸 때 상대방의 반응을 너무 일찍 실수로 밝혀버리는 일이 없도록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머릿속으로 기사 내용을 상상했던 것이다. 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팔라치의 감각과 완벽하게 들어맞는 이런 자연스러움이 독자들을 끌어드렸고, 그녀는 매번 상황에 맞춰 재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바로 이것이 그녀의 가사를 다른 진부한 기사들과 다르게 만들어준 요인이었다.

 

285 그녀의 인터뷰 기사는 단순히 테이프에 녹음된 내용을 옮겨놓은 것이 아니다. 그녀는 무대에서 열심히 연기하는 배우처럼 인터뷰를 이끌어나가며, 자신이 받을 조명을 남이 훔쳐가지 못하게 하려고 온 힘을 기울인다. 그녀가 각광받기를 포기하는 것은 단단히 짜인 기사의 틀 속에 그런 부분이 포함되어 있을 때 분이었다.

내 기사는 한 편의 연극이다. 나는 질문들을 미리 준비하지만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들을 쫒아간다. 긴장을 점점 높여가다가 그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다.” 그녀의 기사가 보편적으로 인기를 얻은 것도 이처럼 창조적인 부분 덕분이다.

 

    

 

3.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서문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언론인이자 인터뷰어이며, 종군기자이자 소설가인 오리아나 팔라치는 국제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다.

 

낙태반대운동들도, 급진적인 여성주의자들도 모두 <태어나지 못한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가 낙태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뒷받침해준다고 주장한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 때문에 이 책을 주문했다. 그녀의 전기를 다 읽을 생각은 없었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에서 오리아나 팔라치의 저 소설을 소개하는 글을 읽었고 주문한지 몇 년 되었다. 마침내 읽게 된 건 아마도 어쩌면 나도 아이 출산이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들어서다. 난임휴직 1년 반, 시험관 5차의 실패를 받아들이면서다. <아직 잉태되지 않은 미래의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계속 쓸 건지에 대한 판단이 더 필요했다. 그녀는 아이를 낳지는 않았지만 아이를 잃은 과정을 소설로 써서 책을 낳았다. 그녀의 방식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나? 알 수 없다. 나는 커다란 상실감을 느끼고 있다. 거의 우울증에 걸릴 만큼. 아니 이미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상실감을 다루자면 그것에 관한 글을 읽는 게 도움이 될지도.

 

팔라치는 뉴욕시의 고층건물 그늘 아래서 25년이 넘는 세월을 보냈다. 작지만 기분 좋은 분위기를 풍기는 그 집의 주소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암으로 지어진 이 집 뒤에는 아주 작은 정원이 있고, 그곳의 나무들은 비둘기와 참새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한다. 그녀의 집에 있는 수많은 기념품과 낡은 책들에 대해 그녀는 집착에 가까운 애정을 갖고 있다. 그림이 그려진 18세기 판 세익스피어 희곡집도 그녀의 보물들 중 하나이다.

 

감사의 말

 

전화로 인터뷰한 내용을 사용해도 좋다고 허락해준 ~~~에게 감사한다.

미시시피 대학의 ~~~가 재정적인 지원을 해준 것에 대해서도 깊이 감사하고 있다.

무엇보다 내게 사랑과 무한한 지지를 보내준 내 가족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가족들의 지원 덕분에 이 책의 집필을 처음 생각했을 대부터 출판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견딜 수 있었다.

 

프롤로그 _진실을 찾아서

 

 

14 내가 오리아나 팔라치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980년 친구에게서 받은 <, 그리고 아멘>이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그 순간부터 친밀하고 감정적이며 대단히 긴장된 관계가 시작되었고, 마침내 이 책 <오리아나 팔라치 :그녀의 신화>의 출간이라는 결실을 맺게 되었다. 팔라치와의 만남은 내 인생을 바꿔 놓았다.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에 대한 그녀의 견해가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무 그리고 아멘>에서 오리아나 팔라치가 발견한 진실이라는 글을 쓰기까지 했다.

 

14 정계 거물들과의 인터뷰가 실린 <역사와의 인터뷰>를 읽은 다음에는 오리아나 팔라치의 인터뷰 테크닉 자세히 들여다보기라는 글을 쓸 정도였다.

 

그녀의 책을 해설하는데 개인적으로 집착하던 나는 그녀의 책과 신문기사들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녀가 199173일 내게 <인샬라>를 한 권 보내주었을 때 나는 펜을 들어 그녀의 삶을 연구해보고 싶은데 혹시 날 도와줄 수 있겠느냐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그때는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었다.

 

팔라치가 지금까지 해온 활동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로 그녀의 심리적 여정이다. 그녀는 기자이자 작가이다. 소설을 쓰면서 저널리즘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욕망은 그녀의 삶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가 스스로 만들어낸 이미지를 대중에게 드러내고 싶다는 욕망이 이보자 훨씬 강렬하다. 그녀는 자신의 신화적 인물로 만들어보려는 의식적인 노력에 지금까지 엄청난 심혈을 기울였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작품에서 숲 속의 야생버섯처럼 새로 태어나고 있다. 그녀의 이미지는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진실이다. 마이클 잭슨이나 마돈나처럼 프로듀서나 매니저들이 만들어낸 인물이 아니다. 그녀는 작가로서 종이에 쓰는 단어 하나하나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것이 그녀의 이미지로 드러났다.

 

나는 팔라치가 왜 그토록 놀라운 존재가 될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녀의 인생은 그녀가 썼던 글의 부산물이자 그녀가 쓴 작품들의 내용을 결정한 요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삶 전체로 글을 쓰는 사람이므로. 팔라치는 지금까지 쓴 모든 글에서 자신의 지적인 탐구과정과 정치적 철학적 여정을 모두 드러냈다.

 

 

25 사랑하는 작가와 직접 만나는 사람들에게 화가 있을 지어다.”

그를 만나고 나서 하도 환멸을 느꼈기 때문에 이제는 그의 작품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으려고 억지로 노력해야 한다.”

나도 오리아나 팔라치에 대해 같은 기분을 느꼈다고 인정하기가 너무나 싫다.

이 책의 첫머리 이후 저자는 오리아나 팔라치와 이 책 집필 과정에서 직접 만나거나 편지나 전화, 원고를 보내고 퇴짜 놓고, 다시 쓰는 과정을 통해 그녀에게 실망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다.

 

나는 처음에는 그녀의 사소한 변덕에 휘둘려 기분을 맞춰주려고 중국까지 갔다 오던 열성적인 팬이었지만 나중에는 미몽에서 깨어나 직업인으로서 그녀의 삶을 그녀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내가 직접 본 그대로 정직하게 말하고야 말겠다고 결심한 연구자가 되었다. 이 책에는 피렌체 출신의 한 기자가 스스로 자신의 신화를 구축해나가는 과정이 담겨있다.

이 책의 원제가 그래서 신화구나.

 

1 피렌체

 

28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대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도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그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프라 안젤리코, 미켈란젤로, 치마부에, 보티첼리 등 유명한 예술가들의 걸작을 매일 접할 수 있었다.

 

28 목련나무가 있는 정원

 

29 토스카 팔라치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친척들의 손에 자라면서 정식 교육을 조금밖에 받지 못했다. 에도아르도는 생계를 위해 장인으로 일하면서 이탈리아의 파시즘 반대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9 두 사람은 학교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는데도 탐욕스럽게 책을 읽어대며 문학의 세계에 중독되었다. 오리아나는 책을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교실에서 얻을 수 있는 얄팍한 지식보다 개인적인 공부가 훨씬 더 실속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오리아나의 부모님은 마치 옆집에 사는 이웃사람 얘기를 하듯이 알레산드로 만조니와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디킨스를 얘기했다.

 

에도아르도 팔라치와 토스카 팔라치는 빠듯한 사람을 하면서도 책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마치 냉장고를 살 때처럼 할부로 걸작들을 사들이곤 했다. 이렇게 사들이 보물같은 책들은 거실에 있는 유리문이 달린 서가에 꽂혔다. 어렸을 때 오리아나는 소파에 누워서 빨간 표지의 책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잠이 들곤 했다. 그때마다 그 책들이 자신의 상상력에 도발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느껴졌다. 매일 이 책을 바라보는 것이 그녀의 일상에서 떼래야 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그 책들의 활기 속에 온 몸이 푹 잠겨있는 것 같았다. 미소를 짓거나 다른 아이들과 노는 적이 드문 진지한 아이였던 팔라치는 글자를 깨우치자 마자 게걸스럽게 책을 읽어대기 시작했다. 이것은 평생에 걸친 버릇이 되었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작가들의 작품 앞에서 신성한 경외감을 느꼈다.

 

어머니는 <죄와 벌><전쟁과 평화>등 금지된 책들이 꽂힌 칸에 꽂았다. “이건 아빠 책이야. 어른들이 보는 책이라고. 아이들은 안돼

 

33“넌 지금 아파서 열이 나니까 책 읽을 시간 있지. 읽어빨간책 한 권 빼주다. 잭 런던의 <야생의 외침>. 이 책을 계기로 그녀는 잭 런던의 세계를 알게 되었다. 어린시절부터 사춘기 초기까지 팔라치는 그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어댔다.

34 런던의 책을 읽었던 열 두 살 때의 그날, 그녀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딜레마 중 하나라고 생각되는 문제(자유의 문제)에 대한 답을 자신도 모르게 찾아 헤맸고, 거기서 찾아낸 해답으로 어른의 사고를 갖게 되었다.

