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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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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29일 15시 11분 등록


요즘 더치커피에 푹 빠졌다. 아들이 마셔보니 좋더라며 기구를 샀는데 최고다. 기구라고 해야 2만원 짜리지만 커피를 내려먹기에 손색이 없다. 삼층으로 이루어져 제일 위에 물을 넣고, 가운데 원두를 넣어 커피가 한 방울씩 떨어지는 구조인데, 천천히 내리는 것이 관건이다. 우리는 커피 500ml 내리는데 5시간이 걸리게 해 놓았다. 찬물로 장시간에 걸쳐 우려낸다는 것만으로 커피 맛이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는지 실로 경이로운 맛이다. 시고 쓴 맛이 부드러운 풍미를 가득 품고 입안에 퍼진다. 신 맛은 신선하고, 쓴 맛은 담백하고, 전체적으로는 상큼하여 이제껏 마셔 본 커피 중 제일 좋다. 에티오피아, 케냐.... 원두를 종류별로 샀지만, 같은 원두로도 물의 양에 따라 맛이 다르고, 하루이틀 숙성시키면 또 달라서, “이거 와인이네소리가 절로 나왔다.

 

<잡초레시피>라는 책이 새로 나왔다. 눈만 뜨면 경악스러운 사건들이 줄을 이어, 한 사회의 기반을 이루는 것이 불안인가 싶을 정도로 심란하던 차에, 잡초를 먹고 살면 천하에 맘편하겠다 싶어 냉큼 집어든다. 쑥과 냉이, 고들빼기와 미나리처럼 널리 쓰이는 것들도 원래 잡초아니든가. 거기에 뽕잎처럼 흔한 것과 환삼덩굴처럼 낯선 풀들을 더해 놓았다. 메꽃, 달맞이꽃, 토끼풀꽃도 먹어도 된단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제철에 난 것을 먹는 것이 제일 건강하다. 수천킬로미터를 이동하느라 방부제와 석유소비 등 온갖 문제를 매달고 있는 식품에서 벗어나 잡초가 주종을 이루는 식단을 생각만 해도 통쾌하다. 언젠가는... 조용히 다짐하는 산책길에 잡초를 보는 눈길이 달라졌다. 발길에 채일 정도로 흔한 질경이가 고맙고, 명아주가 반갑다. 이름은 몰라도 연해 보이는 속잎을 따서 질끈 씹어본다. 책 한 권으로 해서 잡초세상으로 초대받은 기분이다.

 

몇 년 전에 어떤 병원에 가서 글쓰기 특강을 한 적이 있다. 간호사 몇 십 명이 모여 강의를 잘 마치고 질의응답을 하는데 어떤 분이 우리는 병원 나가면 바보라는 말을 한 것이 잊히지가 않는다. 그 분들만이 아니라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달랑 자기 영역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세계가 아무리 넓고 인구가 많은들 무슨 소용이랴. 가는 길로만 다니고, 가족 말고 댓 사람 만나는 사람만 만난다면? 회사, , 회사, ... 거기 하나 더해야 교회?

 

더치커피를 알고나니 이제껏 커피라는 이름으로 마신 것들이 억울했다. 차와 커피, 맥주와 와인 같은 취향의 세계가 얼마나 두터울지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잡초레시피>로 상징되는 자급자족의 삶은 내 꿈의 종착역이 될 것이다. 자급자족으로 가닥을 잡고나니, 여타의 진보적인 철학을 실천하는 분들에게 머리가 조아려진다. 그 많은 취미와 기호의 세계를 모르고, 그 다양한 공부와 실천의 세계를 외면하다보면 나는 정말 바보가 될 지도 모른다.

 

 

한 사람이 필요한 세계는 하나가 아니다. 당신은 자기 일이 있어야 하고 가정이 있어야 한다. 당신이 독신을 선택했다면 그에 맞는 사생활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취미가 있어야 한다. 한 방면의 특기가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독서하고 수집하고 소장하며 기록하는 습관이 있어야 한다. 마땅히 자기만의 꿈과 환상과 내면세계가 있어야 한다.

-- 왕멍, <나는 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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