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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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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31일 11시 48분 등록

 

 

[짧은 소설] “다음 순서는 국기에 대한 경례입니다. 내빈 여러분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매년 5월 19일, 남양주 해유령 전첩지에서는 임진왜란 때 최초로 육지전 승리를 이끈 신각 장군 추모 제향식이 한 시간 가까이 진행된다.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카메라에는 큼직한 셔터가 달렸다. 하늘은 잔뜩 흐렸다. 좋은 사진을 위해서는 빛을 들이는 정도를 잘 조절해야 하기에 날씨는 중요한 변수였다. 그는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대고 선 이들의 사진을 몇 컷 찍었다. 사회자는 순서를 진행해 나갔다. “애국가 제창이 있겠습니다.” 그는 입을 크게 벌리는 이들의 모습 두 장을 가까스로 찍어냈다. 그는 디지털 화면을 통해 방금 찍은 사진을 보며 사냥꾼이 느낄 법한 포획감을 느꼈다. 사진 속 주인공이 진지하면서도 힘차게 노래를 부르는 모습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현장 분위기는 사진과 달랐다. 스피커에서 녹음된 애국가가 흘러나왔지만, 참석한 이들은 노래를 크게 따라 부르지 않았다. 대다수가 입만 오물거렸다.

 

중요한 식순이 시작됐다.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이 차례대로 술잔을 올렸다. 그는 이 장면들을 집중적으로 찍었다. 저들의 제복이 파랑색 자주색이라 좋은 사진을 연출했다. 그는 신각 장군을 몰랐지만 사진 촬영에는 지장이 없다고 생각했다. 30분이 지났을 무렵, 그는 카메라를 가방에 집어넣었다. 이런 행사들은 비슷한 장면이 반복됨을 경험으로 아는 그였다. 제향식은 진행 중이었지만, 일은 끝났다. 엄숙한 분위기 탓에 밖으로 나가지는 못했다. 마음은 이미 퇴근이었지만, 너무 빨리 나갈 수도 없는 일이라 자리를 좀 더 지켰다. 어느 단체의 대표가 나와서, 최초로 외적을 무찌르고도 임금의 성급한 처벌로 억울하게 생을 마친 신각 장군의 충정을 기리는 낭독문을 읽었다. 충현사 한 켠에는 제향식 내내 한 청년이 신각 장군을 기리는 마음으로 경건하게 서 있었다. 예법(禮法) 하나하나의 의미를 알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면서.

 

사진작가는 기관지 편집인에게 사진을 보냈다. 편집인은 사진이 마음에 들었다. 사진은 칼럼니스트의 글과 함께 기관지 월보에 실렸다. P는 우연히 신각 장군 제향식을 다룬 기사를 읽었다. 신각 장군의 삶을 다룬 기사도 울림이 있었지만, 특히 열정적으로 애국가를 부르는 어르신들을 담아낸 사진에 감동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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