 

35 미국출신인 이 작가의 상상력과 사냥에서부터 정치학까지, 과학소설에서부터 사회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주제의 글을 쓸 수 있는 정신적 풍요로움에 경탄했다.

 

팔라치는 자신이 여행을 갈망하게 된 데는 어렸을 때 잭 런던의 작품에 매혹되었던 것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고 솔직히 인정한다.

 

37 토스카 팔라치는 딸이 읽을 책들을 신중하게 골라주었으며, 루드야드 키플링의 <>을 읽으라고 명령함으로써 딸에게 또 다시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나는 그 덕분에 이국적이고 신비한 나라들에 대한 사람이 내 안에서 눈을 뜬 것 같다.”

 

파라치는 키플링의 소설 때문에 자신이 인도, 중국, 아프가니스탄에 반해 버렸음을 인정했다.

 

33 그는 팔라치에게 자신의 물건 두 가지를 물려주었다. 19세기의 위대한 화가이자 조작가인 구스타브 도레의 <그림 성경>과 낡은 사냥용 총.

 

38 열여섯살에 러시아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집에 그 책들이 있었다. 부모님이 할부로 산 책들이었다.”

 

40 중고등학교 시절 그녀는 그리스 로마 문화에 대한 기본지식을 철저하게 교육받았으며, 수년 동안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번역하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책을 읽고,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아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통해 고통을 맛봤다. 그러나 <일리아드><오디세이>에 괴롭힘을 당하는 굉장한 행운을 경험하기도 했다.

 

폭탄이 떨어지는 가운데 방공호로 피하며 두려움 때문에 울음을 떠트렸는데 아버지는 눈물을 보고는 화가 나서 뺨을 힘껏 후려치며단호한 목소리로 여자가 울면 안돼!” 하고 야단을 쳤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며 이때 배운 r교훈을 간단하게 요약했다. “힘이예요! !”

 

42 부모님 덕분에 교육과 자기절제가 신앙처럼 그녀의 머릿속에 자리잡았기 때문에 그녀는 모든 일에 전적으로 자신을 바칠 수 밖에 없었다. 엄격하게 일상을 고수하고,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매진하며, 작업 스케쥴을 엄격하게 지키는 생활. “나는 희생에서 나오는 힘과 자기절제가 없으면 인생을 살아나갈 수 없다고 절대적으로 확신하고 있다.”

 

레지스탕스 활동. 아버지와 함께 2명을 탈출시킴

 

46 아버지가 당국에 체포당한 후 19944년 팔라치에게 가장 힘든 시기였다. 빌라 트리스테로 끌려간 에도아르도는 심한 고문을 당하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무라테 디 피렌체 감옥으로 아버지를 면회하러 갔던 오리아나는 영혼에 상처를 입고 돌아왔다. 크게 부어올라서 일그러진 아버지의 얼굴은 원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에도아르도는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면 냉정함을 잃지 말라고 당부했다.

 

48 두 학년 월반, 열여섯 살에 훌륭한 학교로 명성높은 갈릴레로 갈릴레이 고등학교 졸업

 

49 삼촌은 작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유를 얻으려면 경제적인 독립과 경험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일단 먹고 살게 된 다음에 글을 쓰는 거야. 인생이 뭔지도 모르는 네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할 수 있겠니?”

 

50 피렌체 대학에 진학한 그녀는 의학을 전공으로 택했다. 의사는 A.J. 크로닌을 비롯한 많은 작가들의 직업이었다. 의학은 그녀가 자신의 인도주의를 포기하지 않고 인간의몸이라는 금지된 영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되어주었다.

 

50 “잘 들어라. 의대 다니는 데는 돈이 많이 들어. 기간도 6년이나 되고. 6년 동안이나 그 돈을 댈 수가 없다. 의학을 공부하고 싶다면 네가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해그녀는 아버지의 뜻을 이해하고 신문사에서 일하면서 동시에 공부를 계속했다.

 

52 에도아르도가 전쟁 이후 이탈리아에서 치러지는 선거에 출마하기로 집회장으로 가다 자동차 사고를 당해 두개골이 골절되었다. 에도아르도는 거의 2년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항상 등을 똑바로 세운 체 휠체어에 꼼짝없이 앉아 있기만 했다. 누군가 나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오리아나는 정식 직장을 찾기로 했다.

 

고전에 대한 지식, 독서와 모험에 대한 갈증, 성격적인 특징과 자기절제, 작가가 되고 싶다는 소망 등이 합쳐진 그녀의 기질 상 그녀가 가질 수 있는 직업은 단 하나, 기자 밖에 없었다.

 

2 키플링, 런던, 헤밍웨이

 

54 오리아나 팔라치에게 있어 저널리즘은 항상 단순한 정보전달 역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생생한 아이디어, 문화적인 문제에 대한 지적인 논의, 그리고 예술성이 그녀 기사의 특징이다. 인터뷰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내 기사가 ..의 시보다 지적인 면에서 열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내기사를 문화의 연장으로 보고 문화적인 활동을 할 때와 똑같은 에너지를 들인다. 그리고 나는 신문이 지적 능력을 가장 힘차게 자극하는 자극제라고 생각한다.

 

54 기사에는 그녀 자신의 의견, 사상, 신념 등이 속속들이 배어 있으며, 그녀는 기사를 쓸 때 마치 선교사처럼 열정적인 태도로 임한다.

 

55 그녀의 글은 픽션이라는 자원을 이용해 씌어진 정확한 논픽션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55 이런 현대적인 문체가 저널리스트의 글에 운치와 인간성을 덧붙여 저널리즘을 예술의 영역으로 밀어넣는다.

 

55 팔라치의 미덕은 바로 전통적인 보도기법 대신 문학적인 글쓰기를 시도하려는 노력에 한층 박차를 가함으로써 놀라울 정도로 다른 저널리즘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57 그녀는 일부 기사들을 쓸 때 처음부터 마치 명문집에 실릴 작품을 쓰듯이 했다. 그녀는 결코 평범한 기자가 아니라 죽어서도 빨간 표지의 책을 통해 불멸의 생명을 얻게 될 선택받은 자들의 왕국에서 정체를 숨기고 있는 미래의 작가였다.

내 경우를 이해하려면 키플링, 런던, 헤밍웨이 같은 사람들을 생각해봐야 한다. 그 사람들은 저널리스트였지만, 그냥 저널리스트가 아니라 저널리즘에 몸을 의탁한 작가들이었다. 키플링이 인도에서 쓴 편지들을 한 번 보라. 불쌍한 사람 같으니. 그는 기자로서 할당받은 기사를 써야만 했다. 하지만 그 기사들을 소설처럼 썼다. 그는 저널리스트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본 것이다.”

 

59 팔라치는 많은 기사들을 줄거리와 뒤틀린 결말이 있는 이야기로 바꿔놓았다. 그 기사들을 책 한 권으로 묶는다면 단편집을 만들 수도 있을 정도였다. 그 기사들은 소설과 닮은꼴이었지만 분명하게 확인된 사실들을 담고 있었다.

 

59 팔라치는 자신의 특징 중 하나인 등장인물들 사이의 대화와 선명한 묘사를 통해 궁전을 찾아간 프레니 이야기의 핵심을 독자들에게 드러낸다.

 

65 팔라치는 이 기사가 피렌체 주민들 외에 더 많은 사람이 읽을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기사를 이탈리아의 주요 시사잡지 중 하나로서 명성있는 <에우로페오>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66 <에우로페오>와 연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피렌체의 <일 마티노>에서 유명인사들에 대한 기사를 썼다.

71 처음으로 직장을 얻은 지 6년이 지난 1952년에 팔라치의 직장생활이 갑작스레 다른 방향을 향하게 되었다. 그녀의 상사가 당시 스물두 살이던 그녀를 해고했던 것이다. “자기 밥통에다 침을 뱉으면 안돼지.”

 

어쨎든 팔라치는 탄탄한 경험을 쌓은 기자였다. 언론계 사람들은 이미 그녀의 흥미로운 문체에 주목하고 있었다.

 

72 얄궂게도 그는 족벌주의 덕분에 번영을 누리고 있는 나라에서 자신이 혈연 때문에 그녀를 채용했다는 비난을 듣게 될까봐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끝내 침묵을 지키다가 나중에야 알력에 못이겨 그녀를 채용했다. ..19521월부터 브루노 팔라치가 소유주와의 불화 때문에 해고된 19538월까지 20개월 일함.

 

73 팔라치가 기사에서 자신을 적극적으로 개입시킨 것은 문학적인 저널리즘과 어긋난다기 보다 오히려 문학적 저널리즘의 반대개념으로서 문학이 항상 현실을 반영하기보다는 굴절시키는 역할을 하며 다른 방식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선명한 삶의 형태를 표현하기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 삶을 왜곡시킨다고 설명한다. “문학적 왜곡의 뿌리는 항상 작가 자신, 즉 작품에 남아있는 그만의 개성적인 특징 속에 있다.”

 

74 작가는 그레타 가르보처럼 세상에서 제일 비밀주의를 추구하는 작가라도 결코 비밀을 고수할 수 없다. 그들이 작품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3 조명, 카메라, 액션

 

76 처음 기자로 활동 할 때부터 팔라치의 뭔가를 기념하는 듯한 화려함을 지니고 있었다.

 

77 팔라치가 배우가 되고 싶어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글에서 구체적이고 시각적인 이미지를 묘사하는 그녀의 재능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78 각광받기를 즐기며 남들 앞에 자신이 원하는 모습만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것이 그녀의 기질이라는 점이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계속 팔라치의 어떤 면을 추적한다.

