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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24일 08시 47분 등록

서울 종로. 퇴역한 골목 거리에는 예전 추억과 회상을 머금고 있는 곳이 적지 않습니다. 오래전 손때들이 묻은. 주말이면 이를 향유하고픈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일상에서 흔히 누리던 것들을 이제는 특정한 곳에 가야만하다니 헛웃음이 나옵니다.

향수를 자아내게 하는 주점에 들렀습니다. 얼만한 세월이 흘렀을까요. 역사를 함께한 할머니 한분이 손수 주문을 받습니다.

“막걸리 한 병 주세요.”

탁자에 놓이는 양은주전자. 오랜만이군요. 쪼르륵. 플라스틱 병에서 새어나오는 것과는 다른 내음의 변주곡.

고된 농사라는 생업. 먹고 살기위해 아등거리는 와중 새참이 왔다는 전갈에 마음이 실룩거립니다. 꽁보리밥에 된장을 쓱쓱 비비고, 막걸리 한 사발에 김치 하나를 쭉 찢어 입 안 가득 오물거립니다. 뽀득 뽀득. 알싸한 알코올 기운이 시린 시간 하나를 금세 잊어버리게, 바람 한줄 이마에 쏟을라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땀 가라앉히게 합니다. 양은주전자. 흔하디흔했던 이 녀석도 이제는 이렇게나마 볼 수 있습니다.


주전자란 단어를 국어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풀이합니다.

‘물이나 술 따위를 데우거나 담아서 따르게 만든 그릇. 귀때와 손잡이가 달려 있으며, 쇠붙이나 사기로 만든다.’

술을 여기에 담아서 마신다는 것.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펑퍼짐한 배. 몇 번을 따르어도 나이가 들면 늘어나는 뱃살처럼 넉넉한 인심을 자랑합니다. 뱃살과 인격은 비례한다 했던가요. 허기진 위장에 밥이 들어가듯 가득 차있는 막걸리. 흔들어봅니다. 찰랑이는 옥타브 높은 음률. 이어서 쪼르륵 거리며 다시 내려앉는 묵직한 저음. 그렇습니다. 이질적인 병과는 달리 이는 눈으로 보고 소리로 취하게끔 되어있습니다.

한잔을 비웁니다. 따르는 술잔. 녹두 빈대떡 안주를 입에 오물거리며 찬찬히 모양새를 들여다봅니다. 노란색 황금 주전자. 동행을 해왔던 주인장을 닮은 듯 녀석 외양은 여느 주전자 같지 않습니다. 미끈한 아가씨 몸매가 아닌 이리저리 고난의 흠집이 나있습니다. 움푹 들어간 생채기. 세월의 풍상이 녀석을 찔렀을까요. 검게 그을린 바닥. 무얼 하다가 홀라당 태웠는지요. 깊게 찌그러진 이마. 아마도 술주정의 남정네들이 그리도 둘러엎고 패대기를 쳤나봅니다. 삶의 현주소인양 되살아나는 현실.

만남과 저마다의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는 그. 그러고 보니 녀석은 있어야할 곳에 든든한 누군가의 모습으로 자리한 채, 무대 위에 오른 배우들을 언제나 그랬듯 품어내었습니다.


술이란 본질은 변하지 않으나 담긴 형상에 따라 달라지는 분위기의 색채. 이를 느끼며 비어있는 잔에 다시 녀석을 기울입니다. 콸콸콸. 취기에 따라 들려오는 소리도 달라지는 모양입니다. 빛나는 젊음이 가신 모습이지만 아직은 쓸 만한 중년남성의 상징물처럼 요란합니다. 어떤 애환들이 있었을까요. 갓난아기를 달래듯 들어가고 튀어나온 상처를 다독여보았습니다. 인생의 주름을 간직한 채 나와 마주한 녀석. 기특합니다. 폐기되지 않는 한 또 다른 객에게 역전의 용사처럼 아직은 살아있는 노장의 올곧음을 계속 재현해 주겠지요.


쌓인 울분과 넋두리들을 견디며 받아 내온

농익은 시간 이제는 우람해진 와이프를 닮은 양 정으로 묻어가는

못생긴 외양을 자신의 훈장인양 뽐내는 녀석.

난 그를 안고 주린 배에 되새김질합니다. 그렇습니다. 함께해온 당신이 정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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