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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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감명을 받는 장면은 다 다릅니다. 몇 년 전 남해에서 다랭이논을 보고 아름답다고 감탄했더니 옆에 있던 연구원이 “그게 뭐가 아름답냐? 나 클 때 우리 동네에도 저런 것 많았다”고 하던 말이 기억나네요. 아메바처럼 비정형으로 생긴 땅들이 산허리를 감싸며 올라가는 장면은 그 자체로 조형미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한 뙈기의 땅도 놀리지 않는 농부의 손길이 느껴져서 가슴이 짠했는데 말이지요. 저는 농촌 풍경이나 농부의 노동을 ‘관망’하는 입장이었고, 그 연구원은 농촌에서 성장했기에 새로울 것이 없었던 탓이겠지만, 어쨌든 사람들이 감동하는 포인트가 같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살아오면서 형성된 가치관과 심리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과장해서 말하면 서로가 서로에게 외계인인 경우도 많으니까요. 어떤 싱글여성이 "같이 TV를 보면서 낄낄거릴 수 있는 사람"을 이상형으로 꼽은 것은, 너무도 현명하고 실감나는 기준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기에 한 편의 글을 쓸 때 절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내가 감동을 느꼈다고 해서 독자도 따라 감동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알았겠거니 하고 건너 뛰지 말고 최대한 자세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기본인 거지요. 눈에 보이는 것처럼 묘사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구요. 나에게 가장 소중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내는 자세도 꼭 필요합니다. 내가 느낀 감흥을 읽는 이도 느꼈다면 감동 아닌가요? 이름하여 공명(共鳴)! 저는 ‘공명’을 소리내어 읽으면 청아한 종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댕댕~ 내 가슴에 울린 종소리가 너의 가슴에도 들리다니 생각만 해도 흐뭇합니다. '글에 있어 최종심급은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라는 말도 있듯이, 쉽지않은 일이지만 글을 쓸 때마다 저는 ‘공명’이라는 말을 이마에 붙이고 있는 기분입니다.
다음으로는 활기를 꼽고 싶네요. 이렇게는 못 살겠다, 안 되겠다... 하는 염세적이거나 허무주의의 글은 써야 한 달이고 일 년이지 계속 될 수가 없겠지요.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90프로의 조건이 아닐 때에도 나머지 10프로의 실낱같은 가능성을 찾아 가는 자의 일입니다. 김연수는 "웃는 문장이 문학의 문장"이라는 표현을 하기도 했는데요, "사람은 모두 죽는다. 이 자명한 진실 앞에서, 그러나 그들이 쓴 글은 짐짓 잘 모르겠다는 듯이 모든 게 축제라는 듯이 웃고 있다. 문학의 문장은 그렇게해서 비극 앞에서 웃는다"는 거지요. 우리가 문학을 지향하진 않지만 글쓰기의 본령을 콕 짚은 것 같아 각별하게 기억하고 있는 문장입니다.
끝으로 진정성입니다. '가치'라고 불러도 좋겠네요. 글을 쓴 나 말고 단 한 사람의 독자에게라도 도움을 주는 것이 있어야, 비로소 글은 글이 됩니다. 아주 많은 사람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다면 베스트셀러가 되겠지요. 오소희의 데뷔작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줄 거야"에는 터키청년 유습이 오소희에게 연정을 품은 장면이 나옵니다. 80년대 출생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나,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오소희 자신을 떠나지 말라고 붙잡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건네는 말이 떠오르네요. 이 장면은, 여행지의 짧은 에피소드를 인생후배에게 주는 애틋한 조언으로 승화시킨 명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관심있는 분은 여기를 보세요. http://cafe.naver.com/writingsutra/1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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