78 가르보가 기자들을 극구 피해 다닌다는 사실을 아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 척하기로 했다. 마침 가르보와 동시에 상점을 나서게 된 팔라치는 가르보를 위해 문을 열어주면서 , 가르보씨라고 말하는 대신 , 부인이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가르보의 대답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고맙습니다. 팔라치씨

 

78 나는 그녀와 같은 타입이다. 그녀는 영화를 그만 두었기 때문에 사생활을 지킬 수 있었지나 나는 글쓰기를 그만두지 않았다. 그래서 책이 새로 출간될 때마다 저주가 새로이 시작된다.

 

79 작가로서의 팔라치는 혼자서 조용한 곳에 틀어박히고 싶어하는 원래 기질과는 반대로, 전혀 자신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그녀는 <에우로페오>에서 전국을 무대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기사에 쉽사리 자신의 개인적인 목소리를 끼워넣을 수 있음을 알았다.

 

80 팔라치가 기사에 자신의 목소리를 분명히 끼워 넣는 성향은 독자들의 흥분을 끝까지 유지시키는 데서 가장 힘을 발휘한다. 먼로와의 인터뷰 기사를 다룬 그녀의 기사는 먼로를 만나려는 그녀의 노력에 전 세계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1인칭 아리아와 같다. 기사에 드러난 팔라치 자신의 모습이 하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서 그 밖의 사실들은 부차적인 위치를 차지할 뿐이다.

 

87 “내가 먼저 질문을 하지요. 내 최신작에 대해 말해보아요.”

저는 아직 그 영화를 보지 못했습니다. 선생님

그날 저녁에 영화를 보라며 극장의 8시 표를 예약해주었다.

..이 불쌍한 여기자가 자기 작품을 재미있게 보았다는 사실을 아록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서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91 쇼가 끝난 후 분장실로 들어간 팔라치는 하얀 목욕가운을 입고 화장을 지우고 있는 그녀를 보고 강한 애정을 느꼈다.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93 팔라치는 1인칭 대명사를 동원해 이 기사를 유머러스하게 마무리 지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먼로를 만나는데 실패한 사람이다.”

94 팔라치는 이탈리아 아가씨가 본 미국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기사에서도 예전 버릇대로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95 기사는 파라치가 미국 그 자체보다 미국에서 자신이 겪은 일을 더 중요하게 다루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95 팔라치는 셜리 맥클레인과 함께 한 미국 횡당 여행기를 통해 스타로서의 자신의 이미지를 한층 강화하는 견본이라 할 수 있다. 기사를 쓰는데 완전히 빠져있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짜릿한 역할을 생생하게 즐기고 있는 기자의 모습이 이 기사에 잘 드러나 있다.

 

96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보도하라는 지침이 그녀의 흥분을 가라앉혔다. “여자는 특별한 동물이 아니다. 왜 여자들이 별도의 이슈로 취급되어야 하는지, 특히 신문에서 왜 그래야 하는 지 도무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여자들을 마치 단성생식으로 태어난 존재처럼 취급하는 것은 비논리적이라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온 세상을 여행해보라는 어머니의 충고가 망설임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되었다.

 

토스카 팔라치는 딸에게 반드시 결혼을 해서 남편에게 복종하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강조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녀는 바느질을 하고, 옷을 빨아 다리고, 살림을 하기보다는 여행을 할 수 있는 직업르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여섯 살 그녀는 머리가 토스카의 어깨에 닿을 만한 높이에 있었기 때문에 뒤로 몸을 젖혀야 어머니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어머니는 분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에 이어진 어머니의 말이 그녀의 가슴에 영원히 각인되었다.

넌 절대 나같이 되면 안돼! 누구 마누라나 엄마가 되지 마. 그건 무식한 노예니까. 넌 반드시 일을 해야 돼! ! 여행도 하고1 세상을 돌아다녀야 한다고! 세상 속에서 살아야 해!”

 

사춘기 때 팔라치는 어머니와 이야기를 하면서 앞으로 살림할 생각을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토스카는 곧장 단호하게 대답했다. “안돼. 그건 노예생활이야

 

98 사실 그녀의 기사는 그녀의 여행기였다. 그녀의 강렬한 개성이 기사를 지배하면서 기사의 주제 못지않게 중요한 존재로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지구 전역을 돌아다닌 팔라치의 여행은 문화적, 사회학적 측면에서 흥미를 끈다. 그녀는 파키스탄, 인도, 말레이시아, 중국 여성들을 묘사하면서 가부장제를 공격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여성운동이 시작되기도 전에 그녀가 같은 견해를 피력한 것이다.

 

99 그녀의 인터뷰 중에는 나중에 그녀가 정치지도자들과 만나 주고받게 될 대화의 씨앗이 들어있다. 그녀는 아주 젊었을 때부터 자신이 주로 흥미로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며 지적인 사람이라는 명성을 확립하려고 애썼다. 그래서 그녀는 피임, 불임수술, 힌두 국가들에게 여성의 지위, 인도가 독립투쟁을 벌이는 동안 여성들이 수행한 정치적 역할 등 민감한 문제들을 기사에 담았다. 인도의 교육받은 여성들을 만났을 때에는 기사에 그들의 말을 직접 인용해 그들의 개성과 생각들이 드러나도록 했다.

 

101 세계일주를 하던 당시 그녀는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즐겼으며, 기행문이라는 양식을 통해 통일된 형태의 글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102 <할리우드의 일곱가지 죄악> <쓸모없는 성>덕분에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 팔라치의 인기가 높아졌지만 그녀는 자신의 삼이 텅 비어버린 것처럼 느꼈다고 거듭 말했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기사를 쓰거나 논평을 모아 책으로 펴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4 중앙 무대에서

 

106 기자라는 직업이 원래 바쁜 직업이기 때문에 팔라치는 항상 시간에 쫒겼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그녀는 소설을 서서 1962년에 첫 소서 <전쟁터의 페넬로페>를 발표한다. 이 책에서 그녀는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려고 시도했지만 글 속에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그녀의 특징이 여기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107 팔라치는 단 한 번도 약혼이나 결혼을 한 적은 없지만 여러 남자를 자유롭게 사랑했으며, 그 남자들 각자에게 충실했다.

 

108 그녀는 애인 프란체스코가 반대하는데도 기꺼이 여행길에 나선다. 프란체스코는 그녀더러 고향에 남아 자기와 결혼해서 가정을 꾸미자며 율리시즈가 아니라 페넬로페처럼 행동하라고 말한다. “네가 할 일은 길쌈이지 전쟁에 나가는 게 아니야. 여자랑 남자랑 다르다는 걸 모르겠어?

 

109 영궁의 어느 유명작가가 똑똑한 여자는 똑똑하다는 것을 결코 겉으로 드러내서는 안된다고 제인 오스틴이 말했다고 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 용감하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했다. 팔라치가 내세운 여성주의의 요체는 주로 여주인공의 성격적 특성을 통해 표현된다. 사실상 심리적으로 남자와 같은 기질을 갖고 있는 여주인공 말이다.

 

111 팔라치는 자신의 책에서 여성주의적 성향을 분명하게 드러냈으면서도, 자신이 여류작가로 분류되는 것에 발끈 화를 내면서 자신을 남자 작가들과 별도로 분류하려는 모든 시도에 저항하고 있다. “앞으로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을 테지만, 넌 이미 한 가지 장점을 갖고 있어. 남자처럼 글을 쓴다는 것” (브루노 팔라치) 그녀는 서사적이고, 냉정하고 초연한 문체 때문에...그녀는 자기만의 문체를 갖고 있기 때문에 남자, 여자, 동성애자, 이런 식의 분류기준을 거부한다. 그녀는 비록 자기가 여성주의야 말로 현대 최대의 혁명이라고 말하곤 했지만 여성주의자들은 지긋지긋하다고 말했다.

 

114 고향이란 어떤 사람이 우연히 태어나게 된 장소가 아니라 어른이 돼서 앞으로 평생 동안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고 하기 싫은 일이 무엇인지 결정할 수 있을 때 직접 고른 장소를 말하는 거야.

 

114 뉴욕은 매일 나를 점점 더 놀라게 만드는 기적 같은 곳이야.

 

116 팔라치가 미국에 대한 애착을 갖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그녀가 느낀 파시즘에 대한 증오이다. 레지스탕스의 영웅인 그녀의 아버지는 대서양 건너편의 미국을 구원자로 보았다. 이민자들이 돈을 벌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 이탈리아를 해방시켜 준 사람들의 조국으로 보았던 것이다.

116 토스카 팔라치가 딸에게 선물로 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미국에 대한 파라치의 애정을 더욱 키워주었다.

122 팔라치는 인물들에 대한 묘사를 피하고, 대신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세부묘사를 통해 그들의 성격을 드러낸다. (그가 그녀를 끌어안을 때 버럭 하는 전우-동성애, 동침 직전 술 꿀꺽-수줍은보다 두려움)

 

124 파라치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초창기에 <전쟁터의 페넬로페>가 발표되었다는 사실은 직업과 관련해서 문학적인 글쓰기가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그녀가 기자로 활동하면서도 문학에 대해 여전히 커다란 애정을 갖고 의욕을 불태웠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중요한 상징이다. 미셜 프리스코는 이야기를 만들려는 그녀의 경향이 팔라치의 기자기질을 끊임없이 몰아냈다고 썼다.

 

125 이 책(<이기주의자들>)에서 그녀는 매번 인터뷰를 할 때마다 자신이 어떻게 시간 약속을 얻어냈으며 인터뷰가 어떻게 진행되고 어떻게 끝났는지를 설명했다. 그녀는 또한 자신이 인터뷰한 사람들에 개한 개인적인 판단, 편견, 결론 등을 밝혔다. 편견이 없는 공평무사한 태도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이른바 객관성이라는 것이 위선이거나 주제넘은 가정이라고 생각한다. 객관성이라는 말 속에는 글을 쓴 사람이 진정한 진실을 보도한다는 암시가 들어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26 그녀는 이 인터뷰 기사들을 도구로 삼아 우정, 정치, 미학 등에 대한 자신의 개인적인 견해를 밝혔으며, 언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자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녀의 가사에서 중요한 것은 완성된 기사 그 자체라기보다는 기사를 쓰는 과정에서 발휘된 그녀의 탁월한 능력이다. 기사의 속도, 기사에 제시된 논박과 새로운 사실들, 그녀의 어조, 기사에 형태를 부여하는 그녀의 존재감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그녀는 언론계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인터뷰를 무대로 이용하는 기자로 떠올랐다.

 

128 그녀는 인터뷰 상대방이 이야기를 하도록 허용하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주도권을 쥔다.

 

130 나는 다년 동안 예수회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동안 나는 온갖 일에 대해 죽을 만큼 겁에 질리곤 했죠. 그래서 지금 다른 사람들을 겁에 질리게 만들면서 복수를 하고 있는 겁니다.

(알프레드 히치콕)

 

133 “나는 녹음된 인터뷰 내용을 전부 종이에 옮겨 적은 다음, 영화감독이 영화를 만들 듯이 기사를 작성한다. 즉 일부 내용을 없애기도 하고 잘라서 이어 붙이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녀는 감독 같은 사람이 된다.

물론 나는 배우이고, 이기주의자이다. 기사에 나 자신을 집어넣으면 더 좋은 기사가 나온다.”

 

134 <역사와의 인터뷰>에서 볼 수 있는 성숙함과 진지함을 찾아볼 수 없다. 그래도 <이기주의자>에는 기자로서의 유혹적인 문체와 선명한 언어가 결합되어 있다.

 

5 달을 향해서

 

136 그녀의 상사에게 달 정복과 우주비행사들에 대한 기사를 쓰라고 지시했다.

 

137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기자로서 성공을 거둬 전 세계의 부자와 유명한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게 된 것에 만족하며 미지의 새로운 영역으로 발을 내딛는 것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그러나 팔라치는 그들과 달랐다.

 

137 그녀의 기사에는 미항궁우주국에 대한 보도와 미항공우주업계의 풍경, 과학자와 우주비행사들의 인터뷰는 물론 오리아나 팔라치 자신을 스타로 만들기 위한 내용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기사는 과학적인 모험에 흠뻑 빠진 피렌체 여자의 이야기였다. 그녀는 종교와 사랑에서부터 정치와 문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주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밝혔으며 마치 신탁을 내리듯이 권위 있는 태도로 판단을 내렸다. 한 비평가는 기사 속에 나오는 오리아나는 이상한 나라를 방황하는 1966년 판 앨리스 같다고 말했다.

 

143 팔라치는 감옥에서 아버지가 느꼈던 고독과 달에 착륙하던 순간 우주비행사들이 느낄 고독을 비교했다.

 

148 팔라치는 우주비행사들의 아내에게서 무엇보다 인간적인 감정인 두려움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용기는 두려움에서 태어난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왜 두려워하지 않았던 거지? 우리와는 혈통이 다른걸까?”

 

152 글을 쓸 때 과거의 기억을 많이 언급하고 대화 중간에 갑자기 과거를 회상하는 것은 지금도 팔라치의 상징이며, 이 기법을 통해 그녀는 스스로 책의 주인공이 된다. 그녀는 또한 자신의 과거 기억을 자세히 묘사함으로써 자신의 이야기를 개인적인 것으로 만든다.

 

162 우주 비행사들과의 인터뷰 기사에서도 팔라치는 자신의 의견과 자신의 과거를 마음껏 집어넣었지만 그로 인해 글의 질이 낮아지지는 않았다. 그녀의 이야기는 그녀가 사는 세상과 그들이 사는 세상을 대비시키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170 파라치는 자신이 그들의 눈에 이색적으로 보였던 것은 이탈리아인이어서가 아니라 뉴욕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남편을 따라온 우주비행사의 아내들 중에는 뉴욕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그 도시에 대한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176 콘래드의 말을 들어보면 팔라치가 사실을 과장하고 윤색했음을 알 수 있따. 마치 그녀가 상상력을 동원해 사실을 자신의 존재감과 중요성을 증폭시킨 것 같다. 콘래드는 자신에게 이탈리아어 욕을 가르쳐 줬다는 얘기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녀가 자신에게 욕을 가르쳐준 적이 없으며, 그녀가 가르쳐준 말을 써먹겠다고 자신이 말한 적도 없나는 것이다. 게다가 우주복 소매에 그런 단어를 쓴 적도 없다고 했다.

사기네

 

179 팔라치가 자신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만들기 위해 사실을 과장하는 성향이 있긴 하지만 우주탐사에 대한 그녀의 기사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6 동남아시아를 무대로

 

182 1967년 팔라치는 한껏 들떠서 베트남에 가겠다고 자원했다. 종군기자로서 8년에 걸친 모험의 시작이었다. 어느 모로 보나 동남아시아에서 발생한 그 유혈극은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그녀는 전쟁의 지옥 속으로 곧장 뛰어들어 <에우로페오>에 연재기사를 썼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상을 수상한 <무 그리고 아멘>을 썼다. 베트남전을 취재한 여성기자는 극소수였지만 팔라치가 여자라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녀가 자기만의 색깔을 지닌 활동적인 보조스타일을 확립했다는 점이다. 베트남전을 취재하는 동안 내내 그녀는 병사가 적을 즉일 때의 생각과 느낌을 알고 싶다는 욕망에 이끌려 전쟁터에 직접 뛰어들고, 병사들과 함께 순찰을 했으며, 심지어 베트콩들이 있는 곳에 폭격을 퍼붓는 것을 직접 참관하기도 했다. 그녀의 글에는 작가로서 그녀가 지닌 재능이 아주 깊이 배어 있었기 때문에 독자들은 글 속에 묘사된 사건들을 직접 경험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팔라치는 모든 일에 직접 참여하는 보도스타일에 사회적 리얼리즘이라는 문학적 장식을 입혔다. 그녀는 바로 눈앞에 서 보는 것처럼 구체적으로 사건을 묘사하는 강렬한 기법을 이용해서 베트남전을 생생하게 살려냈으며, 그녀의 모험에서 사소한 것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열심인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지금은 Tv 보도와 SNS가 기사를 대신한다.

 

185 “있지? 그 친구는 어머니를 보살펴야 했기 때문에 간신히 징병을 피해 LA에 남더니, 집에 수영장을 지었대.

잭은 그 친구보다 더 똑똑했어.

일부러 술을 퍼마셔서 궤양에 걸렸거든. 그래서 징병검사에서 떨어졌어.”

궤양 만세

심사관들이 여자를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그 친구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세상에, 그럴 리가요. 제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걸요.”

호모야?”

당연히 아니지. 미쳤어? 하지만 징병검사에서는 호모들을 그냥 떨어뜨려. 그거 몰랐어?”

몰랐어. 젠장. 지금 내가 호모라고 말하면 어떨까?”

너무 늦었어. 그 생각을 좀 더 일찍 했어야지. 나도 마찬가지고

 

191 팔라치는 자신이 관찰한 것을 엮어서 현실을 빈틈없이 기록하면서도 자신을 일상생활의 중심에 놓은 기사를 만들어냈다. <에우로페오>에 실린 그녀의 기사들은 그녀를 주인공으로 삼은 단편소설 같다.

 

191 팔라치는 사이공에서 40일을 보낸 후 19682월에 처음으로 이 나라를 떠날 준비를 했다. 아중에 2차 사이공 전투가 벌어졌을 때 돌아왔지만 그때 마치 도시를 버리고 떠났던 사람처럼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베트남과 사이공은 그녀에게 마법 같은 영향을 미쳤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파괴가 자행되는 모습을 보면서 삶이 더욱 강렬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197 종군기자로서 오리아나 팔라치는 기사에서 자신의 의견과 생각과 입장을 강렬하게 표현했으므로 그녀의 보도태도를 열성적이고 활동적인 선교사들과 비교해도 될 것 같다. <무 그리고 아멘>은 물론 베트남전에 대한 그녀의 기사들 역시 행동주의 저널리즘의 고전적인 예라고 할만하다.

 

198 팔라치의 보도태도는 기계처럼 정확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가 쓴 폭로기사들은 픽션의 요소들을 이용하고 글쓰기를 예술의 영역으로 승화시킨 논픽션 산문의 전형적인 예이다.

 

199 팔라치는 국내외에서 거둔 성공 덕분에 자신의 글과 개인적 이미지가 지닌 힘을 인식하게 되었다.

 

199 그녀는 한 번도 공산주의를 지지한 적은 없지만 북베트남 측으로부터 쉽게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그녀가 베트남전에 대한 글을 통해 반미감정을 표출했으며, 한동안 베트콩을 영웅적인 정항군으로 생각했음을 북베트남 측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 지압장군과의 만남이 끝난 후 팔라치를 포함한 네 여자는 재빨리 호텔로 돌아와 아직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 있는 인터뷰 내용을 글로 옮겼다. 이 네 여자가 직업적 본능에 따라 이 작업을 해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가 자신의 발언 중 일부를 철회하고 팔라치에게 공식적으로 발표해도 되는 내용을 따로 적어주었기 때문이다. 파라치는 그의 말대로 기사를 써서 본사로 보내면서 45분간에 걸친 원래 인터뷰 내용도 함께 보냈다. 그리고 기사에서 그녀는 그들이 자신의 이념적 목적에 맞는 글만을 인정한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북베프남 측은 팔라치가 감히 비판적인 사고로 독자적인 판단을 내린 것을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

 

201 전세계로 들불처럼 번져나가 헨리 키신저의 손에까지 들어간 지압 장군과의 인터뷰는 나중에 미국 정치가들과 인터뷰를 할 때 그녀의 소개장을 대신해 주었다.

 

7 발코니의 슈퍼스타

 

214 19689월 말 팔라치는 멕시코시티로 날아갔다. 수많은 국민들이 비참한 가난 속에 허덕이고 있는데 정부가 올림픽 준비에 엄청난 돈을 계속 쏟아붓고 있는 것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움직임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여기서도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죽음의 고비를 넘겼을 뿐만 아니라 멕시코 정부 당국에 대한 자신의 분노를 기사에서 여실히 드러냈다.

 

217 외국기자에게 자신들의 내밀한 감정을 드러내고 싶어 안달하고 있는 39명의 학생들이 강의실에 모여 그녀에게 자신들의 의견, 계힉, 포부를 들려주었다. 팔라치는 광장으로 들어오고 있는 수천 명의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머릿속으로 현장을 스케치했다. 파업을 기획하는 일을 맡고 있던 엔젤이 불안한 표정으로 서둘러 다가와서 장갑차량과 트럭들이 광장을 에워싸고 있다는 새로운 소식을 알려주었다. 학생 지도자들은 즉시 회의를 열어 시위가 끝난 후 행진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군인들을 자극했다가 총이 발포될까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218 소크라테스의 연설이 끝나자마자 초록색 군용 헬리콥터가 광장 상공을 선회하며 점점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팔라치는 이 상황이 아무래도 걱정스러워서 학생 지도자들에게 이야기를 해보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곧 이어 두 개의 초록색 섬광이 발사되는 것을 보며 그녀는 정말로 불안감에 휩싸였다. 베트남에서 저런 움직임은 상대가 목표물을 정밀하게 조준하고 있음을 뜻했다.

여러분, 안 좋은 일이 일어 날 것 같아요. 저 사람들이 섬광을 터뜨렸습니다.”

 

그들이 말을 끝내기 전에 우레와 같은 소음과 함께 트럭과 장갑차량들이 나타나 광장을 사방에서 에워쌌다. 차량에서 쏟아져나온 군인들은 즉시 총을 쏘아대며 사람들을 해산시키기 시작했다.

 

소크라테스는 계속 도망치지 마세요라고 외쳤지만, 초소리가 그의 목소리를 묻어버렸다. 광장에서는 여자들이 아이들을 품에 안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지붕 위에도 기관총과 자동화기를 든 병사들이 있었다. 팔라치는 너무 놀라서 꼼짝도 할 수 없었지만, 지금 이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정확하게 이해했다.

 

219 팔라치의 눈에 중년 남자 약 60명이 갑자기 발코니로 올라오는 광경이 들어왔다. 그들은 서로 신분을 오인하지 않도록 모두 하얀 셔츠를 입고 왼손에 하얀 장갑을 끼고 있었다. 그들은 손에 들고 있던 총으로 벽이나 바닥을 쏘면서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을 체포했다.

 

220 베트남에서는 벙커나 참호에서 적의 총탄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3층 발코니에 붙잡혀 있는 사람들은 총탄을 피할 길이 없었다. 그들이 벽에서 움직이려고 할 때마다 경찰이 경고사격을 했다.

 

228 그 곳에서 세 시간 동안 틀라테롤크 학살에서 살아남은 학생 생존자와의 유일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230 팔라치의 삶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 시기의 이야기는 전체주의 정권의 권력남용을 분명하게 보여주었으며 자유로운 생각과 자유로운 표현의 힘을 무너뜨리려 하는 독재자에 주먹을 흔들어대는 20세기 여성 영웅의 이미지를 한층 더 강화해 주었다.

 

 

8 일생일대의 연기

 

232 팔라치의 인터뷰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원수나 중요한 정치인들과의 인터뷰였다. 이 인터뷰 기사들은 인쇄매체의 한계를 깨뜨렸다. 때로는 연극과도 비슷했다.

이 아래에서 저자는 그녀가 자신의 신화를 만들어 갔고, 거물들과 차례로 맞서 승리를 거두는데 원동력이 된 것이 바로 신화 만들기였다고 쓴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피렌체에서 태어나 2차 대전 중에 이런저런 경험을 하고 작가의 꿈을 키우며 기자로 일했던 여자의 삶이 드러난다고. 이런 시선이 나는 불편하다. 마치 그녀에게 매혹되면서 침몰당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는 느낌이 든다.

 

233 그녀는 글 속에서 자신의 기질을 쏟아 넣으면 오랜 경험이라는 이점도 갖고 있다. 그녀는 인터뷰 대상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생각, 감정, 결정 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팔라치의 글에서 뚜렷하게 드러나는 특징 중의 하나는 미스테리와 모험의 분위기가 글 속에 되풀이 되어 나타났다는 점이다.

 

262 난 당신이 했던 인터뷰에 대해 모두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또 누군가를 굴복시켜 머릿가죽을 벗기고 싶어한다는 것도 잘 알아요. 당신은 혹독한 사람입니다. 아주 혹독해요. 하지만 당신과 폭풍우처럼 결렬한 대화를 나누는 순간이 다 마음에 듭니다. 당신이 용기 있고 성실하고 유능한 여성이니까요. 당신처럼 사전조사를 철저히 하고 나를 만나러 온 사람은 없었습니다. 당신처럼 오로지 인터뷰를 준비하기 위해서 폭탄이 떨어지는 전쟁터를 다녀온 사람도 없었습니다.

 

263 팔라치는 인터뷰를 스토리가 내재된 연극으로 생각한다는 점을 전혀 숨기지 않은 채, 더 커다란 진실을 얻어내기 위해서 고함과 비명을 지르며 소란을 피운다.

 

270 팔라치의 인터뷰 기사는 모험적이고, 역사적이고, 대결적이고, 개인적인 측면 덕분에 강렬한 내용을 담을 수 있었지만, 단순히 그것 때문에 그녀의 기사사 세계적인 호소력을 지닐 수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녀의 기사가 성공을 거둔 것은 그녀가 사용한 방법론 덕분이기도 했다. 인터뷰 기사에 문학적인 분위기를 덧씌우려 했던 그녀는 기자로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을 지키기가 어렵다는 문제와 직면했다. 정확한 보도를 위해서는 인터뷰 도중 오간 말들을 쉼표 하나 빠뜨리지 않고 그대로 옮겨야 했다. 그녀는 인터뷰 도중에 각각의 주제에 대해 즉흥적인 질문들을 던짐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그녀는 철저한 준비 덕분에 인터뷰를 하면서 동시에 기사를 쓸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기사를 쓸 때 상대방의 반응을 너무 일찍 실수로 밝혀버리는 일이 없도록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머릿속으로 기사 내용을 상상했던 것이다. 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팔라치의 감각과 완벽하게 들어맞는 이런 자연스러움이 독자들을 끌어드렸고, 그녀는 매번 상황에 맞춰 재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바로 이것이 그녀의 가사를 다른 진부한 기사들과 다르게 만들어준 요인이었다.

 

285 그녀의 인터뷰 기사는 단순히 테이프에 녹음된 내용을 옮겨놓은 것이 아니다. 그녀는 무대에서 열심히 연기하는 배우처럼 인터뷰를 이끌어나가며, 자신이 받을 조명을 남이 훔쳐가지 못하게 하려고 온 힘을 기울인다. 그녀가 각광받기를 포기하는 것은 단단히 짜인 기사의 틀 속에 그런 부부이 포함되어 있을 때 분이었다.

내 기사는 한 편의 연극이다. 나는 질문들을 미리 준비하지만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들을 쫒아간다. 긴장을 점점 높여가다가 그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다.” 그녀의 기사가 보편적으로 인기를 얻은 것도 이처럼 창조적인 부분 덕분이다.

 

9 사느냐 죽느냐

 

290 <역사와의 인터뷰> 출간 후 팔라치는 직업적으로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저널리즘이 자신에게 가했던 제한을 깨뜨리는데 성공한 그녀는 순수한 문학작품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다시 추구하기로 하고 직장에 휴직계를 제출한 다음 시적인 소설 <태어나지 못한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290 이탈리아어로 쓴 산문이 영어로 번역되었을 때 운율의 서정성이 사라질까 걱정이 된 그녀는 존 셰플리에게 책의 번역을 부탁해 영어판으로 출판했다.

 

291 팔라치는 자신이 소설과 신문기사를 동시에 쓸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스포츠를 비유로 들었다.

문학과 저널리즘은 서로 다른 스포츠 종목과 같다. 테니스를 할 때 발달하는 근육은 축구나 수영을 할 때 발달하는 근육과 다르다.”

 

292 팔라치는 소설가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 그녀가 창조적인 능력의 부족 때문에 고민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녀의 고민은 정확한 정보를 모아서 전달해야 하는 기자로서의 의무에 완전히 등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291 기자와 소설가의 차이점 중 하나는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 작가의 의무라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292 팔라치는 태어나지 못한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6~7년 전쯤) 그녀가 처음 이 책의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은 상상력이라는 난자와 결합하는 정자에 대해 대단히 개인적인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아이를 잃은 슬픔, 상처, 절망의 직접적인 산물이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아이를 여러 명 잃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이런 유산 경험 중 하나가 그녀에게 이 책에 대한 영감을 주었던 것이다. 그녀는 즉시 자신의 비극적인 경험을 이야기로 구성하기 시작했지만 서너 쪽을 쓰고는 멈춰버렀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아서라고 대답했다. 팔라치의 주장에 따르면, 이 책에 대한 생각이 상상력이라는 자궁 속에 얼어붙은 배아처럼 오랫동안 계속 남아있었다고 한다.

 

293 1970년대 여성운동의 가장 중요한 테마는 자신의 몸에 대한 여성의 권리가 여성해방의 가장 중요한 상징이라는 것이었다.

 

294 1달 휴직으로는 불가능하므로 그녀는 6개월을 쉬게 해달라고 <에우로페오>에 요청했다. 휴직을 허락해주지 않자 그녀는 무급 안식년 휴가를 쓰기로 했다. 피렌체의 비알데 데이 콘티에다 비싸지 않은 작업실을 빌려 6개월 만에 책을 완성했다. 그리고 원고를 <에우로페오>가 아니라 리졸리 출판사에 넘김으로써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295 “그것은 운명이 안겨준 선택이었다. 난 낙태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도 항상 아이를 잃었다. 어쩌면 내가 아이를 갖기로 결심했을 때 내 나이가 너무 많았던 건지도 모른다. 혹은 내가 나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고. 사실 나는 나 자신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 그녀는 임신과 출산을 도와주는 약을 찾아내려고 항상 골머리를 앓았다. “아이를 갖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약은 편안하고 차분한 생활이었지만 나는 그런 생활을 해본 적이 없었다.”

 

295 아이가 없다는 사실은 지금도 그녀를 괴롭히고 있다. 그녀는 아이가 없기 때문에 자신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생각에 시달린다.

 

아이가 없이 죽은 사람은 두 번 죽는다. 꽃을 피우지 못하는 식물이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처럼 자기 자신의 씨를 뿌리지 못하고 죽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그것은 영원한 죽음이다.”

이 비극에 대한 이야기를 씀으로써 그녀는 자신이 죽은 후에도 세상에 남아있게 될 책을 손에 쥘 수 있게 되었다.

 

296 이 책의 주인공인 임산부는 출장을 떠나기 전에 하혈을 시작하고, 의사는 그녀에게 병원에 입원해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명령한다...병원 침대에 누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주인공은 아이를 위해 일을 희생할 생각이 전혀 없었으므로, 고용주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것도 자신의 권리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녀는 임신동안 안정을 취하면서 아기의 성장을 돕는 대신 그냥 출장을 떠나버린다.

297 그러나 결국 아이를 유산하고, 침대에 누워서 병 속에 담긴 태아를 바라보면서 아이가 어른으로 자랄 때까지 자신과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녀는 아이를 잃지 않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면서 아이가 건장하고 상냥한 젊은이로 자라나 나이든 어머니가 계단을 내려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면을 상상한다.

 

297 이제 너는 이 세상에 없다. 알코올 병 속에 뭔가가 떠 있을 뿐. 그 물체는 남자도 여자도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나는 그 아이가 남자나 여자가 되도록 도와주지 않았다.

 

298 팔라치는 자신이 항상 그토록 갈망했던 새 생명을 그토록 쉽게 낙태시킬 수 있단 사실에 화가 치밀 때면 아이를 갖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면서 절망감을 드러내곤 했다.

이런 절망감과 분노는 아이 하나 갖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애쓰면서 힘들어 하는 이들이 많은 반면 쉽게 생기고, 그런 아이를 돌보지 않고 버리거나 학대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느끼지.

 

299 모호한 태도 때문에 이 책은 즉시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었다. 유동적인 내용 덕분에 독자들은 주인공이 낙태에 찬성하는 지 반대하는지, 아이가 태어날 수 있게 허용해주어야 한다는 쪽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나름대로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299 팔라치는 임신했을 때 결혼한 상태가 아니었다. 자신과 아이에 대해서 많은 걱정을 했기 때문에 이런 불안감이 이 소설의 핵심적인 내용 속에 표현되어 있다.

 

299 소설 속의 편집자는 주인공의 임신 소식을 듣고 그녀에게 직업적 미래를 생각해 보라고 충고한다. 감상적인 결정으로 미래를 파괴하지 말고, 이 일로 인해 그녀의 일생이 쉽게 바뀔 수도 있음을 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는 그녀에게 중요한 기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출장을 가야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남자 기자를 대신 보내겠다고 위협한다.

남자들한테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거든.”

그녀는 어머니가 된다는 것에 반감을 느껴 직업적 성취감을 희생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병원에서 나오려고 한다.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가방을 싸고 유산을 재촉할 것임이 틀림없는 출장길에 나선다. 그런데 아이가 유산될 것임을 깨닫는 순간 그녀는 감정적으로 크게 동요한다. 그리고 아이에게 달의 흙을 갖고 싶어했던 어떤 여자에 관한 동화를 들려준다.

 

301 이 이야기 속에서 태아는 어머니가 갖고 싶어했던 달의 흙과 같은 존재다.

 

301 이 책에서 임신한 여주인공의 상처, 두려움, 슬픔, 분노는 팔라치의 직접적인 경험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303 (베트남전, 달 탐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대신 동화라는 보호막 밑에서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305 누군가에게 애정을 품었다가 그 사람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느낌이 들면 즉시 관계를 끊어버리는 팔라치의 성향은 그녀가 맺은 많은 인간관계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그녀는 어떤 사람에게 온 신경을 쏟다가 뭔가 불화가 생기면 그대로 돌아서곤 한다. 그리스 군사정권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수감되어 고문을 당한 알렉코스 파나고울리스의 경우에도 사정은 비슷했다. 그녀는 그의 정부가 되어 그에게 강렬한 집착을 보였다. (그녀는 자신이 그에게 집착했음을 부정하고 있다.) 알렉코스와의 사이에 결정적인 불화가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서로 헤어질만 한 사건이 생기기 전에 그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두 사람 사이에는 커다란 긴장이 존재했으며, 특히 마지막이 가까워졌을 때는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 있었다. 두 사람은 격렬하게 싸움을 벌이곤 했다. 한 번은 그와 주먹다짐을 벌이던 그녀가 배를 얻어맞기도 했다. 그 직후 그녀는 아이를 유산했다.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한 회의 또한 이 책의 자전적 성격을 더욱 강화시켜주는 요인이다. 팔라치와 책 속의 주인공은 모두 이 끔찍한 세상에 아이를 내어놓아도 되는 것인지 쉽사리 결정하지 못한다. 팔라치와 책 속의 주인공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같다. 두 사람은 죽음이 아니라 죽음 이후를 두려워한다.

 

306 이 책이 낙태를 다루고 있다는 글을 쓰는 사람들은 빌어먹을 멍청이들이다. 이 책의 주제는 낙태가 아니라 회의이다. 즉 죽느냐 사느냐 바로 그것

팔라치는 심지어 사랑이 삶에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힘이라는 견해에 대해서도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307 그녀는 감정적인 애정이 아니라 생명이라는 측면에서 아이를 바라본다.

 

307 감정적 비유를 이용해 감정적 복종이 환상임을 보여준다.

 

307 그녀는 남자들과 사귀면서 아이를 가졌지만 그 아이를 낳지는 못했다. 또한 그 남자들과 시간의 힘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의미있는 유대감을 형성하지도 못했다.

 

308 내가 바로 그 어린 아가씨였다. 가장 강하고, 가장 잔인하고, 가장 자비롭지 못한 자가 항상 이긴다는 교훈을 네가 나와 같은 방법으로 배우지 않게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시기를

 

310 첫 번째 우화에서 목련 나무는 팔라치가 어린 시절 피렌체의 비아 델 피아지오네에 있는 아파트 5층에서 즐겨 바라본 바로 그 나무였다. 당시 그녀의 집에서는 너무나 아름다운 성당이 바라다보였다. 책 속의 주인공이 들려주는 어린시절 이야기는 팔라치의 자화상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313 세 편의 우화가 오리아나 팔라치의 실제 인생과 너무나 분명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 책은 문학적인 기자가 풍부한 이야기를 덧붙여 소설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실상의 자서전이 되었다.

 

313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 팔라치는 이 책이 앞으로 어떤 구조를 취하게 될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당시 그녀는 즉 작품의 개요를 간단히 요약한 글을 쓰지 않았다. 개요를 쓰라는 그의 충고는 그가 평생 동안 책을 한 권도 만들어내지 못했음을 지적하면서 깡그리 무시했다.

팔라치에 따르면, 창작 과정은 아이를 낳는 것과 같다. 오랜 기간의 잉태 끝에 새로운 생명이 나타나는 것이다. 태아는 준비가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어머니의 자궁을 떠난다. 작품의 아이디어를 품고 배양하는 기간이 때로는 5~6년이나 될 수도 있다.

 

313 작품이 걸작인지 아닌지는 마지막 붓질이 끝난 후에야 비로소 판명된다. 전체적인 창작과정은 느리게 진행된다. “마치 빵을 부풀게 하는 효모와도 같다.”

 

313 그녀는 <태어나지 못한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가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내서 작가를 활동적인 참여자로 맞아들였다고 단언했다.

 

315 아기가 비난하겠지. 아기가 그 여자를 비난하는 거야. 죽은 사람이 바로 그 아기니까. 아기가 자기를 태어나게 해 주지 못했다고 그 여자를 비난하는 거야. (이것은 또 다른 잉태의 순간이다.)

 

315 각각의 배심원들이 그녀의 살인혐의에 대해 발언을 하고 다수결로 평결을 내린다.

 

316 주인공의 친구는 아기의 아버지를 공격하며 그가 처음부터 낙태를 원했고, 주인공이 임신한 후 처음 두 달 동안 주인공과 거리를 두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녀는 여성주의적 시각의 대표자로서 남자가 여자의 몸을 이용하고 모성을 강요하는 남성위주의 사회를 공격한다.

 

316 마침내 태어나지 못한 아기가 나타나 모두들 진심을 말했지만 이 문제의 핵심을 꿰뚫어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뿐이라고 단언한다.

당신이 실제로 나를 죽이지는 않았지만,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입니다. 어머니.”

 

317 당신들이 수정란이라고 부르는 나의 세계에는 목적이 존재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바로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의 세계에서 유일한 목적은 죽는 것입니다. 삶은 사형선고입니다. 왜 내가 아무 것도 없는 상태로 다시 돌아가게 될 줄 알면서 굳이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밖으로 나와야 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318 그녀는 피렌체에서 알렉산드로스 파나고울리스와 함께 살면서 이 소설을 완성했다.

 

319 “당신이 돌아와 주면 선물을 줄게.”

무슨 선물?”

아주 아름다운 선물. 시 한 편을 준비했어.”

(자신의 원고를 허락없이 그가 읽었다는 것에 분개해 짐을 싸서 근처 호텔로 가버린 그녀에게)

 

팔라치는 이 책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마지막 문장을 뭐라고 쓸지 전혀 모르고 있었. 그저 미래를 믿으며 엄격한 지침에 따르기를 거부했을 뿐이다.

 

320 그녀가 낳은 적이 없는 아이의 자리를 이 책이 차지할 것이며, 그녀가 아이를 키우듯이 이 책을 엄격하게 다듬었다는 것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즐겁고 대중적인 문화의 형태로 다듬어져 삶과 죽음에 대한 오리아나 팔라치의 고뇌와 회의를 전달해주고 있다.

 

창작과 잉태를 연결하는 글들이 뒤의 소설의 창작과정에서도 나와서 발췌해 본다.

365 아이를 잃은 후 소설 <태어나지 못한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던 것처럼, 그리고 파나고울리스의 죽음이 소설 <한 남자>를 낳은 것처럼,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생겨난 강렬한 감정이 <인샬라>를 낳았다. 그녀는 이렇게 작품이 만들어지던 순간들을 역시 잉태로 비유한다.

우리 머릿 속에 들어 있는 알이 왜 아이디어라는 정자에 의해 수정되는 지 우리는 결코 알지 못한다. 수십 개, 수천 개의 아이디어 중에서 어느 하나의 아이디어가 특별히 배란을 하는 이유도 우리는 알지 못한다.”

369 내가 앞으로 쓸 책. 난 지금 책을 하나 임신하고 있거든.

 

362 1984년 그녀는 뉴욕에 있는 자신의 집 1층 방 하나를 개조해 책상과 서가, 복사기, 타자기 등을 들여놓은 다음 마치 수도승처럼 그 안에 칩거했다. 그녀가 인생의 모든 것을 책이 담당해야 할 부분으로 생각하며 이 힘든 작업을 끝마치는 데는 무려 6년이 걸렸다. 그녀는 자신이 작품 전체를 세 번이나 다시 썼으며, 토요일, 일요일, 트리스마스, 부활절에도 아침 10시부터 12시간 동안 고집스럽게 일을 계속했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기분전환을 위해 그녀가 한 일이라고는 티파니 램프의 불빛 속에서 일을 하다가 서재 창문을 통해 가끔 거리의 삶들을 흘깃 보거나 길모퉁이의 식품점에서 담배와 식료품을 산 것 뿐이었다. 자신의 책에서 그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이 스스로에게 가한 신체적, 정신적 고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소설 인샬라를 쓸 때의 모습

 

10 남자 혹은 여자

 

323 1976<한 남자>를 쓰기 시작했을 때 팔라치는 여전히 저널리즘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에우로페오>와 공식적으로 관계를 끊게 되었다. 우선 그녀의 연인인 알렉코스 파나고울리스가 그해 5월에 수상쩍은 죽음을 맞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암과 싸우던 그녀의 어머니 토스카가 그 싸움에서 점점 지고 있었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을 잃은 그녀는 마흔 살이 넘은 자신의 나이를 생각하며 원래 세상과 타협하는 수단으로 발을 들여놓았던 직업에 계속 열정적으로 헌신할 필요가 있는 지 생각해보았다.

 

324 <에우로페오>1976년에 토마소 기글리오의 자리에 다른 사람을 앉혔다. 팔라치는 이 커다란 존경을 받던 이 박학다식한 편집자가 갑자기 쫒겨난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조치에 항의하는 뜻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치안티의 그레비에 있는 시골집으로 내려가 파나고울리스에 대한 책을 쓰기 시작했다. 이미 직장을 그만두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그녀는 3년 반 동안 계속된 집필 작업에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매달렸다.

 

325 내가 탄탈루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 신들의 벌을 받아 물을 마시려 하면 물이 빠지고 열매를 따려고 하면 가지가 물러났다 옮긴이) 가 된 것 같았다. 난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었다. 책이 우선이었다.

멈출 수 없는 노동의 상징

 

325 그녀가 예전에 파나고울리스에 대해 썼던 기사들이 이 책의 기초가 되었다. 그녀는 이 책에서 사건들의 시간적인 순서, 이름, 장소 등을 마음대로 바꿨지만 마치 자석에 끌린 것처럼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들로부터 헤어나지 못했다.

 

328 그녀는 3년 동안 <한 남자>를 집필하면서 글의 형태를 여러번 바꿨다. 그녀는 프롤로그를 나중에 썼는데, 처음 완성된 초고의 분량은 최종원고보다 거의 300쪽이나 많았다. 그녀는 이 초고가 장식이 지나치게 많이 달린 옷 같았다면서 나중에 개정을 거쳐 완성된 성숙한 소설에 비하면 젖먹이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나중에 삭제된 초고의 내용 중에는 그녀의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었는데도 그녀는 편집자의 의견을 무시하고 230쪽을 삭제해버렸다.

 

329 그녀가 알렉코스 파나고울리스에 대한 책을 쓰자는 생각을 한 것은 그의 장례식 때였다. 그녀는 그날 느낀 창조적 충동에서 영감을 얻어 오래 동안 힘겹게 매달려야 하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팔라치는 그 자리에 모인 군중들이 마치 악몽 속에 등장하는 괴물처럼 자신에게 애정을 쏟아 부으며 영웅의 진실된 이야기를 써달라고 간청하는 것 같은 느낌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바로 그 자리에서 그녀는 고난으로 점철된 그의 삶과 자신들 두 사람의 관계를 자세히 묘사해서 그의 기억을 영원히 간직하기로 결심했다.

 

333 그녀가 살아있는 독자들 대신 죽은 남자와의 대화를 선택한 것은 그들을 결합시켜 주었던 고독이 어떤 것인지를 강조해준다. 프롤로그에서 그녀는 (그에게 그의 장례식을 설명해주고, 죽은 연인을 자신의 유일한 대화상대라고 지칭함으로써 자신의 서술방법을 정당화한다. ..이렇게누군가에게 직접 말을 거는 기법은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 에서도 이미 주인공이 뱃속의 아기에게 말을 거는 형태로 등장했었다.

편지의 형태에 대해 고민한다. 브런치에서 글을 써나가지 못하는 이유는 나는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로 쓰고 있었는데, 정보와 마음 돌보기를 나눠서 일기나 편지체가 아닌 것으로 쓰는 게 낫지 않겠나 했었다. 그런데 대화체가 나에게 익숙하긴 하지만 다른 성인여자를 향하는 글이 왠지 불편한 거다.

 

334 그는 몇 분 밖에 남지 않은 시간을 쪼개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해본 다음 마지막으로 주위를 한 번 둘러본다. <한 남자>에서 가장 흥미를 끄는 점 하나는 죽음이 중요한 등장인물로 묘사되어 있다는 것이다.

 

336 종이와 펜을 압수해버린 후에도 그는 글을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면도칼로 왼쪽 손목을 그은 다음 펜 대신 성냥이나 이쑤시개에 그 피를 묻혀서 거즈를 채워 넣은 포장지나 빈 담뱃갑에 글을 썼던 것이다. 그에게 다시 종이를 허락해주자 그는 그동안 썼던 글을 한 마디도 빼지 않고 옮겨 적은 다음 종이를 가늘게 접어 감옥 밖으로 몰래 빼돌렸다. 그 글들은 굴복하지 않고 꿋꿋이 버티는 남자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주었다.

이런 시인이 있구나.

 

337 그녀는 상상력을 도원해서 신화적 원형을 창조해냄으로써 커다란 성공을 거뒀다. 파나고울리스는 단순히 역사 속의 영웅이 아니라 고대 우화의 주인공이나 시적인 인물처럼 그려져 있다.

신화는 소설의 구성, 인물의 원형을 제공하는구나.

 

340 <한 남자>를 쓸 때 팔라치는 실제사건을 소설로 재구성하는 문제, 그리고 자신의 창의력과 현실 속의 진실을 모두 살려야 한다는 문제와 부딪쳤다.

 

351 알렉코스가 죽은 후 팔라치는 내면의 고통을 다스리면서 소설집필이라는 마법을 통해 파나고울리스가 망각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막았다. 1976년에 서른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역사적 인물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곧 사라져버렸지만, 팔라치가 쓴 기사같은 소설 속의 주인공으로 살아남았다.

 

352 파낙울리스가 죽은 후 그녀가 처음 타자기 앞에 앉은 것은 슬픔과 분노 때문이었다. 그리고 토스카나에서 스스로 죄수가 되어 글을 쓰던 3년 동안 그녀를 지탱해준 것은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가 잊혀지게 해서는 안된다는 결의였다.

그는 패배한 것이 아니다. 내가 그 사람 대신 말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책은 팔라치 자신의 자서전이기도 했다.

 

 

11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그리고 팔라치

 

 

354 팔라치는 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 또한 책을 규정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번역을 할 때 원문과 달리 말을 빼거나 덧붙이는 것에 강력하게 반대한다. 그녀는 단순히 글을 파는 장사꾼이 아니라 진정한 작가라면 단어 하나를 쓸 때마다 피를 쏟는 노력을 기울인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원문을 바꿔버리는 번역자라면 애당초 번역을 맡지 않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다.

 

355 다양한 언어들로 이루어진 바벨탑은 작가들에게는 재앙이다. 그녀는 번역자가 필요하지 않은 미술가와 음악가를 부러워한다.

 

363 “내가 쓰고 싶은 책이 너무나 많습니다. 다른 일을 하면서 돌아다닐 여유가 없어요.” 파라치는 작가로서 절정에 이르렀을 때에도 자신을 봐주는 대중을 위해 연기를 했다. 다만 이번에는 문학적 열정에 사로잡힌 세련되고 교양있는 소설가 역할을 연기했다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어떨 땐 이런 저자의 시선이 매우 부담스럽다. 그러나 이 책을 쓰는 과정에 골탕먹은 걸 서문에 밝혀 놓았다. 그걸 읽으면 성질이 대단하다 싶으다.

 

364 의사들은 남은 시간이 1~3개월이라고 했다. 팔라치는 어머니가 병석에 누웠을 때 <한남자> 집필을 중단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간호를 했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에도아르도의 곁을 떠나지 않고 간호사처럼, 어머니처럼 그를 돌보다가 다시 <인샬라>를 쓰기 시작했다.

내가 아버지의 어머니가 된 것 같아요. 아버지가 너무 작아져버렸어. 아버지가 화장실에 가실 때 내가 아버지의 몸을 일으켜드리는데 그게 전혀 힘들지 않아요. 아버지는 마치 아기처럼 나한테 몸을 기대요.” 그녀는 19882월에 아버지가 여든네 살의 나이로 마지막 숨을 몰아쉴 때 아버지를 품에 안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을 꼬박 새웠다.

 

369 내가 앞으로 쓸 책. 나는 지금 책을 하나 임신하고 있거든.

그녀는 아직 태아 상태인 책에 대해 구체적인 얘기를 전혀 하지 않았지만 글쓰기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그건 아이를 낳는 것과 같아요. 사람이 죽더라도 덜 죽는 것과 같아요. 아이를 남기는 사람은 남들보다 덜 죽어요. 그런데 난 아이를 낳은 적이 없어요.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죠. 날 덜 죽게 해주는 건 내 책들뿐이에요. 책을 남기는 것이 아이를 남기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373 <인샬라>를 쓸 때 팔라치는 전략이나 군사용어를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었다.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살육과 전투를 이미 자세히 알고 있었으니까. 단지 아이디어를 떠올려서 적절한 수단을 통해 표현하기만 하면 되었다.

 

383 쓰고, 고쳐 쓰고, 또 고쳐 쓰고, 또 고쳐 쓰고, 마침내 적어도 열 네 번 정도 고쳐 쓰는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글을 쓰고, 다시 고쳐 쓴 다음에야 영화를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공을 들이는구나. 한 두 번 고쳐 썼다고 포기하는 건 말도 안되는 거구나.

 

383 인샬라를 담당한 이탈리아의 편집자는 이 소설이 영화라기 보담은 콘서트처럼 느껴진다는 말로 팔라치를 깜짝 놀라게 했다...책을 쓰는 동안 그녀는 필사적으로 이미지들을 찾으려 애썼다고 말랬다. 그녀가 영화에 매력을 느끼는 것이나, 자신이 태어난 도시를 사랑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그녀는 궁전과 교회에 흠뻑 빠져 있기 때문에 피렌체를 극장으로 비유한다. ...예술적 작품들을 영상에 담아 쉬지 않고 보여주는 극장과 같다는 것이다. 르네상스의 메카였던 피렌체가 유혹적인 파노라마 영화 같다는 점을 생각하면 팔라치가 <인샬라>에서 시각적인 이미지를 강조한 이유를 상당부분 이해할 수 있다.

“TV나 영화가 나오기 전에도 피렌체에서는 어디를 봐도 벽에 프레스코 벽화와 이미지들이 있었다. 피렌체에 새하얀 벽은 하나도 없다. 벽에는 항상 그림이 있다. 나는 그런 풍경을 통해 사물을 바라본다.”

 

392 소설은 사람이 현실과 공상, 논리와 시, 생각과 감정을 동시에 쏟아 넣을 수 있는 그릇이오.

 

394 <인샬라>의 구조와 내용에는 고대 그리스의 걸작 <일리아드>의 여러 측면들이 반영되어 있다.

 

405 팔라치의 작품 중에서 가장 훌륭하고 야심차고 비극적인 소설 <인샬라>는 작가로서 그녀가 이룩한 최고의 업적이다. 이 작품에서는 그녀의 개인적인 경험과 작가로서 살아가는 삶에 대한 변명이 모두 들어 있으며 그녀가 열두살 때 잭 런던의 작품을 읽으면서 품었던 꿈을 마침내 실현시킨 작품이다.

 

에필로그 _낯선 괴물과 마주보기

 

409 작가가 죽더라도 그가 만들어낸 것은 계속 살아 있다. 죽음에 집착하는 사람은 책과 글쓰기에 매혹된 사람이다.

 

409 팔라치는 모든 것을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내기 위한 무대, 자신을 신화적 존재로 만들어줄 무대로 보았다. 그녀의 강렬한 행동과 문학적인 가사는, 제발 자기를 봐달라는 자기도취적인 애원이 들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을 적극적으로 유혹해서 그녀의 공식적인 이미지를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팔라치는 자신을 광고하는 악명 높은 인물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했다. 그녀가 쓴 거의 모든 글들은 그녀의 자아 이미지를 곰곰이 들여다보면서 공공연하게 재구성한 것이다.

 

410 전 질문을 하려고 여기 온 것이 아닙니다. 처음 글자를 깨우쳤을 때부터 줄곧 당신의 책을 읽었기 때문에 대답을 이미 알고 있거든요. 저는 저와 제 동료 학생들을 대신해서 당신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려고 여기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작가가 받는 최고의 찬사

 

410 팔라치가 보기에 어떤 작가들은 글은 잘 쓰지만 인생은 형편없다. 그들은 자신이 쓴 글을 배신하는 행동을 한다. 그녀는 이런 작가의 대표적인 예로 장 자크 루소를 들었다. 그는 훌륭하고 교육적인 글을 썼지만 자기 자식들을 버렸다.

 

411 여러 가지 면모를 지닌 팔라치는 어쩌면 서로 모순되는 두 개의 기질을 바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의 주장에 결코 굴복하지 않는 모험가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사색적이고 지적이며, 예술에 관심이 많고, 책 한 권을 끝내기 위해 몇 년이고 책상에 붙어 앉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이다. 서로 상반되는 이 두가지 기질은 항상 전쟁을 벌이는 적들과 같다.

 

412 팔라치는 어쩌면 자신의 마지막 모험이 될지도 모르는 암과의 투쟁을 겪으면서 현재 생애의 가장 큰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412 밀라노에서 수술을 받은 직후 19927. 팔라치는 의사들이 자기 몸 속에서 잘라낸 것을 꼭 봐야겠다고 우겼다.

 

413 암은 음험하고 경솔하지만 기민하게 음모를 꾸미는 적이 되었다.

 

416 그녀가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이 그녀에게 기운을 불어넣어주며, 어떤 의미에서는 그녀의 목숨을 지켜주고 있다. 비록 종이로 된 것이기는 해도, 이 책은 그녀의 아이가 되어서 그녀가 사라진 후에도 계속 생명을 이어가며 그 낯선 존재를 조롱할 것이다. 암은 이 아이에 대해 아무 힘도 휘두를 수 없을 것이다. 이 아이의 존재 속으로 침투할 수 없을 거니까. 그래서 팔라치는 마치 마라톤을 하는 것처럼 미친 듯이 시간과 경주를 벌이고 있다. 이제 곧 나올 그녀의 책은 2차 세계대전 전후 이탈리아의 파시즘을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서 그녀는 자신의 창조력을 또 다시 완전히 자신에게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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